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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방제와 병법

소건중탕, 음양이 모두 부족할때는 단맛이 나는 약이 필요해!

by 북드라망 2015. 9. 2.


열고, 먹고, 살아가라(Open, Eat, Live!)

- 소건중탕의 미학(味學)



앤은 한 빵집에서 아들 스코티의 생일 케이크를 예약했으나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경황이 없었다. 케이크를 찾으러 가기로 한 생일날 스코티가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가벼운 뇌진탕이라고 했지만 스코티는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결국 며칠 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스코티의 생일 날 부터 빵집주인이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예약한 케이크를 가져가라는 전화였다. 그러나 케이크를 예약한 사실을 알지도 못하는 남편 하워드는 물론이고 황망해 하고 있던 앤도 밤낮으로 전화해대는 이 사람이 빵집 주인인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빵집 주인은 집요했다. 새벽 5시에도 전화를 걸었다. 부부는 이 자가 스코티를 치고 달아난 뺑소니라고 생각했다. 빵집 주인은 스코티가 숨진 날도 전화했다. 그리고 하워드가 받자 전화를 끊어버렸다. 앤은 분노했다. “그 개자식, 죽여버리고 싶어.”(레이먼드 카버,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풋내기들』, 김우열 옮김, 문학동네, 166쪽) 그리고 나선 전화를 건 사람이 빵집 주인이란 걸 깨달았다. 그러나 분노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제 누가 전화하는 건지 알겠어. 그 개 같은 빵집 주인이라고, 하워드.” “케이크 건으로 우릴 괴롭히려고. 빵집 주인, 그 개자식.”(167쪽) 부부는 바로 빵집으로 갔다.


자정이 넘었지만 빵집 주인은 일을 하고 있었다. 앤은 빵집 주인을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죽었어.” “월요일 오후에 차에 치였다고. ... 하지만 당신이 그걸 알 리는 없겠지. ... 하지만 우리 애는 죽었어. 죽었다고. 이 자식아.”(171쪽) 앤은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했다. 빵집 주인은 잠시 멍하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좀 앉으세요.”(171쪽) 빵집 주인은 부부를 탁자로 안내했고 그도 앉았다. “그럴 만했겠군요.” “죄송하다는 말 외엔 드릴 말씀이 없군요. 날 용서해주세요. 그럴 수 있다면요.”(172쪽) 그리고 빵집 주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커피를 따랐다. “갓 구운 롤빵이라도 좀 드렸으면 싶은데. 드시고 살아내셔야죠. 이럴 땐 먹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거든요.”(174쪽) 빵집 주인은 막 오븐에서 꺼낸 따뜻한 롤빵을 내왔다. 그들은 커피와 함께 롤빵을 먹기 시작했다.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앤이 세 조각을 먹자 빵집 주인은 기뻤다. 주인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앤과 하워드는 피곤했지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주인은 아이 없이 지낸 세월에 대해, 중년에 찾아온 회의와 무력감 그리고 외로움에 대해 말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주인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동안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그렇게 계속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위의 이야기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내용이다. 빵집 주인의 말처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먹는 게 도움이 된다. 이렇게 기진맥진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마음이 닫히면 비위도 닫히기 때문이다. 만일 상대방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상대에게 마음을 열 수 있다. 앤과 하워드는 빵집 주인의 죄책감과 그가 겪어낸 무력감과 외로움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들이 겪어 내야할 비통함과 통하는 데가 있었다. 결코 같은 경험을 하진 않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처지를 공감했다. 며칠 간 지속된 아슬아슬한 갈등, 겪어왔거나 겪어내야 할 삶의 끔찍한 번뇌들. 그들은 피곤하고 지쳐 있었다. 그것도 서로의 마음을 여는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마음이 열려야 몸이 열리고 그래야 비위가 활동하면서 음식을 받아들일 수 있다. 적어도 살아가려면 이 두 가지를 확보해야 한다. 마음을 여는 것, 그리고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병사들에게 넉넉한 재물이 없는 것은 재화를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오래 사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명령이 내려지는 날, 병사들 중 앉은 이는 눈물로 옷깃을 적시고, 누운 이는 눈물로 얼굴을 적신다.

손무, 『손자병법』, <리링 『유일한 규칙』, 임태홍 옮김, 글항아리, 385쪽>에서 재인용


명령이 내려지면 출동을 해야 한다. 전투 중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앉아서, 누워서 눈물을 훔치는 병사들의 심정이 어떨지 생각해보면 참 애련하다. 이런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이탈병도 많았다. 그래서 “말을 나란히 매놓고 수레바퀴를 묻지만, 믿을 수 없다.” 탈출하고자 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할 것이다. 장수는 병사들이 일제히 용기를 내어 서로 한 마음으로 전투에 임하도록 하는 것이 숙제였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사람은 병사들이 손을 잡고 협력하기를 마치 한사람처럼 하는데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다.

 손무, 『손자병법』, <리링 『유일한 규칙』, 임태홍 옮김, 글항아리, 386쪽>에서 재인용


유능한 장수는 병사들이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도록 독려한다. 그러나 어쩌면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병사들이 서로 마음을 열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즉 전투에 임해서 곧 죽을 수도 있는 운명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왔고 성격도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마음을 열고 서로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여러 날의 전투로 지쳐 있었고 죽음이 임박했다. 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현재의 두려움을 견딜 수 있다. 죽음이 코앞에 닥쳐도 지금 살만한가를 물어야 한다. 어차피 죽음은 언제 닥칠지 모른다. 산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 살아 있는 현상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미리 번뇌를 감당할 필요가 없다. 지금 살만하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 주위에 있는 존재에게 마음을 열고 같은 처지에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체력이 아주 허약하다면 마음을 열 수 있는 상태가 되지 못한다. 마음을 열지 못하니 잘 먹지도 못한다. 그럴 땐 소건중탕(少建中湯)이 도움이 된다. 소건중탕은 마음을 열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한 상태에서 영양분을 직접 주입하여 일단 살 수 있게 하는 방제다. 소건중탕은 계지탕(桂枝湯)에 작약을 두 배로 늘리고 엿을 첨가했다. 계지탕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허약체질의 감기약’이라고 할 수 있다. 허약한 체질이라 땀을 왕창 뽑아내서 사기(邪氣)를 제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땀을 빼지 않을 수도 없다. 계지탕은 계지, 작약, 자감초, 생강, 대추로 구성된다. 계지의 약성은 안에서 밖으로 향하고, 작약은 밖에서 안으로 향한다. 즉, 계지는 땀이 나게 하면서 발산하고 작약은 땀을 멎게 하면서 수렴한다. 계지탕에서 계지와 작약의 용량은 같다. 그러니까 발산과 수렴의 기운을 동등하게 설정한 것이다. 이 두 기운은 체표 근처에 퍼져서 서로의 힘을 제어하고 조절하면서 강한 면역력을 형성한다. 그래서 땀을 적절하게 배출하면서 사기를 몰아내되 기운이 너무 쇠약해지지 않도록 통제하는 효과를 얻는다. 계지탕에 작약을 두 배로 증강시키면 힘의 평형이 깨지고 기운이 안쪽으로 수렴된다. 그러면 약효는 체표에서 중앙으로 이동하여 비위에서 성능을 발휘하게 된다. 이 방제를 계지가작약탕이라고 한다. 주로 허약한 자의 복통에 쓰인다. 작약의 양을 늘리면 “장의 평활근의 운동을 촉진시켜”(노영범, 『임상방제학강좌』, 대성의학사, 153쪽) 주고, 계지의 따뜻함이 비위에서 작용하여 중초(中焦)의 양기를 북돋게 한다. 이런 기전에 의해 복부의 경련을 멈추게 할 수 있다.


여기에 엿을 첨가한 것이 소건중탕이다. 소건중탕은 허약함의 정도가 더 심할 때 쓴다. 그래서 허약한 어린 아이의 복통에 많이 응용되기도 한다. 허약하다는 것은 기혈(氣血)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기혈이 심하게 부족하면 심장은 혈허의 보상기전으로 더욱 펌프질을 해대고, 기혈이 사지까지 도달하지 못해 사지가 시큰거리며, 비위가 허해지는 동시에 간목이 크게 성하여 목극토를 하므로 복통이 발생하고, 허열이 뜨기도 한다. 이렇게 “음양이 모두 부족할 때는 단맛의 약을 써야 하고 강한 약이나 많은 양의 약을 복용해서는 안 된다.”(영추) 단맛은 중초, 즉 비위로 들어간다. 비위는 후천의 근본이고 기혈이 만들어지는 원천이다. 쉽게 말해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는 능력이 생명활동의 근본이 되고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는 말이다. 단맛은 비위로 들어가 최단 코스로 기혈을 만들어주며 음을 보해주기도 한다. 여기에 작약의 양이 더해져 더욱 보음의 작용이 강해졌다. 전체 처방이 주로 따뜻하고 매운 양적인 약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자칫 음을 상하게 하기 쉽다. 엿과 작약은 이런 부분도 고려한 것이다.


소건중탕의 엿은 기혈을 만들어주고 음을 보해주기도 한다.



“살아내셔야죠.”(173쪽) 빵집 주인의 말처럼 살아내야 한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마음을 열고 먹을 수 있다면 살 수 있다. 물론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다. 앤과 하워드는 빵집 주인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권하는 빵을 먹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과를 받아들였고 커피와 갓 구운 빵을 먹었으며 주인의 하소연도 들어주었다. 빵집 주인도 약속 불이행을 인한 업무 손실을 주장하며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거나 빵을 내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용서를 빌었고 부부는 이해를 했으며 빵을 나눠 먹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카오스를 경험하는 일이다. 하나의 사건은 끊임없이 다른 사건과 섞이며 끝도 없는 과제의 연쇄를 만들어낸다. 하나의 과제는 곧 풀릴 수도 있지만 그 과제와 섞여 있던 또 다른 과제가 남아 있다. 혼융되어 있는 과제들은 하나의 과제를 푸는 실마리가 되며, 동시에 특정한 과제가 만든 감정의 덫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빌미를 준다. 이렇듯 우리는 카오스 속에서 슬픔과 분노를 오가며, 오열의 방에서 나와 빵을 먹기도 한다. 그것이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앤과 하워드는 살아가기 위해 또 하나의 사건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삶이 그런 카오스란 것을 무의식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빵을 선택했고 그리고 다시 살아갈 것이다. 



풋내기들 - 10점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우열 옮김/문학동네
유일한 규칙 - 10점
리링, 임태홍/글항아리
임상방제학강좌(臨床方劑學講座) - 10점
노영범 지음/대성의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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