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와 금원사대가, 생명의 정치
신체는 국가다, 인신유일국(人身猶一國)
땅의 시대, 이제 직접적으로 정치가 신체의 이해방식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의학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파울 운슐트가 지적하듯이 의학이론을 창조하는 힘은 단순히 몸의 존재방식에서 곧바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외부의 모형을 통해 활성화된 이론을 가지고 몸이 제공하는 정보를 해석한다고 보는 편이 외려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럼 고대 중국에서 몸에 대한 국가의 비유가 자주 등장하는 것에 주목해보자. 상식적으로 보자면 이는 신체의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국가의 기관들의 특성에 비유한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니덤(Joseph Needham)은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다. 이는 국가를 신체에 비유했다기보다, 신체를 국가에 비유했다는 것!
그런 관점에서 인용문들을 살펴보자. 『동의보감』 「신형편」에서 인용하고 있는 『포박자』에서는 “한 사람의 몸은 한 나라의 모습과 같다. 가슴과 배는 궁궐, 사지는 교외에 경계가 있는 것과 같다. 관절은 백관의 할 일이 나누어진 것과 같다. 신(神)은 임금, 혈은 신하, 기는 백성이니 몸을 다스릴 줄 알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 백성을 아끼면 나라가 편안해지듯, 기를 아끼면 몸이 온전하게 된다.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듯 기가 고갈되면 사람은 죽는다.” 이와 유사하게 동중서는 『춘추번로』에서 “한 나라의 임금은 우리 몸의 심장과 같다. 궁궐 깊숙이 은거하는 것은 심장이 가슴속에 감춰져 지극히 존귀한 것과 같다. … 안에 사보(四輔)가 있는 것은 심장이 폐, 간, 비장, 신장을 거느리는 것과 같다. 밖에 백관이 있는 것은 심장이 몸과 감각 기관들(孔竅)을 가진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
군주는 천하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인신유일국(人身猶一國), 즉 신체는 하나의 국가로 이야기되고 있다. 임금은 우리 몸의 심장이고, 이 심장을 돕는 기관들인 간신비폐는 백관이라거나, 신(神)을 임금으로, 혈(血)은 신하로, 기(氣)는 백성으로, 가슴과 배는 궁궐로, 관절은 백관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이를 니덤의 의견대로 보자면 신체의 각 장부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국가를 이해했다기보다, 국가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신체를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다. 즉 국가주의 시대, 국가의 등장과 함께 주변에서 볼 수 있던 국가라는 시스템 속에서 신체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황제내경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신체의 장부들과 국가의 기관들을 연결지어 사유하고 있다.
황제께서 물어 말하길, 원컨대 열두 장기의 돕고 부리는 것과 귀하고 천한 관계가 어떠한지 듣고 싶습니다. 기백이 대답해 말하기를, 자상하십니다. 질문하심이. 청컨대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심장은 군주의 기관이니 신묘한 지혜(神明)가 거기로부터 나옵니다. 폐는 재상의 기관이니 다스려 절제함이 거기서 나옵니다. 간은 장군의 기관이니 도모하여 생각함이 거기서 나옵니다. 담은 신하들의 과실을 감찰하는 기관이니 결단이 거기로부터 나옵니다. 단중은 신하를 부리는 기관이니 기쁨과 즐거움이 거기서 나옵니다. 비위는 저장하는 기관이니 다섯 가지 맛이 거기서 나옵니다. 대장은 찌꺼기를 전달하는 기관이니 변화가 거기서 나옵니다. 소장은 받아 담는 기관이니 음식물을 변화시킨 것이 거기서 나옵니다. 신장은 강한 것을 만드는 기관이니 기교가 거기서 나옵니다. 삼초는 물길을 터주는 관이니 물길이 거기서 나옵니다. 방광은 물을 저장하는 관이니 진액이 저장되었다가 기가 변하면 배출시킬 수 있습니다. 무릇 이 열두 기관이라는 것은 서로 잃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군주가 밝으면 백성이 편안하듯이 이처럼 양생한다면 장수해서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으며, 세상을 다스린다면 크게 번성할 것입니다. 군주가 밝지 못하면 열두 기관이 위태로워지고, 열두 장기가 서로 연계되어 있는 길이 막혀서 통하지 못해서 몸이 크게 상합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양생한다면 재앙이 있을 것이고, 이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면 그 조종이 크게 위태로울 것이니, 경계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황제내경』, 「영란비전론」
여기서도 양생의 원칙은 국가를 잘 다스리는 원칙을 따르는 것으로 되어있다. 군주의 신명한 지혜가 심장에, 재상의 절제가 폐에, 장군의 도모와 생각이 간에 부속되는 식이다. 따라서 국가를 잘 다스리는 방식을 가지고 신체를 다스리는 것이 양생이었다. 그렇다면 이는 지금의 신체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이해하는 사유와는 전혀 정반대의 발상인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는 어떤 위계적 질서나 수직적 질서 속에서의 국가-신체라기보다 건강과 다스림이라는 차원에서의 국가-신체라 할 수 있다. 이를 운슐트의 말을 다시 빌려보자면,
중국의학의 창조는 다양한 중심지 간의 교류를 새로운 국가유기체인 통일왕조의 근간으로 인식한 조건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유교사회에서는 뚜렷하게 규정한 사회적 양극, 즉 군신, 부자, 형제, 부부, 붕우의 관계를 조절하는 오륜질서가 매우 중요했다. 이러한 개념들은 2천 년 동안 각자의 역할을 보유한 다양한 역할집단 사이의 관계를 규제하면서 유교사회의 기초가 되어왔다. 2천 년 동안, 인간 유기체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기능 중심들 간의 관계라는 개념은 중국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잡아왔다. 질서 잡힌 관계나 관련된 기능 중심지 간의 교류와 같이 사회적 안녕을 보장하는 관계들에 비하면 개별 역할집단의 형태적 구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고대 중국의학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관계적 교의를 체계적 상응론이라고 부른다.
─파울 운슐트, 『의학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사회적 관계라는 틀 속에서 신체 내의 기능들 간의 관계라는 개념이 고대 중국의학의 특징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이처럼 상응론은 오행이라는 문법 속에서 각 개별 구조에 천착하기 보다 그 기능들 간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신체에 대한 이해가 중심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사라진 국가-신체의 비유
그러나 이러한 국가-신체의 비유는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어떤 특정한 시기에만 나타났다가 사라지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서 확실하게 답하기는 쉽지 않지만, 신체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정밀해지면서 국가를 가지고 신체를 설명하는 방식 자체가 한계를 가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유학의 발전과 함께 제도로서의 정치보다 개개인의 수양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늘의 시대가 노자의 상선약수라는 말에서 보이는 것처럼 물의 시대, 즉 물(水)처럼 자연스럽게 하늘의 뜻에 따르는 무위의 시대였다면, 이제 땅의 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현실에 개입할 것인가, 인(仁, 오행으로는 木)과 예(禮, 오행으로는 火)를 통해 어떻게 질서를 구축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를 건강 차원으로 보자면 수숭화강만 잘 이루어지면 되는 시기를 넘어 이제 목생화(木生火)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정치는 이제 인과 예의 문제로 접근된다. 맹자가 왕도와 패도를 구분하며 어째서 인의가 아니라 이익으로서 정치를 하려하느냐고 주장한 하필왈리(何必曰利)는 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이제 개인의 수신과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하나의 원리 속에서 도출된다. 즉 수기치인(修己治人)이 윤리와 정치를 일관하는 명제가 된다. 여기서 기는 자신, 인은 타인을 가리킨다. 자신을 다스리는 것과 남을 다스리는 것이라 할 때 윤리는 정치의 전제조건이자 지배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시스템적인 접근보다 군주의 수양과 덕에 의지하는 정치를 이상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 속에서 직접적인 국가-신체 논의보다는 윤리적 차원의 접근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단계를 밟아가는 하나의 원리가 이 안에 담겨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과 예의 강조는 한편으로는 유학의 교조화된 흐름을, 다른 한편으로는 우주론과의 분리를 초래했다. 많은 이들이 불교와 도교에 빠져든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유학은 자연과 우주, 그리고 신체에 대한 답을 더 이상 제시해줄 수 없었다. 이제 유학자들은 윤리적 차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자연과 세계에 대한 대답을 제시해야 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주희(1130~1200)였다. 잘 알다시피 주희는 장재, 정호, 정이, 주돈이 등의 흐름을 이어받아 성리학이라는 우주론을 포함하는 새로운 유학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당시까지 분리되어 있던 세계를 다시 통합하는 논의였으며, 새로운 사회질서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 그것은 금나라의 출현과 함께 송이 남쪽으로 내려간 후, 무역이 번성하면서 새로운 통합된 사회질서를 필요로 했던 남송시대의 산물이기도 했다.
이 새로운 철학은 그 동안 유학에서 다루지 않았던 우주론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그 중요한 명제는 존천리거인욕(存天理去人欲)이었다. 인욕을 제거해서 천리를 존하여 성인이 되는 학문이 주자학인 것이다. 『서경』에서의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니, 정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것이다”라는 말을 두고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논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에 주자는 도심과 인심을 분리시켜 도심을 순수한 본연지성인 리에 인심을 기질지성인 인욕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이 위태로운 인심을 어떻게 다스려 천리를 지킬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주자와 금원사대가, 생명의 정치
금에서 원으로! 테무진은 그 유명한 칭기즈칸(징기스칸)으로 불린다.
이 새로운 철학은 의학에도 영향을 끼친다. 주희가 살았던 시대에서 얼마 안 지나 송이 물러가고 금과 원이라는 이방민족이 중원을 제패한다. 이 시기에 의학사에서 큰 줄기를 바꾼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를 금과 원 시기의 유명한 4명의 의가라 해서 소위 금원사대가라 칭한다. 유하간(劉河間), 장종정(張從正), 이동원(李東垣), 주진형(朱震亨)이 그들이다. 유하간은 주화론(主火論)을, 장종정은 강심화익신수론(降心火益賢水論)을, 이동원은 음화론(陰火論)을, 주진형은 상화론(相火論)을 주장했다. 각각의 내용들은 다르지 크게 보자면 어떻게 망동하는 불을 잡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화가 너무 치성하게 된 시기가 된 것이다.
이 시기는 유의(儒醫), 즉 유학자이면서 의사인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주자학의 새로운 철학이 의학에도 도입되면서 새로운 유학적 시선으로 신체를 바라보았던 시기였다. 즉 주자학에서 말하는 존천리거인욕이라는 명제가 의학적 패러다임에도 도입된다. 주자학적 패러다임과 마찬가지로 의학적 패러다임에서도 인체에서 질병의 발생을 인욕(人欲)으로 보았다.
이제 다시 신체와 윤리가 하나가 된다. 천리를 지키는 것이 건강한 상태가 되는 것. 단계는 이러한 유의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실제로 단계 주진형은 주자의 4대 제자인 허겸(許謙)에게서 리학을 배워 과거에 응시하다 40세 이후에 의학으로 돌아선 인물이었다. 이들 유의에게 의학은 단순히 의술적 차원이 아니라 유학의 뜻을 펼치기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
상화(相火)란 쉽게 일어나니 오성궐역지화(五性歐陽之火)가 서로 선동하면 망동한다. 화(火)가 망령된 것에서 일어나면 변화를 예측할 수 없고 언제나 없을 때가 없어서 진음(眞陰)을 말라 버리게 한다. 음이 허해지면 병이 나고 음이 끊어지면 죽는다. 군화(君火)의 기(氣)는 경(經)에서 서(暑)와 습(濕)으로 말하고 상화(相火)의 기는 경에서 화(火)로 말한다. 폭도(暴悼)하고 혹렬(酷烈)한 것이 나타남이 군화보다 심한 것이니 고로 상화를 원기지적(元氣之戰)이라 말한다.
─주진형, 『격치여론』
여기서 보아서 알 수 있듯이 군화와 상화는 도심과 인심과 쌍을 이룬다. 즉 인심이 잘못 일어나면 몸을 망치게 되듯 상화가 망령되이 일어나 진음을 말라버리면 병이 나고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단계가 식욕과 색욕에 대해 늘 경계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처럼 단계에게 의학은 어떻게 인심을 멸하고 도심을 다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었다. 단계가 내린 대답은 천리가 내재된 인간본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신체 내의 상화가 망동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돈이는 또 ‘성인은 중정인의(中正仁義)로써 정(定)하여 주정(主靜)한다’고 하였고 주자는 ‘반드시 도심(道心)으로 하여금 항상 일신(一身)의 주인이 되게 하면 인심(人心)이 매번 도심에게서 명을 듣는다’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화(火)를 잘 처리한다는 것은 인심이 도심에게서 천명을 잘 들으니 또한 능히 정(靜)으로 주(主)할 수 있고 저 오화(五火)의 동함이 다 중절(中節)하며 상화가 오직 조화를 보하여 생생불식의 운용으로 삼을 따름이니 어찌 싸움이 있겠는가.
─주진형, 『격치여론』
그렇다면 이 시기의 국가-신체는 어떤 시스템적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어떻게 개체들을 생생불식하는 신체를 만들 것인가라는 문제를 통해 천리에 도달할 수 있는 정치를 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우리는 언제나 계속 주체들이 모여서 이러저러한 정치체를 만든다는 사고방식으로 사고하기 쉽다. 그러나 오히려 그게 아니라 주체는 정치화 혹은 주체화를 통해 ‘사후적’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명의 정치, 삶의 정치란 어떻게 생명의 신체들을 만들어가는가라는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즉 인심에 빠져들어 진음을 소모하는 죽음의 신체를 만드는 정치가 죽음의 정치라면, 각각의 신체들이 생명력을 다할 수 있도록 생명의 신체를 만드는 것이 생명의 정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_담담(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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