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서로를 믿고 따르라! - 택뢰수

서로 따르는 방법 - 택뢰수



일반 경영학에서는 ‘의사결정’이란 용어를 아주 빈번하게 다룬다. 어쩌면 조직행위라는 테마 아래 모여 있는 단어들 중 가장 중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사실 경영이라는 말 자체가 조직을 움직이는 기술이고,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시시각각 이뤄지는 결정들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으니, 그쪽 입장에서는 그리 틀린 시선도 아니다.


택뢰수는 수직적인 조직이 아니다 서로가 따르는 공동체!


그러나 경영, 조직행위, 의사결정이라는 용어는 어떤 위계가 내포된 용어들이다. 조직이라는 말은 어떤 외발적인 목표를 위해서 누군가에 의해 모인 객체이다. 또 경영은 그 객체를 움직인다는 뜻을, 아울러 의사결정은 상위 결정자가 따로 있고, 그 결정을 무조건 따르는 하위 작업자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용어다. 경영학 자체가 위에 아래를 다루는 학문인 것이다.


그러나 『주역』은 달리 말한다. 공동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평행적인 위계를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위·아래가 서로 따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객체를 움직인다는 느낌보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바른 것을 쫓아가는 모습이다. 택뢰수는 서로가 서로를 따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괘다. 이를테면 『주역』의 ‘조직행위론’이다.



택뢰수 괘사


随, 元亨, 利貞, 无咎.
(수 원형 이정 무구)


彖曰 隨剛來而下柔. 動而說隨. 大亨貞无咎 而天下隨時. 隨之時義大矣哉.
(단왈 수 강래이하유 동이열 수 대형정무구 이천하수시 수지시의대의재)

수는 크게 형통하니 바름이 이로우니라. 허물이 없으리라.
단전에 이르길 수는 강이 와서 유에 아래하고 동하고 기뻐함이 수니,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해서 허물이 없어서 천하가 때를 따르나니 (때를 따르는 의리가) 수의 때와 의가 크도다.


원래는 하늘괘와 땅괘가 평행선을 달리는 천지비괘였다. 그러나 이 괘에서는 하늘과 땅이 서로 사귀지 못해서 절대 만물이 나오지 못한다. 서로 통하지 못하니까 정치도 안 되고 불안하기만 한 상이다. 그래서 서로 움직인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묘하다. 서로 하나의 효가 상대에게로 날아간다. 천지비의 맨 위에 있는 양은 맨 밑으로 내려오고, 맨 밑에 있는 음은 맨 위로 올라간다. 바로 이것이 ‘강래이하유’이다. 하늘, 땅 같이 완전한 것들이 같이 있으면 더 멋진 일이 발생할 것 같은데, 결코 그러지 못하다. 오히려 서로 섞이질 못하니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 뭔가 만들려면 서로 고개를 숙여 따라야 한다. 그럴 때에야 만물이 생긴다. 서로 섞여야 하는 것이다.




택뢰수 효사


初九 官有渝 貞 吉 出門交 有功
(초구 관유유 정 길 출문교 유공)


象曰 官有渝 從王 吉也 出門交有功 不失也
(상왈 관유유 종정 길야 출문교유공 불실야.)

초구는 관이 변함이 있으니 바르게 하면 길하니 문 밖에 나가서 사귀면 공이 있으리라.
상전에 이르길 ‘관유유’에 바름을 좇으면 길할지니, ‘출문교유공’은 잃지 아니함이라.


회사에 부장님이 새로 오셨다. 이럴 때면 늘 부서현황을 정리해서 보고하기 마련이다. 당분간 보고서의 격전이다. 새로 부임한 부장은 세세한 부서 사정을 잘 모르니까, 이것저것 자료를 요청한다. 우리는 우리대로 요청하는 자료가 번거롭다고 느낀다. 부장은 부서에 부임했으나, 우리들의 마음 문은 꽁꽁 닫혀 있다.



여기서 ‘관유유’의 유(逾)는 ‘넘어가다, 변하다’는 뜻이다. 또 ‘관(官)’은 벼슬을 말한다. 그런데 벼슬이란 이러저러한 사회적 관계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관유유’는 사회적 관계와 그 관계가 펼쳐지는 장이 변동했다는 뜻이다. 크게는 정권이 바뀌었다가거나, 작게는 다니는 회사의 상사가 교체되었다거나 해서 내 자리에 변동이 생겼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문을 닫고 있으면 안 된다. 문을 열고 나가서 새로운 ‘관’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능력과 소신을 펼쳐야 한다. 그런 때라야 실수도 없어진다.
 

六二 係小子 失丈夫
(육이 계소자 실장부)


象曰 係小子 弗兼與也
(상왈 계소자 불겸여야)

육이는 소자에게 매이면 장부를 잃으리라.
상전에 이르길 ‘계소자’는 아울러 더불지 못함이라.


사회적 관계가 변했다. 그러는 사이 이 사람, 저 사람 나서서 자기 뜻대로 일을 처리하려 한다. 그걸 보노라면 잘난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싶다. 소란스러움에 떠밀려 나는 우왕좌왕할 수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 말에 휘둘려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다, 아뿔사, 문제가 발생한다. 따져보면 소란스러움 속에서 소탐대실한 탓이다.



택뢰수의 육이는 음이다. 육이는 구오의 강한 양과 응한다. 그런데 바로 아래 역시 강한 양효 초구가 있다. 결국 육이에게는 구오를 따르느냐 초구를 따르느냐, 다시 말하면 어느 양에게 매여야 하느냐하는 문제가 있다. 그때 가까이 있다고 초구를 따라갔다간 낭패를 본다. 음이 음자리에 있고, 내괘에서 중을 얻었음에도 성인은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도 바르게 따라야 한다.


六三 係丈夫 失小子 隨 有求 得 利居貞
(육삼 계장부 실소자 수 유구 득 이거정)


象曰 係丈夫 志舍下也
(상왈 계장부 지사하야)


육삼은 장부에 매이고 소자를 잃으니 따름에 구함이 있음을 얻으나, 바른 데에 거함이 이로우니라.
상전에 이르길 ‘계장부’는 뜻이 아래를 버림이라.


사회적인 장이 뒤바뀔 때, 어느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누가 옳은지를 도통 알기 힘든 경우가 워낙 많아서이다. 그런 때는 주변에서 좀 나은 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자신이 지금 잘 가고 있는지 늘 돌아봐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바른 길인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괘에서 육삼은 음이 양자리에 있어 바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중을 못 얻었기 때문에 바른 데에 거해야 된다. 만약 바르지 못하면 구사를 따르는 것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주역』은 시작도 바르게, 끝도 바르게, 항상 바르게를 외친다.


어디가 바른 길이지?


九四 隨 有獲 貞 凶 有孚 在道 以明 何咎
(구사 수 유획 정 흉 유부 재도 이명 하구)


象曰 隨有獲 其義 凶也 有孚在道 明功也
(상왈 수유획 기의 흉야 유부재도 명공야)


구사는 따름에 얻음이 있으면 바르더라도 흉하니 믿음을 두고 도에 있고 밝음으로써 하면 무슨 허물이리요.
상전에 이르길 ‘수유획’은 그 뜻이 흉함이요, ‘유부재도’는 밝은 공이라.


어떤 조직이나 2인자가 있게 마련이다. 모든 의사결정 사항이 그 2인자를 통해서 최고결정권자에게 올라간다. 그 과정에서 2인자는 항상 구설수에 오른다. 더 큰 문제는 2인자 스스로도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2인자는 언제나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2인자도 쉬운 자리가 아니에요.


구사는 구오 인군 밑의 대신이다. 구오에게 가는 모든 사람과 사물이 일단 구사를 통해 간다. 그래서 ‘따라온다’(隨)고 표현했다. 언뜻 보면 풍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역』은 이런 상황 자체가 흉하다고 말한다. 그럴수록 모든 백성에게 믿음을 줘야 하고, 늘 옳은 방법으로 지켜야 하고, 늘 투명하게 처리해야 한다. 결국 구사는 구오를 따르는 자의 태도를 말한다.
 

九五 孚于嘉 吉
(구오 부우가 길)


象曰 孚于嘉吉 位正中也
(상왈 부우가길 위정중야)

구오는 아름다운 데에 미더우니 길하니라.
상전에 이르길 ‘부우가길’은 위가 바르고 가운데 하기 때문이라.


자신이 최고결정권자라 하더라도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 최고결정권자도 올바르게 결정하고 처리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따라야 한다. 택뢰수괘의 구오는 육이의 신하와 잘 응하고 있다. 육이는 아름다운 신하이다. 구오는 아름다운 신하에게 믿음을 두고 있어서 길하다.


上六 拘係之 乃從維之 王用亨于西山
(상육 구계지 내종유지 왕용형우서산)


象曰 拘係之 上窮也
(상왈 구계지 상궁야)


상육은 거리껴 매고 이에 좇아 얽으니, 왕이 써 서산에서 형통하도다.
상전에 이르길 ‘구계지’는 위에서 궁함이라.


여기서 ‘구계지’는 엇비슷하게 거리껴 매서 꼼짝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내종유지’는 그것을 따라 자꾸 친친 얽어매서 꼼짝 못한다는 말이다. 주자도 말하길, 너무 기쁘게만 이리저리 따르다 보면 서로 얽히고 설 켜서 세상이 오점투성이가 된다고 말하면서 감옥이 좁아 가두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고 한탄한다. 그런 이유로 문왕은 얽힌 세상을 풀기 위해 서산에서 천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상궁(上窮)’이라고 한다. 이 경우, 세상이 이도 저도 못할 정도로 아주 궁해졌으므로 무엇인가 다시 시작해봐야 한다.


택뢰수는 공동체가 바르게 움직이기 위해서 구성원들이 서로 섞이는 원리를 말한다. 세상이 바뀌면 때를 따라 밖으로 나가야 한다(초구). 그러나 소란스러울 때 바르지 못한 사람을 따를 위험을 경계한다(육이, 육삼). 물론 내게 힘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힘이 있더라도 아래 사람들의 믿음을 얻어서 옳은 방법을 따라야 한다(구사). 심지어 내가 최고결정권자가 되더라도 부하직원들을 따라야 한다(구오). 공동체는 따름으로 이루어지고 움직여진다.


공동체는 따름으로 이루어지고 움직여진다.


그러나 『주역』은 무조건 섞이는 것만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섞이는 것이 심화되면, 결국 얽히고 설켜서 꼼짝 못하게 된다. 따름에도 일정한 한도가 있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길로 다시 나서야 한다. 다시 『주역』의 근본적 테마로 돌아간다. 섞이지만 극에 다다르면 다시 막힌다. 



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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