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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방제와 병법

가감법 - 매번 달라지는 사람처럼, 방제도 달라진다

by 북드라망 2015. 10. 7.


변이와 확장의 낯선 묘미, 뷰티아웃사이드

– 방제의 가감법(加減法)



“남자, 여자, 아이, 노인 심지어 외국인까지, 나는 매일 아침 자고 일어나면 모습이 변한다. 시력도 좋았다 나빴다 시력도 이랬다저랬다, 매일 아침이면 새로운 나에게 모든 것을 맞춰야 한다. 왜 이렇게 됐는지 어떻게 해야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모른다.”

영화 〈뷰티인사이드〉 중에서


영화 〈뷰티인사이드〉는 이렇게 기이한 내용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나, 주인공인 김우진은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이후로 아침에 일어나면 모습이 바뀐다. 학교도 다닐 수 없었고 연애도 할 수 없었다. 이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은 엄마와 동업자이자 친구인 상백 뿐이다. 어느 날 우진은 홍이수라는 여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 이수는 매일 변하는 우진의 모습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매일 처음 보는 낯선 애인에게 익숙해지기엔 하루가 너무 짧았다. 급기야 신경쇠약에 걸렸다. 그녀는 의사와의 상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저를 만질 때 이 사람이 맞다. 이 사람이 맞다. 생각하고 봐요. 그럼 잘 모르겠어요. 눈을 감고 그 사람을 느껴요. 그럼 마음이 놓여요.” 그녀의 신경쇠약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고, 결국 우진은 힘들어 하는 그녀의 곁을 떠난다.





육체는 정신의 다른 모습일 뿐 육체와 정신은 하나다. 몸이 바뀌면 정신도 바뀐다. 우리의 몸은 늘 변하고 있다. 성장과 노화, 그리고 세포의 죽음과 재생. 그것만으로도 몸이 바뀌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 육체가 변하고 있으니 정신도 변한다. 육체와 정신이 바뀌면 다른 존재라 해도 된다. 그렇지만 오늘 아침 일어난 ‘나’는 어제의 자신임을 자연스럽게 감각한다. 그것은 몸의 변화가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느리고 또한 변화가 기존의 공간 안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기억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자신과 지금의 나를 과연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비슷한 것 같지만 우리의 새로운 세포들은 매일 다른 날씨와 사건, 그 새로운 운기와 시절인연을 겪는다. 그것은 분명 어제와는 다른 존재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아침 다른 존재로 태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매일 새롭게 재생되는 우리의 다른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우진은 매일 다른 존재로 태어나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만 이수는 그걸 우진의 존재로 받아들이기 참 어렵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환된 애인이 같은 존재로 느껴질 리가 없다. 우리는 다행히도 어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홍이수의 경우와 같은 이유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릴 염려는 없다. 하지만 다른 존재가 아니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생물학적인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주체는 늘 사건 속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이다. 관계로부터 독립된 개체는 없다. 일 하고 있는 나, 생각하고 있는 나, 자고 있는 나, 여행을 하고 있는 나. 주체는 항상 사건과 사물과의 관계 안에서 발견되고 구성된다. ‘나’는 매일 다른 시절 인연과 다른 사건들을 맞이하므로 ‘나’ 역시도 다른 존재가 된다. 영화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우리도 매일 새롭게 재생되고 있다.


‘나’는 매일 다른 시절 인연과 다른 사건들을 맞이하므로 ‘나’ 역시도 다른 존재가 된다. 마치 여행자처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로운 신체에는 새로운 관계 방식이 필요하다. 어제와 같은 상황 같지만 새로운 사건임을 감지 할 수 있다면 여기에 맞는 다른 감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롭게 느껴지는 낯선 상황. 그렇기 때문에 삶은 서툴러진다. 낯선 곳에서 헤매는 여행자처럼 일상이 생경하고 불편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여행의 참맛이기도 하다. 더듬더듬 지도를 보며 서툰 걸음을 내디디지만 접하는 광경과 사건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비슷할 뿐 같은 것은 아니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내 앞에 펼쳐지는 웬만한 사건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유일하며 처음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듯 낯선 환경이지만 우리는 낡은 잣대로 익숙하게 재단하기 쉽다. 비슷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달변을 참 싫어했다. 달변은 다른 사람의 말문을 막히게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 맞는 많은 해석의 여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프로페셔널한 말의 잔치는 타인에게도 자기에게도 폭력이 된다. 어눌하지만 매 순간을 처음 맞이하는 것처럼 해석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남에게 어리숙함이 들킬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실은 좀 더 나은 존재라는 것을 구차하게 밝히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많은 전제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건 일상의 무게를 떨치고 떠나는 여행자의 발걸음처럼 자기 스스로를 가볍고 자유롭게 할 것이다.



유능한 장수는 익숙한 상황에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어떤 환경도 새롭게 펼쳐진 장이다. 아무리 유리하다고 판단이 되어도 해로운 일을 대비해야 하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로움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순간을 낯설게 대할수록 상황을 더욱 객관화할 수 있다. 사태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장수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기존의 감각이 작동된다는 뜻이다. 그건 낡은 전법일 뿐 현재의 사태에 적확하지 않다. 


지혜로운 사람은 반드시 이로움과 해로움을 함께 고려한다. 불리한 상황에서 무엇이 이로운지 생각하면 임무를 수행함에 확신을 갖게 된다. 유리한 상황에서 무엇이 해로운지 생각하면 재앙을 미리 막아 근심을 풀게 된다. 이 때문에 장수가 해로움을 이용하면 적국의 제후를 굴복시킬 수 있고, 이로움을 이용하면 적국의 제후를 유인할 수 있다.

손무, 『낭송 손자병법/오자병법』, 손영달 풀어 읽음, 북드라망, 63쪽




사람을 치료하는 것도 이와 같다. 같은 병인 것 같지만 사람마다 다른 양상으로 병이 전개되고 드러난다. 같은 사람이라 해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새롭게 진단해야 하고 새롭게 처방이 일어나야 한다. 한의학의 운기학(運氣學)도 그런 맥락에 유용하다. 그 해의 운기 혹은 그 계절의 운기는 특정한 질병을 유도하기도 한다. 따라서 지금 앓고 있는 병도 운기에 따라 다양하게 변이될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도 “의사는 천지의 운기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질병은 다양한 병인(病因. 질병의 원인)과 병기(病機. 질병의 경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그에 따른 다양한 방제가 선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방제를 다 고려 할 수는 없다. 의사마다 자신이 잘 처방하는 기본 방제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이 다양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런 난제를 풀 수 있는 것이 가감법(加減法)이다. 즉, 기존의 방제에서 어떤 약재를 더하고 뺄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방제라 할지라도 전혀 새로운 약이 된다. 가감법은 하나의 처방에서도 매우 많은 경우의 수를 낳는다. 따라서 몇 가지 방제만 다루는 의사라 해도 가감법을 잘 쓰면 수많은 처방들이 가능하게 된다. 『방약합편』(성보사)에 소개된 가감법을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사물탕(숙지황, 작약, 천궁, 당귀)의 가감법이다.


“혈허(血虛) 경수부조(經水不調)에는 향부자, 익모초, 오수유, 육계, 인삼을 가(加)한다.”

“각통(脚痛)과 혈열(血熱)에는 지모, 황백, 우슬을 가한다.”

“봄에는 천궁을, 여름에는 작약을, 가을에는 지황을, 겨울에는 당귀를 배가(倍加)한다.”



병증에 따라 가감하는 것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서도 약재를 가감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만큼 가감법으로 인해 방제의 역할이 더욱 확장된다. 이렇듯 본방에 몇 가지 약을 더하는 가감법도 있지만 방제끼리 합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사군자탕에다 사물탕을 합치면 팔물탕이되고, 사군자탕에 이진탕을 더하면 육군자탕이 된다. 오령산과 평위산이 합쳐져 위령탕이 되고, 오령산이 소시호탕과 합방하면 시령탕이 된다. 가감법은 비슷한 증상들의 특이점들을 가려낼 수 있는 동시에, 다채로운 병증을 유기적인 계보로 묶을 수 있다는 데에 강점이 있다. 예컨대 사물탕에 지모와 황백을 더하면 혈과 음이 허해서 생기는 허열증을 치료할 수 있다. 지모와 황백은 대보음환 등 주로 음액을 보충하고 열을 식히는 방제의 주요 본초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약재들이 혈을 보충하는 사물탕과 만나서 하나의 방제를 이루면 보혈약의 계보 안에서 활동하게 된다. 즉, 보혈(補血) 위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부수적인 자음강화(滋陰降火)의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사물탕 加 지모, 황백’은 보편적인 의학의 법칙성을 벗어나지 않고도 허열을 동반한 혈허 증상이라는 개별적인 사례에 맞도록 진단해 낼 수 있다. 또한 본초는 본초대로 그 묘미를 들어낼 수 있고, 방제는 방제대로 중심을 지킬 수 있게 된다. 모든 질병은 새로운 상황으로 벌어진다. 하지만 의학의 특성상 구조적 이치를 버리고 질병마다 개별화된 의론을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감법은 보편과 특수 그리고 개념과 실재 사이를 절묘하게 연결한다. 그럼으로써 의학의 이치는 울렁거리는 현장 안에서 함께 유동하며 살아 있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우진과 이수의 재회로 끝난다. 체코에 머물고 있는 우진을 이수가 찾아가서 고백을 한다. “니가 어떤 모습이어도 상관없어. 이렇게 매일 다른 모습이어도 괜찮아. 다 같은 너니까. 난 니 안의 김우진을 사랑하는 거니까.” 그러나 이 고백은 똑같은 실패를 예고한다. 어떤 모습에서도 고유한 김우진은 없다. 우리가 늘 새로운 신체로 태어나듯 우진 또한 다른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한 강도로 변이된 신체를 통해서 말이다. 이수는 고유한 내면의 아름다움(뷰티인사이드)을 찾는 대신 전변하고 확장하는 유려한 바깥쪽(뷰티아웃사이드)을 향해 시선을 열어 놓아야 한다. 그래서 다 같은 김우진이 아니라 늘 변이하는 우진을 새롭게 만나야 한다. 우리가 어제의 몸이 아니라 새로운 몸으로 거듭남을 감각해야 하는 것처럼.


글_도담(안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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