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근대적 사유와 전통적 사유, 기계와 기(氣)에 관한 신체와 정치

또 다른 근대, 기(氣)와 기계의 만남



새로운 하늘의 시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동아시아에서 근대라는 시기는 후쿠자와가 말한대로 ‘한 몸으로 두 인생을 살아야 했던(一身二生)’ 시기였다. 쉽게 말하자면 천지가 뒤바뀐 것이다. 자기가 믿어왔던 하늘이 한 순간에 무너져버리고 새로운 하늘이 등장한 그야말로 ‘천지개벽’하는 시기! 이처럼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새로운 나침반이었다. 이제 더 이상 별을 보며, 방향을 읽어낼 수만은 없었다. 그동안 자신이 믿어오던 하늘이 이미 무너져버린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침이 필요했다. 물론 많은 이들은 기존의 감각만을 절대적 진리로 붙들고 있었으며, 이 반대에서는 서양의 새로운 문명이라는 나침반만을 맹종하던 이도 있었다. 물론 이 둘을 함께 아울러 사유한 자들도 있었다. 조선에서는 대표적으로 최한기(1803-1877)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834년 최한기와 김정호에 의해 제작된 지구전도


하늘을 읽고(천문), 땅을 읽고(지리), 사람을 읽는(의학) 방식 자체가 변하는 시기였다. 서양의 천문학, 지리학, 의학이 서서히 새로운 중심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그는 서양학문을 받아들여 천문, 지리, 의학 뿐 아니라 수학, 과학, 농학, 기계와 관련된 저술들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상적으로도 뛰어난 저술들을 남겼는데 철학, 사회학, 정치학 등에서도 의미있는 저술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육당 최남선은 우리나라 학자들 가운데 가장 많은 저작을 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최한기를 꼽고 있다. “(조선에서) 그 최대한 것으로는 최한기의 『명남루집』 1,000권이니 아마 이것이 진역(震域) 저술 상에 있는 최고기록이요, 또 신구학을 구통(溝通)한 그 내용도 퍽 재미있는 것이지만, 다만 대부분이 미간으로 되어 있고 원본조차 사방에 산재하여 장차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 있음은 진실로 딱한 일입니다.”

그만큼 최한기는 다방면에 걸쳐 여러 작품들을 쓰고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을 펼쳐내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나침반을 만들기 위한 그만의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1803년 개성에서 태어나 평생을 저술활동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활동이나 사승관계에 대해서는 정보가 거의 전무하다. 이규경과 김정호 등 주로 서얼이나 중인 출신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교우가 있었다는 점 이외에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19세기 조선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그의 사상은 위로도 누구로부터 연결되어 있는지 확실하지 않고, 아래로도 후의 개화파등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오히려 그로 하여금 비교적 자유로운 사상을 펼칠 수 있게 했었을지도 모른다. 스승의 말에 중압감에 눌려 전통에 매달릴 필요도 없었으며, 서양 사상 역시 그만의 시각으로 자유롭게 배워나갈 수 있었다. 오히려 사상계의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중심을 더 잘 볼 수 있게 된 아이러니. 
 


기(氣)가 근본이다


최한기의 사유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기일원론적 사유라 할 수 있다. 기에 대한 사유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성리학에 와서라고 할 수 있다. 주돈이의 태극도설에서 보듯이 기에 대한 이론적 정교화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를 이어받은 주희는 ‘이기불상잡(理氣不相雜)’이라는 말에서 보이듯이 이와 기를 둘로 나누어 설명한다. 주희는 기라는 것이 이에 복속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기를 순수한 리가 발현하는데 방해하고 한정짓는 요소로 파악하였다. 물론 이런 성리학적 흐름과는 달리 기에 대한 강조를 하는 사유도 이어져왔다. 장재, 왕부지, 대진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이들은 본질(理)은 세계(氣)와 분리되지 않으며, 주자학적 세계관에 숨어있는 리(理)중심적 사유를 해체한다.

최한기 역시 모든 현상과 존재의 근거, 세계와 우주의 궁극적 실체가 ‘기(氣)’라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기의 자기운동을 운화(運化)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이학(理學)을 비판하며, 원리적으로 기만을 실체로 인정하는 기학(氣學)으로서 그의 사유를 펼쳐나간다.  


기는 실리의 근본이요 추측은 지식을 확충하는 요법이다. 그러므로 이 기에 연유하지 아니하면 궁구하는 것이 모두 허망하고 괴탄한 이치이고, 추측에 말미암지 아니하면 안다는 것이 근거가 없고 증험할 수 없는 말일 뿐이다.


─최한기, 『기측체의』 


그는 기라는 것이 모든 것의 근본이며, 이러한 기에 근본하지 않은 앎이란 것은 모두 허망하고 괴탄한 이치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천지에 어느 것이나 모두 기 아닌 것이 없다고 설명하고, 기를 세계를 구성하는 원물질로서 파악한다. 지금까지의 학문이 기라는 것을 형체가 드러난 것만을 기라고 하거나, 어떤 경우는 작용하는 것만을 기라고 하고 완전한 모습을 보지 못하였고, 실제로 실행할 단서를 터득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기는 곧 일이다. 그 경우에 따라, 가리킴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다른 것이다. 그 전체를 가리키면 天이라 하고, 그 주재를 가리키면 제(帝)라 하고, 그 유행을 가리키면 도(道)라하고, 그 인물에 부여함을 가리키면 명(命)이라 하고, 그 인물에 품수된 것을 가리키면 성(性)이라 하고, 그 몸을 주재함을 가리키면 심(心)이라 한다.


─최한기, 『기측체의』


기와 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기의 움직임이라는 기일원론이 그의 기학의 핵심이었다. 본체로서의 기는 스스로를 확산, 전개시키면서 다양의 세계를 생산한다. 이처럼 다양한 세계는 기의 자기 변양태들이기 때문에 기에 근본하며, 독자적 세계로 분리될 수 없다. 즉 어떤 것도 초월적이지 않으며 세계는 완벽하게 내적으로 이루어진다.



측정가능한 기, ‘유형지리’


그러나 이러한 기일원론은 기에 대한 사고를 철저히 밀고 나갔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앞의 기철학의 사상가들과 그렇게 구별되는 지점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의 기에 대한 관점의 변화이다. 그는 기를 ‘측정가능’한 것으로 파악한다.


나의 기(氣)를 미루어 모든 존재의 기를 헤아리고, 나의 신(神)을 미루어 만유의 신을 헤아리고, 나의 리(理)를 미루어 만유의 리를 헤아린다. 이것은 곧 유형(有形)의 기, 신, 리를 들어 유형의 기, 신, 리를 증험하는 것이지, 무형(無形)을 들어 유형을 증험하거나 무형을 들어 무형을 증험함이 아니다.


─최한기, 『기학』


여기서 그의 독특한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유형지리(有形之理)’에 대한 생각이 나온다. 그는 신(神)과 리(理)를 명백한 증거를 댈 수 있는 것에다 귀속시킨다면 천고의 시끄럽고 어지러운 여러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으며, 후세의 의혹을 없앨 수 있다고 말하며, 운화의 기란 곧 ‘유형의 신’이요, ‘유형의 리’라고 설명한다. 즉 그동안 무형으로만 생각되어 온 이치로서의 리(理)까지 유형으로서 파악된다.

그렇다면 최한기가 말하는 ‘유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구체적 형질을 가진 사물에 근거하여 존재하고, 기능과 효과가 있어 인간의 인식으로 포착할 수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리 역시 궁극적이자 유일한 실체인 기에 내재하는 이치에 불과하며, 따라서 기가 유형인 한 기에 부수되는 리, 역시 유형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리라는 것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실체로서 작동하는 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동양에서의 철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들을 가지고 논의해왔다면 최한기는 이제 유형의, 실증가능한 것들로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서구의 과학이론의 수용과 관계가 있다.


이 기가 배포(排布)하는 범위를 정하고, 이 기의 원근과 지속을 비교, 증험하고, 이 기의 장단과 대소를 헤아리고, 이 기의 경중을 저울질하고, 이 기의 차가움과 뜨거움, 건조함과 습함을 증험하며, 이 기의 시,분,초를 정하는 것과 수화(水火)의 기를 변통(變通)하며, 무겁고 커다란 기를 돌려 움직이는 것은 역수학(曆數學)과 기계학(器械學)이 능히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기계가 아니면 이 기에 착수할 수 없고, 역수가 아니면 이 기를 나누어 살펴볼 수 없으니, 역수와 기계가 서로 드러내주어야 거의 기를 인식하고 증험할 수 있다.


─최한기, 『기학』


당시의 서구의 문명을 누구보다도 빨리 받아들였던 그는 천문학, 수학, 기계학을 통해 기라는 것을 증험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는 냉열기(冷熱器)와 조습기(燥濕器)를 통해 온도와 습도를 파악하는 것, 설수기와 생화기라는 기계의 힘을 통해 물과 불을 움직이는 것, 천체의 운행을 파악하는 의기를 통해 기의 멀고 가까움을, 저울을 통해 기의 가볍고 무거움, 많고 적음을 분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서구의 기계들을 이러한 기를 실제 증험할 수 있는 도구였던 것이다.


어떤 시대에 가장 획기적이었던 기계는, 어떤 시대에는 활용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 속에서 기술은 기계와 함께 끊임없이 새롭게 개발된다.


그가 서구의 과학을 통해서 받은 충격은 아마 서구의 것들이 보여주는 근대적 합리성이었을 것이다. 근대적 합리성(rationality)이란 어원에서 보듯이 비율(ratio), 즉 수치 가능화한 것이라고 할 때 그가 서구의 학문에서 느꼈던 충격은 이러한 수치화 가능성, 즉 실증적으로 객관화시킬 수 있는 학문이라는 점이었을 것이다. 최한기는 지식의 기원이 경험에 있다는 원리와 이론의 진리성은 경험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리학 심학 등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객관세계를 고정된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형이상학적 방법론으로서 자연과 사회를 변화의 관점에서 보지 않기 때문에 옛 시대를 반영한 문자나 성현의 언행에서 증거를 찾아 진리로 삼으려고 한다. 이러한 방법은 인류의 지식과 인식 수준이 역사적 제한을 받는다는 사실을 소홀히 여긴다.


─최한기, 『기측체의』 


따라서, 기존의 학문들이 증험할 수 없는 사변적인 그림자와 메아리만을 보고 배워왔다면, 그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기의 움직임을 체득해야만 하는 것이 시대적 변화의 핵심이라고 파악했다. 이것이 그가 보기에 실학(實學)이었다. 그는 “천하 학문의 시비를 통괄하여 우열을 논정할 때, 천하 민생이 실제로 쓰는 바와 천하의 정치가 반드시 근거로 삼는 바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잡을 수 있는 형체가 있고 물건에 조처하여 증험할 수 있으니, 곧 실학(實學)이 된다”(『기학』)고 말하고, 자신의 기학이 바로 실학임을 강조한다. 실증가능한 학문이라는 의미에서의 ‘실-학’!



최한기의 의학


최한기는 당시 사상적으로도 앞서 나간 인물이었지만, 의학적으로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가 번역한 『신기천험』(身機踐驗)은 홉슨의 『전체신론』을 주로 해서, 『내과신설』, 『외과』, 『부영신설』, 『의치』등을 반영한 것이지만, 단순히 번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는 의학책이다. 이는 그가 의학에 대한 이해도 범상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신기천험의 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해, 별, 지구, 달이 통합되어 기틀이 되고 체를 이루어 신기운화(神氣運化)를 행하여 온갖 일과 사물이 끊임없이 생겨나니, 어찌 한 귀퉁이를 들어서 전체의 큰 쓰임을 가리킬 수 있겠는가? .. 사람은 신기운화를 이어 받아 온갖 뼈, 아홉 구멍[九竅], 장부와 사지 및 크고 작은 근육과 기관 등의 기틀을 이루고 체를 이루어 지각과 운동능력이 생긴다. 처음과 끝, 근본과 말단이 기화를 바탕삼아 만물과 통하고 만사를 갈무리한다. 이는 품부 받은 기가 동일하고 소통하는 기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최한기, 『신기천험』


그는 천체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기의 일원론적 사유를 바탕으로 기의 운화라는 관점 속에서 파악한다. 그리고 이어 이를 비과학적 사유와 구분짓고 있다. 이전에는 대기운화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못하여 온갖 궁극적인 이치를 억지로 꿰어 맞춘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이제 운화의 맥락을 사물에서 징험해 참된 탐구의 방법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에게 증명가능성이야말로 실제 법칙의 세계였다. 이는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을 비교하는 부분에서 더욱 잘 드러나고 있다. 


서양의학은 ‘해부’를 통해 상세히 비교하여 전체의 경락과 부위를 밝게 고찰하였다. ‘부위’에 밝지 못하면 병의 근원을 밝히지 못하고, 병의 근원을 밝히지 못하면 치료법 또한 밝히지 못한다. 부위에 밝으면 병의 근원을 알 수 있고, 병의 근원을 정확하게 알면 치료법은 그 방법을 얻은 것이다. 이러한 방법에 의거하여 중국의 의서를 비교해보면, 부위에 대부분 어두운데다 오행설이 혼미함을 더하고 있다.


─최한기, 『신기천험』


물론 최한기는 “중국과 서양의 의서들은 제각기 해당지역의 경험들을 전하여 물려받은 것이 오래이나 여전히 밝히지 못한 단초들이 많다”라고 말하며 동양의학과 서양의학 각각의 단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기서 주목해서 볼 만한 부분은 서양의학의 장점으로서 해부학에서 서구의 사상적 특이성을 찾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는 해부학이야말로 병의 근원을 밝히는 것이 핵심이며, 이처럼 ‘부위’를 나누고, 그 부위 속에서 병의 근원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서양의학, 서양의 사유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인간의 비밀이 DNA의 배열을 통해 벗겨지나 했지만...과연 그런가?


반면 동양에서는 부위에 대부분 어두운 점이 지적된다. “혹 방술에 미혹되어 빠진 사람은 장부를 가지고 오행에 분속시켜 그에 따라 약을 쓰되, 상생상극을 붙여서 부족한 것은 보충하고 지나친 것은 억제하여 항상 장부로 하여금 화평하게 하면 연령을 더하여 수명을 더하는데 이르게 된다고 한다. 이는 신농의 여술로 후세에 의혹을 끼치는 것이니, 이러고서야 어찌 병을 치료하는 근원을 정밀하게 살필 수가 있으랴.”

그에게 신체 역시 기의 운화를 입증할 수 있는 기계였다. 그는 이러한 신체 내의 기의 운화를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일신의 운화뿐만 아니라 천지의 운화를 밝혀내 통의 세계로 이르는 길을 밝히는 작업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에게 과학은 자신의 기학을 보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체로 신체를 이루는 기틀[機]을 시계 속에서 회전하는 톱니바퀴와 수화기기(水火器機)들 속의 빨아들이거나 닫히는 파이프나 밸브에 비견하는 것은 자연히 마음속으로 수긍되는 점이 있고 또한, 마음속으로 거스를 수 없는 점이 있다. 시계와 수증기로 작동되는 기관[氣機]을 수리하려면, 먼저 바깥 통이 부서졌는지의 여부, 축바퀴가 부려졌는지의 여부, 기계장치가 흔들려 헐거운지 뻑뻑한지의 여부를 살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점에서 모두 아무런 결함이 없으면 다시 회전이 원활하지 않은 원인과 빠르기가 기준에 맞지 않는지를 고찰하여 혹 너무 빠르면 늦추거나 혹 너무 느리면 빠르게 하거나 혹 잘 돌아가지 않아 막힌 부분은 닦아내거나 하여 그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도록 힘쓴다. 병을 치료하는 것도 이와 유사하니, 병을 고치는 것을 위주로 하되 기화(氣化)로 발현된 형질에 의해 원래 정해진 부위와 경락이 완전한지 아닌지의 여부에 따라 각각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체질에 따라 병이 날 수도 있고 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또한 기화가 순환하여 변해가므로 생장쇠노(生長衰老)도 모두 변하여 각각 달라져서 운용에 따라 병이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이렇게 정해진 형질이 있다는 것을 통달하고 아울러 전변하는 기화에 보조를 맞출 수 있다면 치법을 행할 수 있다.


─최한기, 『신기천험』


여기서 시계라는 기계의 원리가 인체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시계의 부품들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그것을 고쳐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처럼 병을 치료하는 것 역시 정해진 부위와 경락이 완전한지 아닌지를 판별해 다시 회복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는 서양의학을 받아들여 신경과 혈관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의학의 절반의 완성’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 때 신경과 혈관에 대한 이해는 단순한 기계론적 사유와는 다르다. “시계 속의 축바퀴가 회전하는 것을 살피는 것으로는 그러한 운화를 이루는 기틀을 깨우치기에는 부족하며, 수화기기 속의 파이프나 밸브가 닫히고 빨아들이는 작용만으로는 혈이 온 몸을 돌고 저절로 올라가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천기에 밝게 되면 의학은 절반의 완성을 이룬 것이다”는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에게 신체라는 기계는 단순히 부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신경과 혈관으로 하나로 묶여진 전체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것은 기계론과 유기체론의 대비가 아니라 기계 역시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그가 신체 역시 실제 증험할 수 있는 기계라는 관점을 채택하고 있지만, 이 때의 기계는 지금과 같은 기계의 이미지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신체를 기계라는 이미지에 덧씌운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최한기에게 기계로서의 몸은 고립된 몸이 아니라 오히려 몸을 통해 천지의 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최한기의 사상을 단순히 서구의 기계론의 수용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기계론이 동양의 기 중심의 철학과 만나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에게 신체 역시 천지의 운화를 확인하고, 보편적 세계를 이뤄내는 기계였던 셈이다.


몸은 시공간의 흐름, 천지의 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최한기가 말하는 '기계로서의 몸'의 특이점이다.



통(通)의 사유


이러한 기의 철학은 통함의 사유로 귀결된다. 즉, 만물이 하나의 기로 통하고 있기 때문에, 기라는 것이 상호 연결, 감응하여 전체를 이루게 된다.


만물은 교접의 반응이 있으니 자석과 쇠, 호박과 티끌은 서로 맞이하여 끌어당기는 기가 있다. 그 사이에 화응하는 기가 있어 연결하는 맥락이 됨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유추해 보면 남녀는 서로 좋아하는 기가 있어서 자식을 낳아 기르고, 천지는 왕성하게 뒤엉킨 기가 있어서 만물을 낳는다. 모든 물체들까지도 다 동류를 좇지 않음이 없으니 서로 좋아하고 서로 화합하는 기가 있고, 또 서로 피하고 서로 싫어하는 기도 있다.


─최한기, 『기측체의』


그에게 신기는 서로 감응하는 것이다. 기는 단지 개체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만물이 상호 연결되는 맥락 속에서 파악된다. 이처럼 통(通)이란 나의 신기가 상대의 신기에 통하고, 상대의 신기가 나의 신기에 와서 통하는 것이다. 최한기는 이러한 기의 작동을 천인운화(天人運化)로 파악하고, 이를 우주, 자연에 적용되는 천지운화(天地運化), 사회에 적용되는 통민운화(統民運化), 일 개인에 적용되는 일신운화(一身運化)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리고 이 운화의 흐름을 깨닫는 것, 기의 흐름을 막힘없이 하는 것을 통으로 파악하였다.


기는 개체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는 맥락 속에서 파악된다.


즉, 기존의 철학들이 천이나 리, 심에서 같음의 조건을 찾는 것이었다면, 최한기는 기로서 같음의 조건, 대동의 사유를 펼쳐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반세기 후 중국에서 이러한 사유를 펼쳤던 사상가들을 떠올릴 수 있다. 캉유웨이와 탄쓰퉁이 그들이다. 그들 역시 기의 사유를 통해 통의 사유, 대동의 사상을 펼친다.


인과 불인의 구분은 그것이 통하느냐 막혔느냐에 달려 있다. 통하느냐 막혔느냐의 근본이 오직 인의 여부이다. 통하는 것은 전선이 사방으로 연결됨과 같아서 이르지 않는 곳이 없어 남의 땅도 한 몸처럼 기능한다. 그러므로 역경에서는 맨 처음 원(元)을 말하고 곧 이어 형(亨)은 말하였다. 원(元)은 인(仁)이고, 형(亨)은 형통(亨通)이다. 진실로 인하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 또한 서로 통하면 인의 역량은 비로소 완전해질 수 있다. 이로부터 자기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되, 길이 정고(貞固)하게 될 것이다.


─탄쓰퉁, 『인학』


여기서 탄쓰퉁이 말하는 인이란 서로 통하는 것이다. 최한기의 실증할 수 있는 기가 온 존재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것이었다면, 탄쓰퉁에게는 에테르라는 당시 서양에서 발견된 물질이 서로를 통하게 하는 동일조건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이들에게 근원적 존재로서의 하나의 기로부터 출발한 세계는 개체간 동등성과 독자성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신기가 통함으로서 하나의 세계를 다시 구성한다. 


다만 병들어 마비되어 감각이 없고 저리면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데, 전선이 이미 끊어져 다시 신호를 보내 뇌에 이르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니, 비록 한 몸이기는 하지만 남의 땅처럼 기능한다. 그러므로 의학자들은 마비되고 저린 것을 불인하다고 한다. 불인하면 한 몸이지만 남의 땅과 같이 기능하고, 인하면 반드시 남의 땅도 한 몸처럼 기능한다. 남의 땅이 한 몸처럼 기능한다고 해서 인의 역량을 반드시 다하는 것은 아닌데, 하물며 본래 한 몸인 경우는 어떻겠는가?


─탄쓰퉁, 『인학』


실증에 대한 거의 강박적인 집착과 하나의 기로 이루어진 세계, 이것은 근대에 도달한 이상할 정도로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통해 하나의 이상적인 보편적 세계를 그려낸다. 근대적 사유와 전통적 사유의 독특한 만남. 하지만 이들이 도달한 대동의 세계는 너무 큰 그림이 되고 만 것은 아닐까? 최한기와 캉유웨이, 탄쓰퉁 이들의 사상이 큰 그림을 보여주지만 이 속에서 다시 또 몸과 일상은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동무 이제마에게서의 몸과 정치로 넘어가보자.


-담담(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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