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걷기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았다. 노년의 주인공은 도쿄 시내 중심가에 있는 공중 화장실 청소부다. 영화가 시작되면 새벽녘 이웃집 할머니의 빗질 소리에 잠자리에서 눈을 뜨는 주인공이 나온다. 이부자리를 개키고 세수를 하고 수염을 다듬고 윗방에 키우는 식물들에게 물을 준다. 그러고는 작업복을 입고 문 앞에 정리해둔 소지품을 챙기고는 문밖으로 나선다.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 하나를 뽑아 차에 오른다. 차 안에 보관해둔 낡은 테이프들 중에서 하나를 택해 틀어 놓고 캔커피를 마신다. 시동을 걸고 집을 나서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자신이 맡은 구역을 돌며 화장실 청소를 하는 동안 같이 일하는 젊은 동료의 수다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저 빙그레 웃을 뿐. 변기를 닦고 세면대의 물기를 털어내고 휴지통을 처리하는 작업을 한결같은 진지함으로 임한다. 점심을 먹는 장소도 한결같다. 편의점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먹으며, 공원에 오래된 나무들의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며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을 필름카메라로 찍는다. 퇴근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끔 들르는 단골 선술집으로 향한다. 술 한 잔을 하면서 술집에 온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어서는 어제 보다 접어둔 소설을 읽는다. 그러다 스르르 눈이 감기면 책을 내려놓고 잠을 청한다.
영화는 대사가 별로 없는 주인공이 하루의 루틴을 어김없이 실행하는 이 과정을 꽤 오랫동안 보여준다. 그 사이 어느 순간에서 주인공의 미소어린 표정을 클로즈업 하면 저 삶의 평안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졌다. 영화의 중간에 다른 인물들의 등장으로 주인공의 일상이 흩트려 지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주인공은 자신의 일과에서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하루의 평안에 머무른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주인공의 표정이나 단조롭게 반복되던 일상의 여운이 꽤 오래 남았다. 그러다 문득 주인공의 반복에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돌아가신 아버지였다.
스무 살에 상경한 이후 명절이나 여름휴가는 대부분 고향에 내려갔다. 그럴 때 언제부턴가 새벽 다섯 시 무렵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대문을 열고나서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어렴풋하게 들렸던, 아버지가 새벽 등산을 나서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환갑을 전후로 그동안 해왔던 뱃일을 그만두셨다. 그러고 나서 시작한 일이 새벽등산이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이 아니면 어김없이 새벽 다섯 시 무렵 등산을 가기 위해 일어나셨다. 한 겨울에는 해가 늦게 뜨니 시간을 좀 늦추라고 해도 고집을 피운다며 어머니가 잔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여름 고향에서 한 달가량 보냈던 시절, 나도 아버지를 따라 매일 새벽 등산을 다녔다. 한밤중인 것 같은데 안방에서 나를 깨우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버지는 벌써 일어나 등산 채비가 거의 다 된 상태였다. 가기 싫다고 하면 폭풍 잔소리가 들이닥칠 것을 알기 때문에 꾸역꾸역 따라 나섰다. 어두운 길을 아버지 등만 보면 좇아가다보면 동해바다 쪽에서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오곤 했다. 한 시간이 꼬박 걸리는 그 길을 걷는 내내 아버지는 대부분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집에서부터 들고 온 낫으로 등산 길 옆에 무성한 풀들을 베면서 묵묵히 산길을 걷기만 하셨다. 여름 내내 등산길 옆에 우거진 풀들을 베는 일은 아버지의 루틴이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고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후포산악회 회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가 매일 등산을 다니며 풀을 베고 길을 보살핀다는 걸 알게 된 산악회 회원이 아버지를 추천했단다. 평생 뱃일만 하시면서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 같은 것에는 한 번도 속해본 적이 없던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 가는 모임 날에는 허투루 보이지 않을 차림새로 아버지를 챙기셨다. 사람들한테 책잡힐 일 하지 말라는 잔소리도 잊지 않았다. 평소에도 거의 말이 없는 아버지는 그러거나 말거나로 일관하시며 한 달에 한 번 모임에 나가셨다. 그리고 산악회에서 주최하는 정기 등산에 빠짐없이 참가하면서 기념사진들을 남기셨다.
매일의 등산과 육지에서 하던 그물수선일 그리고 집 안팎을 수리하는 일, 일흔이 되실 때까지 계속했던 아버지 인생 최초의 친목활동 산악회 참석이 아버지의 루틴이었다. 일흔 아홉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기 전까지 지속하셨던 일과였다. 이십여 년을 한결같이 묵묵히 보낸 아버지의 하루 일과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아름답거나 평안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아버지의 그 일과가 떠올랐던 것은 왜일까?
뇌졸중 증상이 발견되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이송한 덕분에 아버지는 수술을 받고 경과가 좋은 편이었다. 거동은 다소 느려지고 인지력도 떨어졌지만 일상생활은 그럭저럭 꾸려 가실 수 있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기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후 아버지는 다시 등산을 시작하셨다. 예전의 코스를 완주할 수는 없었지만 반코스라도 걷겠다면서 거르지 않고 가셨다. 어머니는 무리하면 안 된다고 말렸지만 아버지는 완강하셨다. 아무도 못 말렸던 그 걷기 중에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오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지면서 머리를 다쳤다. 두 번 째 수술을 받았고 아버지는 다시 회복되셨다. 하지만 몸의 마비는 더 심해지고 인지력도 현격히 저하되었다.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면서 어머니의 돌봄을 받았다. 그러던 주말의 어느 날, 혼자서 집 근처의 초등학교 운동장을 걸으러 가셨던 아버지는 걷다가 쓰러지셨다. 이번에는 일어나지 못하셨고, 어머니는 더 이상 돌봄을 할 수 있는 체력이 아니었다. 자식들이 있는 경기도 근처의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번갈아 입원하셨다가 1년 만에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 향년 여든 둘이셨다.
아버지가 당신의 과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세 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살아내야 했던 시간은 다시 되새기고 싶지 않은 시절이었던 것일까. 독립한 이후 명절이나 휴가 때 고향에 내려가서 보는 아버지는, 매일 등산을 하고 한 달에 한 번의 외출에 틈틈이 집을 수리하고 텔레비전 앞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일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퍼펙트 데이즈, 완벽한 하루. 아버지는 그 하루를 어김없이 살아내면서 남은 삶의 ‘완벽’을 구했던 것은 아닐까. 아버지의 걷기는 그 ‘완벽’을 위해 수행되었던 일종의 의례가 아니었을까. 병이 발병한 이후에도 그렇게 걷기를 멈추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해 질문이 몰려왔다. 그 ‘완벽’이 무너진 이후에 걷기는 회복을 위한 의지였을까. 아니면 추억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어떤 결기였을까. 알 수 없다. 평소에도 별 말씀이 없었던 아버지는 병원으로 옮긴 이후 더욱 입을 닫으셨고 돌아가실 때까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영화의 주인공과는 너무나 다른 일상이었지만, 아버지의 걷기를 떠올리자 어떤 ‘완벽’의 하루가 그려졌다. 그 하루의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글_기린(문탁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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