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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걷다보면

[기린의 걷다보면] 계속 걷다

by 북드라망 2025. 4. 10.

계속 걷다

 

1. 걷기의 장면들
5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걷기로 먹은 마음을 접기는 싫었다. 어디로 걸을까 하다 성남에 사는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에게 전해 줄 물건을 담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가늘게 내리는 비는 죽전을 지나 성남으로 이어지는 탄천으로 접어들었을 때도 멈추지 않았다. 친구의 집을 절반 쯤 남긴 이매교를 지나서부터는 점점 더 굵어졌다. 모란을 지날 때는 비옷 안으로 물이 들이쳐 옷이 젖고 넘치는 탄천의 물로 신발은 물로 가득 찼다. 더 이상 비가 그치기를 바라는 기대도 사라졌다. 그저 물길을 첨벙첨벙 걸어서 친구 집 앞에 도착해 전화를 했다. 친구는 집에 없었다. 미리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놀라는 친구에게 괜찮다고 대답했다. 빗속을 네 시간, 2만 8천보를 넘긴 걸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버스 창밖으로 보니 비는 그쳐 있었다. 매주 일요일 걷기를 이어갔던 2021년 봄의 한 장면이다. 일요일마다 집을 나서서 걸었던 몸이 자꾸 부추겨서 집안에 있는 것이 갑갑했던 시절, 그 날의 고행은 잊을 수 없는 걷기의 추억이 되었다.

 

빗 속을 걷는 고행을 기억하며



이 해의 걷기는 네이버 까페에도 매주 기록을 했었다. 까페를 열어보니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거의 매주를 서울 경기 일원의 둘레길을 줄기차게 걸었다. 그러다 긴 연휴가 되면 고향으로 내려가 해파랑길까지 걸었다. 24코스와 25코스를 연이어 걸었다. 기록을 보니 35키로 4만6천5백보 7시간을 넘게 걸었다. 스무 살에 상경한 후 버스로나 지나쳤던 7번 국도를 뚜벅뚜벅 바닷바람을 받으며 걷다보니 불쑥불쑥 과거의 기억이 덮쳐왔다. 그때의 나를 떠올리니 걷고 있던 당시의 나와는 정서적으로 거리가 느껴졌다. 그 시절이 다 지나갔다는 안도랄까, 그 때와는 달라진 나를 발견하는 대견함이랄까. 두 발이 거칠고 미숙했던 그 시절의 나로부터 서서히 벗어나도록 이끌었던 걷기의 시간이었다.

 
2. 걷다가 만나다
그렇게 일삼아 걷다보니 자기돌봄의 글쓰기라는 코너에 <기린의 걷다보면>이라는 글을 연재하게 되었다. 걷기를 자신을 돌보는 행위로 연결시키려니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걷자. 2023년 1월 1일 서울 둘레길 2코스를 걸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걸었던 여정이 글감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되자, 눈길에 닿은 경치가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걷다보니 떠오르는 것들이 아니라 쓰려고 오감을 곤두세우게 되곤 했다. 둘레길을 소개하는 표지판을 훑으며 상투적인 단어들을 짜깁기하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어쨌거나 매 달의 업로드 시간을 넘기지 않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걷기에 중심을 둔 일정을 짰다. 그런데 무릎이 말썽을 부렸다. 한의원에 가서 침 맞아가며 붓기를 가라앉히고 걸었다. 그 사연을 올리고 나서 친구들의 걱정도 듣고 무릎 근육을 강화하는 동작도 배웠다. 어머니와 여행했던 날의 걷기에서 발견한 할미꽃을 보며 어머니의 흰머리에 애잔해지기도 했다. 가끔은 친구를 꼬드겨 함께 걸으며 서로를 알아가며 우정을 다지기도 했다. 정약용길을 걸었던 달은 유적지에서 만난 실학자 정약용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숙연해지기도 했다. 공동체에서 인연이 된 비혼 친구들과 의기투합해서 제주의 자연을 만끽했던 걷기도 있었다. 걷고 쓰다 보니 종횡무진으로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이 나의 걷기 자체를 풍요롭게 했다.

책에서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마포난지생명길을 찾아가서 걸었다. 쓰레기로 산을 이룬 난지도를 씨앗부터 키워 숲으로 만드는 시민모임 사람들을 알게 한 길이었다. 겨울에 걸었던 길을 봄이 되어 나무 심기 행사까지 참여해서 숲 만들기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도 만났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걷기가 나무를 심는 데까지 이르니, 걷는 이야기가 나를 어디까지 연결시킬지 스스로도 궁금해지기도 했던 경험이었다.

 

글쓰기에 쓰려고 사진도 많이 찍었네, 안 쓴 사진이 갤러리에 수두룩, 아까워서


 
3. 계속 걷다
연결은 연대하는 걷기로도 이어졌다. 공동체에서 두 달에 한번 전장연으로 연대 방문으로 가다보니 어느 달은 출근 투쟁을 하는 장애인 분들과 우리를 가로막는 경찰들에게 끌려나오기도 했다. 걷기가 이동권으로 연결되는 순간, 누구나 누려야할 권리가 투쟁의 대상이 되었다. 진도까지 내려가서 세월호 바람길을 걸으며 기억하는 잇기를 계속해야 하는 까닭을 되새겨 보기도 했다. 앞서서 낸 길이 끊이지 않도록 계속 걷는 한 억울하게 사라진 생명들도 잊히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2024년에는 한 달에 한 번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걷는 ‘걷⸱친⸱초’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혼자서 걸었던 길을 친구들과 함께 걷는 즐거움도 기대했지만, 걷기를 통해 친구들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경험을 확충해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 컸다. 걷지 않을 수는 있지만 한 번이라도 걷기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나면 다시 걷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걸어보면 알게 되는 것, 두 발을 번갈아 디디며 타게 되는 리듬이 자신의 몸으로 전해지는 감각이다. 그 리듬에 따라 생각의 속도가 조절되기도 하고, 풍경으로 옮겨가는 시선을 따라 마음이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게 걸어가면서 내 몸과 마음의 변화에 감응하는 일, 자신을 돌보는 기술로 손색이 없는 걷기다.

올해 ‘걷⸱친⸱초’ 프로그램 마무리로 친구들과 광교산 누비길 1코스를 걸었다. 그전에 내린 폭설로 걷는 길에 푹푹 빠지도록 눈이 쌓였다. 길을 찾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누군가 먼저 걸어서 길을 내놓았다. 앞서간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 다정한 온기가 전해져 차가운 발걸음을 녹여 주었다. 직접 걸어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무엇이었다. 걷다 보니 길이 보였다. 그 길은 내가 몰랐던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 연결시켜주었다. 그리고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연대를 그리고 잊혔던 기억을 이어주기도 했다. 그 연결들이 나를 계속해서 걷게 했다. 이번 달을 끝으로 <기린의 걷다보면>은 연재를 마무리하지만, ‘걷⸱친⸱초’로 또 연대로 이어지는 나의 걷기는 계속 될 것이다. 걷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을 따라 뚜벅뚜벅 나아 갈 것이다.

아까워서2, 함백으로 양생캠프 갔던 해, 눈 와서 못 걸은 운탄고도를 다음 날 아침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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