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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방제와 병법

일상의 기본기와 기교를 위한 국민적 방제 "쌍화탕"

by 북드라망 2015. 9. 16.


기본기와 기교의 계보학

–일상의 실력자, 쌍화탕




기본기를 갖추지 않은 채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사람에게 흔히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한다. 기본기가 바탕이 되지 않는 기교는 수명이 짧다. 지푸라기에 붙은 불처럼 금방 타올랐다 꺼져버린다. 더 고난도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본기가 있어야 한다. 기본기를 갖추려면 선생이 해줄 수 없는 지루한 과정을 스스로 버텨내야 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훈련을 견뎌내고, 기본적인 것들이 몸에 붙었을 때야 비로소 기교가 빛을 발하게 된다.


기본기는 신체의 기억이다. 베르그손은 이런 기억을 ‘습관기억’라고 했다. 습관기억이란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신체 안에 새겨짐으로써 행위를 자동화시키는 기억이다. 예컨대, 젓가락질이나 자전거타기 혹은 글씨를 쓰는 등 오랜 기간 동안 반복된 경험이 몸에서 저절로 행동으로 일어나는 것이 습관기억에 의해서다. 참고하자면 이와 상반된 개념이 ‘이미지기억’이다. 이미지기억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억으로, 경험들이 일어난 장면이 장소와 시간 등과 함께 이미지로 떠오르는 기억이다. 자전거를 탈 때 별다른 저항 없이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습관기억에 의한 몸의 행동이라면, 자전거를 배웠을 때의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이미지기억이다. 논어를 암송하는 것은 습관기억에 의해서이고, 논어를 외울 때의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이미지기억이다.


별다른 저항없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이 습관기억에 의한 몸의 행동이라면, 자전거를 배웠을 때의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이미지기억이다.



베르그손은 이미지기억을 표상으로, 습관기억은 행동으로 구분한다. 즉, 이미지기억은 특정한 과거의 이미지 속에 존재하는 반면 습관기억은 현재의 행동과 연결된다. 기본기라는 습관기억도 역시 현재의 행위와 연결된다. 현재는 늘 우연적이고 예기치 않은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기본기는 새롭게 갱신되는 현재의 장에서 축적된다. 다시 말해 기본기는 반복된 훈련 과정 속에 현재의 상태가 반영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다. 이러한 기본기의 갱신이 계속 일어나면, 기본이라는 잠정된 역치를 넘어서는 어떤 순간이 생기는데, 이때 나타나는 실력이 바로 기교가 된다. 그래서 기본기와 기교는 날카롭게 단절되지 않는다. 기본기의 도약적 갱신이 기교이고, 기교의 모태가 기본기다.


그러나 모든 기본기가 다 기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투자한 시간과 훈련의 방법에 따라 역치를 비약적으로 돌파하기도 하고 기본에 머무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피아노의 기초과정을 마스터한 뒤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피아노 연주의 기교적인 실력이 있다고 할 수 없다. 투자한 시간이 모자라 기본기의 역치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훈련 방법도 중요하다. 처음 기타를 배울 땐 코드 몇 개를 가지고 쉬운 곡을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현란한 주법으로 스트로크를 한다 해도 코드 몇 개만으론 기타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기타를 잘 치려면 거기서 조금씩 더 어렵고 지루한 훈련을 거쳐야 한다. 크로매틱 연습(지판 위의 6개 줄을 손가락으로 반음씩 짚어가는 노가다 훈련)을 성실하게 하고, 다양한 스케일을 터득해야 하며, 음악이론도 공부해야 한다. 요컨대 기본기가 기교로 도약하기 위해선 기본기를 훈련할 시간과 접속해야 하고, 늘 새로운 체험(기술)을 시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본기가 현장에서 기교로서 빛을 발휘할 수 있다.



기본기가 잘 갖춰져 있어야 기교로 도약할 수 있다



특히 진검 승부의 상황에서는 기교가 승패를 좌우한다. 기교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은 늘 새로운 현장과 만나는 연습을 해왔다는 뜻이다. 새로운 기술을 터득하는 과정은 낯선 상황을 자신의 기운 안으로 받아들여 그 상황을 장악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교는 기본기를 잊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승부가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기본기를 잊어야 기교의 역량이 잘 드러날 것이다.   


검을 휘두르는 자세에는 상단자세, 중단자세, 하단자세, 왼옆구리 겨눔세, 오른 옆구리 겨눔세의 다섯 가지 기본자세가 있다. 하지만 싸울 때에는 ‘이 상황에서는 반드시 이런 자세를 취하야 한다’라는 방정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검을 휘두르는 자세에 정해진 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을 자세가 있으면서도 자세가 없다는 뜻에서 ‘유구무구(有構無構)’라고 한다. 어떠한 자세를 취할지는 상대방과의 관계에 따라, 혹은 그때의 상황에 따라 조금이라도 더 상대방을 베기에 유리한 쪽으로 선택해야 한다.

미야모토 무사시,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 박화 옮김, 원앤원북스, 66쪽


그렇지만 우리는 실제로 목숨을 거는 승부를 겪지 않는다. 따라서 기본기를 넘어 농익은 기교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실력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기교로 가는 과정을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자신과의 승부처에서 충분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과거로 회귀하려는 기존의 자아와 맞서서 좋은 대결을 벌일 수 있다. 습관기억은 의도에 의해 사용되지만 이미지기억은 불현 듯 나타난다. 이미지기억은 과거의 특정 시공간의 장면과 함께 등장하는데, 그 순간에 일어나는 의식의 방향은 과거로 회귀한다. 이 예기치 못한 기억에 의해 우리는 수동적인 정념에 사로잡힐 때가 적지 않다. 상기된 기억이 상처나 자의식을 불러올 때가 그렇다. 이렇게 정념에 장악되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인간의 무능력을 스피노자는 ‘예속적’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감정에 종속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운명의 지배 아래에 있으며, 스스로 더 좋은 것을 보면서도 더 나쁜 것을 따르도록 종종 강제될 정도로 운명의 힘 안에 있기 때문이다.”(B.스피노자, 『에티카』, 황태연 옮김, 도서출판 피앤비, 232쪽) 기본기에서 기교로 가는 길은 현재의 새로운 상황과 마주하는 쪽으로 향해있다. 그것은 현재가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미래의 방향이다. 기본기라는 습관기억은 고단한 훈련을 통해 얻게 되지만 자신의 의지에 의해 쉽게 상기된다. 따라서 불시에 나타나 때때로 수동적 정념에 예속되게 하는 이미지기억의 역주행을 의도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베르그손도 습관기억이 이미지기억을 억제한다고 했다. 따라서 “현재에만 관심을 갖는 평소의 의식에서 먼 과거의 기억들은 떠오르지 않”(황수영, 『물질과 기억, 시간의 지층을 탐험하는 이미지와 기억의 미학』, 그린비, 138쪽)는다. 물론 이 과정이 정념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는 예속된 정념을 해방시켜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기본기에 기교로 이어지는 과정에는 수많은 정념의 씨앗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발적이고 변덕스러운 이미지기억에서 비롯된 정념과는 다르다. 오히려 어떤 진보에 대한 기대와 맞물려서 약간 즐기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는 정념이기도 하다. 그렇게 ‘기본기-기교’의 여정은 미래로 향해 있으며 “나의 습관과 마찬가지로 나의 현재를 구성한다.”(앙리 베르그손, 『물질과 기억』, 박종원 옮김, 아카넷, 141쪽)



한의학에서는 기교가 신장으로부터 나온다고 보았다. 『황제내경』 「소문」에는 “신(腎)은 작강지관(作强之官)이니, 여기서 기교(技巧)가 나온다.”라는 말이 있다. ‘작강’은 작용이 강력하다는 뜻이고, ‘기교’는 기술의 정교함을 말한다. 신장은 오장 중에서 가장 음적인 장부로서 정기의 근원인 정(精)을 저장하며 뼈를 주관한다. 뼈와 정은 몸의 가장 기본 구성 요건인 프레임과 에너지다. 행동의 모든 힘은 뼈와 에너지를 근간으로 한다. 근육의 힘도 튼튼한 뼈가 바탕이 되어야 쓸 수 있다. 그런 점에서도 신장은 작강지관이라 할 만하다. 기교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양이 음으로부터 일어나듯, 밖으로 드러나는 정교하고 화려한 기술은 투박하고 거친 심연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신장은 기교가 나오는 장부이므로 기본기에 비유할 수 있다. 기교가 제 기량을 잘 발휘하려면 기본기부터 닦아야 한다. 그러나 늘 새롭게 변하는 시공간에서 현재를 지속시키면 기본기의 역치를 벗어나 유연한 기교로 대처해야 한다. 현재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절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신장은 오행상 수(水)에 속하며, 신체에서 물(진액)을 주관하는 장부다. 물은 변형되고 스며든다. 이런 물의 변화무상한 특징이 기교와 닮았다. 기교는 강력한 기반을 바탕으로 기술을 유연하게 다루는 능력이므로. 또한 기교는 현장과 직접 대면한다는 점에서 간(肝)과의 관련성도 있다. 간의 기운은 목(木)에 속하며 장군(將軍)에 비유된다.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듯 생기 충만하게 내달리는 본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은 삶의 현장에 가장 빨리 접속해서 세상과 관계를 맺는 역할을 한다. 이때 상화(相火)라는 에너지를 사용하는데, 그 양기는 신장(우측)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결국 기본기와 기교는 신(腎)과 간(肝)의 계열 안에서 설명된다고 볼 수 있다.


기본기와 기교는 신장과 간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한의학적으로 ‘기본기-기교’를 잘 쓰려면 신장과 간이 건강해야 한다. 신장의 건강성은 정(精)의 보존과 관련하며, 뼈와 관절, 두려움, 열감 혹은 수족냉증과 함께 포괄적으로 비뇨, 생식, 내분비 계통의 병증으로 드러난다. 간은 혈(血)의 저장과 기(氣)의 소통, 배설 능력에 의해 건강성이 결정되며, 이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분노, 근육의 이상, 월경부조, 화병, 소화계, 순환계 등의 병증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신장과 간의 문제는 정(精)과 혈(血)의 보존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이들 장기의 병증은 무엇보다도 면역력 저하와 피로함의 문제(다른 장부의 기본 병증이기도 함)가 가장 쉽게 인지될 수 있다. 면역저하는 감기로 이행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피로와 함께 신체의 컨디션에 매우 현실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일상의 피로와 초기감기에 흔히 쓰이는 방제가 있다. 바로 쌍화탕(雙和湯)이다.


“(쌍화탕은) 정신과 육체가 다 피로하고 기혈(氣血)이 모두 상한 경우에 쓴다. 혹은 방사를 치른 뒤 과로를 하였거나 과로한 뒤에 방사를 치렀을 때 처방한다. 또한 중병을 앓은 뒤에 허로로 기(氣)가 상해서 식은땀이 흐르는 증상을 치료한다.”

『동의보감』, 「잡병편-허로


쌍화탕은 엿을 뺀 소건중탕에다 사물탕(四物湯)을 합해서 만든 방제다. 소건중탕은 음양이 모두 허할 때 쓰는 약이고 사물탕은 혈이 허할 때 쓰는 보혈약이다. 음양은 혈과 기, 육체와 정신, 본체와 작용, 기본기와 기교 등으로 상징된다. 사물탕이 보혈약이므로 전체적으로는 양보다는 음쪽으로 더 기운 것 같지만 소건중탕에서 엿이 빠졌기 때문에 대체로 음양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를테면 기본기와 기교가 적절하게 소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기교의 활약은 기본기를 잊어버리면서 더욱 부각된다. 쌍화탕이 약의 구성은 음양이 균형을 갖췄지만 약효 면에서는 양적으로 치우쳐 나타나는 것도 기교의 활약에 비할 수 있다.


그러나 쌍화탕은 실제로 음적인 기본기에 충실한 방제다. 사물탕은 숙지황, 작약, 당귀, 천궁으로 구성된다. 숙지황은 신장과 간으로 들어가 진액과 정을 보충해준다. 당귀는 보강된 진액을 혈로 생산하고, 천궁은 오래된 혈을 제거하는 역할을 맡는다. 작약은 주로 간으로 들어가 혈을 저장하여 음을 확보한다. 간에 혈이 저장되는 것을 ‘장혈(藏血)’이라 한다. 사물탕은 이처럼 신과 간의 진액을 바탕으로 혈을 만들고 장혈하여 음적인 에너지를 확보하는 경향성을 가진다. 하지만 생혈은 그 자체로 활혈(活血), 즉 혈액순환의 활동도 증가시키며 또한 양기(陽氣)로 전화된다. 여기에 소건중탕의 계지가 심과 폐의 양기를 북돋아 혈을 따뜻하게 하고 기혈의 순환 속도를 더욱 높인다. 구운 감초와 생강, 대추는 비위를 따뜻하게 보하고, 황기는 비위를 크게 보하여 생혈을 돕고 체표의 면역력을 강화시킨다. 결국 쌍화탕은 기혈 순환을 도와 피로감을 치료하고, 면역력을 강화시켜서 외사(外邪)로부터 몸을 방어함으로써 기교적인 측면에서 강렬하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작용은 그 전에 신과 간의 정과 혈을 보충하면서 음적인 기본기를 다졌기 때문이다. 정혈에서 전화된 양기의 활동으로 기교가 돋보인 것이지 처음부터 양기 위주의 약재를 썼기 때문은 아니다. 감기 기운이 있거나 일상적으로 피로할 때 우리는 흔히 약국에서 쌍화탕 드링크를 사먹는다. 쌍화탕이 이렇게 흔하게 사용되는 것은 그만큼 안전하고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이런 균형감과 고차원의 실력 때문에 쌍화탕은 부작용이 매우 적고 쉽게 처방할 수 있는 국민적인 방제가 되었다.


글_도담(안도균)


몸의 '기본기'가 흔들린다 싶을 때는 쌍화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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