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닮은 암말을 아시나요?
여섯개의 음으로 구성된 곤괘
중천건 괘에서 하늘과 아버지를 모셨으니, 이번에는 땅과 어머니를 모셔 올 차례다. 중천건은 팔경괘(八經卦)의 하나인 ‘곤(坤; ☷)’이 상하로 중첩되었으므로 ‘중지곤’이다. ‘곤’이 괘명(卦名)이고, ‘중지’는 괘상을 설명한다. 땅이 아래위로 포개어 있는 모습(상)을 본떠서 중지곤 괘를 그었다.
주역에서 천과 지, 양과 음, 강(剛)과 유(柔), 부와 모처럼 대대(待對)하는 개념은 언제나 짝하며 상호전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건은 ‘天-陽-剛(강건함)-父-王’의 개념들과 하나의 계열을 이룬다. 곤은 이와 대대하는 ‘地-陰-柔(유순함)-母-臣’의 개념들과 하나의 계열을 이룬다. 어머니 괘인 지괘는 유순하고 어질며 포용하는 괘이다. 하늘이 만물을 내면 대지가 그것을 모두어 품어서 잘 자라게 한다. 곤괘에는 그러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으니, 해석할 때는 그 뜻을 기본으로 삼아 파생하고 응용하면 된다. .
암말, 땅을 닮다
주 문왕은 중지곤에 다음과 같은 괘사(卦辭)를 달았다.
坤은 元하고 亨하고 利하고 牝馬之貞(빈마지정)이니 君子有攸往(군자유유왕)이니라.
先하면 迷하고 後하면 得하리니 主利하니라.
西南은 得朋이요,東北은 喪朋(상붕)이니 安貞하여 吉하니라.
곤은 元하고 亨하고 利하고 암말의 貞함이니, 군자가 갈 바를 둠이라.
먼저 하면 아득하고, 뒤에 하면 얻으리니 이로움을 주장하느니라.
서남은 벗을 얻고, 동북은 벗을 잃으니, 안정하여 길하니라.
중지곤도 중천건과 마찬가지로 네 가지 덕을 갖추고 있다. 원(元)의 덕, 형(亨)의 덕, 이(利)의 덕까지는 같은데, 마지막은 ‘빈마지정’, 즉 ‘암말의 정함’으로 바뀌었다. 땅이 하늘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는 까닭이다. 어머니의 덕이 아무리 커도 아버지를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헌데 왜 ‘암말’일까? 주 문왕은 건괘의 용에 대비되면서 곤괘의 덕을 갖춘 동물로 암말이 합당하다고 보았던 모양이다.
건괘의 용이 하늘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면, 곤괘의 말은 땅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실제로 암말은 유순하며 평생 일부종사하는 지조가 있다고 한다. ‘정(貞)’이라는 글자에는 ‘곧다’, ‘바르다’의 뜻과 함께 ‘지구력이 있다’는 뜻도 있다. 암말은 지구력이 끝내주는 동물이다. 이처럼 큰 덕을 갖추었으니, 군자가 갈 바를 두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곤괘는 ‘유(柔)’하고 ‘순(順)’해야 한다. 결코 앞서서는 안 된다. 먼저 가면 반드시 길을 잃는다(迷). 늘 뒤에서 따라가야 얻는 것이 있어서 (땅, 어머니, 신하로서의) 이로움을 주관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구절은 후천팔괘의 방위에서 나온 말이다. 후천팔괘방위도에서 서남방에는 손괘(장녀), 리괘(중녀), 태괘(소녀)가 위치한다(이것은 <하도> 편 참조). 곤괘는 순음의 괘로 어머니, 여자이므로 딸들이 모여 있는 방향으로 가야 동류를 만나니 길하게 된다고 한 것이다.
땅, 드러나지 않는 지혜
자, 우리는 이제 막 64괘 극장에 입장했다. 64개의 배우들이 앞으로 어떤 집을 지어갈 것인지 포스팅을 읽으면서 독자 나름의 상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천지는 상하를 잇는 중심축이다. 축이 단단히 잘 서야 곁가지가 아름답게 뻗어나갈 수 있다. 사람에게 허리와 척추가 튼실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곤괘는 두툼하고 흔들림 없는 지반이 되어야 한다. 땅이 흔들리면 무너진다. 그러니 누구보다 제자리를 잘 지켜 오래도록 바르게 처신해야 한다. 이처럼 땅의 역할이 하늘에 못지않지만, 땅이 하늘이 되려 해서는 안 된다. 곤괘의 효사(爻辭) 전체에는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
初六 履霜 堅冰至 : 초육 이상 견빙지
초육은 서리를 밟으면 곧 단단한 얼음이 (어는 때가) 이른다는 것을 안다.
곤괘의 초효, 즉 초육은 음의 시작으로, 서리가 내리는 때이다. 절기로는 상강(霜降). 찬 서리만 보아도 단단한 얼음이 어는 때를 걱정하다니, 신중해도 너무~ 신중한 거 아니냐고? 아니다. 상강은 가을의 여섯 절기(입추-백로-처서-추분-한로-상강) 중 마지막 단계이니 보름 후면 입동이 된다. 그러니 첫 ‘음’이 들어서는 시점부터 때를 살펴 잘 대비해야 한다. 공자는 ‘어린 음일 때 그 도를 잘 길들여서 유순정고한 음의 도리에 잘 이르도록 하라(至堅冰也지견빙야)고 초육의 효사를 풀이했다.
六二 直方大 不習 无不利 : 육이 직방대 불습 무불리
육이, 곧고 모나고 큰지라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
주역에서는 ‘중(中, 내외괘의 가운데 위치함)’과 ‘정(正, 양효가 양자리에, 음효가 음자리에 처함)’이 매우 중요한데, ‘중정’을 아울러 갖춘 것이 가장 좋고, ‘정’보다는 ‘중’을 길하다고 본다. 여기서 육이는 ‘중정’을 이뤘다. 아주 길한 효인 것이다. 그러니 육이는 땅 중의 땅이므로, 곤괘의 덕(直方大)을 두루, 온전히 갖췄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땅은 스스로 할 바를 묵묵히 해낸다. 이 또한 곤의 덕이니, 배우지 않는데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고 한 것이다.(곤괘 육이를 부러워하는 독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六三 含章可貞 或從王事 无成有終 : 육삼 함장가정 혹종왕사 무성유종
육삼, 빛나는 것을 머금어 가히 바르게 하니, 혹 왕의 일을 좇아 하여도 이룸은 없으되 마침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육삼의 효사가 곤괘 전체의 함의를 대변할 만하지 않을까. 아름다운 덕을 갖추고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며, 왕의 일을 보필하되 결코 스스로는 이루려고 하지 않으면서 일을 마무리한다! 지금 우리 시대에 이렇게 처신할 능력자가 있겠는가. 아니, 스스로 가만히 있으려 해도 주변에서 가만있지 않는다. 어떤 명분을 붙여서라도 그를 쓰고자 할 것이다. 능력과 때는 시절인연이 맺어 주는 법이다. 덧붙여 한 가지만 더 고려하자면, 능력은 하나하나 다 쓰임이 다르다는 것이다. 아무리 출중한 능력이라도 재상감이 있고, 참모감이 다른 법이다. 육삼은 그 덕을 머금고 있어도 빛이 절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따라야 할 뿐, 나서서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
六四 括囊 无咎 无譽 : 육사 괄낭 무구 무예
육사, 주머니를 매면 허물이 없으며 명예로움도 없다.
‘괄낭’은 주머니의 입구를 묶는다는 뜻이다. 내용물이 새어나가지 않게 매어두는 것이다. 언행을 삼가야 한다는 함의를 단박에 감지했을 터. 매사에 신중하면 허물이 없음은 당연지사. 그러나 행하는 바가 없으니 명예 또한 없는 것도 당연지사. 육사는 외괘(상괘)의 시작이다. 선천에서 후천으로 나아가 처음을 시작하는 음효이니,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매우 조심하는 모양새이면서 치밀한 이면이 엿보이는 태도를 견지한 자리.
六五 黃裳 元吉 : 육오 황상 원길
육오, 누런 치마면 크게 길하리라.
육오는 ‘중’을 얻었다. 원래 괘에서 ‘오효’의 자리는 인군의 자리인데, 곤괘의 오효는 음효이므로 왕이 될 수 없다. 그런 데다 여섯 개의 효사는 괘사의 전체적인 의미에 종속된다고 했다. 따라서 육오는 인군을 보필하는 높은 신하 혹은 후비(后妃)로 해석함이 옳다. 누런 치마, 황상이 상징하는 바가 그것이다. 육오 역시 다른 효와 마찬가지로 머리가 되려 하지 말고 아랫자리에서 직분을 충실하게 다해야 함을 재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上六 龍戰于野 其血 玄黃 : 상육 용전우야 기혈 현황
상육, 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르구나.
갑자기 들판에 선혈이 낭자하다. 문득 건괘의 ‘상구’가 떠오를 것이다. “상구 항룡 유회(上九 亢龍 有誨) : 상구는 항룡이니 후회가 있으리라.” 괘의 제6효는 어떤 상황이나 기운이 극에 다다른 자리이다. 좋은 것 중 영원한 것이 없고, 나쁜 것도 영원히 지속되진 않는다. 그것이 주역의 이치요, 만물의 이치다. 곤괘의 육음(六陰)이 내내 조신하고 경계하다가 어느 때엔가 초발심을 잃었다. “이쯤 했으면 됐지.”라고 생각하는 상태가 상육의 마음가짐인 것이다. 음이 양을 상징하는 용으로 돌변했다. 자신을 용으로 착각하고 들판에서 한바탕 싸움을 벌이니 피를 보지 않고서야 이 상황은 종료될 수 없다. 그것은 부드럽고 순종하고 품는 곤괘의 도가 궁해진 것이다.
用六 利永貞 : 용육 리영정
용육, 오래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라.
건괘과 곤괘에는 ‘용구(用九)’, ‘용육(用六)’이라는 효사가 하나씩 더 있다. 초육부터 상육까지 모두 쓴다는 뜻이다. 곤괘의 음효들은 땅으로서, 어머니로서, 신하로서, 지어미로서 본분을 오래도록(永) 지켜야 한다. 그래야 끝이 아름답다. 육삼의 ‘유종(有終)’을 되새기길.
중지곤은 머리가 되려 하지 말고 뒤에서 따르고 유순히 보필하는 덕을 오래오래 견지하라고 권한다. 이 말에 크게 공감하는 바가 있다면, 지금 처한 상황이 중지곤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느 하나의 효에 대입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허나, 중지곤의 의미를 절절히 깨닫는 것은 인생의 후반전에나 이르러서이지 않을까. 혈기왕성한 이삼십대의 야생마들은 가없는 대지 위를 한없이 달리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고삐를 채우는 듯한 곤괘의 경구들은 그저 귓전을 스쳐 사라져간다.
곤괘도 종일건건!!
하지만 무상(無常)히 변전하는 세상의 이치를 벗어나는 예외는 하나도 없다. 인생의 어느 때엔가 이르러, 혹은 우연히 부딪힌 어느 상황에서건 중지곤처럼 처신해야 하는 경우가 반드시 생길 터이다. 맞닥뜨린 상황이 ‘어린 음’의 단계라면 그것을 길들이기가 식은 죽 먹기처럼 보이겠지만 결코 자만해서는 안 된다. 또, 두툼하게 흙이 쌓였다고 방심하다가는 ‘누런 치마’를 홀딱 뒤집어 머리 위에 쓰고는 용 행세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순양의 괘인 ‘중천건’도 종일건건(終日乾乾)해야만 그 덕을 보존하고 함양할 수 있었거늘 하물며 순음의 괘인 중지곤이야! 이처럼 건괘와 곤괘는 주역의 문을 여는 괘로서 일상을 건건하게 그리고 영정토록 살아내는 것이 도의 시작이요 전부임을 일깨워준다.
최경금(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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