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자연스러우면 어찌 즐겁지 않겠느냐! - 뇌지예

즐거움은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


뇌지예괘



이번 시간에 살펴볼 뇌지예괘에서 예(豫)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미리 예’보다는 ‘즐거울 예’자로 본다. 뇌지예괘의 이전 괘들은 화천대유괘와 지산겸괘였다. 대유하면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고, 겸괘 다음에 예괘를 놓은 것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겸손하면 즐겁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이다. 대유하면서도 겸손하기 때문에 대유한 것이 계속 유지되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많은 것을 소유한데다 겸손하기까지! 즐거운 뇌지예괘


뇌지예괘는 위에는 진괘의 우레이고 아래에는 곤괘의 땅의 형상이다. 땅위에 우레가 나와 있는 뇌지(雷地)가 왜 ‘즐거울 예’일까? 옛날에 성인이 음악을 짓는데 땅에서 우레가 나와 ‘우르릉’하고 소리 내는 것을 듣고 음악을 지었다는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 즐거워하니 뇌지를 예괘라고 한 것이다. 


땅 위에 우레, 뇌지예

다섯 음 속에서 하나의 양이 세 번째에 있으면 안에서 산괘를 이루어 산이 땅 아래에서 겸손하고 있다는 겸괘가 된다. 그리고 다섯 음 속에서 하나의 양이 네 번째에 있으면 땅 위에서 우레가 움직이는 모습에 응하는 음악 덕분에 즐거워한다는 예괘가 된다. 자 그럼 음악과 즐거움이라는 키워드를 따라가면서 뇌지예를 살펴보도록 하자.




뇌지예 괘사


豫는 利建侯行師하니라.

(예 이건후행사)
예는 제후를 세우며 군사를 행함이 이로우니라.

彖曰 豫는 剛應而志行하고 順以動이 豫라.
(단왈 예   강응이지행     순이동   예)
단에 이르길 예는 剛이 응하여 뜻이 행하고 순함으로써 움직임이 예라.

豫順以動故로 天地도 如之온 而況建侯行師乎여.
(예순이동고   천지   여지    이황건후행사호)
예가 순함으로써 움직이니, 천지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제후를 세우고 군사를 행함에서랴!

天地ㅣ 以順動이라 故로 日月이 不過而四時ㅣ 不忒 하고
(천지   이순동     고    일월   불과이사시  불특)
천지가 순함으로써 움직임이라. 그러므로 일월이 지나치지 아니하며, 사시가 어긋나지 않고,

聖人이 以順動이라 則刑罰이 淸而民이 服하나니豫之時義ㅣ 大矣哉라.
(성인    이순동    즉형벌   청이민   복       예지시의   대의재)
성인이 순함으로써 움직임이라. 곧 형벌이 맑아서 백성이 복종하나니, 예의 때와 뜻이 큼이라!

象曰 雷出地奮이 豫니 先王이 以하야 作樂崇德하야 殷薦之上帝하야 以配祖考하니라.
(상왈 뇌출지분   예    선왕   이     작악숭덕    은천지상재     이배조고)
상전에 이르길 우레가 땅에서 나와 떨침이 예니, 선왕이 이로써 음악을 짓고 덕을 숭상하여, 성대히 상제께 천신하며 조상으로써 배하느니라.


왜 즐겁다는 예괘에서 건후행사를 말했을까? 조직을 강화하고(建侯) 군사훈련을 시켜 국방을 튼튼히 한(行師) 다음에야 안심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는 즐거움하면 제일 먼저 음주가무와 같이 노는 것(^^)이 떠오르는데, 그러한 연회는 일상의 기반을 굳건히 한 후에 열어야 안전하다. 그런데 여기서 즐거움을 다른 의미로 보면 전체 괘사가 훨씬 쉽게 이해된다. 일월이 지나치지 않고 사시가 어긋나지 않는 천지의 움직임과 같이 한 나라의 천자가 제후를 세우고 군사를 행하는 것을 순하게 움직이면(順動) 그것이 바로 즐거움이다.


즐거움은 음주가무? 천지에 움직임에 따라 순동하는 것!


즉 자연의 흐름 혹은 이치에 따르는 것이 즐거움인 것이다. 만약에 천지가 요란스럽고 사납게 움직이면 모두가 끝이 나고 만다. 천지도 이렇게 순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하물며 한 나라의 천자가 제후를 세우고 군사를 행하는 데 마구 포악스럽게 해서 되겠느냐는 말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정치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도가의 텍스트를 잠깐 빌려보자.


샘물이 말라 물고기가 메마른 땅 위에 모여 서로 축축한 물기를 끼얹고, 서로 물거품으로 적셔 줌은 물이 가득한 드넓은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의 존재를 잊고 있는 것만 못하다.


─ 장자, 안동림 역주, 현암사, 187쪽


최상의 덕을 가진 왕은 아래 백성들이 왕이 있다는 사실만 알 뿐이요. 그 다음의 왕은 그를 친근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다음의 왕은 두려워하며, 그 다음은 업신여기나니, 왕이 믿어주지 않으므로 아랫사람이 믿지 않게 된 것이다. 


─ 왕필의 노자주, 한길사, 99쪽


장자는 자연스럽다는 것은 물고기가 물에서 노닐 듯이 서로의 존재를 잊고 지낼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노자는 최상의 덕을 가진 왕은 아래 백성들이 왕이 있다는 사실만 알 뿐 평소에는 왕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할 수 없듯이 좋은 정치란 백성들이 왕의 통치를 느끼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에서도 이러할진대 예괘에서 즐겁다는 것을 지금 식으로 잘못 해석하여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기를 쓰면서 춤추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음악이나 춤도 순하게(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또한 예괘에서 음악을 짓고 덕을 숭상한다는 것은[作樂崇德] 문화를 창조한다는 뜻이 있다. 음악을 짓는 것이 왜 문화를 만드는 것과 연관되어 있을까?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던 음악을 종묘제례악이라 한다. 수많은 악기들이 빚어내는 음률이 제례를 더욱 장엄하게 해준다. 이 종묘제례악의 작곡가는 놀랍게도 조선 최대의 성군 세종이다. 그는 이 종묘제례악을 단 하룻밤 만에 작곡했다고 한다. 세종 그는 왜 음악에 매료되었던 것이며, 그가 음악으로 추구한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하...하룻밤만에??


세종은 음악을 통해 새나라 조선의 국가 체제를 정비하려 하였다. 중국에서도 나라의 기틀을 세울 때 황종음을 새로이 잡는 것처럼 세종도 조선의 소리에 맞는 황종음을 다시 정했다. 황종음이란 현재 서양 음악의 도처럼 동양 음악에서 기준점을 의미한다. 사실 통치에서 음악의 역할을 특히 강조한 이는 공자였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은 예악이 무너진 탓이라 여겼다. 이런 혼란을 극복하고 요순시절 같은 태평성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예악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종 역시 공자와 마찬가지로 음악을 통해 조선을 유교적 이상국가로 만들려고 했다.


치세지음(治世之音). 즉 소리가 편안하고 즐거우면 정치가 조화를 이룬다고 했다. 음악은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통치 이념을 수립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졌고 세종은 음악을 통해서 예의 경지까지 끌어 올리는 예치를 추구했다. 이와 같이 예괘에서 음악이 나온 것은 순동(順動:자연스러운) 정치와 부합하기 때문이다.



뇌지예 효사


初六은 鳴豫ㅣ니 凶하니라.
초육    명예        흉
초육은 우는 예니 흉하니라.

象曰 初六鳴豫는 志窮하야 凶也ㅣ라.
상왈 초육명예    지궁     흉야
상전에 이르길 초육의 명예는 뜻이 궁해서 흉함이라.


다섯 음들 중에서 유독 초육 음만이 구사의 양과 응하고 있다. 구사와 응하므로 강한 구사를 배경으로 삼아 구사에서 나오는 소리와 즐거움을 남에게 들려줄 생각은 않고 혼자만 전부 차지하려 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도 소리와 즐거움을 울려줘야 하는데 혼자만 즐거움에 울고 있는 것이다[鳴豫]. 모든 음이 구사에게 매여 있는 판국에 혼자만 구사에 직접 응한다고 해서 구사에게 빌려온 즐거움을 제 것인 양 설쳐대는 꼴인 것이다. 


초육아 나대지마라!


六二는 介于石이라 不終日이니 貞코 吉하니라.
육이    개우석       부종일       정      길
육이는 절개가 돌 같음이라. 종일을 기다릴 필요 없이 정하고 길하니라.

象曰 不終日貞吉은 以中正也ㅣ라.
상왈 부종일정길    이중정야
상전에 이르길 不終日貞吉은 중정함으로 써라.


지산겸괘 육이처럼 뇌지예괘 육이도 음이 음자리에 있어 바르고 내괘에서 중을 얻어 좋다. 다섯 음 모두 구사에 매여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뇌지예이다. 그런데 육이는 정중하기 때문에 자신의 배필이 아닌 구사를 넘보지 않는다. 그래서 날이 마치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분연히 일어나 바른 일을 하는 것이다.


六三은 盱豫ㅣ라. 悔며 遲하야도 有悔리라.
육삼   우예      회   지       유회
육삼은 바라보는 예라 뉘우치며, 더디게 하여도 뉘우침이 있으리라.


象曰  盱豫有悔는 位不當也 새라.
상왈  우예유회     위부당야
상전에 이르길 盱豫有悔는 위가 마땅치 않음이라.


육삼이 육이와 달리 음이 양자리에 있어 부당하고 중도 얻지 못했다. 때문에 부당한 자리에서 바로 이웃해 있는 구사를 부러워하면서 쳐다본다. 여기에서 한자 우(盱)가 재미있다. 우(盱)의 의미 자체가 눈을 위로 치켜뜨고 바라보는 모양이다. 우(盱)라는 글자 하나로 육삼이 하고 있는 행태를 즉각 이해할 수 있다. 『주역』을 공부하다보면 어떤 효에서도 본질을 운운하지 않는다. 항상 상황과 처지(자리)가 문제이다. 육삼도 가까이 즐거움의 원천 구사가 있기 때문에 부러움이든 아부든 쳐다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럴 때는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다. 위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뉘우침 밖에 남지 않는다고 『주역』은 경고한다.


육삼은 이웃한 구사를 盱(우)하며 쳐다본다.


九四는 由豫ㅣ라 大有得이니 勿疑면 朋이 盍簪하리라.
구사    유예       대유득        물의   붕    합잠
구사는 즐거움이 말미암느니라. 크게 얻음이 있으니, 의심치 말면 벗이 비녀를 합하리라.

象曰 由豫大有得은 志大行也ㅣ라.
상왈 유예대유득    지대행야
상전에 이르길 由豫大有得은 뜻이 크게 행해짐이라.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구사. 구사는 예괘를 이루는 주효로서 모든 소리와 즐거움이 구사로부터 나온다. 유일한 양으로 다섯 음을 통합해 조화로운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런데 구사는 자기가 인군이 아니고 양이 음자리에 있어 자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의심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그런 의심조차 없어야 비녀를 합하여 큰머리 단장이 되는 것과 같이 모든 음이 한곳에 모여 든다. 구사의 대신이 화합의 정치를 펴서 의심하지 않고 일관성 있게 나가면 온 국민이 똘똘 뭉치게 되어 나라 전체가 잘살게 된다는 것이다.


六五는 貞호대 疾하나 恒不死ㅣ로다.
육오    정       질        항불사
육오는 바르되 병들었으나 항상 죽지 않도다.


象曰 六五貞疾은 乘剛也ㅣ오 恒不死는 中未亡也ㅣ라.
상왈 육오정질    승강야    항불사    중미망야
상전에 이르길 六五貞疾은 剛을 탔음이요, 恒不死는 中이 없어지지 않음이라.


육오는 똑똑하고 훌륭한 구사를 올라타고(乘剛) 인군의 자리에 있다. 인군의 자리에 있고 외괘에서 중을 얻어 바르게 나가고 있으나 은연중에 잘난 구사에게 신경이 쓰여서 병이 들었다. 이럴 때 육오는 힘든 상황이지만 중을 얻었기 때문에 망할 지경에는 이르지 않으니 굳이 구사를 의식하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끝까지 힘을 내는 것이 좋다.


上六은 冥豫니 成하나 有渝ㅣ면 无咎ㅣ리라.
상육   명예     성      유유        무구
상육은 어두운 예니 이루나, 변함이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冥豫在上이어니 何可長也ㅣ리오.
상왈 명예재상       하가장야
상전에 이르길 冥豫가 위에 있으니 어찌 오래갈 수 있으리오.


상육은 음이 맨 위에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즐거워하다 어둠 속에 빠져들었다. 상육은 이미 자리가 다 되어서 그 즐거워함이 지나친 것에 이른 것이다. 이 정도의 즐거움은 이미 쾌락에 빠진 것이기에 성인은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느냐고 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뇌지예는 괘사와 효사의 해석이 주역답게(!) 그 때 그 때 조금씩 다르게 적용되지만 가장 밑바탕에 천지의 움직임과 같이 順動(자연스럽게)하라는 내용이 깔려 있다. ‘즐거울 예’는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는 것을 상황에 맞게 변주하면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셨는지?^^ 자연의 흐름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도시인의 삶.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다는 말 자체를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순동(順動)을 회복해야 한다. 



임경아(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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