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Blur, [Modern life is rubbish] - 내 인생의 밴드 Top20 쯤 들어가는 밴드


블러 [Modern life is rubbish] - 내 인생의 밴드 Top20



오아시스의 오래된 팬으로서, 블러에 관해 말하자면, 음……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 느낌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그냥 지표상으로는 앨범 판매량에서도 밀리고, 챠트 순위들도 밀리는 감이 있고, 발매한 앨범의 종수에서도 밀리며, (거의 확신하는 바이지만) 팬 수에서도 아마 밀리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건 말 그대로 지표, 결국엔 숫자에 관한 것이다. 내가 받은 그 '느낌'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니까 그 옛날(20년 전)부터 이쪽(블러)보다는 저쪽(오아시스)을 더 좋아한 것일 테지…….


다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어째서 이 밴드는 '죽이는데, 저 밴드는 '그다지……'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일까 궁금하기는 하다. 오아시스와 블러 말고도, 비틀즈와 롤링스톤즈나, 딥퍼플과 레드 제플린, 아이언 메이든과 주다스 프리스트 등도 있다.(이 경우 나는 후자들을 더 좋아한다.) 아마도 밴드가 풍기는 '인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슈퍼밴드'를 넘어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위대한' 비틀즈 보다는 약도 끊고, 술도 끊고, 사고도 끊고, 21세기에도 공연을 이어가기 위해 무려 '달리기'를 하는 '현역' 롤링 스톤즈가 어쩐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그런 '느낌'을 블러와 오아시스에 대입해 보자면, 흠……, 솔직히 블러는 처음 봤을 때, '아니 뭐 이렇게 생겨서 록을 하겠다는 거야' 싶었다. 말하자면 10대에 '거친 남자'이기를 '무의식 중에' 바랐던 나로서는 그들의(특히 데이먼 알반) 몹시 곱상한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하다. 그러니까, 그 시절, 10대 소년에게는 꽃미남보다는 고릴라에게 더 '친구' 같은 느낌을 받게 마련이었다. 심지어 오아시스는 '뭐? 왜? 우리는 록스타라고' 같은 오만한 태도로 언론을 상대하지 않았던가. 반대로 블러는 '우리가 비틀즈라면 오아시스는 롤링스톤즈가 아닐까' 같은 식으로 점잔을 빼기도 했었고. 핫뮤직의, 이른바 '브릿팝 특집' 기사에 실린 그런 저런 내용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만약 록스타가 된다면, 건방짐으로 세상을 씹어먹으리' 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아오 창피해) (뭐 물론 10대니까 그럴 수 있었던 거다. 그때는 '서울대'에 가는 것보다 '록스타'가 되는 게 더 쉽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었고. 물론 나는 록스타도 서울대에 가지도 못했다. 굳이 말하자면 안 하고 안 갔다. 후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블러를 아니꼽게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블러의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샀다. 왜냐? '별로'라는 걸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건 호오의 문제와는 조금 다르게, '록덕후' 또는 당대에 유행하던 말로 '매니아'라면 싫어할 때 싫어하더라도 일단 들어보고, 자세히 알아본 후에 '근거'를 가지고 싫어해야 한다는 직업윤리, 아니 취미윤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하였겠지만, 그렇게 '별로'임을 확인하려고 한장 두장 구입한 앨범들을 듣다가, '흠 괜찮은데', '좋군', '빅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괜찮은 밴드인 건 인정하겠어' 같은 식으로 점점 자주 듣는 밴드가 되어 갔다. 사실상 거의 흑역사나 다름없는(또는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Think tank] 같은 앨범도 나는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거의 20여년이 흐른 지금, 가장 좋아하는 블러 앨범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오늘 소개할 앨범 [Modern life is rubbish]를 꼽는다. 




대체로 5분 이내, 평균적으로는 3분 안팍의 짧은 곡들로 열네개 트랙이 빼곡하게 차 있는 구성이다. 생각해보니 블러의 곡들은 (순전히 인상에 불과하긴 하지만) 대체로 짧다. 짧은 곡 위주의 구성도 '별로'라는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이른바 '록의 중흥기'에 나온 '대곡' 취향의 곡들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이 앨범은 요즘도 꽤 자주듣는다. 애플뮤직 플레이리스트에도 상위에 등록해 둘 정도다. 어째서 이 앨범을 가장 좋아하는가 하면, 처음부터 앨범이 끝날 때까지 부담스러운 곡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후기의 앨범들은 이른바 '미국 인디' 풍의 노이즈 가득한 기타 사운드가 약간 껄끄러워서, '들을 준비'를 하고 듣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 앨범부터 시작되는 'life 3부작'에 수록된 곡들은 그렇지가 않다. 말하자면, '팝'스럽다. 




이 시절 영국에서 나온 음악들을 통칭, '브릿팝'이라고 부르곤 했었는데(요즘도 이런 용어를 쓰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브릿팝'이라고 하면 이 앨범과 스웨이드의 음반들이 떠오른다. 오아시스의 경우에는, 그게 처음에는 '브릿팝'이라고 부를만 했는데 갈수록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냥 '오아시스'가 되었다(팬심으로 하는 말이다). 여하간, '브릿팝'의 이데아 같은 음반이다. 


데이먼 알반의 보컬은 들리기에 전혀 진지하지 않고, 그저 목으로만 부르는 듯한 느낌을 주며, 기타 사운드는 쉽고, 깔끔하기 이를데 없다. 스웨이드의 음반들이 모종의 퇴폐적인 느낌으로 '나 브릿팝이오'라고 주장하는 느낌이라면 이쪽은 좀더 도시적으로, 꽤나 트렌디하게 자신들이 영국 출신임을 보여준달까?(물론 나는 처음엔 그 느낌이 싫었다) 


더불어 앨범 타이틀과 재킷도 기가 막히다. 물론 나이를 좀 더 먹은 다음에야 그 의미가 확실히 와닿았지만, 'Modern life is rubbish'라는 문구와 기차의 이미지를 결합시키다니! 이 얼마나 지적인 앨범아트인가 싶었다. 


물론 마음에는 여전히 아주 약간의 저항감이 남아 있다. 역시나 오아시스 때문인데, 오아시스의 대부분의 곡을 작사 작곡한 노엘은, '가사에 별다른 의미를 담거나 하지 않는다. 다만, 그저 살아온 이야기를 쓸 뿐'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태도가 정말 좋다. 반대로 블러의 경우에는 가사에도, 앨범 타이틀에도 여러모로 참 많은 '의미'들을 담는다. 그런 태도가 내 마음 속에서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일 텐데, 매사에 '의미'를 찾는 평소 나의 성향에 비춰 보자면 꽤나 모순적인 것이기는 하다. 쩝. 




그래서인지 블러의 여러 앨범들에는 대부분 '가사'가 꼭 실려있다. 그뿐인가? 이 앨범의 경우에는 기타 코드까지 실려있다. 처음 음반을 사고, 가사집을 꺼내 본 다음에 얼마나 감탄을 했는지 모른다. 이 좋은 걸 다른 모든 앨범(블러 뿐 아니라 세상에 음악이 담겨져 있는 모든 앨범)에 적용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앨범을 틀어놓고 듣다가, 가끔 방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기타를 들고, 둥둥 거리기도 한다.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말이지. 아, 그러니까 이건 말하자면 내 나름대로는 춤을 추는 것과 같은 것이다. 몸을 흔드는 일에는 워낙 미숙하니, 기타라도 손에 쥐어야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는 것인데, 아주 좋다. 가사집에 코드를 함께 실어준 것만큼은 블러가 더 좋다. 오아시스보다.(오아시스는 밴드스코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함정.) 아무래도 평생 내 마음속 밴드 TOP5 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겠지만(TOP20 정도에는 들어가 있다), 혹시 모를 일이지, 3위 안에 항상 들었던 라디오 헤드가 저 뒤로 밀려난 걸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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