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되 과보를 바라지 말라! - 산풍괘

과보는 금물!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주역』의 키워드는 변화(變化)다.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고, 좋은 일이 다하면 나쁜 일이 온다. 택뢰수괘는 ‘서로 기뻐하며 따르는’ 괘였다. 그런데 ‘서로 기뻐하며 따르다’ 보면 어떻게 될까? 하나 둘 잘못된 일도 따르는 실수를 범하게 되고 결국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그런 탓에 이어서 산풍고괘(山風蠱卦)가 나오는 것이다. 오늘은 ‘어지럽고 썩어 빠진 세상’을 어떻게 하면 바로잡을 수 있을지 알려주는 산풍고괘를 살펴보자.



산풍고 괘사


먼저 산풍고괘의 모양을 보자면 위는 간상련 산괘이고 아래에는 손하절 바람괘다. 초록이 우거진 산에 바람을 타고 날아온 벌레들이 나뭇잎을 갉아먹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괘상과 괘의 의미가 쉽게 이해갈 것이다. 효의 위치도 산풍고괘를 설명하고 있는데 맨 위의 상구(양)가 아래의 초육(음)을 짓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항상 강한 것이 약한 것을 핍박하지 않는가. 한자를 파자해서보면 고(蠱)자는 ‘좀 먹을 고’라는 뜻으로 벌레(虫) 세 마리가 피(血)을 빨아먹는 것을 상형화한 글자다. 즉, 벌레 세 마리가 피를 빨아먹는 것처럼. 악습에 물든 사람들이 세상을 ‘좀 먹고 있다’는 말이다.

蠱는 元亨하니 利涉大川이니 先甲三日하며 後甲三日이니라.
고   원형     이섭대천     선갑삼일     후갑삼일
고는 크게 형통하니,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 갑에서 먼저 삼일하며 갑에서 뒤에 삼일이니라.


그런데 괘사에서는 산풍고괘가 크게 형통하다고 말한다. 솔직히 산풍고괘는 그 이름부터가 흉한데 도대체 뭐가 형통하다는 건지 참 이해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주역』이 변화하는 방향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산풍고괘가 처한 상황은 흉하다. 하지만 군자가 큰 내를 건너는 것처럼 위태롭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수양하고 백성을 다스리면 길한 상황이 펼쳐진다. 


오늘 살펴볼 산풍고괘


하지만 아무 때나 무작정 달려든다고 해서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총 7일 동안 ‘변혁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것을 『주역』에서는 선갑삼일, 후갑삼일이라고 한다. 선갑삼일이란 첫 번째 천간인 갑목(甲)을 중심에 두고 앞에 있는 세 개의 천간(辛壬癸)을 말한 것이고, 후갑삼일은 갑목을 중심에 두고 뒤에 있는 세 개의 천간(乙丙丁)을 말한 것이다. 여기서 선갑삼일은 새롭게 시작하는 기운을 후갑삼일은 마무리하는 기운을 뜻한다. 신임계갑을병정(辛壬癸甲乙丙丁) 이 7일의 리듬에 맞춰 변혁을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彖曰 蠱는 剛上而柔下하고 巽而止ㅣ蠱ㅣ라.
단왈 고    강상이유하       손이지   고
단에 이르길 고는 강이 올라가고 유가 내려오고, 겸손해서 그침이 고라.
蠱ㅣ 元亨하야 而天下ㅣ 治也ㅣ오 利涉大川은 往有事也ㅣ오
고    원형       이천하    치야       이섭대천    왕유사야
고가 크게 형통해서 천하가 다스려짐이요, 이섭대천은 가서 일을 둠이요,
先甲三日後甲三日은 終則有始ㅣ 天行也ㅣ라.
선갑삼일후갑삼일    종즉유시    천행야
'선갑삼일후갑삼일'은 마치면 곧 시작함이 있음이 하늘의 행함이라.

象曰 山下有風이 蠱ㅣ니 君子ㅣ 以하야 振民하며 育德하나니라.
상왈 산하유풍    고       군자    이       진민       육덕
상에서 말하기를 산 아래 바람이 있는 것이 蠱니, 군자가 이로써 백성을 진작시키며 덕을 기르느니라.



산풍고 효사


初六은 幹父之蠱ㅣ니 有子ㅣ면 考ㅣ 无咎하리니
초육   간부지고        유자       고    무구
초육은 아비의 고(事)를 주장함이니 자식이 있으면 죽은 아비가 허물이 없으리니,
厲하야아 終吉이리라.
려          종길
위태하게 해야 마침내 길하리라.

象曰 幹父之蠱는 意承考也ㅣ라.
상왈 간부지고    의승고야
상에 이를기를 '간부지고'는 뜻이 죽은 아비를 이음이라.


첫 번째는 음효로 초효라고 한다. 갑자기 뜬금없이 아버지와 아들이 나와서 놀랐을 게다. 하지만 이 또한 『주역』만의 특이한 글쓰기 방식이다. 왠지 『주역』하면 특별하고 신비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주역은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를 가져와서 쉽게 설명해준다. 초육은 똘똘한 아들이다. 아들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벌여 놓은 일을 감당할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을 하는 데 유의해야 할 점이 있으니.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일을 내 맘대로 뜯어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잘 헤아려서 이어나가야 한다.

九二는 幹母之蠱ㅣ니 不可貞이니라.
구이    간모지고       불가정
구이는 어미의 일(蠱)을 주장함이니 가히 바르게 못하느니라.

象曰 幹母之蠱는 得中道也ㅣ라.
상왈 간모지고    득중도야
상에 이르길 '간모지고'는 중도를 얻음이라.



두 번째에 양효가 와서 구이라고 한다. 산풍고괘에서 2효는 어머니 자리다. 이번에 아들은 어머니가 잘못한 일을 감당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주의해야 할 일이 있다. ‘아버지에 이어 이제 어머니까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하고 어머니에게 바락바락 대들면 안 된다. 구이는 산풍고의 내괘인 손괘에서 중(中)을 얻은 만큼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어머니의 잘못을 고쳐나가는 지혜로운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九三은 幹父之蠱ㅣ니 小有悔나 无大咎ㅣ리라.
구삼   간부지고        소유회    무대구
구삼은 아비의 蠱를 주장함이니, 조금 후회가 있으나 크게 허물은 없으리라.

象曰 幹父之蠱는 終无咎也ㅣ니라.
상왈 간부지고    종무구야
상에 이르길 '간부지고'는 마침내 허물이 없음이라.


세 번째는 양효로 구삼이라고 한다. 『주역』에서 대부분 삼효의 자리는 위태롭다. 그 이유는 삼효가 이미 내괘에서 중을 넘어서 끝자리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풍고괘의 구삼은 강건한 양으로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러니 아버지의 일을 맡아서 하면서도 자기의 성질대로 하다가 조금 후회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구삼은 일하는 방식이 조금 과격하긴 해도 자신의 일을 야무지게 매듭짓는다. 비록 일을 해결하느라 아버지께 누를 끼치긴 하지만 전력으로 일한 덕분에 일이 깨끗이 해결되니 결국 큰 허물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앞의 두 효에서는 일하는 동안 부모님의 뜻을 상하게 하지 않는데 무게를 뒀다면, 구삼에서는 아버지의 뜻은 조금 상하더라도 일을 잘 마무리하라고 조언한다. 일을 잘 마무리 짓는 결단성 덕분에 아버지도 일에서 놓여나니 마침내 허물이 없는 것이다.

六四는 裕父之蠱ㅣ니 往하면 見吝하리라.
육사    유부지고       왕       견린
육사는 아비의 蠱를 너그럽게 함이니 가면 인색함을 보리라.

象曰 裕父之蠱는 往앤 未得也ㅣ라.
상왈 유부지고    왕    미득야
상에 이르길 '裕父之蠱'는 가면 얻지 못함이라.



네 번째에 음이 있어서 육사다. 구삼이 내괘의 끝에서 강건한 양으로 과감하게 자기 일을 처리했다면 육사는 외괘의 첫 번째이자 유순한 음의 자리인 탓에 일처리를 자꾸 미루고 게을러진다. 그러다보면 일이 뒤죽박죽 엉망이 되므로 인색하다고 한 것이다.

六五는 幹父之蠱ㅣ니 用譽리라.
육오    간부지고       용예
육오는 아비의 蠱를 주장함이니, 써 명예로우리라.

象曰 幹父用譽는 承以德也ㅣ라.
상왈 간부용예    승이덕야
상에 이르길 '간부용예'는 이음을 덕으로써 함이라.

아버지의 뜻을 잘 계승하는 기특한 자식들!


다섯 번째에 음이 와서 육오다. 다섯 번째 효는 두 번째 효와 마찬가지로 괘 안에서 중의 자리를 차지하였고 지위로 따지자면 인군에 해당한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대부분 오효는 군주의 자리면서 동시에 길한 경우가 많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산풍고괘에서는 이 원칙이 통한다. 육오에서도 아버지의 일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육오는 중도를 지키는 훌륭한 덕을 소유한 덕분에 아버지의 일을 하면서 나쁜 일은 현명하게 처리하여 명성을 얻고, 좋은 일은 잘 계승해서 덕을 쌓는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기특한 오효인 것이다. 

上九는 不事王侯하고 高尙其事ㅣ로다.
상구    불사왕후       고상기사
상구는 왕후를 섬기지 아니하고, 그 일을 높이 숭상하도다.

象曰 不事王侯는 志可則也ㅣ라.
상왈 불사왕후    지가칙야
상에 가로되 '불사왕후는 뜻이 가히 법할만(본받을만) 함이라.


여섯 번째에 양효가 와서 상구다. 상구에서는 갑자기 왕이 등장한다. 지금까지의 효에서는 부모님의 일 처리가 중요했다면 효의 마지막 상구에서는 왕의 일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갑자기 부모에서 왕이 되었다고 이상하게 생각지 마시라. 동양의 세계관은 부모와 자식 관계나 왕과 신하 관계가 같은 구도로 사유되었다. 상구를 부모로 설명해도 문제될 게 없다. 다만 상구는 재물, 지위, 욕심 등 모든 면에서 지나친 자리가 된다. 이것을 설명할 때 부모보다 부귀를 많이 소유한 왕을 빌려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이므로 상구를 왕으로 설정한 것이다.


상구는 시작이 아니라 마무리를 해야 할 때다. 이때는 큰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하며, 있는 욕심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니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이롭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구의 역할은 무엇일까. 욕심이 아니라 떠나야 할 때를 아는 것이다. 자, 상구 이야기를 구성해 보자. 상구는 왕을 도와서 대업을 완수한 신하다. 이제 대업을 완성했으니 더 이상 힘을 쓸 이유가 없다. 그 때 상구는 대업에 따른 부귀나 명예는 바라지 않고 왕을 떠나 궁벽한 곳으로 가야 한다. 자신이 맡은 바 일에는 최선을 다하면서도 어떠한 과보를 바라지 않는 마음. 그것이 『주역』이 상구를 높이 숭상하고 본받으려는 이유인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일을 맞닥뜨린다. 하지만 꼭 우리 자신이 벌인 일만은 아니다. 이런 것을 불교에서는 공업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업장도 있지만 부모님, 형제, 친구, 사회가 만든 업장을 분담해야 하는 때도 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산풍고괘에서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른 다양한 대처법들을 알려준다. 어떤 때는 너무 강하게 일을 밀어붙여서 말썽이 생기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너무 미적거리다 비판을 당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진두지휘한 일을 완수하였는데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때도 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칭찬이나, 인정, 혹은 물질에 대한 과보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아니 아예 처음부터 보상을 바라고 꾹 참고 뭔가를 한다. 하지만 『주역』에서는 과보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라고 한다. 즉, 지금 내게 주어진 현장을 잘 마무리 하고 새로운 장으로 진입하는 것만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혼란하고 부패한 산풍고괘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매순간 나에게 주어진 일을 외면하지 않고 때에 맞게 마무리하는 힘. 그러면서도 어떤 과보도 바라지 않는 마음. 그것이 결국 내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임을 산풍고괘는 가르쳐주고 있다.



곰진(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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