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단비를 품고 있는 구름! 때를 기다려라 - 수천수괘

때를 기다려라! - 허생의 괘 수천수



허생은 먹적골에 살았다...두어칸 초가집은 비바람도 가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허생은 글 읽기만 좋아했으므로, 그의 아내가 남의 바느질을 해서 겨우 입에 풀칠을 하였다. 하루는 그의 아내가 몹시 굶주린 끝에 울면서,


“당신은 여태껏 과거를 보지 않으면서, 글을 읽어 무얼 하우?”


했더니, 허생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나는 글 읽기에 아직 능숙하지 못하오.”


“그럼 장인(匠人) 노릇은 못하우?”


“장인 노릇은 평소에 배우지 못했으니 어찌하오?”


그러자 그의 아내가 성을 내며 꾸짖기를,


“밤낮으로 글을 읽으면서 겨우 ‘어찌하오?’만 배웠구려! 장인 노릇도 못한다, 장사질도 못한다, 그럼 어찌 도적질이라도 하지 않수?”


하니, 허생은 책을 덮고 일어서면서,


“아깝다! 내가 본래 십 년을 기약하고 글을 읽어 이제 칠 년이 되었건만.” 


하고는, 집을 나와 버렸다. 


이번 주역서당에서 살펴볼 괘는 바로 수천수괘이다. 지금까지 주역서당에서는 천지자연의 아버지 중천건과 어머니 중지곤 사이에서 세상물정에 어두운 어린 산수몽괘가 태어나는 일련의 이야기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수천수가 등장한다. 수천수는 과연 산수몽, 어린 아이와 어떤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낼까? 먼저 수천수괘가 생긴 형상을 보고 짐작해보자. 


수천수는 팔괘(건,태,리,진,손,감,간,곤) 가운데 두 개의 괘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물을 뜻하는 감괘(☵)와 하늘을 뜻하는 건괘(☰)다. 수천수에서는 하늘 위에 물을 구름으로 본다. 하늘 아래 물이 있다면 비가 되어 내렸겠지만 하늘 위에 물이 있으니 구름이 되는 것이다. 구름은 곧 비가 될 운명이다.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 비가 되기 직전의 기다림의 상태. 그런데 수천수의 구름은 소나기처럼 아무때나 곤란하게 내리지 않는다.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비구름인 것이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를 기다렸던 제갈공명처럼, 기다림의 괘 수천수!


이처럼 수천수는 ‘기다림’을 뜻하는 괘이다. 하지만 수천수가 말하는 기다림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수천수는 망부석이 되도록 집나간 남편을 하염없이 그리워하는 아내의 처절한 기다림이 아니다. 그칠 때와 나아갈 때를 알고 현재의 삶을 조율하는 것. 이것이 바로 수천수가 말하는 기다림의 핵심이다. 이름을 붙이자면 ‘능동적인 기다림’이라고나 할까?


그럼 능동적인 기다림과 산수몽괘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어린 아이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이 바로 ‘기다림’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청소년(靑少年)이라고 말한다. 굳이 해석하자면 ‘푸릇푸릇하고 자그마한 시기’라는 뜻이 된다. 청소년은 스무 살 성인이 될 때까지 준비를 하는 기간이다. 물론 무작정 시간만 흐른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다리는 동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배우고나서 때에 맞도록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해야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다. 


덧붙여 수천수는 기다린다는 뜻과 함께 ‘음식(곡식)’이라는 뜻도 있다. 어린 몽이 어른이 되도록 기다리려면 음식을 먹여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곡식이 여물기 위해서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도 기다림-음식은 상통한다. 자 그럼 괘사와 효사를 통해 수천수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수천수 괘사


需, 有孚, 光亨, 貞吉, 利渉大川.

수는 믿음을 두어서, 빛나며 형통하고 바르게 하여 길하니, 큰 내를 건넘이 이로우니라.


기다림이 고행이 아니라 수행이 되려면 기다림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有있을 유, 孚믿을 부 : 믿음이 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기다림은 지리한 킬링타임 혹은 이도저도 못하는 망설임이 될 뿐이다. 그런 ‘수동적인 기다림’은 아무것도 생성할 수 없다. 반면 능동적인 기다림은 새로운 삶을 생성한다.


언제까지 놀꺼야!!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 나오는 허생은 방에 앉아서 글공부만 하는 가난한 선비다. 아내의 눈에는 ‘장인(匠人) 노릇도 못하고, 장사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부만 하는 무능력한 가장으로 비친다. 하지만 허생은 너무도 당당하게 말한다. “아깝다! 내가 본래 십 년을 기약하고 글을 읽어 이제 칠 년이 되었건만.”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어떤 의심 없이 기약할 수 있는 여유.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여기서 믿음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허생은 글공부를 통해서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다. 그리고 때가 이르자 세상 밖으로 나가서 한양 최고의 부자인 변승업을 찾아가 만 냥을 빌린 뒤 자신의 지혜와 기지를 마음껏 발휘한다.  



수천수 효사


初九. 需于郊, 利用恒, 无咎.

초구는 들에서 기다림이라. 항상함을 씀이 이로우니 허물이 없으리라.


구양(양의 수는 9이다.)이 맨 처음에 있는 초구는 기다림의 처음 단계다. 그런데 처음부터 기다림에 실증을 내거나 조급하게 군다면 삶에서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기다림이 매우 지난한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다림의 첫 단추를 어떻게 꿰어야 할까? 농사가 ‘천하지대본’이었던 시절, 들판은 모든 삶의 축을 이루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들판에서 곡식을 기르는 활동을 중심으로 자신의 리듬을 구성했다. 매일매일 꾸준하게 들에 나가서 물을 대고 피를 뽑는 등 일상적으로 곡식을 돌봤다. 그렇지 않으면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다림의 초식은 일상을 변함없이 지킬 수 있는 항상된 마음, 즉 항심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친구 허생도 글 읽는 선비로서 자신의 일상인 글밭을 열심히 일구었다.  


九二. 需于沙, 小有言, 終吉. 

구이는 모래밭에서 기다림이라. 조금 말이 있으나 마침내 길하리라.


구양이 두 번째에 있어서 구이라고 한다. 구이는 모래밭에서의 기다림이라고 표현한다. 모래밭이라니 초구에 나왔던 들판이랑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모래밭은 일상을 구성할 수 없는 불모의 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래밭보다는 모래 늪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구이는 기다림의 과정에서 겪는 작은 어려움을 말한다. 발이 쑥쑥 빠지기 때문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모래 늪에 선 것처럼 자신의 기다림에 의심이 생길 수 있다. 아니면 허생이 아내에게 구박을 받았듯이 주위 사람에게 구설수가 있을 수도 있다. 특히 자신의 길을 가려고 기다리는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말(小有言)을 들을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꺼냐?”,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야 되지 않겠냐?” 등등. 하지만 자신만의 믿음이 확고하다면 작은 말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모래 늪을 무사히 건널 수 있을 때 마침내 길하게 된다고 구이의 효사는 말한다. 


九三. 需于泥. 致寇至. 

구삼은 진흙밭에서 기다림이니, 도적 이름을 이루리라.


구양이 세 번째에 있어 구삼이 된다. 모래밭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진흙밭에 이른 것이다. 수천수괘는 감괘와 건괘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감괘는 험한 물로써 어려운 상황을 표현한다. 즉, 어려운 상황(물)에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구이가 바닷가의 모래사장이라면 구삼은 갯벌쯤 되겠다. 이처럼 기다림은 단순하고 지루한 과정이 아니라 온갖 고행의 장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치열한 수행의 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수행을 견뎌내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의 뜻을 접고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도 허다하다. 구삼의 효사에서는 그럴 경우를 바닷물에 빠졌다고 하면서 도적이 나를 해치는 것에 비유했다. 갯벌의 진창에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다에 뛰어 들어가 버린 것은 마치 도적을 만난 것처럼 해로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 진흙구덩이가 끝나도록 바다에 빠지지 않고 기다리는 끈기가 필요하다.


六四. 需于血, 出自穴.

육사는 피에서 기다림이니, 구멍으로부터 나오도다.


육음이 네 번째에 있어 육사이다. 육사는 ‘피에서 기다린다’는 효사부터가 살벌하다. 모래 늪, 진흙탕을 거쳐서 이제 피바다까지 이르렀다. 도대체 왜? 육사는 육삼에서 보았듯이 바다에 빠진, 도둑을 맞닥뜨린 상태를 말한다. 더 이상 기다림을 이어나갈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것을 피바다라고 표현한 게 아닐까. 하지만 육사는 피바다 속에서도 피를 보지 않는다. 어떤 해도 당하지 않고 탈출구로 쏙 빠져 나온다. 그것은 단순히 육사가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육사는 음으로서 세상에 순응하고 정직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육사가 이러한 음덕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초구에서 말한 일상을 지켜나가는 항심 덕분이다. 정직하고 바른 마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항상 자신을 갈고 닦을 때 마치 자신의 습처럼 몸에 각인된다. 그래서 피바다와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자신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고로 아무리 힘든 상황에도 바른 마음으로 기다림려야 함을 주역은 알려준다. 


九五. 需于酒食, 貞吉. 

구오는 술과 음식에서 기다리니, 바르고 길하니라.


구양이 다섯 번째에 있어서 구오라고 부른다. 주역에서는 구오를 인군의 자리라고 한다. 인군이란 무엇인가? 백성을 다스리는 자리다. 그런데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딴 게 필요한 게 아니다. 백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좋은 정치를 베푸는 게 중요하다. 『맹자』에도 나오듯 백성들은 항산(생업)이 있어야 항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오의 효사에서 ‘구오는 술과 음식에서 기다’린다고 한 것이다. 백성들에게 항심(일상)을 영위하게 하라! 이것이 구오 인군의 임무이다.


上六. 入于穴. 有不速之客三人來, 敬之, 終吉.  

상육은 구멍에 들어감이니, 청하지 않은 손님 셋이 오리니 공경하면 마침내 길하리라. 


육음이 맨 위에 있어서 상육이라고 한다. 상육은 이제 기다림이 끝난 자리다. 기다림은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할 때 발생한다. 하지만 상육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원하는 게 없다. 그래서 상육은 더 이상 세상사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초구에서 구오까지 긴 기다림을 겪으면서 더 이상 욕망에 휩쓸리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손님 셋이 찾아온다는 효사를 유불선에 귀의한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수천수는 단비가 되기를 기다리는 구름이다.


학생은 공부, 농부는 농사 등 사람들은 각자 다른 기다림에 처해있다. 하지만 허생처럼 10년 동안이나 공부의 뜻을 세우고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유부단하거나, 눈치를 보거나, 너무 욕심 부리거나 고집을 부리면서 모래밭과 진흙탕에 빠지고 심하면 피바다를 만나서 고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왜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것일까. 이것은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는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허생이 10년 동안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비가 오려면 먼저 구름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비는 그냥 오지 않는다. 대기 중의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 물방울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세상을 촉촉이 적시는 단비가 될 수 있다. 허생은 천지의 이치를 꿰뚫었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었다. 수천수는 기다림의 괘이다. 6효에서는 다양한 기다림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바른 마음으로 꿋꿋이 기다리라는 것. 그렇게 될 때 구름은 단비가 될 수 있다. 단비가 되어 천하를 적시고 싶다면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수천수괘의 조언인 것이다.   



나선미(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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