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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아무리 각박한 세상에도 솟아날 씨앗은 있다! - 산지박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8. 14.


미래를 준비하는 씨과실



이제 입추가 지나서인지 여름이 다 끝나가는 느낌이다. 이제 곧 9월이 될 것이다. 단풍이 무르익어 겨울을 준비하는 시점이다. 그래서 9월을 달리 추말(秋末).현월(玄月)이라고도 부른다. 마지막 가을(추말), 만물이 생명을 다하여 그 색깔이 검게 변함(현월)의 뜻을 지닌다. 이런 때가 되면 과일들이 풍성하게 열려서인지, 온갖 것을 즐기고 소비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게 된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쓰고야 마는 계절이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주역』은 ‘씨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이치를 말한다. 열매가 모두 떨어지고 삭풍에 남아 있는 마지막 과일을 먹지 않고 땅에 심어 미래의 싹을 도모하는 것이 『주역』이 이야기하는 미래의 정신이다. 이런 미래의 정신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괘가 바로 산지박(山地剝)이다.



(剝)은 ‘깎을 박’이다. 부서지고 헤지고 깎인다는 뜻이다. 열매가 무르익은 것을 난숙(爛熟)하다고 말한다. 열매가 난숙하면 결국 땅에 떨어진다. 64괘 순서로 봐도, 꾸밈(장식)을 의미했던 산화비괘 다음에, 그걸 다 쓰고 생명이 다한다는 뜻으로 박괘가 등장한다. 그래서 다음 괘는 박으로 깎이고 허물어진 것이 다시 회복된다고 보고 지뢰복괘를 놓았다. 이처럼 “산화비-산지박-지뢰복”이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괘상은 중천건(重天乾)에서 음이 들어와 양을 깎아 먹고 올라가 맨 위에 양 하나만 달랑 남겨 놓은 형상이다. 이게 씨과실의 형상이다. 하늘의 양을 받아서 사람이 나온다. 즉 착하고 밝은 것이 천부지성(天賦之性:하늘로부터 부여받은 품성)인 것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이 천부지성을 다 깎아 먹게 된다. 군자-소인 구도로 말하면, 원래 양인 군자를 타고났는데, 음인 소인들이 와서 군자들을 해치고 만다. 서늘한 음기운으로 모든 양이 꼭지가 떨어져 박락(剝落:깎여 떨어지다)이 되고, 결국 마지막 하나만 남은 산지박괘는 곧 소인이 군자를 깎아 먹고, 음이 양을 깎아 먹고, 불선한 악이 선을 깎아 먹고 마는 형국이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괘사


剝 不利有攸往(박 불리유유왕)
박은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아니하니라.


산지박괘

세상이 어지러워 군자가 간다 한들 상황이 전혀 변할 게 없다. 양은 군자이고, 음은 소인이다. 어지러움을 회피한다기보다, 군자가 이런 상황에 불가항력이라는 뜻이 강하다. 박괘의 형상을 보면 내괘가 곤삼절 땅으로 순한 덕이고, 외괘는 간상련 산으로 그치는 덕이다. 즉, 박괘는 산괘가 땅괘 위에 있어서 산이 땅에 붙어 있는 상이다.


항상 천도는 사라지고 불어나기를 반복한다. 밤이 되었다가 낮이 되고 낮이 되면 다시 밤이 된다. 달이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찬다. 바로 ‘소식영허’(消息盈虛)다. 박괘처럼 음이 양을 깎아 올라오는 것을 ‘소’(消:사라지다)라고 한다. 거꾸로 양이 음을 밀고 올라오는 것을 ‘식’(息:내쉬다)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인이 군자를 해쳐서 사회가 모두 혼란스러운 상이다. 이를 <단전>에서는 ‘유변강야’(柔變剛也:유가 강을 변하게 함)라고 한다. 이것은 한 번 어지러우면, 한 번 태평한 세상이 오고, 한 번 잘 다스려지면, 한 번 어지러운 세상이 오는 일치일란(一治一亂)의 이치다.



효사


初六. 剝牀以足 蔑貞 凶.(초육 박상이족 멸정 흉)
초육은 상을 깎되 발(다리)로써 함이니, 바른 것을 멸함이라. 흉하도다.


박괘의 형상은 침상(침대)과 비슷하다. 위는 평평하나 아래는 다리만 있는 것이 산이 땅에 붙어 있는 상과 유사한 것이다. 초육은 음이 양을 깍듯이, 침대 다리를 깎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족(足:다리)이다. 다리를 깎아버리면 반듯하던 침상이 쓰러진다. 즉 바른 것이 멸하는 상태가 된다. 그리하여 아래로부터 양이 소멸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음이 미미하여 상다리만 깎는 정도지만, 점차 자라서 양을 다 깎아버릴 것이다. 초육은 비극의 서장이다.


六二. 剝牀以辨 蔑貞 凶.(육이 박상이변 멸정 흉
육이는 상을 깎되 언저리로써 함이니, 바른 것을 없앰이라. 흉하도다.


초육이 상다리를 깎는 것이라면, 육이는 평상의 언저리를 깎는 것이다. 다리에다 평상 언저리까지 깎게 되면 평상에 누워 있는 사람 몸을 다칠 수밖에 없다. 변(辨)은 원래 ‘나눌 변’이지만, 여기서는 ‘언저리’라는 뜻이다. 사실 음이 음자리에 있고 내괘에서 중을 얻어 중정한 자리라고 해야 하지만, 산지박괘의 육이는 그렇지 못하다. 산지박괘에서 양은 상구 하나뿐이다. 그러다 보니 육이는 응할 곳이 없어 음양응(陰陽應)이 되질 않는다. 부득불 다른 음과 더불어 같이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 어떤 상황에 가면 자기가 원하지 않더라도 통념과 위계 속에서 휩쓸려 사고할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바로 음의 지배가 성한 때다. 아주 흉한 상태다.


벌써 음이 시기가 도래하다니!!


六三. 剝之无咎.(육삼 박지무구)
육삼은 깎음에 허물이 없느리라.


사실 다른 괘 같으면 육삼은 음이 양자리에 있어서 바르지 못하다고 한다. 그래서 대개 좋지 않은 해석을 낳았었다. 그런데 산지박괘의 육삼은 그런대로 허물이 없다고 해석된다. 왜냐하면 산지박괘의 육삼은 상구 양과 응하기 때문이다. 음이 난동을 부리고 양을 깎아 먹는 시대이지만, 육삼은 상구에게 선한 일을 배워서 초육이나 육이처럼 군자를 깎아내리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된다. 육삼은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정응(正應)이 되는 상구하고만 어울린다. 즉 육삼은 통념과 위계로 가득한 음들의 무리를 떠나 상구에 가는 것이다. 산지박괘가 기대하는 효이다. 어쩌면 내부에 있는 외부라고 할 수 있다. 육삼은 자신의 무리를 과감하게 떠난다. 비극 속에 솟아난 출구이다.


육삼은 상구와 정응하는 산지박괘의 희망!


六四. 剝牀以膚, 凶.(육사 박상이부 흉)
육사는 상을 깎되 살(피부)로써 함이니 흉하니라.


육사는 흉하다. 상을 깎을 때, 살로 깎는다고 하니 끔찍하기까지 하다. 다리와 언저리가 깎이고 나서,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의 몸까지 깎이는 지경인 것이다. 음이 음자리에 있기 때문에 부드럽다. 그래서 자연히 살(膚)이 나온다. 초육은 ‘박상이족(剝牀以足)’으로 흉하고, 육이는 ‘박상이변(剝牀以辨)’으로 흉하며, 육사는 ‘방상이부(剝牀以膚)’로 재앙에 가깝다. 육사가 제일 상황이 나쁜 효라고 할 수 있다.


六五. 貫魚以宮人寵, 无不利.(육오 관어 이궁인총 무불리)
육오는 고기를 꿰어서 궁인의 사랑으로써 하면, 이롭지 않음이 없으리라.


산지박은 음이 양을 깎아 먹고 올라오는 과정이다. 그 관점에서 보면 육오는 그동안 나쁜 짓을 많이 하다가 이제 상구한테 배워 본심을 회복하고 선한 사람이 된 것이다. 육오가 선두가 되어 육사, 육삼, 육이, 초육과 함께 고기를 꿰듯이 열을 짓고 가서 상구의 총애를 받는다. 즉, 맨 앞에서 모든 음들을 데리고 가서 상구한테 속죄하므로 총애를 받게 된다. 그래서 허물이 없다.


잘못을 뉘우친 육오는 다른 음들을 이끌고 결연하게(?) 상구에게로 나아간다.


上九. 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상구 석과불식 군자 득여 소인박려)
상구는 큰 열매는 먹지 아니함이니, 군자는 수레를 얻고 소인은 집을 깎으리라.


전부 죽으라는 법은 없다. 하늘은 전부 다 죽이지 않는다. 항상 씨를 남겨두어야 한다. 상구는 극한 자리에서 살아남는 것, 극한 자리에서 회복하기 위해서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그 유명한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큰 과일은 모두 다 먹지 않고 남긴다는 말이고, 의역하면 종자용 씨과실은 다 먹지 않고 씨앗(種子)용으로 남겨둔다는 뜻이다.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지혜다.


산지박이라는 괘명은 악한 음이 선한 양을 깎아 먹는다는 뜻에서 ‘깎을 박(剝)’ 즉, 칼로 근본종자(彔)를 깎는 뜻이다. 여름에 무성하던 나무가 가을에 음기운으로 낙엽이 지고 과실이 박락(剝落)하기 때문에 음력 구월을 박월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박월은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다.


아무리 어려운 순간이라도 희망을 남겨두는 주역의 지혜


박괘는 64괘 가운데에서 가장 어려운 괘이다. 초효부터 5효에 이르기까지 모두 음효다. 이를 ‘음적양박’(陰積陽剝)이라고도 한다. 세상이 온통 음으로 넘치고 단 한 개의 양효만 남아 있는 상태다. 그러나 그 한 개의 양효마저 언제 음효로 전락할지 알 수 없는 힘든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앞에서도 보았듯, 박괘를 다섯 마리의 고기가 꿰미에 매달려 있는 형국으로 설명한다. 그런 상황에서 씨과실인 양효 하나를 끝까지 남겨놓는 지혜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미래를 생각하는 실천이다.



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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