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꼭꼭 씹어라!? 세상과 소통할 것이다!

제대로 씹어야 소통할 수 있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소인국의 법은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다. 거기서 도적질은 경범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사기죄’는 사형감이다. 이해가 되는가? 사기 좀 쳤다고 사형을 당하니 좀 억울할 것도 같다. 하지만 그들도 막무가내로 정했겠는가. 그들의 논리를 한 번 들어보자. 먼저 도둑질 이야기부터. 도둑은 크게 위험하지는 않게 본다. 사람들이 조심하고 경계하면 얼마든지 재산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기는 다르다. 사기는 우월한 지능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이 속이려고 작정하면 평범한 사람들은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하여 사기를 가벼이 여기다간 지능이 우월한 악질이 득세하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기에 사기꾼은 사형으로 씨를 말려 한단 논리다. 그들의 처벌은 결과가 아니라 의도나 과정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우리와 다른 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소인국, 거인국, 말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걸리버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을 채용할 때도 아주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능력보다는 ‘도덕성’에 중점을 둔다.(우리도 윤리적인 인간을 표방하긴 한다. 하지만 그걸 믿는 자가 어딨나. 쩝~) 여기서 능력은 별 소용이 없다. 소수 몇 명만이 타고난 능력은 대체 불가능하기에 천재를 선호하지 않는다. 재능이 뛰어날지라도 도덕성이 결핍되면 결국은 부정행위를 일삼기에 평범한 사람을 쓰는 게 훨씬 이익이라는 거다. 후천적으로 누구나 정의, 절제 등의 덕은 연마할 수 있으니 그 미덕을 가진 사람을 쓰는 게 훨씬 남는 장사라는 계산. 이것이 소인국의 인재상이기도 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기도 하다. 참으로 논리 한 번 정연하고 명쾌하다.


현실세계와는 전혀 다르게 굴러가는 사회. 거인국에서 걸리버는 뒤통수를 맞는다. 영국 정치에 대해 열심히 듣고 난 거인국 왕은 말한다. 영국에서는 고관이 될 조건은 ‘사악한 마음씨’라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나라라고 평한다. 거인국을 떠나 역마살을 주체 못하고 떠도는 걸리버는 ‘말의 나라’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말의 왕 : “남보다 우월한 지능을 가진 변호사들이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지 못하는 게 정말 이상하구나.”


걸리버 : “그 사람들은 변호사의 일 말고는 우리 인간 중에서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족속들입니다. 대인 관계에서는 가장 비열한 자들이고 진정한 지식이나 학문을 배격하고 인간들의 숭고한 이상을 짓밟고 다니는 무리들입니다.”


많은 나라를 여행한 덕인지 걸리버는 영국이 얼마나 이상한 나라인지 비로소 알게 된다. 역시 자신을 통찰하려면 견문이 필요한 법. 그렇다면 정말 좋은 법과 벌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잘못을 고치고 정신을 차리게 되는 걸까. 화뢰서합괘는 다양한 죄인의 형벌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 번 그 현장을 가보기로 하자.



화뢰서합 괘사


噬嗑 亨 利用獄(서합 형 이용옥)
서합은 형통하니 옥을 씀이 이로우니라.
彖曰 頤中有物 曰 噬嗑 噬嗑 而亨(단왈 이중유물 왈 서합 서합 이형)
단에 가로되 턱 가운데 물건이 있음을 가로되 噬嗑(서합)이니, 씹어 합하여 형통하니라.
剛柔 分 動而明 雷電 合而章(강유 분 동이명 뇌전 합이장)
강함과 부드러움이 나뉘고, 움직여서 밝고, 우레와 번개가 합하여 빛나고,
柔得中而上行 雖不當位 利用獄也(유득중이상행 수부당위 이용옥야)
부드러움이 균형을 잡아 위로 올라가니, 비록 위치는 당치 않으나 옥을 씀이 이로우니라.
象曰 雷電 噬嗑 先王 以 明罰勅法(상왈 뇌전 서합 선왕 이 명벌칙법)
상에 가로되 우레와 번개가 噬嗑(서합)이니, 선왕이 이로써 벌을 밝히고 법을 신칙하느니라.


서합은 씹는다는 뜻이다. 뭘 씹으라는 것일까. 씹는 대상이 무척 황당하다. 범죄자를 씹으란다. 그래야 선한 자와 합하게 된다는 것. 왜 『주역』은 씹는단 표현을 쓴 걸까. 분명 음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 죄인이란 ‘씹을 수 없는 음식 같은 존재’이다. 또 씹더라도 다른 것들과 섞이지 못하는 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섞일 수 있다면 소화가 되어 내 몸의 피와 살이 될 것이다. 이것이 『주역』이 말하는 만사형통의 의미이다. 모든 사람이 서로 섞여 순환하는 사회가 되는 과정을 ‘씹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씹어라 형통할 것이다! 화뢰서합

화뢰서합괘에서 외괘는 불, 내괘는 우레로 조합된다. 음식을 소화하려면 입을 열심히 놀려야 한다. 턱을 아래위로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에서 선현들은 우레를 읽어낸다. 대단하지 않은가? 밥상에서도 자연의 이치를 찾아내는 선현들의 상상력과 관찰력에 감탄이 나온다. 


그렇다. 우리가 음식을 씹는 행위는 우레를 만드는 것이다. 우레는 우레로 그치지 않고 결국 번쩍하며 빛을 만든다. 빛은 불이다. 그 불은 밝음을 뜻한다. 이것은 죄인에게 밝은 법이 적용돼야 함을 의미한다. 우레가 빛을 제대로 만들려면 소화를 잘 시켜야 한다. 꼭꼭 씹어야 내 안에 빛을 발할 수 있는 법. 그 빛으로 세상의 법과 죄를 다스릴 때 나 자신의 통찰 또한 가능해진다. 




화뢰서합 효사


初九  屨校 滅趾 无咎(초구 구교 멸지 무구)
초구는 형틀을 신겨서 발을 멸함이니 허물이 없느니라.
象曰 屨校滅趾 不行也(상왈 구교멸지 불행야)
상에 가로되 형틀을 신겨서 발을 멸함을 행하지 못하게 함이라.


초구는 경범죄를 저지른 죄인이다. 첫 번에 등장한 『걸리버 여행기』의 도적을 떠올려보자. 도적은 머리를 쓰는 자가 아니었다. 도적질을 막으려면 형틀에 발을 채우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적질을 크게 했다면 큰 형벌을 받아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큰 도적이든 작은 도적이든 발을 못 쓰게 하면 해결된다. 더 큰 형벌이 필요치 않다. 이것은 도둑질의 양으로 환산되는 세계가 아니다. 도둑의 욕망을 바꾸어 피와 살이 되는 백성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소화를 위해 열심히 씹듯, 법과 형벌은 잘 씹기 위해 가해지는 활동인 것이다.


六二  噬膚 滅鼻 无咎(육이 서부 멸비 무구)
육이는 살을 씹되 코를 멸하니 허물이 없느니라.
象曰 噬膚滅鼻 乘剛也(상왈 서부멸비 승강야)
상에 가로되 살을 씹다가 코를 멸하는 것은 강한 것을 탔기 때문이다.


육이는 음 자리에 음이 있으니 부드럽다. 죄인 초구는 육이에 비해 센 자이다. 육이가 강한 초구를 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부드러운 육이가 강한 초구에게 형벌을 주니 힘에 부칠 수밖에. 여기서 괜히 힘센 척하면 망한다. 유약한 자신을 인정하고 스스로 코가 납작해져서 죄인이 백성과 섞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화뢰서합이 씹어야 하는 이유이다. 코를 멸함은 기세를 낮춤을 의미한다. 『동의보감』에서 보면 폐기(肺氣)는 코와 연결된다. 폐기는 흔히 ‘패기가 있다’ 할 때 그 패기를 말하는데 여기서 코가 납작해진다는 말은 무조건 폐기가 센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육이가 자신의 역량에 맞는 폐기를 사용해야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이는 상황에 맞게 패기를 부린다.


六三 噬腊肉 遇毒 小吝 无咎(육삼 서석육 우독 소린 무구)
육삼은 말린 고기를 씹다가 독을 만나니, 조금 인색하나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遇毒 位不當也(상왈 우독 위부당야)
상에 가로되 '遇毒'은 위가 마땅치 않음이라.


육삼은 음이 양자리에 있는 형국이다. 삼효는 양으로 자리가 아주 세다. 하지만 유약한 음이 그 자리에 왔다고 만만히 볼 일은 아니다. 자리가 양이기에 아무리 부드러운 음이라도 속에 독을 품게 된다. 이 말은 원래부터 독을 품은 육삼이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단지 음효가 강한 양자리에 놓이는 순간 독을 품어야 하는 운명에 처할 뿐. 하지만 화뢰서합은 씹어서 섞이게 하는 운명을 타고난 괘이다. 아무리 강한 독을 품었을지라도 열심히 씹다 보면 서서히 해독되어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씀.


九四 噬乾胏 得金矢 利艱貞 吉(구사 서간치 득금시 이간정 길)
구사는 마른고기를 씹다가 금화살을 얻으나, 어렵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길하리라.
象曰 利艱貞吉 未光也(상왈 이간정길 미광야)
상에 가로되 '利艱貞吉'은 빛나지 못함이라.


구사는 육삼과 반대로 양이 음 자리에 있다. 유약한 자리에 처한 구사는 센 죄인을 다뤄야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유약한 자리에서 강한 죄인을 다룰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사의 자리는 시간이 흐르면 어떤 강력범도 개과천선하는 곳이다. 마른고기를 씹다가 얻은 금화살이라는 말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마른 고기처럼 영양가 없는 존재가 환골탈태하여 금화살로 변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회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강력범도 피와 살처럼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반전의 드라마가 구사에서 펼쳐지고 있다.  


구사의 부드러움은 마른고기를 금화살로 변화시킨다.


六五 噬乾肉 得黃金 貞厲 无咎(육오 서간육 득황금 정려 무구)
육오는 마른고기를 씹어서 황금을 얻으니, 바르고 위태하게 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貞厲无咎 得當也(상왈 정려무구 득당야)
상에 가로되 '정려무구'는 마땅함을 얻음이라.


육오는 양자리에 음이 있다. 양자리에 있는 음은 죄인을 교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바르고 게으르지 않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죄인은 변화된다. 바르게 벌을 준다는 것은 무얼까. 사람들이 잘살기 위한 법과 벌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득권을 위한 법이나 벌은 아무리 지엄한 국법일지라도 백성과 죄인을 씹어서 섞이게 할 수 없다.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다. 이때 법과 벌은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게 해서 사람들과 섞이는 법을 배우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바른 법과 처벌이 늘 필요하다. 


上九 何校 滅耳 凶(상구 하교 멸이 흉)
상구는 형틀을 매어서 귀를 멸하니, 흉토다.
象曰 何校滅耳 聰不明也(상왈 하교멸이 총불명야)
상에 가로되 형틀에 매어 귀를 멸하니 귀밝음이 밝지 못함이라.


상구는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죄인이다. 아무리 백성과 섞이도록 씹으려 해도 씹혀지지 않는다. 왜 그들은 법과 형벌로도 손댈 수 없는 걸까? 그들은 귀를 다쳤기 때문이다. 아무리 백성과 섞으려 해도 듣지 못하면 방법이 없다. 듣기가 안 되면 다른 존재로 변이가 어렵다. 2효에서 코가 폐의 기운을 뜻한다면 귀는 신장의 기운을 뜻한다. 신장은 인간의 모든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가 응축된 곳이다. 원천의 에너지는 듣는 것에서 생성된다. 하여 듣지 못함은 새로운 에너지의 생성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무섭지 않은가? 우리 시대야말로 자기 생각에 빠져 잘 듣지 못하는 시대이다. 이미 서로 잘 섞이려는 마음도 없을 뿐 아니라, 있더라도 섞이는 방법을 잘 모른다. 우리 스스로 ‘귀를 멸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중죄를 짓고 있는 건지도 모른 채. 걸리버가 만났던 중죄인도 대부분 듣지 못하는 자였다. 여기서 난청은 실제로 소리를 듣지 못한다기보다는 불통의 아이콘을 의미한다.

우리 몸에 들어온 음식물은 입에서 저작활동을 통해 다른 것들과 섞여야 정미로운 물질이 되어 장부와 조직을 자양하게 된다. 한의학에서는 우리가 먹는 음식물을 잘게 부수고 체내에 흡수되기 쉬운 상태로 변화시키는 장부를 비위(脾胃)라고 한다. 입은 비위와 연동되어 있다. 고로 열심히 씹는다는 것은 비위가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말이다. 비위에서 생성된 물질은 기(氣), 혈(血), 진액(津液), 정(精) 등으로 화생하여 우리 몸을 유지하는 필수 에너지가 된다. 이처럼 ‘씹는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첫머리에 위치한 중요한 활동인 것이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으세요? 일단 꼭꼭 씹으세요.


다시『걸리버 여행기』로 돌아가 보자. 영국과 걸리버가 여행한 나라 중 어디가 더 밝은 법이 적용되었는가. 도적보다 사기가 중형이 되고, 지능이 우월한 변호사가 지혜로 볼 때는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은 법과 처벌이 밝게 적용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주역』은 말한다. 밝은 법이란 음식을 꼭꼭 씹어서 소화를 잘 시키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그때 균형 잡힌 심신으로 세상을 만나게 될 거라고. 자~이제 씹는다는 것이 단지 음식을 소화시키는 문제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내 안팎을 밝게 통찰하려면 꼭꼭 씹어야 한다. 제대로 씹어야 나와 세상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장금(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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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명심이 2014.07.18 15:05 답글 | 수정/삭제 | ADDR

    듣기가 안되면 다른 존재로 변이가 어렵다~ 듣지못함은 새로운 에너지의 생성이 불가능하다~ 가슴에 깊이 와 닿습니다그려. 말하기 전에 잘 들으려는 노력을 해야겠어요.

    • 북드라망 2014.07.23 11:38 신고 수정/삭제

      사실 잘 듣는 것은 요즘 사람들 대부분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명심 또 '명심이' 해야겠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