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전쟁이 변(變)하면 평화가 온다 - 수지비

전쟁에서 평화로, 수지비(水地比)



자 이제 전쟁도 끝났으니 모두 함께 비(比) 해보자!


64괘의 배열 순서를 해설한 서괘전序卦傳은 “師는 무리이다. 무리는 반드시 가까이하는 바가 있는 고로 比로써 받는다.”(師者 衆也  衆必有所比 故 受之以比)고 하여, 지수사(地水師)괘 다음에 수지비괘가 오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현대어에서 ‘비(比)’는 견주다, 비교하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수지비괘에서 ‘비’의 의미는 ‘가까이하다, 좋아하다, 돕다’로 푸는 것이 적절하다. 지수사와 수지비는 짝괘이다. 지수사는 전쟁의 괘라고 했다. 사괘의 마지막 효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 논공행상을 공명정대하게 시행하는 장면이었다. 그런 연후의 국면이 수지비괘이니, 전후의 혼란한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왕으로부터 백성까지 온 힘을 결집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比’를 가까이 지내다 혹은 돕는다는 뜻으로 푸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이다.



<괘사>


比 吉 原筮 元永貞 无咎(비 길 원서 원영정 무구)
不寧 方來 後 夫 凶(불녕 방래 후 부 흉)
비는 길하다. 처음으로 점을 해보되 元永貞이면 허물이 없으리라.
편하지 못해서 바야흐로 오는 것이니 뒤에 하면 대장부라도 흉하다.


흉보이지 않으려면 출동하라!

전쟁 같은 거사를 마치고 나면 혼란을 수습하는 일이 목전의 과제가 된다. 이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너나없이 힘을 모으는 것 말고는 다른 상책이 없다. 전쟁에서 승전고를 울리면서 돌아온 무리가 서로 친애하면서 돕고 있는 비괘는 그래서 길하다고 했다. 점(筮)을 치는 사람은 ‘구오(九五)’의 인군이다. 점괘 역시 덕이 크고 오래도록 바르게 한다고 하니 허물이 있을 수 없다. 전후에 백성들은 안녕치 못하다. 그리하여 여섯 음들이 양인 구오에게로 오는 것이다. 실력 있는 인군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이러한 일에 즉시 임하지 않고 상육(上六)처럼 뒷전에만 머물러 있다면 여자라도 흉한데 대장부가 그와 같이 행동한다면 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후부흉(後夫凶)’이다.

彖曰 比 吉也 比 輔也 下 順從也(단왈 비 길야 비 보야 하 순종야)
原筮元永貞无咎 以剛中也 不寧方來 上下應也 後夫凶 其道窮也(원서원영정무구 이강중야 불녕방래 상하응야 후부흉 기도궁야)
단전에 이르길, 비는 길한 것이며 돕는 것이니, 아래에서 순종한다.
‘원서원영정무구’는 강한 양으로서 中을 얻었기 때문이요, ‘불녕방래’는 상효와 하효가 서로 응함이요, ‘후부흉’은 그 도가 궁할대로 궁해졌음이다.

단전은 괘체(卦體), 괘덕(卦德), 괘상(卦象), 괘변(卦變)을 두루 살펴 괘사의 내용을 보충한다. 괘체로 보면 왕의 자리인 오효가 유일무이한 양효로서 양강하니, 올바른 자리와 실력을 겸비했다. 괘덕으로 보면 원(元)하고, 영(永)하고, 정(貞)하다. 이는 물론 구오(九五)에서 나오는 덕이다. 구오의 덕은 중(中)과 정(正)을 얻은 데서 비롯한다. ‘불녕방래 상하응야’는 괘상과 괘변을 논한 구절이다. 먼저 ‘불녕방래’가 괘변에 해당한다. ‘불녕(不寧)’은 수뢰둔(水雷屯) 초구의 효사에서 온 글자인데, 수뢰둔(屯)의 초구가 음효로 변하면 수지비(比)가 된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수뢰둔 잊지 않으셨죠?

수뢰둔은 64괘의 세 번째 괘로, 천지와 부모에 해당하는 건괘와 곤괘로부터 만물이 시생하려는 단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수뢰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꿈틀꿈틀 생명이 태동하는 시기 - 수뢰둔'을 참고하세요.) 어려운 고비를 함께 견디고 이겨내야 수지비로의 국면전환을 마련할 수 있다. 또한 ‘불녕방래’는 편치 않기 때문에 뭇 육음들이 구오에게 오는 것으로 해석하여도 무방하다. ‘상하응야’는 첫째, 구오와 육이의 상응관계로 볼 수 있으며, 둘째, 위의 구오 인군과 초육부터 육사까지의 백성이 일심동체가 되어 나라 재건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괘상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대상전에서 보도록 하자.

象曰 地上有水 比 先王 以 建萬國 親諸侯(상왈 지상유수 비 선왕 이 건만국 친제후)
상전에 이르길, 땅 위에 물이 있는 것이 比이다. 선왕은 이로써 만국을 세우고 제후를 가까이한다.

수지비는 땅 위에 물이 있는 상이다. 오행의 상극관계에서 토(土)는 수(水)를 극(剋)하지만, 본디 토는 모든 오행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며, 토는 물기를 머금고 있어야만 만물을 자라게 하는 곤괘의 덕을 발휘할 수 있다. 고로, 수지비의 상괘인 감괘의 물은 하괘인 곤괘의 토양을 적시어 임금이 ‘건만국’하고 ‘친제후’하도록 그 토대를 적시는 자양수 역할을 한다. 예부터 인군의 선정을 일컬어 ‘우로지택(雨露之澤)’이라고 했는데, 성어의 연원이 주역에까지 미치고 있다.



<효사>


初六 有孚比之 无咎 有孚 盈缶 終 來有它吉(초육 유부비지 무구 유부 영부 종 내유타길)
초육은 믿음을 가지고 도와야(어울려야) 허물이 없다. 믿음을 둠이 질그릇에 가득 찰 정도면 끝내는 다른 길함이 있어 (외부로부터) 오리라.
象曰 比之初六 有它吉也(상왈 비지초육 유타길야)
상전에 이르길, 비괘의 초육은 다른 데 길함이 있는 것이다.

초육은 전쟁 직후이며 유약한 음이고 백성의 자리이다. 비괘에서 백성은 믿음을 갖고 인군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 믿음이 질그릇(缶)을 가득 채울 만큼이 되면 다른 데 있는 길함이 절로 찾아들지 않겠는가. 여기서 ‘타길(它吉)’은 구오의 우로지택을 의미한다.

六二 比之自內 貞 吉(육이 비지자내 정 길)
육이는 돕는 데 안으로부터 하니 貞하여 길하도다.
象曰 比之自內 不自失也(상왈 비지자내 부자실야)
상전에 이르길, ‘비지자내’는 스스로를 잃지 않는 것이다.


육이는 중(中)과 정(正)을 얻은 선비이다. 모름지기 선비는 스스로 공을 내세워 벼슬을 도모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 부름을 받아 나아가야 한다. 중정한 선비인 육이는 그러한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인군을 돕고 있으니 스스로를 잃지 않은 것이라고 소상전은 덧붙이고 있다.


사람도 아닌 자에게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六三 比之匪人(육삼 비지비인)
육삼은 나쁜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다.
象曰 比之匪人 不亦傷乎(상왈 비지비인 불역상호)
상전에 이르길, ‘비지비인’ 하니 또한 상하지 않겠는가.





육삼의 효사가 흉하다. 내괘가 끝나고 외괘로 넘어가는 자리이므로 자칫 잘못하면 위태로운 자리가 바로 삼효다. 그런데다 비괘의 육삼은 중(中), 정(正), 승(承), 승(乘), 응(應) 가운데 어느 것도 얻지 못했다. 그래서 백성 중에 숨어 있는 나쁜 사람(匪人)이라고 했다. 주자는 ‘비지비인(比之匪人)’을 ‘돕는데 사람이 아니다.’라고 해석하여 ‘匪’를 부정의 ‘非’로 보았다. 그러나저러나 육삼이 돕기는커녕 도둑놈 심보라고 보기는 매한가지. 아니 도리어 숫제 사람도 아니라고 하니 주자가 더욱 나쁘게 해석한 셈이다.

六四 外比之 貞 吉(육사 외비지 정 길)
육사는 밖에서 도우니 바르게 해서 길하다.
象曰 外比於賢 以從上也(상왈 외비어현 이종상야)

육이의 선비는 안으로부터 돕는다면, 외괘의 시작인 육사의 선비는 벼슬에 나아가 인군을 돕는다. 그것이 ‘외비지’다. 나아가야 하는 때에 나아가 어려운 시절의 임금을 돕게 된 것이다.

九五 顯比 王用三驅 失前禽 邑人不誡 吉(구오 현비 왕용삼구 실전금 읍인불계 길)
구오는 현명하게 도움이니(가까이함을 밝게 드러내는 것이니), 왕이 삼구법을 씀에 앞의 새를 놓치고, 읍인이 경계하지 않으면 길하다.
象曰 顯比之吉 位正中也 舍逆取順 失前禽也 邑人不誡 上使中也(상왈 현비지길 위정중야 사역취순 실전금야 읍인불계 상사중야)
상전에 이르길, ‘현비’의 길함은 자리가 中正하기 때문이다. 거스르는 것은 놓아주고 순하여 오는 것을 취하는 것이 ‘실전금’이다. ‘읍인불계’는 위(군주)에서 부림이 中하기 때문이다(위로 하여금 中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냥에도 방법이 있다. 사냥감을 무턱되고 쫓아가는 게 아니다.


왕이 백성을 돕고 가까이함에 있어서는 하늘의 태양처럼 다 드러내놓아야 하고 불편부당함이 없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현비(顯比)’다. ‘현(顯)’은 밝게 드러내다 혹은 현명하다의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 ‘삼구(三驅)’는 옛날 사냥터에서 왕이 짐승을 추격할 때 삼면에서 압박하여 쫓되 정면의 한 방향은 터놓아 살아서 달아날 출로를 열어두는 것을 말한다.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음을 ‘삼구법’에 빗대었다. ‘실전금’은 꽁지 빠지게 달아나는 날짐승의 뒷모습이다. 출로를 향해 목숨을 구한 사냥감은 잡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백성(읍인)이 왕을 경계하지 않을 터이니 길하다. 소상전의 주석 또한 효사의 뜻을 거듭했을 뿐이다. 구오가 길한 것은 자리의 중정함에서 기인한다. ‘사역취순’에서 ‘逆’은 사냥터에서 도망가는 짐승의 방향을 가리킨다. ‘거(去 : 가다)’ 자로 대체하면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上六 比之无首 凶(상육 비지무수 흉)
상육은 돕는데(가까이하는) 처음이 없으니 흉하다.
象曰 比之无首 无所終也(상왈 비지무수 무소종야)
상전에 이르길, 돕는 처음이 없으니 마치는 바도 없다.

상육은 어려운 때에 뒷전에서 하릴없이 눈알만 굴리면서 거저먹으려는 자다. 어딜 가나 이런 도둑놈 심보가 꼭 하나씩 있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도 나온다. 어린 꼬제뜨를 맡아 키우고(부려먹고) 있는 여인숙 주인 떼나르디에가 그런 작자였다. 떼나르디에는 나폴레옹이 전쟁에 나갔을 때 맨 꽁무니에서 수레를 밀고 가면서 종군했지만 싸운 적은 없다. 전투가 끝나고 피로 뒤덮인 전장의 어둠을 틈타 전사자의 주머니를 터는 것이 그가 한 일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도둑질이라고 안면 몰수할 텐가.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면 세상이 다 아는 것. 비괘의 육삼이나 상육처럼 치졸하게 처신하지 말자.


갑오년, 험한 물의 고비가 있더라도 말처럼 활기차게 넘겨보아요~


건괘와 곤괘 다음에는 둔(屯)ㆍ몽(蒙)ㆍ수(需)ㆍ송(訟)ㆍ사(師)ㆍ비괘가 이어진다. 둔괘~비괘에는 모두 감괘가 들어 있다. 우연한 공통분모일까. 감괘의 물은 지혜를 뜻하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어려움, 고난, 위험을 의미한다.(본래 물을 건너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배도 다리도 귀했을 때이니 대개는 맨몸으로 건너야 했다. 고대의 텍스트는 이러한 시대상을 알아두면 매우 실감 나게 읽을 수 있게 된다.) 천지가 초매에 만물을 낳는 데 둔괘의 물이 산파 노릇을 한다. 어린 몽을 가르치는 데는 산수몽의 물, 어린 것을 먹이는 데는 수천수의 물, 송사를 일으키는 음식을 짓는 것도 물, 전쟁괘의 험함은 곧 물, 이렇게 고비고비를 넘기고 나자 물은 수지비에서 윤택한 쓰임을 만들어낸다. 고난은 어떤 국면에서건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게 인생살이다. 마치 저 여섯 괘가 품고 있는 감괘처럼 말이다. 그때 우리는 둔괘에서 비괘로 이어지는 감괘의 역경 혹은 지혜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경금(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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