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상상력에 가려진 세계

#기만·상상력-눈-파스칼



상상력에 가려진 세계



나는 평생 공부를 잘 해 본적이 없다. 독서실 옥상에서 친구들과 성적을 탄식하던 장면 말고는 학창시절 기억이 별로 없을 정도다. 참 별 볼일 없었다. 하지만 개중에 탄식은 같지만 성적은 늘 월등히 앞선 이들도 있었다. 내가 중위권의 탄식이라면 그들을 몇 개 차이로 1, 2등을 놓쳐 내뱉은 우월자의 탄식이었다.


꼭 있다, 이런 친구들. 공부 하나도 안 했다고 하고 만점 받는 건 대체 뭐임? ㅠㅠ


그런데 그게 좀 이상했다. 분명히 시험보기 전에는 아파서 하나도 공부하지 못했다던 친구였다. 그래서 이번 시험은 망칠 거라 자포자기했었다. 나는 정말 그 친구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시험 결과는 완전 달랐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성적이었다. 한 두 문제 말고는 퍼펙트하게 시험을 봤다. 천재였다. 그후로도 그 친구는 매번 공부량에 비해 성적이 좋았다. 아, 정말 훌륭한 친구구나,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게 놀라워, 뭐 이런 경탄이 절로 나왔다. 그럴수록 내가 더 비천하게 보였다. 보이지 않는 내상(內傷)이다. 이 상처로 고등학교 내내 그 친구의 말을 고분고분 들었던 것 같다. 그에겐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 친구가 하는 모든 것이 정당하고, 멋지게 보였다. 내 눈에는 그 친구의 허물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그 친구처럼 되고 싶었다. 나에게 친구는 강력한 힘으로 존재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세상의 가장 불합리한 것이 인간의 착란으로 인해 가장 합리적인 것이 된다.


─파스칼, 『팡세』, 단장 208-(320)


파스칼(1623-1662)의 말이다. 파스칼은 사람들의 위계가 어떻게 생성되고, 굳어지는지 예리하게 설명한다. 일단 서로 싸운다. 그 싸움은 지배적인 자가 생길 때까지 계속된다. 여기까지는 힘이 센 자가 이긴다. 그런데 어느 정도 지나 지배자들이 싸움을 원치 않게 되면 이 지점부터 '상상력'이 작동한다(단장 207). 달리 말하면 지배자들이 현재의 승리를 싸움 없이 유지하고 싶어 한다. 여기서 상상력은 이성과 달리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훌륭하고, 나쁘고, 멋지고 흉하고, 정의롭고 부당한 것들이 상상력에 의해서 규정된다. 지배자들은 상상력에 의해서 자신의 힘을 유지한다. 자신들을 위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원래부터 왕이었던 것처럼 피지배자들이 자신을 경탄하게 만든다. 사물에 대한 매혹, 찬양, 두려움은 전적으로 상상력의 역할에 의해 생성된다. 이런 것을 동원해서 상상력은 이성을 믿게 하거나 의심하게도 하고, 또 부정하게도 한다. 즉 상상력은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를 만든다(단장 81).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다 '습관'이 개입한다. 통치를 통해 왕을 두려운 사람으로 믿도록 길들여진다. 신앙을 통해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도록 길들여진다. 습관적으로 지배자를 찬양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위계는 강고해진다. 이성은 이렇게 상상력에 의해 길들여진다. 이제 피지배자는 이 위계에 의해서 모든 사물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 위계를 뒤집으려면 오래도록 단련되어 온 이 습관을 뒤집어야 한다. 그것은 본성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습관은 곧 우리의 본성이다(단장 194)." 경탄이 습관이 된다. 위계가 본성이 된다. 이제 눈은 이 본성에 따라 세상을 본다. 착란이 만든 합리다.

공부 잘하는 그 친구는 아파서 공부 못했다는 말로 나의 상상력을 장악했다. 나는 사실이 그럴리 만무한 것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한마디로 나는 그의 신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게 하였다. 내 눈은 내것이 아니었다. 그와의 삶은 볼수록 기만이 된다.


나의 눈은 무언가에 장악된 상태인가?!


눈은 장부의 정기가 모인 곳이다. 정기들이 눈의 맥락과 합쳐지며 목계(目係)를 만든다. 이 목계가 위로 올라가 뇌에 닿는다. 또 눈은 영기와 위기, 그리고 혼백이 작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장의 변화된 신기가 눈의 시각을 이룬다. 물론 눈은 간과 관련된다. 그러나 광채를 환하게 비춰볼 수 있는 것은 실제로 신정(腎精)과 심신(心神)에 의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눈은 신체 곳곳에 퍼져 있는 정(精)이 모여서 작동하고, 마음에 있는 신(神)에 의해서 명확해진다. 그런데 심(心)은 군화(君火)로서 사람의 신(神)을 주관한다. 고요하고 안정되어야 상화(相火)가 잘 작용할 수 있다. 이 상화는 포락(包絡, 心을 감싼 것)이다. 포락은 모든 맥이 모두 눈을 영양하도록 한다(『동의보감』, 외형편 眼). 그래야 눈이 제대로 본다. 제대로 보려면 정을 보하고 신을 안정시켜야 한다. 상상력이 휘청거린 것은 바로 심과 정이 무너진 탓이다. 그 친구는 내가 중위권 성적에 허덕거릴 때, 나의 상상력을 흔들었다. 상상력이 기만이라는 사기(邪氣)에 물든다.

물론 친구는 의도하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위계는 그 친구 허영심의 발로라고도 할 수 있다. 자기가 그만큼 똑똑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그런 기만을 행한 것이다.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며 자기를 찬양해 줄 사람을 갖고 싶어 한다(단장 94-150)." 그러기 위해 자신의 결함을 타인들에게나 자신에게나 숨기기에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즉 내 눈과 귀를 조작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기만이 실제적인 이익을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런 위계 위에서 자신의 신체를 확장했다. 타인들이 자신을 경탄하게 만들어 그 주변을 자신의 신체로 만들었다.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배당함으로써 그와 친하게 지내며 그에게 인정받았다. 그의 신체가 되어 줌으로써 인정받았다. 이건 공공연한 공범 관계다.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 이런 공범 관계에 의해서 친구들과 맞잡고 허영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력으로 조작된 눈을 가지고서. 하여, 모든 것은 흔들린다는 생각을 가진 흔들리지 않는 눈이 필요하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자신의 눈을 의심하자. 놓친 순간이 있었는지. 눈에 보이는 세계는 광대한 자연에 비하면 한낱 점일 뿐이다.



-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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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혜안 2013.11.06 14:15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내일이 수능날, 요맘때면 직장에선 초콜릿과 찰떡, 문상(문화상품권)이 오고 갑니다. 속으로는 이놈의 빌어먹을 수능, 아이들 불행의 주범...운운하며 한껏 욕을 해댑니다. 하지만 내 손은 슬그머니 찰떡과 쵸콜릿을 내밀고 있군요. 시험 잘 보라는 입에 발린 말과 함께요. '관계'때문에, 불편해지는게 싫어서, 동료로 인정받기 위해...등의 이유를 대지만, 결국 내 몸이 마음을 말한다고 보면 수능이란 제도를 욕한 내 마음엔 얼마만큼의 진실과 허위가 들어 있었을까...유난히 내 몸과 마음의 괴리에 편치 않았던 오늘 약샘의 글을 만났네요. 핀트가 어긋난건진 모르지만 이런 것도 거대한 기만과 허위의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공공연한 공범관계'의 하나로 해석해야 하나요--;;

    • 북드라망 2013.11.06 14:44 신고 수정/삭제

      혜안님 안녕하세요.

      수능을 본지 너무 오래되어서...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12년의 공부가 단 하루에 결정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시험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 많이 씁쓸했습니다.
      (물론 점수가 안 좋아서이기도 했고요 ㅋㅋ;;)

      음...답변을 다는 것이 참 어렵긴 합니다만,
      저는 "거대한 기만과 허위의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공공연한 공범관계"에서
      불편한 마음으로 괴로워하시기 보다는 ㅠㅠ
      마음이 편안해지는 방법을 찾으시면 어떨까~ 조심스레 권해봅니다.

    • 혜안 2013.11.07 08:27 신고 수정/삭제

      뭐~괴로워한 것까지는 아니구요.ㅋ 마음도 관계도 살리는 표현방법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네요. 예전엔 별 생각없이 해왔던 행동들을 들여다보게 되는 요즘, 늘 어줍잖게 기댈 여지를 주지않는 서늘한 글~ 감사합니다~!^^

    • 북드라망 2013.11.07 12:35 신고 수정/삭제

      아하하; 그렇군요. 제가 오지랖을...쿨럭;;
      약선생님의 철학관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 약선생 2013.11.09 22:50 신고 수정/삭제

      흠...그것은 허위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니체는 이 세계가 거짓말로 이루어졌다고 말하기도 했어요(어느 책인지 못찾겠네요ㅠㅠ). 정말 역설이지요. 삶 자체가 거짓말이라니. 그런데 바로 여기에 역설적인 삶의 묘미가 숨겨있습니다. 그 말은 이 세계란 우리 마음대로 구성한 곳이란 말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즉 삶은 일종의 게임 혹은 연극같은 것입니다(이런 의미에서 허위 없는 삶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하기 나름이죠. 만일 기존 룰 혹은 각본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뭔가 허위로 포착된다면, 그 순간은 기존의 통념적 룰과 각본이 이상하게 보이는 순간입니다. 어쩌면 혜안님은 지금 초콜릿을 통해 기존의 통념들(수능시험을 잘보기를 바라면서 건네는 초콜릿의 비현실성/허위성)에 대해 사유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기존 게임(연극)이 이상해진거죠.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허위들이 ‘허위가 아닌 허위’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룰을 생각하는 재료가 되기도 하고, 그저 허위의 덧없는 행위로 끝나 버릴 수도 있습니다. 오로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말입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이 읽고, 많이 이야기 걸어 주세요 ~

  • 언제나지혜 2013.11.07 03:03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많은 생각이 올라오네요..부끄럽습니다 고마워요 글.

    • 북드라망 2013.11.07 12:36 신고 수정/삭제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돌부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잘 넘어가면 좋지만, 안 되면 발로 뻥~ 차버려도 좋을 것 같아요. 하하;;
      <약선생의 철학관> 코너에서 자주 뵈어요~
      말씀 감사합니다. ^^

    • 약선생 2013.11.09 19:11 신고 수정/삭제

      북드라망님 말씀처럼 부끄럼은 발로 뻥 차세요~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