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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만나러 갑니다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3편 - 동물 부고(訃告)

by 북드라망 2025. 3. 19.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3편 - 동물 부고(訃告)

 

글_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2023).

새벽이생추어리 비질 활동가.

문탁네트워크 공부방, 인문약방 킨사이다 멤버.

오래 머무르고 많이 이동하는 일상을 실험합니다.
 

 

예동동님이 올린 게시글을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2018년부터 내 하루를 채워 준 동동.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동동이는 올해 9살이다. 길고양이로 보면 오래 살았다 싶겠지만 그래도 아직 9살이다. 지치고 피곤한 하루 중 동동이를 만나는 건 행복이었다. 나는 동동이를 만나면 행복했는데 동동이는 어땠을까. 동동~~ 부르면 애오오옹~~~ 대답하며 달려와주던 동동. 너의 빈자리를 언니가 버틸 수 있을까? [1]


나는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 표지 그림에서 동동이를 처음 보았다. 아들 댕댕이와 나란히 있는 동동이를 보고 나는 이렇게 썼다.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2024년 2월 9일. 내가 동동이와 처음으로 만난 날이다. 새벽이생추어리 비질 활동가들과 재개발구역 길고양이 돌봄 현장을 방문했다. 예동동님이 한 명 한 명의 고양이를 소개해줬다. 그 중에 동동이도 있었다. 동동이와의 만남을 기록한 <15회> 글을 읽고 한 선생님은 고양이를 '마리'가 아니라 '명'으로 표기한 이유를 궁금해했다. 나는 '종평등한 언어'에 대한 논의들을 소개하며 내 나름의 생각을 답글로 달았다.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현장에서 처음으로 접한 '종평등한 언어' 교육, "수를 세는 단위 '명'은 현재 '名(이름 명)' 자를 쓰지만, 종평등한 언어에서는 이를 '命(목숨 명)'으로 치환해 모든 살아 있는 존재를 아우르는 단위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잡지 『물결』의 원칙을 참조하여, 나 역시 연재글을 쓸 때 동물을 명命으로 표기하고 있다. 
 

동동이 (출처 : 예동동님 인스타그램)

 

  
한 명의 고양이

동동이는 매년 한 달 정도 얼굴 보기가 힘들다. 6년 동안 항상 그래왔다. 사라져가는 너의 세상을 보기 힘들었던 걸까. 단 한 번도 아프지도 않고 건강하던 동동이가 아지트로 지내던 집의 마당에서 잠들었다. 떠난지 한 시간도 안 된 것 같았다. 내가 한참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동동이는 마지막까지 나를 생각해준 것 같다. 엄마의 마지막을 본 댕댕이와 콩콩이 많이 놀랜 표정이다. 한참 후 자리를 떠난 댕댕이와 콩콩이가 처음 듣는 목소리로 운다. 그들의 슬픔을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슬플 거다. [2] 


<15회> 글에서 나는 다양한 의례를 실천하고 가까운 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물들을 소개했다.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를 쓴 케이틀린 오코넬은 사체를 옮기고, 옆에서 돌보고, 땅에 묻고, 애도하는 동물들의 의례를 연구했다. 예동동님은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댕댕이와 콩콩이가 숨을 쉬지 않는 엄마 곁을 지키고, 평소와는 다른 울음 소리로 슬픔을 표현했다고 전한다. 가까운 인간 동료들은 동동이를 어떻게 애도할 수 있을까? 예동동님과 봉봉오리님은 동동이의 장례 절차를 논의했다. 매장을 할까? 재개발구역에 묻을 곳이 있을까? 아스팔트로 뒤덮인 땅, 중장비가 다 부숴 놓은 땅, 멋진 브랜드 아파트를 세우느라 파헤쳐질 무덤, 인간에 의해 발견되면 종량제 봉투에 버려질 몸.
 

고민 끝에 장소를 찾았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나무 근처에 묻기로 했다. (...) 그러고보면 이 장소는 내가 동동이를 처음 만났던 곳이기도 하다. 동그란 눈이지만 묘하게 싸늘했던 표정의 동동이. 땅이 생각보다 딱딱해서 삽이 필요했다. 근처 빈 집을 돌아다니다 정말 운명처럼 누군가 버린 낡은 삽을 발견했다. 삽으로 땅을 파자, 감자 같은 돌들이 땅에서 자꾸 나왔다. 결국 손으로 파내기 시작했다. 돌을 꺼내고 또 꺼냈다. 얼추 동동이 몸이 들어갈 정도가 되어, 동동이를 데리러 갔다. 그 사이 더 딱딱해져 버린 몸.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 동동이의 몸을 묻기 위해 손으로 들자, 딱딱한 느낌이 이상했다. 유연하고, 말랑하던 동동이의 몸이 이렇게 달라졌다. 모르는 존재 같았다. 손으로 흙을 덮었다. 황량해 보여 꽃을 두고 싶었지만, 이곳엔 꽃이 없다. 누군가 버린 것 같은, 방치된 화분의 말라 비틀어진 꽃 하나를 떼어왔다. 작은 무덤이 되었다. [3]


동동이의 사인은 알 수 없었다. 외상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고양이들이 구내염을 심하게 앓는 동안에도 동동이는 건강했다. 봉봉오리님은 동동이의 사인을 이렇게 유추한다. 봄부터 시작된 것들, 거대한 중장비들이 들이닥쳐 부숴대던 일, 매일 귀가 깨질 것 같은 소리들, 파괴되는 서식지, 은신처를 옮기고 또 옮기는 일, 그러다 에너지가 바닥이 난 것일까? 며칠 후에 봉봉오리님은 다시 재개발구역을 찾았다. 비가 거세게 내리던 날이었다. 엄마를 잃은 댕댕이와 동생 콩콩이가 폐가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사흘 전, 엄마 동동이가 죽은 후, 댕댕이는 변했다. 식탐이 과했던 그는 나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간식을 내미는 나를 피하기까지 했다. 동생인 콩콩이만 간식을 조금 먹었다. 걸어가며 보이는 풍경에 속이 부글거렸다. 전 세계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는 전쟁 지역의 모습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전쟁 없는 세상, 평화. 그런 말에 비인간의 평화는 없다. 탱크 앞에 국화꽃을 놓는 것은 상상할 수 있지만, 분양 홍보지 앞에 애도하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4]


동동이는 폐가 마당에 있는 스크래쳐 위에 누워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애써 숨기지 않은 채로, 누굴 기다리다 잠든 듯한 모습으로. 부고 마지막에 예동동님은 이렇게 썼다. 총총총 달려오던 걸음 정겨운 목소리 단호박색 눈동자 까칠하지만 다정한 마음 앙증맞은 작은 발 안녕 동동:) 동동아, 언니 기다리지 말고 놀고 있어. 언니가 찾아 갈게. 함께 걸어줘서 고마워. 조심히 가. 안녕.  많은 분들이 댓글로 조의를 표했다. 동물에게 댓글로 조의를 표하는 건 처음이어서 뭐라고 남기면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남겼다. 지난 2월에 보고 또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동동아 하고 불렀던 순간을 기억할게요. 그곳에서 평안하기를.
 

2024년 5월 2일 저녁. 동동이의 무덤 앞에서, 우리만의 장례식을 가졌다. 그는 묵념을 했고, 나는 절을 했다. 오전에 보았던, 눈물 자국이 있던 소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은 많은 죽음을 겪는 날이구나. 묵념을 마친 그는 동동이의 무덤에 손을 얹고 조용히 휘파람을 불었다. 그와 동동이가 6년간 나눈 언어 중 하나였다. [5]


 
많은 죽음을 겪은 날
2024년 5월 2일 아침. 새벽이생추어리 비질 활동가들은 도살장 앞에서 소들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트럭에 실려 오는 소들의 눈물 자국을 선명히 기억한다. 활동가들이 같이 낭독하는 비질 낭독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고기로 태어난 동물들의 비극적 현실을 집요하게 응시하며, 그 자리로부터 전해진 장면과 이야기를 퍼뜨리고, 우리에게 공유된 마음을 나누고 기록할 것입니다. 나는 작년에 도살장 돼지들을 만나고 와서 이렇게 썼다. 태연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내 몸에 기록된 돼지들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5월 2일 안양 도살장 비질 (출처 : 새벽이생추어리 비질 모임)

  
몸에 기록된 흔적들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몸들이 퍼뜨린 장면, 이야기,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동물들의 부고에 응답한다. 찜통 된 축사 ... 땀샘 없는 닭, 돼지 집단 폐사 [6] ... 6월 15일 경남 영천시 ASF 25900여 명의 돼지 살처분  [7] ... 2024년 상반기 돼지감금시설 화재 및 사망 총 68701명. [8] ... 복날, 1억 아기새의 죽음 ... [9]
 
그리고 어느 살처분 현장을 찾은 이의 증언.
 

천 명이 넘는 생명이 묻힌 무덤 위에 섰다. 땅이 말랑했다. 그냥 이 장소 같았다. 빛 공해가 하나도 없는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을 비추며 땅을 살폈다. 짙은 회색의 물이 축축하게 고여 있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쌀알 같은 것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구더기였다. 묻은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은 무덤. 그 땅 아래는 국가가 죽여도 된다고 허락한 생명 천 오백 명이 묻혔다. [10]


부고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사체를 옮기고, 옆에서 돌보고, 땅에 묻고, 애도하기. 이름 모를 동물들을 한 명 한 명의 목숨으로 추모하기. 사건의 현장을 추적하며 억울하게 죽은 생명들을 향한 참담함, 분노, 슬픔을 퍼트리기. 이 정동으로부터 인간의 정치적인 책임과 윤리를 질문하기.
 
작년에 비질 모임을 다녀와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죽은 자를 돌볼 수 있는 세계가 있을까.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 새로운 미래를 함께 도모할 수 있을까. 지금의 우리는 이렇게 답한다. 부고에 응답하는 자리마다 산 자와 죽은 자는 만난다. 죽은 자는 산 자를 부르고 산 자는 죽은 자의 부름에 응답한다. 우리는 응답의 자리에서 목놓아 부른다.
 

착취를 위한 감금을 끝내라.
이윤을 위한 학살을 멈춰라.


 
조문 가는 길
2024년 6월 2일. 맑고 선선한 날이었다. 나는 예동동님이 알려준 장소를 찾아 재개발 구역으로 향했다. 작은 돌무더기가 보였다. 옆에 있는 담벼락에는 애도 글귀가 적혀있었다. 동동, 잠들다. 동동, 사랑해. 나는 묵념을 하고 동동이의 무덤 근처에 앉았다. 재개발 공사 현장이 보였다. 주말이라 작업 하는 사람은 없었다. 철거된 자리에는 건물의 골조들이 드러나 있었다. 지난 번에 보았던 나무는 뿌리째 뽑혀 조각 조각 쌓여있었다.

 


 
동동이가 숨을 거둔 장소로 이동했다. 고양이들 이름을 불렀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폐가 마당에는 깨진 유리문이 널브러져 있었고 날카로운 유리 조각 사이로 이름 모를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방 안에는 지난 번에 보았던 돼지 그림이 있었다. 아기들에게 젖을 물리고 정면을 또렷하게 응시하는 엄마 돼지였다.
 
무심코 계단을 오르다가 지붕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초코!
 
단잠을 깨운 불청객의 목소리에 초코는 왜 귀찮게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다리 수술 후에 많이 회복된 걸음걸이로, 다른 안식처를 향해서 어슬렁 어슬렁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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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동동, <동동이와의 이별> : https://www.instagram.com/p/C6eDIHCpMMp/?img_index=1 
[2] 예동동, <동동이와의 이별> : https://www.instagram.com/p/C6eDIHCpMMp/?img_index=1
[3] 봉봉오리, <오늘의 죽음들> : https://brunch.co.kr/@bonbonohri/7
[4] 봉봉오리, <비인간에게도 ‘전쟁 없는 세상’을> : https://brunch.co.kr/@bonbonohri/8
[5] 봉봉오리, <오늘의 죽음들> : https://brunch.co.kr/@bonbonohri/7
[6]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737692
[7] 살처분폐지연대 : https://www.instagram.com/p/C8jOQmiJUWB/?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8] 살처분폐지연대 :  https://www.instagram.com/p/C909UTeyy8M/?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9] https://donghaemul.com/notice/?q=YToy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Q6InBhZ2UiO2k6MTt9&bmode=view&idx=30260574&t=board
[10] 봉봉오리, <친절하게 예고된 죽음> : https://brunch.co.kr/@bonbonohri/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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