욜라탱고 [FakeBook] - 말하듯 노래하는 앨범,
어쨌든 봄이니까
욜라탱고다. 욜라탱고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의 음악인생 어언 20년, (지금 시점에선) 마지막으로 전작주의 감상을 감행한 밴드로서, 나는 이 밴드가 너무너무 좋다. 내가 자주 듣는 밴드들을 나누는 기준은 크게 세 종류로서, '사랑하는 밴드'와 '적당히 좋아하는 밴드', 그리고 '사랑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지만 자주 듣는 밴드'다. 욜라탱고는 어디에 속하는가 하면, 맨 앞의 '사랑하는 밴드'에 속한다. '애정'의 강도로만 따지자면, 거의 항상 3위권 내에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밴드'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열렬히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본 적이 없다. 2008년에 내한했을 때도, 도저히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다른 일들 때문에 그저 침만 삼켰다. 공연을 보지 못해서 그랬던 것인가. (공연의 봤더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는 듯, 보이는대로 음반을 사모았다. 오래 활동한 밴드(32년)인 만큼 발매된 음반도 많았으나(정규앨범만 16장), 활동기간에 비해서는 한국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밴드이다 보니 관련 정보는 매우 부족하였다. 그래서 안 되는 영어로 외국 사이트들도 참 많이 들락거렸던 기억이 난다.
욜라탱고의 어떤 점이 그렇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인가 하면, 그것은 바로 절묘한 '중용中用의 도道' 때문이다. '중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계적인 '가운데', '평균', '중간'이 아니다. 만가지 정서를 하나의 표정 안에 품고 있는, 또는 원하는 대로 변형 가능한 포괄성이자 가변성을 이르는 말이다(내가 여기서 쓰는 용법은 그렇다). 욜라탱고의 '사운드'가 그렇다. 중요한 것은 '음악'이 아니라 '사운드'가 그렇다는 점이다. 3인조의 간략한 구성임에도 어디 한군데 비는 곳을 찾을 수 없는 풍부함, 그것은 기타 피킹과 드러밍, 베이스런의 섬세한 조합에서 나온다.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이 음악은 전체 속의 부분으로서 음音들 각각이 전체의 표정을 품고 있다. 어느 한 소절을 떼어 놓아도 거기서 전체의 표정을 살필 수 있다는 말이다. 악곡의 구성은 또 어떤가.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레퍼런스를 품고 있는 밴드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20세기 대중음악의 요소들을 한가득 끌어안고 있다. 놀라운 것은 원작의 서명을 지운 채로 욜라탱고의 사운드 안에 그것들을 용해시켜 버렸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청자는 흔적은 들을 수 있지만, '이게 어디있던 거였지'라는 물음에 답할 수는 없게 된다. 말하자면 이 밴드는 몹시 깊다.
오늘의 앨범은 '페이스북'이 아니다. '페이크북'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가짜 책'이라는 뜻일까. 대략, 책 표지와 똑같이 인쇄를 하여 겉에서 보면 책처럼 보이지만, 까보면 속은 비어있는 노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기도 하고, 다른 의미로는 재즈 연주자들의 릭이나 솔로 연주들을 모아놓은 '리얼/페이크북'이라는 악보집을 두고 '페이크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욜라탱고의 앨범들은 아주 크게 (그리고 거칠게) '포크 계열' 앨범과 '사이키델릭'스러운 계열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이 앨범은 어디에 속하냐 하면, 전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후자에 속하는 'I Am Not Afraid of You and I Will Beat Your Ass'이지만,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고 살랑살랑 바람불어 마음마저 한껏 들뜨고 마는 계절, 봄이니까. 안타깝게도 요즘은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봄'은 '봄'이니까, 골라보았다. 전체적인 인상은 담담하다. 조용히 말하듯 노래를 부르고, 맞장구치듯 드럼을 치고, 리액션하듯 기타를 치는데, 아…… 그 절묘함이란. 보폭을 크게하며 천천히 걸으며 듣고 싶은 노래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물론 꽤 격한 트랙도 있기는 있다.)
담담함, 그것은 내가 요즘 최선을 다해서 지키려고 하는 감정이다. '음악'은 무엇보다 '시간'에 기댄 예술형식이어서 '정서'와 닮은 점이 참 많다. 그래서 이런저런 음악들을 많이 알고 있으면 내 마음의 상태에 비춰 음악을 골라듣게 된다. 마음을 유지하거나 바꾸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3인조 밴드'에 관해서 한 마디 이야기를 해야겠다. 3인조 밴드는 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밴드 구성의 완전수,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도 3인조였고, 지미 헨드릭스의 밴드오브집시스도 3인도, 크림도 3인조, 너바나도 3인조, 산울림도 3인조였다. 욜라탱고도 3인조. 3인조 구성에서는 당연하게도 사운드의 여백이 많아진다. 여기서 또 한번 두 부류가 있는데, 아예 '여백'을 남겨서, '여백' 그 자체를 이용하는 류와 입이 떡벌어질 테크닉으로 빈 곳을 가득 채우는 부류다. 욜라탱고는 양쪽 모두를 오간다. 베이스와 기타, 드럼이 서로 함께 메꿔주기도 하고, 혼자 치고 나오기도 하면서, 정말 절묘하게 여백을 지우는가 하면, 한순간에 텅 비워버린다. 그저 감탄만 나온다.
이 앨범이 가장 빛나는 시간대는,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 또는 너무 어두워지지 않은 늦은 오후(3~4시쯤) 버스 안에서다. 느릿느릿, 소곤소곤, 퐁실퐁실 이어지는 노래들을 듣고 있노라면 절로 '아 봄이로구나' 하게 된달까?
다만, 이 앨범 하나로 '아, 욜라탱고는 이런 음악이로군' 하지 마시길. 어떤 앨범의 어떤 곡은 꽤나 공격적이기도 하고, 의식이 날아갈 정도로 강력한 파워를 보여주기도 하니 말이다. 사실 그런 다양한 표정들 덕분에 나는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한다. 넓고 깊은 다양한 음악적 원천들에 닿아 있는 밴드이다보니, 벌써 데뷔 30년이 지났지만 영영 낡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오래 되었음에도 '신보'의 신선도에 대해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밴드가 몇이나 되겠는가.
어쩄거나, 담담하게 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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