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선생의 철학관 시즌 2를 시작하며
나는 오랜 기간 건강하지 않았다. 직장은 온통 술꾼들로 우글거렸다. 식사는 끼니마다 푸짐해야 했다. 고기 없이 밥을 먹으면 좀 초라해 보였다. 식사 후엔 담배와 농담, 그리고 넋 나간 명상(?)으로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저녁엔 어김없이 술잔치로 직행. 룸살롱의 세계는 정말이지 나에겐 아주 익숙한 세상이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 화장실 구석 자리는 내 차지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날 나에게 경천동지할 일이 생겼다. 술과 담배를 딱 끊었다. 육식도 끊었다. 달리기도 시작했다. 해마다 단식도 했다. 결연히(불끈!) 생활을 바꿨다. 당연히 건강해져야 했다. 물론 답답한 가슴, 지끈지끈한 머리는 많이 나아졌다. 숙취로 고생하던 아침이 상쾌해 졌다. 그러나 여전히 몸이 아플 땐 아팠고, 불안감이나 스트레스가 사라지진 않았다. 술 담배와 관계없이 회사일은 언제나 폭풍같이 밀려들고, 인간관계는 항상 마구 말썽이다. 가족이라고 마냥 평화롭지는 않다. 술, 담배, 고기, (단식기간엔) 곡기까지 끊어도 여전히 건강하지 않은 것이다. 건강은 매번 빠져 나간다. 더군다나 다이어트 욕망, 성적 매력에 대한 욕망 등등은 민망하게도 여전했다. 아파서 걱정하기보다, 건강이 날아갈까 걱정이다. 어찌 보면 전보다 더 기만적으로 되었다.
우리도 한번쯤 겪지 않았던가, 익숙하고도 절망적인 그 세계를.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ㅡ건강해지기 위해서 습관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건강 자체가 무의미해지도록 습관을 넘어서야 한다. 자기배려는 '건강'이라는 환상으로부터도 벗어나는 것이다! 나는 건강에 예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벗어나야 했다.
결국 건강이 문제가 아니다. ‘나의 신체’에 대해서 진실하게 사고해야 하는 것이다. 건강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의 신체’가 대체 무엇인지부터 사고해야 하고, 그 신체가 체험하는 현실, 감각은 대체 무엇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사실 내 손이 내 몸을 다 만지지도 못하고, 내 눈이 내 몸을 전부 보지도 못하지 않는가? 내가 머리로 알고 있는 그 신체가 과연 내 신체일까? 또한 그 감각으로부터 어떤 환상이, 또 어떤 행동이 나오는지도 추적해봐야 한다. 그래야 건강이 어디에 위치한 놈인지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무지하게 재미날 것 같다. 그래서 이것을 써보자고 생각했다.
<약선생의 철학관> 시즌2는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아마 중년 남성이 갖고 있는 온갖 치부들이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은밀한 쾌락도 보여주고 싶다. 이 세상에 쾌락에 해당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자뻑을 남발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잘난 척 많이 하는 자인지도 만방에 고하겠다. 니체? 흥이다. 내가 얼마나 변신을 잘하는지도 보여주고 싶다. 변신의 천재 약선생. 그러나 고백체는 싫다. 고백체를 넘어서서 나의 신체를 진실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경험을 경험대로 정리한다고 진실한 것이 아니다. 테리 이글턴은 통념을 깨기 위해서 이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론을 통해 통념적으로 각색된 경험은 깨져야 된다. 통념적인 경험을 깨면서 나의 신체를 진실하게 이야기하는 법. 나에겐 그것이 문제다.
중년의 몸, 그 신체의 능력이 기대된다! +_+
그래서 택한 방법이 <나의 신체+동의보감+철학 이야기>이다. 이름 하여 ‘나동철’씨 이야기. 중년의 신체, 나의 신체를 동의보감과 철학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아마 전문철학자가 보면 말도 안되는 억지도 나올 것이다. 그러면 어쩌랴, C급 철학자의 특권인걸. 내가 아는 한에서 내 마음대로 얘기할 것이다. 이 시즌이 끝나면 C급 철학자로서의 입지가 공고해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내가 많이 유쾌해질 것이다. 말하자면 완전 내 마음대로 쓴 <몸 철학 에세이>다.
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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