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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만나러 갑니다

[돼지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1편 - 지구에 살 자격

by 북드라망 2025. 1. 15.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1편 - 지구에 살 자격

 

글_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2023). 

새벽이생추어리 비보질 활동가. 

문탁네트워크 공부방, 인문약방 킨사이다 멤버. 

오래 머무르고 많이 이동하는 일상을 실험합니다.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비질 모임으로 돼지를 만나온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재개발 구역 고양이 돌봄으로, 동물과 함께하는 설 명절 의례를 기획했다. 
 
현장에서 예동동님을 만났다. 예동동님은 6년 째 이곳에서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틈을 내서 고양이를 만나러 온다고 했다. 봉봉오리님은 『지구에 살 자격』에서 재개발구역과 거주민을 이렇게 소개한다.
 

재개발구역 - 군포의 한 재개발구역. 확인된 고양이 수는 총 60명이지만, 꾸준히 얼굴을 비추는 고양이는 30명 정도다.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밥과 물을 주고, 때로는 치료를 제공하는 이를 '돌보미'라 한다. 식비와 병원비 등의 비용은 돌보미가 부담하고 있다.
 
거주민 - 가장 부지런히 나타나는 고양이로는 동동, 댕댕, 콩콩, 초코, 카레, 짜장, 얼룩, 까미, 모짜, 뽀또, 오잉, 예감, 감자 등이 있다. 대부분 영구적 불임 수술을 한 상태다. 평균 나이 8세의 중년 고양이들이 주로 살고 있었으나, 작년 겨울 한 공장에서 태어난 고양이들이 합류하게 되었다. 현재는 1살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지구에 살 자격』, 12쪽

 

 

 


검은 고양이가 나타났다. 여덟 살의 까미였다. 까미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다가왔다. 햇볕이 있는 땅바닥에 벌러덩 누워 배를 보였다. 예동동님이 능숙하게 까미 식사를 준비했다. 가까이서 보니 검은 털에 크고 작은 이물질들이 많이 보였다. 인근에 있는 공장과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날아오는 오염 물질들이 고양이 털에 많이 묻는다고 했다.
 
재개발구역에는 8살의 까미라는 고양이가 있다. 만나면 살갑게 인사함과 동시에 기분 좋음을 표현하기 위해 곧바로 땅바닥에 누워 뒹굴뒹굴한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 몸을 비비면 옷에 뭔가 잔뜩 묻는다. (...) 고양이는 자신의 몸을 혀로 핥는 그루밍을 한다. 그들의 몸에 묻은 공해는 그렇게 고양이들의 입으로 들어간다. 바닥의 담뱃재도, 미세 플라스틱도, 도시의 분진도, 아스팔트에서 나오는 오염물질도. 재개발구역을 다녀온 날에는 유독 더 깨끗하게 손을 씻고 샤워를 한다. 『지구에 살 자격』, 53쪽   
 
까미 옆에 길고양이 급식소라고 적힌 시설물이 보였다. 급식소 위에는 "길고양이 번식으로 인한 개체수 증가 및 소음을 해결하고자 군포시에서 추진하는 TNR(중성화)을 위해 설치한 시설입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지 않아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길고양이 급식소는 군포시의 자산이며 파손시 재물손괴죄로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 군포시 지역경제과" 라고 적혀 있었다.
 
지역경제과에서 설치한 급식소는 길고양이 개체수를 '관리'하고, 길고양이의 '소음 공해'를 해결하며, 길고양이로부터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시설물이었다. 까미가 그 옆에 누워 그루밍을 하고 있다. 까미의 입으로 들어가는 담뱃재, 미세 플라스틱, 도시의 분진, 아스팔트 조각들... 오염 물질은 충분한데 주위에 흙은 너무 없었다. 고양이는 배변 후에 흙이나 모래를 덮는 습성이 있다. 부모님 집에 가면 다미(남자 고양이, 13살)가 똥을 누는 모습을 종종 본다. 다미는 모래가 깔린 화장실에 들어가 앞발로 구덩이를 판다. 엉덩이를 깔고 구덩이 속에 똥을 배설한다. 쓰윽 쓰윽 모래를 덮어 똥을 감춘다. 13년 째 실수 없이 이어져온 그의 배변 루틴이다.
 
아스팔트 길 위에서는 고양이들이 쾌적한 배변 장소를 찾기 어렵다. 땅 속에 묻지 못한 똥은 사람들 눈에 쉽게 띈다. 길고양이 돌봄을 하다 보면 '고양이 똥'에 대한 민원을 종종 듣는다고 한다. "흙이 없는 세상에서 고양이들의 기본적인 습성은 민원이 되었다."『지구에 살 자격』, 59쪽
 
바닥에 누워 있는 까미를 쓰다듬으며 털에 묻은 이물질을 털어냈다. 급식소 뒤로 또 다른 시설물이 보였다. 고양이들이 사는 겨울집이었다. 보온 소재로 된 겨울집 안에는 지푸라기가 깔려 있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돌보미들이 직접 겨울집을 준비한다고 했다.

작년 겨울엔 알맞은 크기의 스티로폼 박스를 찾지 못해 어떤 고양이는 몸에 꽉 끼는, 어떤 고양이는 혼자 대궐같은 집에 살기도 했다. 집 안에는 습기를 먹어 줄 신문지, 보온을 위한 지푸라기를 넣어주면 된다. 기온이 떨어지는 날에는 핫팩을 신문지에 한 번 감싸고, 늘어난 수면 양말에 쏙 넣어 집 안에 둔다. 고양이는 핫팩의 온기에 기대 밤을 보낸다. 『지구에 살 자격』, 48쪽


까미의 거주지에는 지역경제과의 급식소와 돌보미들의 겨울집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길고양이 돌봄은 돌보미 뿐만 아니라 행정 시스템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동물보호법 법령에서는 길고양이를 "도심지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하여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로서 개체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中性化)하여 포획장소에 방사(放飼)하는 등의 조치 대상이거나 조치가 된 고양이"(「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14조 구조·보호조치 제외 동물, 2023.4.27)라고 정의한다. 길고양이는 자연적이고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동물이지만, 동시에 개체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가 필요한 동물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은 중성화를 “도심지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하여 스스로 살아가는 고양이(이하 "길고양이"라 한다) 개체 수 조절을 위해 거세·불임 등을 통해 생식능력을 제거하는 조치”라고 정의한다.
 
중성화 수술로 남성 고양이는 고환을, 여성 고양이는 자궁, 나팔관, 난소를 제거한다. 수술 후에는 중성화 인증 표식으로 귀의 일부를 잘라낸다. 귀에 남겨진 표식에 따라 중성화를 받은 고양이와 받지 않은 고양이로 분류되는 것이다. 
 

내가 처음 돌보기 시작한 고양이도 이미 왼쪽 귀가 잘려 있었다. 길고양이 급식소에는 불임수술을 당한 고양이가 얼마나 도시에서 '공존 가능'한지 호소하는 문구가 적힌다. 개체 수 조절이 되며, 발정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말. 인류학자 전의령은 '중성화'에 대해 길고양이를 '공존 가능한 대상으로 재창출'하는 기술적 장치라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중성화를 당하지 않아 여전히 '문제적인' 고양이는 잠재적인 민원의 대상, 공존 불가능한 대상에 머무르게 된다. 공존 가능한 신체와 그렇지 못한 신체로. 『지구에 살 자격』, 78쪽


다른 고양이가 나타났다. 얼룩이라고 했다. 얼룩이는 까미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우리를 멀리서 지켜보았다. 얼룩이는 구내염에 걸렸다고 했다. 길고양이는 면역력이 약해 염증에 취약하다. 구내염 증상이 있으면 음식을 잘 먹지 못하고 그루밍을 못해 털이 많이 더러워진다. 무리에서 배척 당해 생존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얼룩이의 상태는 멀리서 봐도 안 좋아 보였다. 그릇에 음식을 담아 줘도 계속 경계했다. 돌보미들은 구내염 약을 밥에 섞어 주었다. 얼룩이는 여전히 멀리서 우리를 지켜볼 뿐이었다. 
  

우리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 골목에 들어섰다. 왼쪽 펜스 너머에는 구겨진 슬레이트 지붕들이 쌓여 있었다. 오른쪽 주택 벽에는 크게 '철거'라고 적힌 빨간 글씨가 보였다. 문짝이 다 뜯어지고 창문도 없어 실내가 다 들여다 보이는 집들이 이어졌다.
 
이 구역에 거주하는 고양이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동동이와 댕댕이를 만났다. 두 고양이는 엄마와 아들 관계라고 했다. 재개발구역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9살 동동이는 아들,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3년에 불과하지만 재개발지역엔 나이든 고양이가 많았다. 그들을 지속적으로 돌봐온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 표지에서 새벽이와 잔디 위로 나란히 앉아 있는 두 명의 고양이가 동동이와 댕댕이다. 아들 댕댕이는 식탐이 많아 엄마 동동이의 간식을 종종 뺏어 먹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쿵 하고 부딪히며 반가워한다. 장난치고, 기대고, 돌보고, 싸우고, 사랑하며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간다."『지구에 살 자격』, 146쪽.

 


 
멀리서 초코가 나타났다. 초코는 제대로 걷지 못하고 다리를 절었다. 한쪽 다리를 아예 못 쓰는 것 같았다. 초코는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다리를 다친 채로 나타났다고 했다.
 

골절 같았다. 철심을 박거나, 절단해야 할 것 같았다. 둘 다 수백만 원이 넘게 든다. 9살의 살찌고 아픈 고양이를 입양할 인간은 없다. 나조차 동거 가족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초코를 병원에 데려가려면 '포획'을 해야 하는데 그는 잡히지 않았다. 부러진 다리를 달고 다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동료들과 식사하면서 톡으로 안락사에 대한 가능성을 들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0쪽


예동동님은 가까이 오면 치료를 위해 포획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초코는 지붕 위에 있었다. 다친 다리로도 절룩이며 사람을 피해 달아났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은 2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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