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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방제와 병법

불면의 밤을 서성이는 그대를 위한 해결사, 산조인탕

by 북드라망 2015. 7. 22.


불면의 밤을어나는 법

– 조명과 무대로부터의 탈출, 산조인탕



영화 〈트루먼 쇼〉는 한 인생에 대한 거대한 ‘몰카’ 드라마다. 트루먼은 ‘트루먼 쇼’라는 한 티비쇼의 세트장에서 태어나 연기자들 사이에서 성장한다. 그는 자기 인생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티비에 방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어른이 됐다. 그러나 트루먼은 결국 삶 전체가 조작되었으며 큰 세트장 안에서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세트장을 벗어난다.






스포트라이트를 강하게 받을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주변은 어두워진다. 무대에 집중되는 조명 때문에 배우는 빛이 나지만 그 빛 때문에 배우는 관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트루먼도 그랬다. 거대한 무대와 엄청난 인력과 자본이 한 사람의 가짜 인생을 만들기 위해 동원됐고, 또한 전 세계 시청자들도 트루먼의 일상에 열광했다. 그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는 거대한 무대와 트루먼에게 쏟아졌다. 트루먼은 성인이 될 때까지 자기의 삶이 세트장 위에서 조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세트장 밖에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는지 몰랐다.

그러나 인위적 조작은 그 완성도를 높일수록 오히려 구조적인 결함이 드러나는 법이다. 트루먼쇼도 회가 거듭될수록 그런 결함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영화 초반에 이를 반영하는 사건이 하나 생긴다. 조명 기계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져 트루먼 앞에서 박살이 났다. 단순한 방송 사고였지만 트루먼에게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사건이었다. 하늘에서 조명기계가 떨어지다니. 이 사건은 그에게 지금 서있는 곳이 객석이 보이지 않는 무대라는 것을 깨닫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떨어진 조명은 스포트라이트의 빈틈이다. 나를 비추지 않는 그 빈틈은 반대로 객석을 볼 수 있는 틈새가 되며, 나아가 거대한 무대 장치를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가 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객석이 아니라 무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단서가 되었던 사건


만일 그 출구를 통해 무대를 빠져나오게 된다면 배우는 관객으로 변하게 된다. 관객 뒤쪽 위에서 비추는 빛은 관객 앞에 펼쳐진 무대를 향한다. 관객은 그 빛 외부에 감춰진다. 성장을 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벗어나 다시 그 자리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는 것. 그런 객관화의 과정이 성장이다. 무대 외에 더 큰 세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제 관객의 자리에서 내가 섰던 무대를 바라본다. 무대에서는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순 있지만 스스로의 연기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무대는 기존의 연기력이 지배하는 곳 혹은 기존 자아의 권력이 지배하는 곳이다. 기존의 자아를 유지하려는 권력은 아집과 어리석음을 낳는다. 객석은 무대에서의 탐진치를 뼈아프게 깨달을 수 있는 수행처인 동시에 새로운 연기로 도약하는 발판이 된다. 성장은 그렇게 스포트라이트로부터 빠져나와 양의 외부에서 존재와 세상을 관조하는 것으로부터 일어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티비쇼를 만든 총 감독이 세트장을 빠져나가려는 트루먼을 말렸다. “자넨 떠나지 못해. 자넨 여기 내 세상에 속해 있어. 내가 만든 세상에선 두려워할 게 없어.” 그의 말처럼 트루먼에게는 번듯한 직장과 명랑한 아내, 친절한 이웃과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있었다. 세트장 안은 두려울 것 없는 안락한 삶이 보장되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트루먼은 보장된 안락함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그 탈주의 과정은 처절했다. 트루먼은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바다를 건너기로 결심했다. 총감독은 파도를 일으켜 트루먼의 두려움을 자극시켰다. 그러나 트루먼은 거침없이 질주했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바다처럼 만든 큰 세트장) 한 복판에서 그는 외친다. “날 막을 생각이라면 차라리 날 죽여라.” 길을 가로막고 있었던 바다를 가로지르며 트루먼은 그렇게 한 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 성장의 발판을 딛고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대를 나가야 한다. 이 무대의 밖은 어둡고 안전하지 않으며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무대 밖은 갇힌 무대(기존의 삶)에 대해 객관화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삶을 여는 데 매우 유리한 위치라 할 수 있다. 결국 삶과 운명의 새로운 장(場)을 열고 싶다면 기존의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권력의 아우라에서 벗어나야 한다. 권력의 스포트라이트 안에선 저항이 힘을 잃는다. 주목해야 할 것은 힘 자체가 아니라 힘이 어떤 배치에서 사용되는가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야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 정말 탈출을 감행하는 트루먼


일본의 대표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싸움을 할 때에는 태양을 등지는 자리가 유리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되도록 태양이 오른쪽으로 비추도록 자리를 잡고, 어두운 밤이나 건물 안에서는 불빛을 등지는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이는 태양이나 불빛을 등지는 자리를 차지하면 상대방이 뒤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동시에, 왼쪽으로 움직일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 오른쪽에서 상대방을 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미야모토 무사시,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 박화 옮김, 원앤원북스, 91쪽


요컨대 유리한 위치에 서야 한다는 말이다. 태양을 등지고 서면 나는 상대를 잘 볼 수 있지만 상대는 역광 때문에 나의 모습을 잘 보기가 어렵다. 고수는 상대의 작은 손동작이나 눈빛의 변화만으로도 공격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상대가 잘 보는 위치에 서는 것은 승패를 결정 짓는 일이기도 하다.


이 전략은 하루를 마감하는 일에도 적용된다. 낮과 밤사이, 저녁 무렵은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다. 육체의 활동을 줄이고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면 몸은 밤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다. 준비를 마친 몸엔 음의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나른해지면서 점차 잠이 오게 된다. 낮이 무대 위에서의 공연시간이라면 밤은 공연이 다 끝난 후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시간은 공연이 막 끝난 시간에 비유할 수 있다. 관객이 퇴장하고 난 후 배우는 무대를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때론 무대에서 내려와 빈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면서 극중 인물에서 일상의 자기로 돌아갈 모드 전환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공연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공연이 끝났는데도 무대 위에서 서성이며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공연은 마감될 수 없다. 막이 내리면 조명과 무대를 벗어나 음지로 들어가야 한다. 공연이 끝나면 무대 밖의 어두운 곳이 유리한 위치가 된다. 무대를 떠나야 무대 전체를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낮의 활동 영역에서 벗어나야 낮의 활동을 객관화 할 수 있다. 거기가 하루를 마감하는 유리한 위치다.


하루를 잘 마감하지 않으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특히 감정을 마무리하지 않았을 때가 더 그렇다. 감정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심장에 열이 식지 않아 ‘허번(虛煩)’이 생긴다. “허번이란 가슴이 답답하고 편안하지 않는 것”(『동의보감』 「내경편」, 「몽」)이다. 허번이 나타나면 잠을 잘 잘 수 없다. 낮의 활동이 밤의 휴식으로 모드전환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아직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은 것이다. 극중 인물과 일상의 자기가 다른 것처럼, 낮 동안의 나와 밤 시간의 나는 다른 존재다. 낮엔 땡볕에서 일하는 일꾼이었지만 밤이 되면 그늘에서 쉬고 있는 한량이 되어야 한다. 수면은 이렇게 모드전환이 된 후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잠이 잘 오지 않을 때 쓰는 방제 중 하나가 ‘산조인탕(酸棗仁湯)’이다. 산조인탕은 산조인(초), 지모, 복령, 천궁, 감초로 구성된다. 군약(君藥)은 ‘산조인(초)’이다. 산조인은 산대추 씨다. 이것을 잘 말려서 보리 볶듯이 볶는데, 이 과정을 ‘초(炒)한다’고 한다. 그래서 산조인(초)라 하는 것이다. 산조인을 초하면 정신을 안정시키는 작용이 강해진다. 그래서 불면증에 산조인(초)를 많이 쓴다. 흥미로운 점은 산조인을 초하지 않고 쓰면 오히려 각성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조인탕의 산조인은 반드시 초해서 쓴다. 산조인은 붉은 색이다. 붉은 색을 띤 약재는 대개 심장으로 들어간다. 산조인도 그렇다. 산조인은 “심중(心中)에 액(液)이 부족해서 답답한 경우”(당종해, 『도표 본초문답』, 최철한 편역, 대성의학사, 317쪽)에 쓴다. 액은 일종의 ‘물(水)’이고 ‘음(陰)’이다. 심장에 액이 부족하다는 것은 음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음이 부족하면 상대적으로 양(陽)이 뜬다. 양은 ‘불(火)’이다. 따라서 이 말은 심장에 열이 있다는 의미다. 산조인은 심장에 음을 보강해주고 심장을 윤택하게 한다. 즉, 심열을 다스려 불면을 치료하겠다는 것이다. 불면을 초래하는 허번도 “음이 허(虛)해서 내열(內熱)이 생기기 때문에 일어난다.”(『동의보감』 「내경편」, 「몽」) 불을 끄고 어둠 속에 누워 있어야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심열과 허번은 방에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상황, 혹은 아직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상태다. 산조인(초)은 그 스위치를 끄고 정신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산조인은 그 스위치를 끄고 정신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모는 본격적으로 열을 끄고 진액을 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심장을 안정시키는 산조인이 지모를 만나면 심열을 더욱 쉽게 끌 수 있어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능이 더 좋아진다. 복령은 안신(安神. 정신을 안정시킴)을 보좌하고 삭힌 화기로 인해 생긴 여분의 물을 오줌으로 배출한다. 천궁은 혈액순환을 돕고 어혈을 풀어준다. 심장의 액이 부족하다는 것은 혈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혈이 부족하면 순환에 문제가 생겨 어혈이 생길 수 있다. 또한 넣어준 진액이 피로 들어가면 혈액순환의 속도가 늦어질 수도 있다. 천궁은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한다.


산조인탕은 음(陰)과 혈(血)이 부족해서 생긴 불면증 치료에 좋은 방제다. 그 치법은 심열을 끄고 마음을 안정시켜는 일이다. 심장은 마음을 다스리는 장부다. 결국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마음에 집중된 뜨겁고 밝은 조명을 피해야 한다. 트루먼은 자기의 삶이 밤낮으로 조명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밤에 도주를 감행한다. 자는 모습이 티비에 방영되고 있었지만 그건 트루먼이 이불 속에 인형을 넣어둔 거였다. 자는 모습까지 조명되고 있다는 걸 안다면 그 누구도 쉽게 잠들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트루먼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트루먼은 이미 그 조명을 피해 어둠 속으로 잠복했다. 세트장 문을 나서기 전 트루먼은 총감독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넨다. “못 볼지 모르니까 미리 인사할게요.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이트.”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이제 막 진입하려는 트루먼은 벌써 안녕히 주무시라는 말을 건넨다. 세트장은 안락하게 꾸며놓았지만 편하게 잘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세트장 밖은 어떤 시련이 닥칠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지만 적어도 스포트라이트와 무대에선 벗어날 수 있다. 트루먼이 이제 세트장 밖에서 가장 먼저 치러야 할 일은 인생의 한 마디를 마감하는 것이다. 즉, 티비 속의 주인공이었던 기존의 자기를 객관화하고 일상적인 개인으로 돌아갈 모드 전환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나선 깊고 편한 잠에 빠지게 될 것이다. 트루먼이 웃으면서 건넨 마지막 인사는 그런 휴식을 위한 메시지일 것이다. 또한 그 휴식은 객관화를 통해 이루어졌으므로 ‘성장’과 함께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트루먼의 인사는 그 스스로 성장과 도약을 이뤄냈다는 성인 의례의 선언이기도 하다. 이제 그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글_도담(안도균)


조명을 끄고 무대 밖으로, GOOD NIGHT:D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 - 10점
미야모토 무사시 지음, 박화 옮김/원앤원북스
圖表 本草問答 - 10점
당종해 지음, 최철한 옮김/대성의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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