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에도시대, 신체의 해부와 '개인'의 발견

『해체신서』의 시대, 몸을 해체하다



닥터진, 신체를 해부하다


『타임슬립 닥터진』이라는 만화를 아시는지? 원작은 일본 만화로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기도 했으며, 몇년 전에는 한국에서도 송승헌을 주인공으로 해서 리메이크 된 작품이다. 물론 한국 드라마만 보신 분들은 실망하실 수도 있지만, 원작은 그렇게 엉망은 아니다. 아니 놀랄만큼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들을 제공해준다. 드라마는 외과의사인 주인공 닥터진이─의사의 성이 진(仁)임을 주목하자─어느날 사고로 갑자기 100년 전 에도시대로 시간이동을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것이 근대의 시작이라는 메이지 유신 시기와 맞물려 어떻게 실제 역사적 인물들과 서로 얽혀 나가는지 그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어느날 갑자기 에도시대로 간 외과의사 닥터 진!


주인공을 당시 새로 수용되기 시작한 서구의 의학이라고 바꿔놓고 생각하면 당시 전통과 근대, 문명의 수용사 차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주인공은 시간이동을 하면서 우연히 자신의 수술키트 속의 날카로운 메스를 들고간다. 이 날카롭고 정교한 메스에 당시 사람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가 이 도구들로 살갗을 째고 헤집고 들어가는 마술을 부릴 때마다 사람들은 경외의 눈빛으로 그를 쳐다본다. 실제로 서양의 의술이 처음 도입될 때 이국에서 온 새로운 칼날에 대한 호기심은 대단했다. 이 시기 그림이나 이야기 속에서도 서양에서 온 날붙이들이 얼마나 다채로운가, 얼마나 예리한가가 자주 등장한다. 서양의들의 외과술의 정확함이 이 가위의 날카로움과 겹쳐진 것이다.

닥터진이 처음 과거로 돌아가서 한 것도 수술이었다. 우연히 떨어진 그 곳에서 사무라이들의 칼싸움이 벌어졌고, 머리에 피가 고이게 된 이를 절개수술을 통해 피를 빼내게 된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수술이라는 말조차 이해 하지 못한다. 소독을 위해 천을 끓이고, 감염을 막기 위해 가족조차도 모두 밖으로 내쫓는 행위조차 자신들을 불결하게 여기는 것이냐며 화를 내는 상황이다. 주인공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역경을 딛고 지금으로서는 당연하게 보이는 서양식의 의술로 사람들을 구하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날카로움만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것은 ‘밖’을 째고 ‘안’으로 파고 들어가 헤집는다는 감각 그 자체였다. 사실 동양에서 외과적 수술 방식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밖’과 ‘안’은 다른게 아니며, ‘밖’을 째고 ‘안’으로 들어가야 무언가 진실에 가까운 것이 있으리라는 발상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새로웠던 것은 해부나 수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한 사고방식 그 자체였다.


에도시대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은 해부나 수술 자체라기 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고방식 그 자체였다.


당시 들어온 서구의학은 어떤 어려움에도 끄덕하지 않고 사물을 여는 것, 그리고 사물을 엶으로써 ‘내부’를 보고 ‘내부’에 있는 것에 대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는 새로운 사유방식이었다.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비가시적인 것과 가시적인 것 사이의 분리불가능한 사유에서 이제 진실은 안에 열려지기를 기다리는 미지의 대상 속에서 발견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서구의 감각으로는 무엇이든 제대로 이해하려면 내부를 열어 보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닫힌 채로는 어떠한 것도 지식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반면 이러한 시선은 전통적인 동양에서는 기이한 사고체계였다. 사람의 몸을 칼로 잘라 볼 까닭이 없었으며, 이미 죽어있는 사체와 살아있는 몸은 전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동양에서는 사물을 대상의 전체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안을 열어내 보여야 한다는 사고는 부재했던 것이다. 서구에서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열어서 나누고, 분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자르지 않고서는 분류가 불가능하다. 전체가 부분으로 나누어지지 않고 전체로 남아있어서는 그것을 파악할 수 없다. 그것이 근대적 합리성의 세계이다. 자르고 쪼개고 그것들은 차이 속에서 의미를 열어제끼며, 구분(區-分)과 분석(分-析)을 가능하게 해주는 근대적 앎의 배치를 만들어낸다.



에도의 문을 열다


이러한 새로운 의학의 시작은 네덜란드 학문인 난학이라는 학문이 형성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중 『해체신서』라는 책의 번역이 중요함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774년에 번역된 이 책은 독일인 쿨무스(Johann Adam Kulmus, 1689-1745)가 1722년에 펴낸 책 Anatomische Tabellen의 네덜란드어 번역서를 일본어로 번역한 책이다. 당시 네덜란드-일어 사전조차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노력은 가히 외계어를 번역하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닥친 것은 번역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번역이 가능하려면 그 개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그러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앞의 『닥터 진』의 에피소드에서처럼 소독이 필요하다 말할 때, 내가 불결하다는 소리요라고 받아치던 상황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번역은 단순히 한 단어를 다른 단어로 옮기는 작업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개념을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전이시키는 것에 가깝다. 특히나 지금과 같이 사전을 찾아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새로운 ‘말’들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자,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었다.

Anatomische Tabellen 이 책은 매우 뛰어난 학술서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쿨무스가 고등의학교육을 받지 않은 하급 의사들을 위한 참고서였다. 그 때문에 그림도 많고 설명도 짧아 이해하기 쉽게 만든 책이었다. 초심자들을 위한 책이 일본에서 잘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어쩌면 복잡하지 않은, 그림 위주로 된 책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이 책이 해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있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초기의 난학 수용은 외과의 수용은 빨랐던 반면 내과의 수용은 느렸다. 내과에 대한 서양식의 개념들은 해부처럼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개념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1702년에 일본에서 그려진 해부도

일본의 의학은 18세기가 되면서 흔히 고방파(古方派)라 불리는 유파가 형성된다. 그들은 내경의학(內經醫學) 전통의 이동원과 주진형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이주(李朱)의학’을 강하게 비판하며, 실증적인 의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장중경의 『상한론』에 등장하는 처방 중심의 의학체계가 성립된 것이 이 때이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경험위주의 의론을 중시한 이들은 서양의학의 수용에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

『해체신서』의 도판을 그린 화가 오다노 나오다케(小田野直武, 1749-1780)는 「범례」에서 이렇게 말한다. “생각컨대 네덜란드의 기술은 대단히 뛰어나다. 지식이나 기술의 분야에서 사람의 힘이 미치는 한 궁구(窮究)를 다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속하게 세계에 은혜를 줄 수 있는 것은 의학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명은 상대적으로 기존의 한의학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중국의 치료법이나 학설을 연구해 보면 그것은 무리한 억지가 많고 더구나 모자란 곳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명백히 하려고 하면 점점 알 수 없게 되고 이것을 바로잡으려고 하면 더욱 틀려버리게 되어서 일상적으로 쓸 수 있는 치료법은 하나도 없다.”  

이제 한의학은 이론 중심의 쓸데없는 비실증적 학문으로, 서양의학은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앎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다. 물론 이것이 어느 한 순간 뒤집힌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앎의 배치가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이것은 단순히 의학에서만의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근대란 무엇인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근대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은 의학자들만이 아니었다. 이 새로운 문명의 힘은 사상가들에게 새로운 숙제를 던져주었다. 동아시아 근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평가되는 후쿠자와 유기치가 ‘일신이생(一身二生)’, 즉 한 몸으로 두 삶을 살았다고 말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전통과 근대라는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삶을 한 몸으로 살아내던 시기였고, 이는 단지 삶의 방식만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푸코식으로 말하자면 두 가지의 에피스테메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었다. 근대를 맞이하게 된 이들은 앞서 『해체신서』의 번역자들이 새로운 개념들, 가령 신경을 어떻게 번역하고 이해시킬 것인가를 고민한 것처럼 개인, 사회, 국가를 어떻게 번역하고 이해시킬 것인지에 대해 고민과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새로운 사상은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일까? 이것이 의학의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해부가 만들어내는 지형학, 학지의 새로운 구성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를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관계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가?

근대는 다양하게 정의내릴 수 있지만 하나의 특징으로서 가시성을 들 수 있다. 진실은 이제 비가시적인 것에서 가시적인 것으로 옮겨간다.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라는 노자의 말처럼 기존의 진리는 눈에 볼 수 없는 것,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가시적인 것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던 동양 전통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말할/볼 수 없는 것은 도가 아니게 되었다. 병조차도 이제는 눈에 보이게 되는 가시성의 세계로 들어온다. 

그리고 이는 해부라는 방식을 통해 특정 장기, 더 자세히는 특정 조직의 문제로 다가왔다. 그 지점을 적출하면 이제 비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날 수 있게 된다는 사유방식이 등장하는 것이다. 각각의 장부가 이제 기능에 따른, 관계에 따른 장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실체로서 인식되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서구의학이 도입되던 당시 실제 해부를 실행할 수 있던 사람은 거의 없었을 뿐더러, 실행한 사람들조차 절개하고 나서 이 미궁과 같은 장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당혹해 했을 것이다. 실제로 『해체신서』의 서문은 햇병아리 해부학자에게 세 가지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좋은 스승, 좋은 도구, 그리고 그림이 들어간 책이라고 솔직한 충고를 한다. 요컨대 자기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 우선 그 ‘보는’ 법을 그림으로 제어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 몸의 장부는 개별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실제로 사체를 열어본다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해부도처럼 깨끗하고 말끔한 상태의 사체는 볼 수 없다. 피범벅이 되어 이리저리 꼬여있는 장들과, 혹 병이라도 들었다면 신체해부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말끔한 장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먼 장부들만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체를 해부해 본 것은 해부도라는 그림을 통해서 본 말끔하고 정리된 사체였다. 그들이 ‘보고자 한 것’이 보는 대상에 투영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이제 보이는 것만이 진실임을 믿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보고 싶은 것만이 진실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세균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현미경을 통해 본 진실은 다른 모든 불투명함 속에서 오로지 빛을 발하는 진리의 모델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이 때의 진실은 구성된 진실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문명론의 개략, 새로운 신체 만들기


이를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에 대한 논의를 통해 살펴보자. 


첫째, 국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세간의 논의는 잠시 접어두고, 우선 우리가 아는 바로써 그것을 말하려 한다. 체(體)는 합체(合體)의 뜻이며, 또 체재(體裁)의 뜻이다. 물건을 모아서 그것을 전체로 하여 다른 물건과 구별할 수 있는 형태(形)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체란 한 종족의 인민이 서로 모여서 근심과 즐거움을 같이하며, 다른 나라 사람에 대해서 우리와 남(自他)의 구별을 지어 스스로 서로를 보기를 다른 나라 사람을 보는 것보다 두텁게 하고, 스스로 서로 힘을 다하는 것을 다른 나라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보다 힘써서, 한 정부하에 있어서 스스로 지배하고 다른 정부의 제어를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화와 복을 모두 스스로 짊어지고 담당해서 독립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서양 말에 ‘나쇼나리티’라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의 개략』


우선 후쿠자와의 학문적 배경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그는 오가타 고안이 의학을 중심으로 하는 난학을 가르치는 데키주쿠에서 서양학문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의 자서전에 나오는 일화들은 여기의 학생들이 대부분 서양의 의학을 배운 이들이었음을 보여준다. 후쿠자와는 실제로 그의 친구들과 동물의 사체를 해부하는등 서양 의학에도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위의 문장을 새로운 신체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여기서 그는 국체론을 통해 새로운 신체를 구성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주어진 일본이라는 국체가 아니라 새롭게 자타를 구분하는 의식으로서,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국가의 신체를 ‘합체’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 때 합체란 전체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고를 필요로 하며, 이는 균질적인 것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근대를 열어야 했던 동양의 지식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개인과 사회였다. 개인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이룬다는 발상. 이것은 자연적인 공동체와는 다르다. 계약관계에 의한 하나하나의 신체가 집합체를 이루는 방식은 그냥 하나의 신체 전체로 파악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개인과 개인의 결합으로서의 국가라는 의식은 그렇게 탄생한다. 그것은 하나의 서사를 새로이 개발하는 것이었다.


일본 제국의회의 모습을 그린 삽화


표상은 현실을 반영하는가? 아니 오히려 현실이 표상을 반영한다. 가시화, 신체화된 국가의 필요성은 그러한 신체화된 국가로서의 현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 속에서 내부와 외부가 발견되며, 전쟁 모델 속에서 경계를 확정하고, 내부를 균질적인 것으로 바라보게 한다. 기존의 국체론을 비틀어 새로운 문명으로 가기 위해 새로운 신체를 기획하는 것이야말로 후쿠자와의 국체론의 특징이다.     

이어 그는 국체와 정통, 혈통을 구별한다. 정통(政統)이란 한 나라에 있어서 모든 국민의 용인 하에 시행되고 있는 정치의 본도로, 정통은 세계의 나라의 성격과 시대에 따라 다르다. 이는 확실히 정통의 변혁이 국체의 존망과 관련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즉 국체는 정통의 변혁과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임을 밝힌다. 그는 마찬가지로 국체를 혈통(line)과 구별한다. 혈통이란 임금의 자리를 부자의 순으로 계승하여 핏줄이 끊어지지 않는 것으로, 후쿠자와는 국체와 정통과 혈통을 각각 다른 것으로 구별함으로서 일본은 개벽 이래 그 국체를 바꾼 일이 없음을 지적한다. 이어 황통을 국체와 비교하는 설명에서 신체로서의 유비가 다시 등장한다.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국체는 신체와 같고 황통은 눈과 같다. 눈빛을 보고 신체가 죽지 않았다는 징표로 삼을 수는 있겠지만, 일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눈에만 주의하고 몸 전체의 활력은 돌이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전신의 활력이 쇠약해지면 그 눈도 자연히 빛을 잃게 되는 법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신체가 이미 죽어서 생명력의 흔적조차 없는데도 두 눈만은 떠있어 이것을 보고 살아 있다고 오인하는 수도 없지 않다. 영국 사람이 동양 국가들을 제어하는 데 있어 몸을 죽이고 눈을 보존하게 하는 예는 적지 않다.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의 개략』


국가의 건강은 그 신체, 다시 말해 인민의 건강에 있다는 원칙이 공표되고 있다. 이는 황통사로서의 일본사를 해체하는 작업이었다. 단지 눈의 건강이 아니라 국체라는 신체 자체의 건강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 몸과 관련된 다양한 담론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가장 중요한 인식론적 기반은 해부생리학, 즉 생의학적 지식이었다. 이러한 인식론은 정치철학적으로 보자면 개인의 탄생과 그 개인들의 합으로서의 공동체를 사유하는 방식을 만들어내었다. 그것은 어쩌면 모든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망을 통해 사람을 전체와 우주에 조화시키던 전통적 세계관의 해체이기도 했다.

이제 개인, 국가라는 새로운 가시적인 것이 필요했다.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해부학자가 신체를 해부에 안을 파헤쳐 각각의 장기를 발견했던 것과 똑같은 작업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던 장기를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유일한 진리라고 믿게 만든 인식의 틀을 만들었던 것처럼! 그렇게 동아시아의 근대 지식인들은 공동체를 해체해 그 안에 숨어있는 ‘개인’들을 발견해내고, 이를 다시 국가라는 이름의 신체로 재조립해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신체는 만들어졌던 것이다.  




담담(남산강학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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