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 장자』
욕심을 줄이는 삶에 관하여
“우리 삶에는 끝이 있지만 지식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는 일은 위험합니다. 그러니 지식을 좇는다면 삶이 위태로워질 뿐입니다.”
― 『낭송 장자』, 이희경 풀어읽음, 북드라망, 78쪽
죽지 않는 사람은 없죠. 그래서 삶에는 언제나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살 만할 수도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어떤 심한 괴로움을 겪더라도 언젠가는, 어떻게든 ‘끝’이 있으니까요. ‘희망’이라는 감정이 작동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끝이 있는 생애 내내 공부를 하고, 기술을 습득하고 한다 한들 완벽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죽음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그 또한 불가능합니다. 어쩌면 완전한 침묵으로서의 ‘죽음’과 삶 중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완벽’의 불일치로부터 번뇌가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완벽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이룰 수 있기나 할까요?
사람은 저마다 원하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여 괴로워하곤 하고요. 그래서 ‘원하는 것’을 향해 모든 것을 잊고 달려가기도 합니다. 불나방처럼요. 그래서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게 될까요? 안 됩니다. 원하는 것이 100% 충족되는 상태는 우리 삶에 허용되지 않는 것이니까요.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잊고 거기에 매달린 덕분에 얻는 것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 때문에 삶의 많은 부분들이 망가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좋은 일을 해서 명성이 나는 것도, 나쁜 일을 해서 형벌을 받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를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
― 같은 책, 같은 쪽
바로 이어지는 구절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삶이 그려집니다. ‘태어나, 살다가, 죽는다’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요즘은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진짜 어렵습니다. 어떻게든 이루어 보려고 노력하는 삶을 찾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일 테고요. 그런데 저는 장자의 해법에 더 마음이 갑니다. 명성을 손에 쥐고 싶은 마음도 없고, 부모님에게 빌딩 한 채 사드리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그저 세 끼 밥 굶지 않고 보고 싶은 책이나 사볼 수 있는 정도면 족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욕망을 더 강하게 만들어서 결핍을 크게 느끼고, 그것을 에너지원 삼아 맹렬하게 달리는 삶은…… 너무 피곤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그러하여도 얻지 못할 것을 원하도록 세팅된 것이 인간의 마음인지라, 욕심은 사라지지가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하면 적절하게 줄여 나갈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 과제라고 할 수 있겠죠. 기왕에 각박해져 버린 사회이고, 삼포 세대니, 희망 없는 사회니 하면서 얻지 못할 것들을 원하면서 살기보다는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들을 최대한 줄여가면서 나중에는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어느 쪽이나 힘든 것일 테지만, 그 편이 저한테는 더 잘 맞는 것 같으니까요. 혹시 이쪽 해법에 더 관심이 가신다면 『장자』를 꼭 한번 읽어보셔요. 시작부터 끝까지 욕심을 줄이는 삶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분명 많은 영감을 받으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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