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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신중함에서 오는 자신감 - 지택림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6. 19.

자신감을 갖고 임하라, 지택림괘



앞 괘인 ‘산풍고’에서는 세 마리의 벌레처럼 세상을 갉아먹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수양을 통해 이겨내면 길하리라는 것이다. 이번 괘는 ‘지택림’으로 위아래의 부딪침과 갈등을 이야기한다.  


지택림 괘사


지택림(地澤臨)은 64괘 중 19번째 괘이다. 괘의 위쪽은 ‘곤’괘로 땅을 의미하고, 괘의 아래쪽은 ‘택’괘로 연못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택’이고, 여기에 괘의 전체 모습을 뜻하는 ‘임’(臨)이 붙어 ‘지택림’이라고 한다. 곤괘는 순도 100%의 음(陰)이다. 그래서 8괘로 해석할 때 곤괘는 나약하고, 부드럽고 치밀한 모습으로 본다. 택괘는 아래 두 개의 양효 위에 음효가 하나 있다. 『주역』에서는 택괘의 양효보다는 음효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게다가 음이 아래에 젊은 두 양(陽)을 거느리고 있으므로 기쁨이 있다고 생각했다. 즉, ‘지택’의 구성상 위쪽(상괘)는 유약하고, 아래쪽(하괘)는 기쁨이 넘치는 상태인 것!

각 효를 나이로 구분할 수도 있는데, 아래쪽은 10대부터 30대의 젊은층으로 위쪽은 40대부터 60대까지의 중장년층으로 보기도 한다. 태괘는 자꾸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곤괘는 이러한 뜻을 받아주지 못한다. 그러다보면 부딪침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혼란해진다. 그래서 이때에는 타이밍을 잘 읽어서 일을 추진해야 한다. ‘임’(臨)은 임하다는 뜻이다. 임한다는 것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대하거나, 내려다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臨 元亨利貞   至于八月 有凶
임 원형이정   지우팔월  유흉
彖曰 臨 剛浸而長  說而順 剛中而應  大亨以正 天之道也
단왈 임 강침이장  열이순 강중이응   대형이정 천지도야
至于八月有凶 消不久也
지우팔월유흉  소불구야 


元亨利貞은 “시작해야 할 때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 나서며, 거두어야 할 때 거두고, 마무리해야 할 때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으로 8월이 되면 흉함이 있다. 여기서 8월은 실제의 8월을 의미하기도 하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것을 뜻하기도 한다. 「단전」에서는 임이 ‘강’(剛)이 차츰 자라는 것으로 보았다. 아래에 있는 두 개의 양효가 점차 그 기세가 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說而順 剛中而應’은 기쁘면서 순하고 굳센 것(택괘)이 중심에 있으면서 응한다는 것이며, ‘大亨以正 天之道也’는 바른 판단으로 크게 떨쳐 일어나야 하는 상황(곤괘)이니 하늘의 도라는 뜻이다. 굳이 왜 8월일까? 농사를 예로 들면, 모를 심는 시기는 대체로 5월 경이다. 만약 모를 8월에 심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추수할 시기에 제대로 수확할 수 없을 것이다. ‘임괘’에서 놓쳐서 안되는 것이 바로 ‘적절한 타이밍’임을 잊지 말자.



象曰 澤上有地 臨 君子以 敎思无窮 容保民 无疆
상왈 택상유지 임 군자이 교사무궁  용보민 무강

공자도 “못 위에 땅이 있는 것이 임이다. 군자는 이 괘의 이치를 살펴 가르치고 생각함이 무궁하고, 백성을 용납하여 보호함이 끝이 없다”고 하였는데 위에서 아래를 굽어 살핀다는 부분에서 ‘임’이라는 이름이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지택림 효사


임괘는 첫 번째 효와 두 번째 효만 양이고, 나머지 삼, 사, 오, 육은 모두 음괘이다. 첫 번째 효와 두 번째 효는 양이므로 각각 ‘초구’와 ‘구이’라고 부른다. 음효는 앞에 숫자 6을 붙여 부르되 마지막 6효만 상(上)을 먼저 부른다. 음효는 순서대로 ‘육삼’, ‘육사’, ‘육오’, ‘상육’이다.

初九 咸臨 貞 吉
초구 함임 정 길
象曰 咸臨貞吉 志行正也
상왈 함임정길 지행정야 


초구가 일을 추진하려면 윗사람을 감동시켜야 한다.


해석하자면 “초구는 감동시켜서 임하니 그 뜻이 바르면 길하다”는 것이다. 공자는 “감동시키는 마음으로 임하여 참고 있으면 길한 것은, 뜻이 바른 것을 행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왜 ‘감동’이 나오는 것일까. 초구는 아직 어리고 성급하다. 양의 자리에 양이 왔으니, 힘이 있고 자신도 있다. 그런데 일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윗사람들(상괘)은 힘도 없고 게다가 소극적이기까지 하다. 여기에서 초구가 성급하게 추진하려다 보면 윗사람들의 제지를 받게 된다. 그래서 감동시키면서 설득해야 한다.

九二 咸臨 吉 无不利
구이 함임 길 무불리 
象曰 咸臨吉无不利 未順命也
상왈 함임길무불리 미순명야

구이는 하괘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다. 윗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다 초구처럼 경솔하지도 않기 때문에 윗사람들을 설득시키고 감동시킨 다음 진행한다면 이롭다. 그런데 구이가 추진하는 일은 위에서 내려온 명령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상층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설득과 감동이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六三 甘臨 无攸利 旣憂之 无咎
육삼 감임 무유리 기우지 무구
象曰 甘臨 位不當也 旣憂之 咎不長也
상왈 감임 위부당야 기우지 구부장야



육삼은 초구와 구이가 믿고 따르기 때문에 기쁘다. 그리고 초구와 구이가 추진하고자 하는 일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달콤한 마음’으로 임하기 쉽다. 하지만 윗사람의 지지 없이는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고민을 하고 난 뒤 윗사람들을 설득해서 이해를 얻어낸 뒤에야 일을 추진할 수 있다. 이처럼 초구, 구이, 육삼은 윗사람들을 감응시키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 이제 상괘로 넘어가보자. 상괘는 앞에서도 설명했듯 ‘곤괘’이다.

六四 至臨 无咎
육사 지임 무구
象曰 至臨无咎 位當也
상왈 지임무구 위당야

육사는 아랫사람들(하괘)을 이끌고 적당한 기회에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 겨우 상층부에 도착한 육사는 자칫하면 보수적인 태도가 되기 쉽다. 여기에서는 가만히 머무르는 것이 좋지 않고, 전체 판세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초구와 구이를 지켜보면서 육오를 함께 설득하는 것이 육사의 몫이다. 그래서 “나아가서 임하면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이다.

六五 知臨 大君之宜 吉
육오 지임 대군지의 길
象曰 大君之宜 行中之謂也
상왈 대군지의 행중지위야


육오는 군주의 자리다.


육오는 지혜로움으로 임해야하며 대군의 역할을 해내면 길하다고 보았다. 공자는 “대군의 역할을 마땅하게 한다는 것은 중용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여기서의 ‘중용’이 바로 적절한 시기에 일을 추진한다는 의미이다. 원래 육오의 자리에는 양이 와야 바른데, 지택림에서는 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군주의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힘이 없고 자신이 없다. 아래쪽(하괘)에서 무언가 새롭게 시도하려고 해도 달갑지 않아 그것을 반대하기도 한다. 대군이라면 아랫사람들의 마음과 힘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 힘이 ‘지혜’에서 온다고 본 것이다.

上六 敦臨 吉 无咎
상육 돈임 길 무구
象曰 敦臨之吉 志在內也
상왈 돈임지길 지재내야

상육은 은퇴해야 하는 위치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을 새로 시작했다가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걱정도 많다. 그래서 상육은 초구와 구이를 중심으로 새롭게 일을 하는 것을 불안한 상태로 바라본다. 만약 소인이라면 이러한 감정에 갇혀 새로운 일을 저지할 것이나, 대인이라면 개인의 입장을 떠나 일을 추진할 것이라고 보았다. ‘돈’(敦)은 돈독한 마음이라는 의미이다. 아래쪽에 있는 젊은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개 아래에 있는 괘를 내괘(內卦)라고도 보는데, 그런 의미에서 뜻이 안에 있다고 한 것이다.


상육은 일을 시작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지택림 괘를 살펴보았다. 전체적인 괘상으로는 기쁨이 가득한 하괘와 유약한 상괘가 부딪치는 형국이다. 하지만 기쁨을 통해 시작하기 때문에 시중을 적절하게 판단해 추진한다면 좋은 괘라고 해석한다. 태괘는 한편으로 잠재성을 뜻하기도 한다. 아직 충분히 펼칠 수 있는 시기를 만나지 못했을 뿐 그 능력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한 각 효별로 나이를 살펴볼 수도 있다. 지택림 괘를 보면서 ‘신중함에서 오는 자신감’이 떠올랐다. 초구에는 힘차게 뻗어가려고 하지만 조급함을 조심하라고 했고, 육사와 육오에는 ‘때에 맞게 행해야 한다’라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이 감각을 지켜가려는 노력을 잘 활용하라고 이야기 한 게 아닐까.


나는 노인같은 구석이 있는 젊은이를 좋아하듯이, 젊은이 같은 구석이 있는 노인을 좋아한다네.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자는 육체는 노인이 되었어도 정신은 그렇게 될 수가 없을 테니까 말일세.


─ 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그리스로마 에세이』, 424쪽



이민정(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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