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억울함의 병, 간기울결을 해소하는 사역산


우두머리를 잡는 지상 최대의 과제

– 사역산과 기울




오슈코른 영감이 장터에서 땅에 떨어진 조그만 노끈 한 오라기를 줍는다. 모파상의 단편소설 <노끈 한 오라기>의 첫 장면이다. 그때까지 영감은 이 노끈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영감은 소용이 될까 싶어 노끈 토막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건너편에서 앙숙인 말랑댕 영감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쇠똥 속에 있는 하찮은 노끈을 줍다가 원수에게 들킨 것이 수치스러웠던 오슈토른 영감은 노끈을 얼른 셔츠 속에 감추었다. 그런 뒤 영감은 장터에서 볼 일을 보고 있었다. 그때 어떤 이가 장터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소식을 알리고 다녔다. 내용인즉슨, 오늘 아침 마을의 한 유명인사가 돈이든 지갑을 잃어버렸고 지갑을 주은 사람은 사례를 한다는 것이다. 이 일이 있고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장터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오슈코른 영감 앞에 헌병이 나타났고 그를 읍사무소까지 데려갔다. 헌병 대장은 오슈코른 영감에게 지갑에 대해 추궁했다. 오늘 아침 오슈코른 영감이 지갑을 줍는 장면을 말랑댕 영감이 보았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영감은 분하고 억울하여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노끈 이야기를 했지만 믿지 않았다. 주머니를 뒤졌지만 지갑이 나오지 않아 헌병 대장을 오슈코른 영감을 돌려보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오슈코른 영감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자기의 억울함에 대해 끝없이 얘기했지만 어떤 이도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일로 밤새도록 앓았다. 그런데 이튿날 지갑을 주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제 영감은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 이야기를 했다. 교회, 술집, 시장, 심지어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자기의 억울했던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무언가 꺼림칙한 데가 있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를 놀리는 듯했기 때문이다. 말랑갱 영감도 자기를 보고 비웃었다. 사람들은 그 지갑을 오슈코른 영감이 주운 뒤 다른 사람에게 시켜서 되돌려주게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분하고 울화가 치밀고 눈앞이 아득하여 목이 죄는 것 같”(기 드 모파상, 『모파상 단편선』, 김동현, 김사행 옮김, 문예출판사, 123쪽)았고 “밑바닥까지 푹 가라앉은 그의 정신은 쇠약해지고 있었다. 섣달그믐께 그는 앓아 누웠다. 그는 정월 초순에 죽고 말았다.”(위의 책 124쪽) 


억울함은 때론 이렇게 깊은 병으로 이어지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억울함이 지속되면 우선 간(肝)을 다친다. 간은 오행 중 목(木)에 속한다. 목은 봄의 기운 혹은 어린 아이를 닮았다. 속도가 빠르며 생기가 넘친다. 간의 성질도 그러하다. 간기(肝氣)는 빠르게 내달려 소화에 도움을 주고 감정이 뭉치지 않도록 흩어버린다. 그런데 너무 억울한 일을 겪으면 간기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울체된다. 그러면 옆구리가 당기고 쉽게 화를 내며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 되고 한숨을 잘 쉬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런 병증을 ‘간기울결(肝氣鬱結)’이라고 한다. 오슈코른 영감처럼 분하고 울화가 치밀고 눈앞이 아득하여 목이 죄는 것 같은 증상도 간기울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증상이 깊어지면 간에 열이 나서 위로 뜨게 되며 점차 몸의 진액을 말리게 된다. 심하면 정신질환이 나타나거나 진액이 모자란 노인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간기울결에는 대개 ‘시호(柴胡)’라는 약재를 쓴다. 시호는 울결된 간기를 풀어주고 간이 목기를 회복할 수 있게 한다. ‘사역산(四逆散)’은 시호를 군약으로 하여 간기를 뚫어주는 처방 중 하나다. 사역산은 시호와 더불어 지실, 작약, 감초로 구성된다. 작약은 시호와 짝을 이루어 간을 조화롭게 한다. 즉, 시호가 간기를 뚫어주는 주도적 역할을 한다면 작약은 간에 혈을 저장시키고 간을 부드럽게 하여 시호의 역할을 돕는다. 지실은 비위(脾胃)로 들어가 적체된 기운을 없앤다. 간기가 뭉치면 비(脾)를 억압한다. 이는 목이 토를 억제하는(목극토) 원리에 의해서다. -간은 목에 속하고, 비는 토에 속한다.- 간의 울체가 비를 억압하면 (상)복부가 단단해지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지실은 이런 증상을 치료한다. 감초는 이 약들을 서로 조화시키고 속도를 조절한다.


사역산은 ‘수족불온(手足不溫)’이라는, 손발이 차가운 증상에도 쓰인다. 비슷한 뜻으로 ‘수족궐냉(手足厥冷)’이라는 이름도 있다. 하지만 이 두 명칭에는 큰 차이가 있다. 수족불온은 손발을 주무르면 곧 따뜻하지는 반면, 수족궐랭은 주물러도 따뜻해지지 않는다. 수족궐랭은 몸에 양기, 특히 신장의 양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생긴다. 양기(화기)가 부족하니 오장육부를 데우는 데 일차적으로 쓰일 것이다. 손발로 갈 양기는 부족하다. 그래서 손발을 주물러도 열이 사지 끝까지 가질 않는다. 이때는 매우 따뜻한 약을 쓴다. 대표적인 약이 사역탕(사역산과 다름)이다. 부자, 말린 생강, 감초가 들어간 약이다. 몸을 따뜻하게 하면 수족궐랭이 사라진다. 수족불온의 경우엔 양기가 부족해서 손발이 차가운 것이 아니다. 몸 어딘가에 양기(화기)가 뭉쳐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양기를 집어 넣어주는 것으로 치료하지 않고 뭉친 양기를 풀어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사역산이 그런 약이다. 시호, 지실, 작약은 차가운 성질을 가진 약이다. 이 약들의 목적은 뭉친 양기를 풀어내어 사지로 보내는 것이지 양기를 집어넣는 것이 아니다. 양기가 풀리면 사지도 따뜻해지기 마련이다.



양기가 부족해서 생기는 수족궐랭과 몸 어디엔가 양기가 뭉쳐있는 수족불온. 뭉쳐있는 것은 풀어야 한다.



맺힌 것이 원인이라면 풀어야 한다. 손발이 차갑다고 무조건 따뜻하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사역산은 맺힌 것을 풀게 함으로써 더 근본적으로 수족불온을 치료한다. 복부의 울체도 간의 울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지실은 군약이 아니라 신약(臣藥)이 된다. 복부를 푸는 일보다 간기의 울체를 푸는 것이 우선이란 뜻이다. 병을 일으킨 근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치유의 초식이다.


적군을 물리치는데도 근본이 되는 핵심세력을 타깃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적장은 적군을 통솔하고 지휘하는 핵심세력이다. 적의 모든 전략은 적장으로부터 나온다. 적의 우두머리를 제거할 수 있다면 적을 무너뜨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적의 견고함을 부수고 우두머리를 취하면 그 전체 집단은 무너진다. 이는 용이 바다를 벗어나 땅 위에서 싸우는 것처럼, 갈 수 있는 길이 곤궁한 것과 같다.

- 천자이쥔 엮음, 박영환 옮김, 『모략과 지략의 미학, 삼십육계』, 시그마북스, 200쪽


병을 일으키는 근본, 병의 우두머리를 먼저!



쉽게 말해 적을 사로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두보의 시에서 인용된 이 말은 병법 ‘삼십육계’ 중 18계. ‘금적금왕(擒賊擒王)’편에 나온다. 타격의 대상이 더 높을수록 유리하다. 그래서 하나의 전투를 이기려면 적장을 잡아야하고, 전쟁을 끝내려면 왕을 잡아야 한다. 가장 우두머리가 전쟁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 싸움을 끝내는 최선의 길이다.


그런 점에서 간기울결을 푸는 결정적인 해법은 억울함을 해소하는 일이다. 수족불온과 복부의 답답함 혹은 소화불량은 간기의 뭉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따뜻한 약이나 소화제보다 더 근본적인 사역산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억울함 그 자체다. 간기가 풀어진다 해도 억울함이 계속되면 재발을 하게 될 터이다. 사역산으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지라도 억울함을 만들어내는 마음을 조절하지 못하면 전쟁을 끝나지 않는다. 차가운 약은 너무 오래 쓰면 안 된다. 기혈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전쟁이 계속되고 사역산이 계속 쓰이면 몸의 기혈이 피폐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억울함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살피는 것이 더 근본적이다.

지갑을 주운 사람을 찾았는데도 사람들은 오슈코른 영감을 쉽게 믿으려하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 않는지도 모른다. 한 번 이미지가 맺히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결속된 이미지는 오류를 낳기 쉽다. 매스컴의 오보로 피해를 당한 사람, 누명을 쓴 사람은 그 오해가 해소되어도 그 전으로 쉽게 돌아갈 수 없다. 다수의 사람들은 논리적인 피곤함을 감수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지로 평가할 뿐이다.


그렇다고 다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다수의 힘은 개개인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시공간의 힘에서 나온다. 그 분위기가 폭력적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그 속에 자신을 감추고 안락해하며 때론 낄낄거리기도 한다. 개개인의 판단을 오류라고 지적할 순 있지만 그들이 처한 시공간의 분위기를 바꾸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알프레드 아들러는 ‘과제의 분리’를 말했다.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 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지음, 전경아 옮김, 『미움받을 용기』, 인플루엔셜, 160쪽)다는 것이다. 타인을 설득할 순 있지만 그의 마음을 돌리는 일은 나의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과제다.




오슈코른 영감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동분서주하지만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은 그의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해야 할 과제다. 간기의 울결을 해소하는 것이 다른 증상들을 치료하는 근본이듯이 억울함에 대처하는 더 근본적인 해법 혹은 나의 과제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분위기는 시절을 타므로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그 분위기는 기억에서 점차 사라지고 영감과 동네 사람들과 맺는 새로운 관계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사건을 오래 기억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사람들은 애써 그 일을 복기하지 않는다. 또 한 가지는 인정 욕망을 내려놓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순 있지만 모든 사람을 붙잡고 그런 얘기할 필요는 없다. 물론 때때로 그래야 할 일도 있다. 그렇지만 개인의 사소한 일을 크게 만드는 것은 인정욕망이 강하다는 뜻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비웃는 것처럼 누군가도 나를 비웃는다. 다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다만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있어야 한다.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바로 떠나야 한다. 그런 사람이 어딘가엔 존재하기 마련이다. 물론 왜 나는 사람들의 인심을 사지 못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말이다.


시절을 기다리고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인정욕망을 내려놓는 것을 통해, 혹은 과감하게 떠남으로써 억울함을 재생산하지 않는다면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지상 최대의 과제이며 가장 근본적인 치유법이다.


글_도담(안도균)

모파상 단편선 - 10점
기 드 모파상 지음, 김동현.김사행 옮김/문예출판사
삼십육계 - 10점
천차이쥔 엮음, 박영환 옮김/시그마북스
미움받을 용기 - 10점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인플루엔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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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타마 2015.07.08 12:12 답글 | 수정/삭제 | ADDR

    오는도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마

  • 명랑이림 2015.07.10 09:25 답글 | 수정/삭제 | ADDR

    아들러의 '과제의 분리'를 차용한 대안이 인상적이네요! 그것은 타인의 과제, 타인의 몫!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간기를 뚫어 억울함을 풀어주는 시호와 같은 효과를 낼 것같아요. 그럴수도 있다. 그럴수도 있다. 그럴수는 있..................없다. 끙.

    • 북드라망 2015.07.10 09:45 신고 수정/삭제

      하하하~ 괜찮습니다. 다시 '그럴수도 있다' '그럴수도 있다' 하시면 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