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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선생의 헤테로토피아14

[헤테로토피아]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거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거부 미셸 푸코,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 서설』, 김광철 옮김, 2012, 문학과지성사. 푸코는 18세기 말 이전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인간은 지식의 조물주가 고작 200년 전에 만들어 낸 아주 최근의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이제 그 인간이 사라지고 있다고 예언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쓴 『말과 사물』 첫 줄부터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읽었지만, 푸코의 이 말들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굉장히 기묘한 일이다. 내게 ‘인간’이란 머리와 팔과 다리, 그리고 몸통으로 움직이는 생물이고, 세상 고민을 다 뒤집어쓰고 우울해하거나 기뻐하는 존재이다. 이런 존재가 18세기 이전에는 없었다고 하고,.. 2022. 1. 21.
[헤테로토피아] 마네, 푸코를 정치화하는 동행자 마네, 푸코를 정치화하는 동행자 마네, 회화를 낯설게 만들다 프랑스에서 철학과 지적 문제는 언제나 정치적 상황과 함께 맞물리며 돌아갔다. 푸코도 1950년 공산당원이 되었다. 그러나 학교 다니는 동안 푸코는 아무런 정치적 참여를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한 해 만에 공산당을 탈당하는데, 그 이후 모든 사람이 그는 반공주의자였다고 말했다. 자신이 몸담은 클레르몽페랑 대학에 들뢰즈를 교수로 추천했다가, 로제 가로디라는 공산당 이론가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되자, 그를 야유와 저주로 못살게 굴어 내쫓기도 한다. 이 말이 맞든 틀리든, 그는 한동안 공산주의자에 대해서 그다지 우호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공전의 히트를 한 『말과 사물』이 나오고, 그 책이 사르트르 진영의 대대적인 공세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말과.. 2021. 11. 19.
[헤테로토피아] 칸트의 다락방에서 니체의 정글로 칸트의 다락방에서 니체의 정글로 지식에의 의지와 지식을 만드는 의지 나는 늘 자연스러운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왔다. ‘자연스러움’ 만큼이나 의심스러운 상태도 없다. 공부와 글쓰기가 대표적인 것들이다. 언뜻 보기에 그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꺼내서 글로 표현한 것뿐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해보건대, 그것은 조금은 억지로 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실행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아무리 공부에 대한 로망이 있고, 공부에 대한 집념이 있어도, 책을 잡거나, 자판기 위에 손을 얹고 글을 쓸라치면 어김없이 “이것 참, 쉬운 게 없군, 그래. 어디 좀 쉽게 해볼 방법이 없을까.”라고 생각하고 이내 고개를 돌리게 마련이지 않나. 물론 금세 어쩔 도리가 없.. 2021. 10. 8.
[헤테로토피아] 에피스테메, 아이러니한 주체탐구의 출발 『말과 사물』 에피스테메, 아이러니한 주체탐구의 출발 세계는 취약하고 위태롭다 숨이 콱콱 막힐 듯한 오후의 햇살이다. 고등학교 시절, 고향 집은 바다와 가까웠다. 여름 방학에는 오후 두 시만 되면 해변에 나가 저녁때까지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별로 하는 일 없이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겼다. 들고 간 라디오를 듣고, 꾸벅꾸벅 졸음이 오면 그대로 돗자리에 누워 잤다. 그러다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깨면 바다에 들어가 실컷 헤엄을 쳤다. 그리고 올라와 모래 속에서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뒹굴었다. 대부분을 그저 멍하니 보냈다. 살갗을 햇볕에 태우고 헤엄을 치고 라디오를 듣고 잠을 잤다. 나미의 ‘빙글빙글’이나 김완선의 ‘오늘밤’ 따위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뒹굴다 마치 .. 2021.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