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 싸우지 않는 자의 싸움
『임꺽정』은 이장곤이 도망자가 되는 기구한 순간부터 시작한다. 무오사화와 함께 세상은 엄혹한 시절을 통과하고 있었다. 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원수를 갚겠다고 신하들과 권력투쟁 중이다. 분을 못 참고 성종의 후궁인 엄귀인, 정귀인을 뜰 아래 세워 놓고 철퇴로 머리를 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연산군은 이장곤을 불러놓고 윤씨의 적삼을 꺼내 원수는 갚아야 하지 않느냐고 떠본다. 아뿔싸, 이장곤이 좀 삐딱하다. 이장곤의 말은 임금이 덕이 있어야지 원수는 무슨 소리냐는 식이다. 그러자 연산군이 눈썹을 치켜뜨며 다시 묻는다.
“임금이 덕이 없으면 그 임금은 어찌하노?”
“임금의 자리는 높은 까닭에 위태하옵네다. 덕이 아니면 누리기가....”
이제 난리가 났다. 연산군이 노발대발하며,
“무에야, 덕이 아니면 어째!”
임금이 덕이 없으면 어쨌다고?
큰일 났다. 안 그래도 신하들을 믿지 못해 쳐 죽이는 판에, 이리 말하면 자기 목숨과 바꾸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아니나 다를까 이장곤은 이튿날 곧바로 거제 귀양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연산군이 누군가. 이미 죽은 자도 무덤에서 시체를 파내어 뼈를 갈든 목을 자르든 뭔가 끝장을 보는 작자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바닷물에 몸을 던질 결심을 하고 바다 절벽으로 나서는 이장곤. 이 절체절명의 순간, 우두커니 하늘가를 바라보다 이장곤의 머리에 스쳐 지나는 것이 하나 있었다. 한양을 뜨기 전 친구 정한림이 험한 꼴을 당하면 뜯어보라고 주던 종이봉지가 생각난 것이다. 분명 자신의 운명과 관련된 것이리라. 급히 봉지를 뜯어보니 과연 글이 쓰여 있다. “주위상책, 북방길(走爲上策 北方吉)!” 북방으로 달아나는 것이 제일 나은 꾀라는 말이다. 이장곤은 바로 그 순간부터 도망자가 된다. 아마 정한림이 본 점괘가 바로 오늘 우리가 볼 “천수송(天水訟)”이었을 것이다.
천수송 괘사
訟, 有孚, 窒惕中, 吉. 終凶. 利見大人. 不利涉大川.
(송, 유부, 질척중, 길, 종흉, 이견대인, 불리섭대천.)
송은 믿음을 두나 막혀서 두려우니, 중함은 길하고 끝까지함은 흉하니,
대인을 봄이 이롭고 큰 내를 건넘이 이롭지 아니하니라.
송괘는 다툼이 벌어지는 현장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싸우는 방법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송괘의 위는 하늘괘(☰ : 건삼련)이고 아래는 물괘(☵ : 감중련)라서 천수(天水)다. 천수는 송(訟)이다. 송은 말을 공정하게 한다는 말이다. 상대와 옳고 그른 것을 겨뤄보는 것이다. 서로 다툼이 발생하는 곳에는 반드시 송이 있다. 공자는 「서괘전」에서 천수괘가 나오는 이치를 ‘음식이 있으면 다투게 된다’는 말로 설명한다. 그래서 음식을 말하는 수괘(需卦) 뒤에 송괘를 두었다. 천수송은 뭔가 다툼이 있을 때 사용되는 괘다.
그런데 송괘의 특이점은 어떻게 잘 싸우느냐를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싸움을 피하라고 가르친다. 괘상으로 보면 하늘괘가 ‘상대’이고, 아래 물괘가 ‘나 자신’이다. 물론 자신이 뭔가 믿음이 있어 싸울 만하다고 자신하니까 송사를 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구이(九二)처럼 자신이 처한 처지를 잘 알아야 한다. 그는 가운데에 꽉 막혀 있다. 배치를 보면 상대를 이길 가망이 별로 없다. 그래서 중도를 잘 지켜 중간에 그만두면 길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구(上九)처럼 고집을 부려 끝까지 나가면 흉하다. 원래 송사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물론 대인을 만나 힘을 합치면 간혹 이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송괘는 기본적으로 험한 물이 당장 앞에 있어 대천을 건너기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송괘는 험한 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건너기 어려운 형국이다. 가급적 싸움을 피하는게 좋다.
이장곤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연산군은 하늘이다. 그러나 이장곤은 물괘처럼 험한 상태로 앞뒤 꽉 막혀 있다. 종이봉지를 뜯어 본 곳도 공교롭게 바다로 막혀 있는 곳이다. 연산군에 대적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자신의 운명과 싸워서도 안 된다. 가능한 송사를 피하고 줄행랑치는 것이 상책! 천수송은 바로 그 운명적 ‘도주’을 보여준다.
천수송 효사
初六. 不永所事,小有言,終吉.
(초육 불영소사 소유언 종길)
초육은 일(송사)을 길게 아니하면, 조금 말이 있으나 마침내 길하리라.
초육은 백성의 자리로 약하다.
초육(初六)은 맨 밑으로 백성의 자리다. 그래서 참으로 약하다. 그런데 지금 초육은 구사(九四)의 양과 상대하고 있다. 구사는 고위직으로 막강하다. 이런 때에는 송사를 길게 끌지 않아야 한다. 사태를 살피고 그만둔다면 길하다. 하지만 세상사가 전부 송사다. 싸움 아닌 것이 없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그것은 상대에 따라 결정된다. 상대를 잘 살펴서 무모한 싸움은 멈추는 것이 상책이다. 다음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일진일퇴다. 필요하다면 누군가를 대동해서 중재에 나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길게 보면 이런 후퇴도 싸움인 것이다.
九二. 不克訟,歸而逋,其邑人三百戶,无眚.
(구이 불극송 귀이포 기읍인삼백호 무생)
구이는 송사를 이기지 못하니, 돌아가 도망하여
읍사람이 300호면 재앙이 없으리라
구이(九二)는 구오 인군과 직접 응해서 송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구오(九五)는 너무 막강하다. 만나도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났다. 고로 얼른 자기 갈 데로 도망쳐야 한다. 그렇다고 도망가서 큰 나라를 세우려고 하면 안 된다. 주역이 적당하다 알려주는 곳은 읍사람이 300호쯤 되는 그런 고을이다. 더 욕심내면 탈 난다. 이기지 못하는 상대임을 안다면 ‘귀이포(歸而逋, 돌아가 도망가다)’하라. 도망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지기 위해 싸워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무서우니 피하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싸움의 전략을 배치에 맞춰 바꾸라는 말이다. 앞뒤 안 가리고 갔다가는 싸움은커녕 마주하자마자 상대에게 당하고 만다. 이 괘가 나오면 무조건 도망가야 한다. 아마도 이장곤의 경우 정한림은 이 효사를 빼 들었을 것이다.
루쉰은 「자명등」이라는 소설에서 그 반대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전통이라는 미명아래 별 의미도 없는 등불을 계속 켠다. 이를 보고 광자는 마을 사람들과 적이 되어 등불을 끄려 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잡혀 방에 영원히 갇혀 버리고 만다. 적들은 온갖 곳에 숨어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힘이 세다. 그는 상대를 뒤집을 방도를 더 연구하기 위해 잠시 피했어야 했다. 준비 없이 즉자적으로 행동에 나섰다가 결국 역공에 영원히 갇혀버리고 만 것이다. 필요하면 귀이포하라!
六三. 食舊德,貞厲,終吉,或從王事, 無成.
(육삼 식구덕 정여 종길 혹종왕사 무성)
육삼은 옛 덕을 먹어서 바르게 하면, 위태로우나 마침내 길하리니,
혹 왕의 일을 좇아서 이룸은 없도다.
조상님 왈 : 괜히 나서지말어~
육삼(六三)도 초육과 같은 음이다. 고로 이 효도 약하다. 결국 내괘는 모두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구(맨 위의 효)와 송사를 해야 하는 처지. 물론 상구도 양이므로 무척 강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육삼은 구덕(舊德)을 먹으라 하였다. 기약 없는 송사거들랑 때려치우고 예부터 내려온 조상 덕이나 먹고 살라는 말이다. 조상이 물려준 땅이나 일궈서 살지 절대 욕심을 내지 말라는 소리. 왕이 명하는 일이나 왕이 하는 일에 따라야 하지, 혹시나 제멋대로 뭔가를 이루려고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피하지는 않지만 상대에게는 순응하라는 말이다.
이쯤에 이르면 송괘가 향하는 방향은 명확해진다. 송괘는 멈추고 도망가고 순응하는 괘다. 그렇다고 비굴해지거나, 속임수를 쓰라는 말은 아니다. 그저 강한 상대와 대결하지 말고 그의 공격 본능을 잠재우라는 것. 그런 다음 새로운 길을 모색하라는 말이다. 세상에는 별일이 다 있다. 그래서 피해야 하는 일도 무척이나 많이 생긴다. 어쩌면 그 피함이 새로운 싸움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九四. 不克訟. 復自命,渝, 安貞,吉.
(구사 불극송 복즉명 유 안정 길)
구사는 송사를 이기지 못함이라. 돌아와 명에 나아가 변해서 안정하면 길하리라.
구사(九四)는 구오 바로 밑에 있어서 자꾸 구오와 한판 대결을 해보고도 싶다. 구사가 보기에 자신이 그만한 힘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은 망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사는 자기 직책, 즉 신하된 도리를 잃지 않으려고 해야 한다. 분수를 지켜 구오의 명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외관상 보기에 ‘수동성’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반격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런 전략이 상실된 수동성은 이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九五. 訟,元吉.
(구오 송 원길)
구오는 송사에 크게 길함이라.
구오 와쩌요~
드디어 막강한 구오(九五)가 나왔다. 구오는 막강하다. 강한 괘인 하늘괘(외괘)에서 중을 얻고 있고 양이 양자리에 바르게 있기 때문에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구오와 송사할 엄두를 못 낸다. 그래서 감불생의(敢不生意,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함)다. 이 점괘가 나오면 어느 누구와 싸워도 이긴다. 송괘에서 유일하게 송사를 낙관하는 괘다.
上九. 或錫之鞶帶, 終朝三褫之.
(상구 혹석지반대 종조삼치지)
상구는 혹 반대(상)를 주더라도, 아침이(조회가) 마치는 동안 세 번 빼앗으리라.
반대 다시 가져와!!!!!!
공이 있는 사람에게 천자가 내리는 큰 상을 반대(鞶帶)라고 한다. 반대란 큰 가죽띠를 말한다. 상구(上九)는 구오 인군에게 자기와 응하는 육삼을 모함해 자기가 큰 공을 세운 양 내세운다. 구오 천자가 이런 사정도 모르고 처음엔 상구의 말만 듣고 큰 상(반대)을 준다. 그러나 천자가 나중에 그 전모를 알고, 조회가 끝날 무렵까지 상으로 줬던 반대를 세 번이나 빼앗는다. 임금의 노여움을 곱절로 되돌려 받은 것이다. 임금과 가까이할 기회가 많은 신하들은 모두 이런 위험에 처해 있다. 임금을 현혹시킬 수는 있어서 처음엔 운 좋게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임금이 반대를 빼앗듯이 하루아침에 다 빼앗아 간다.
결국 이장곤은 배소를 탈출한 후, 신분을 숨긴 채 함흥 고리백정의 사위가 된다. 오랜 잠거(潛居, 남몰래 숨어 삶)에 들어간 것이다. 백정의 딸, 봉단이와 부부생활까지 한다. 그러던 중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상경하여 동부승지로 승진하게 된다. 또한 왕의 특지로 숙부인에 봉함을 받은 봉단을 정실로 맞아들인다. 세상일이란 이리 흘러간다. 끝까지 싸우는 것만이 좋은 일은 아니다. 싸움의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매번 살펴야 한다. 어쩌면 이렇게 살피고, 피하고, 도망가고, 순응하는 것까지도 싸움이다. 천수송은 바로 싸움의 보이지 않는 측면을 예리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천수송의 도주는 싸우지 않는 자의 싸움이다.
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출발! 인문의역학! ▽ > 주역서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64괘 담긴 문왕의 자전적 에세이!? - 풍천소축 (3) | 2014.02.14 |
---|---|
전쟁이 변(變)하면 평화가 온다 - 수지비 (0) | 2014.02.07 |
삶은 전쟁이다 - 지수사괘 (2) | 2014.01.17 |
단비를 품고 있는 구름! 때를 기다려라 - 수천수괘 (0) | 2013.12.06 |
태어나면 배워야한다! - 산수몽괘 (2) | 2013.11.22 |
꿈틀꿈틀 생명이 태동하는 시기! 수뢰둔 (4) | 2013.11.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