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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별자리서당

겨울철 별자리 종합세트: 바다뱀자리와 주작

by 북드라망 2013. 2. 7.

무아의 향연, 히드라와 남주작



히드라와 남주작


21세기 서울 한복판에서 별을 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치는 난, 얼마나 행복한가! 원룸 방 한 칸도 얻어 살기 힘든 세상에 자기만의 천문대를 거느리고 사는 난, 얼마나 대단한가! 밤이면 밤마다 저 하늘의 이름 모를 ‘별 밭’을 헤아리는 꿈을 꾸는 난, 얼마나 ‘별 복’ 터진 사람인가!



자, 오늘은 한강과 관악산이 내다보이는, 그리고 아주 가끔 별도 보이는^^, 솔향기 진동하는 나의 천문대로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한다. 계사년이 의미하는 ‘검은 뱀’에 딱 어울리는 별자리가 요즘 막 떠오르고 있으니! 서양 별자리로 ‘바다뱀자리’, 우리에게 헤라클레스가 물리친 머리 아홉 달린 괴물 뱀으로 익숙한, ‘히드라(Hydra)’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보름달을 약 200여개 겹쳐 놓은 길이의 저 별자리는 천구의 장장 100°에 걸쳐 낮고 길게 깔려 있다.(서양 별자리 중 가장 긴 별자리란다!) 별자리가 원채 낮게 깔리는 관계로 열악한 나의 솔숲 천문대에서는 그중 극히 일부만 보인다. 그래서 비얌이라기보다는, 뭐시기... 굼벵이 정도로나 보인다. 그래도 좋다! 우리 천문대는 굼벵이도 뱀으로 보이고 남을 수준급 신심(信心)을 장착하고 있으니!


히드라의 이야기야 뭐 다들 알 것이다. 머리가 하나 잘리면 새 머리가 둘 생긴다는 불사의 괴물 이야기 말이다. 연구실에서 에세이 시즌이 될 때면, 쪽지시험을 볼 때면, 무한증식 하는 그의 머리가 참 부러워진다. 아, 저 머리 반만 내게 있었으면~~!^^ 알고들 계신지 모르겠는데, 동양에도 이와 비슷한 뱀 이야기가 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솔연(率然)’이라는 이름의 뱀이다. 이 뱀은 머리를 치면 꼬리가 달려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비고, 몸통 가운데를 치면 머리와 꼬리가 힘을 합쳐 저항한다. 머리로 안 되니 몸으로 막는 그 모습, 마치 원고 마감을 앞둔 나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각설하고, 흥미로운 건 이 ‘바다뱀자리’가 그대로 남방 주작 별자리의 나머지 별들과 겹친다는 것이다. 류수(柳宿), 성수(星宿), 장수(張宿). 각각 주작의 부리와 목, 모이주머니에 해당하는 별들이다. 나머지 익수(翼宿)와 진수(軫宿)도 바다뱀자리 바로 옆에 면해 있는 ‘컵자리’와 ‘까마귀자리’에 해당하니, 겨울 별자리가 모두 한 큐에 꿰어지는 셈.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으나,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인들은 이들 별자리 모두에 “향연”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다. 류수, 성수, 장수는 정확히 남방 주작의 소화기관에 해당한다.(바다뱀자리로도 마찬가지로 뱀의 머리에서 몸통에 이르는 소화기에 속한다.) 후에 살펴보겠지만 이들의 점성학적인 의미는, 모두 ‘제례와 음식’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컵자리와 까마귀자리 역시 ‘만찬’과 ‘음식’을 상징하는 별자리들이다. ‘컵자리’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술잔이다. 그리고 ‘까마귀자리’는 무화과나무 열매를 따 먹느라 아폴론의 심부름을 잊은 대~단한 이력의 주인공이다.(연구실에도 저런 까마귀들 많다 ㅋㅋ) 왜 이들 모두는 향연 혹은 음식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동서의 점성술사들은 겨울 막바지의 이들 별에서 대체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이 땅과 가장 가까운 낮고 기다란 별자리. 겨울은 대지에 깊은 잠을 부여하였다. 하얀 눈에 덮인 대지는 응축과 부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듬해 봄의 경쾌한 봄눈을 위하여, 고요하면서도 맹렬한 잠 속에 빠져 들어 있다. ‘소진과 소생’의 시기! 이 대목에서 나는 마르셀 그라네의 『중국사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마르셀 그라네는 겨울의 미덕에 대해 말한다.


대지가 인간의 노동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계절이야말로 인간이 세속적이지 않은 관심사에 몰두하는 데 가장 용이한 시간으로 주어진다. (중국사유, 121쪽)


겨울은 만물이 얼어붙는 소멸의 시간, 휴식과 충전이다. 소우주인 인간도 마찬가지. 겨울철 인간은 농한기를 맞는다. 놀고먹는 호시절이다. 그 가운데 비세속적인 화두를 향해 자신의 염원을 모은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목표가 아니라 본질적인 내적 자기성찰을 기하는 시간이 겨울이다. 겨울철에 벌어지는 농한기의 축제는,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달리 이듬해의 풍년 기원 따위의 현세적인 목표를 지향 하지 않는다. 생(生)과 사(死), 소멸과 재생 등. 존재의 근원을 향한 물음으로 피어오르는 것이, 곧 이 시기의 축제다.


(농한기의 축제에서는) 가능한 한 모든 힘을 동원하여 남김없이 소비시켰으며, 스스로도 완전히 소진되게 했다. 산 자와 죽은 자, 생물과 무생물, 온갖 소장품과 생산물들, 인간과 신들, 남자와 여자, 늙은이와 젊은이 모두 한데 뒤섞여 격렬하고도 활기찬 난장을 이루었다.(중국사유, 122쪽)


유위의 삶이 자아낸 모든 분별과 경계들을 지워나가는 강렬한 디오니소스의 시간! 나와 너의 경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생과 사의 경계 등 삶의 자리에 놓인 모든 장벽들 마다 ‘꽃’이 피어오르게 하는 강렬한 시간! 이 축제는 나를 비우는 무아(無我)의 난장이다. 허나 그 도저한 자기 비움이 있기에 소멸과 파괴가 역설적이게도 재생으로, 회춘(回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야말로 소진과 소생의 축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시기에 벌어진 성스러우면서도 광적인 난장을 고대인들은 저 하늘의 별들에 기록해 놓았는지 모른다. 무한증식하는 머리를 가진 바다뱀의 모양으로, 디오니소스의 술잔 모양으로, 까마귀의 모양으로, 혹은 화려하게 날개를 편 상상의 새 주작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것이 오늘 이야기할 남방주작의 별들이다. 눈여겨 봐주기 바란다. 오늘은 별 다섯 개, 통으로 나간다~!



향연의 별자리들



①주작의 부리 - 류수


먼저 주작의 부리, 류수(柳宿)차례다. 바다뱀자리로 치면 뱀의 머리에 해당한다. 여덟 개의 별이 버드나무 가지가 땅을 향해 드리운 것과 같이 연이은 모양이라 해서 버들 류(柳)자를 썼다. 하지만 가만 보면 버들가지보다는 숟가락, 국자 따위의 주방기구들이 떠오른다. 그래선지 류성은 하늘의 주방장에 배속된다. 주로 음식 창고나 연회장 따위를 주관한다. 이 별이 크고 밝으면 풍년이 들고 먹거리가 풍부해진다고 한다. 지난 한 해 나는 연구실 주방에서 주방장 노릇을 했는데, 아마도 이 류수의 영향을 받은 탓 아닌가 한다.^^


우리가 눈 여겨 봐야할 별은 류수 옆에 붙은 “주기(酒旗)”라는 별이다. 뜻을 풀자면 “주막 깃발” 정도 될까나. 이름만으로도 흐뭇해지지 않는가? 그렇다. 우리가 좋아하는 술집 별자리다. 모양도 3개의 별이 소담스럽게 연이은 게 마치 청아한 소주잔이 연상된다. 이 별은 잔치와 음식을 주관한다. 축제의 별, 뒷풀이의 별이다. 이 별이 밝거나, 혹은 오성이 이 별 주위로 모두 모여들거나 하면 천하에 큰 잔치가 생긴다. 얼마 전 연구실 카페마담 자리를 꿰찬 붕어양이나, TG스쿨에 카페를 창업한 쏭 마담은 이 별을 눈여겨보길 바란다. 그대들의 ‘영업’을 보증해 줄 ‘주막 깃발’ 별자리다.

②주작의 목 - 성수


다음 차례는 주작의 목, 성수(星宿) 되시겠다. 일곱 개의 별이 길게 연이은 것이, 어째 영락없는 주방도구다. 길쭉한 국자라고 하면 적당하려나? 생김새가 흡사 술 푸는 국자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이 별 역시 향연의 별자리로 본다. 먹을 복을 주관하는 주작의 목, 별자리다. 혹은 이 별을 왕비와 신하를 주관하는 별로 보기도 한다. 이 별을 통해 왕비와 신하의 안위를 점쳤다. 그런데 별자리의 변화를 판단하는 성수만의 판단 기준이 있다. 바로 ‘반짝임’이다. 이 별은 유독 반짝반짝 빛나는 특징이 있다. 이 반짝임이 평소보다 격하면 점성학적으로 굉장히 좋지 않은 조짐으로 여겼다. 서양 점성술가들도 이 별의 반짝임에 주목했다. 이 별자리 중에 가장 서쪽에 있는 별은 ‘바다뱀자리’ α별로 알파드(alphard)라 부른다. 흔히 이 별은 ‘고독’의 상징으로 통한다. 왜 고독인가? 이 별은 특유의 붉은 빛으로 저 홀로 밝게 빛나기 때문이다. 스산한 겨울 밤에 그 빛은 한눈에 고독한 정조를 자아낸다. 사람들은 이 별을 보고 심장을 떠올렸다. 바다뱀의 형상으로 볼 때 이 별은 뱀의 심장 부위에 해당한다. 심장이 박동하듯 붉은 빛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이 별은 소한 무렵 하늘의 주인이다. 남쪽하늘 낮은 곳에서 심장처럼 펄떡거리는 별자리가 있다면 꼭 눈여겨 봐두기 바란다. 당신은 지금 고독의 별 알파드, 남방주작의 목 성수를 보고 있는 것이다.
 
③주작의 모이주머니 - 장수


장수(張宿)는 남방 주작의 모이주머니 별이다. 생김새도 영락없는 모이주머니다. 모이주머니는 음식을 주관하는 곳이므로 이 별은 하늘의 부엌을 주관하는 별로 여겨졌다. 모양을 보면 6개의 별이 사탕포장지 모양으로 연이어 있다. 그중 가운데의 마름모 모양을 이루는 것이 주작의 모이주머니에 해당한다. 이 네 별이 가운데로 모여들면, 모이주머니가 졸아붙는 형국이므로 그 해에 흉년이 든다거나 기근이 발생하게 된다. 반대로 이 별이 밝고 크면 나라의 경제가 번성하고 풍족해진다.


오른쪽에서 순서대로 류수, 성수, 장수의 위치이다.


④주작의 날개 - 익수


익수(翼宿)는 남방 주작의 날개 별자리다. 자그마치 22개의 별이 주작의 화려한 날개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이제까지 별자리들이 술과 음식을 의미했다면, 익수는 연회에 흥을 더할 음악의 별이다. 주작이 커다란 날개로 하늘을 차오르는 모습을 연상해 보라. 날갯짓에 맞춰 세상에 울려 퍼지는 웅장한 바람의 노래가 연상되지 않는가. 예로부터 익성은 예악을 주관하는 별로 여겨졌다. 이 별이 밝고 크면 예악이 흥하게 된다. 익수는 서양별자리로는 ‘컵자리’에 해당한다. 이 별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난무하지만 주신 디오니소스의 술잔이었다는 설이 가장 마음에 든다. 디오니소스의 축제가 벌어질 때마다 한 잔 가득 넘치게 포도주를 따르던 술잔. 이 별은 노래와 술이 어우러진 한바탕 축제와 함께 해온 별인 셈이다.

⑤주작의 꼬리 - 진수


마지막으로 주작의 꼬리인 진수(軫宿)를 보자. 겨울 별자리엔 없는 게 없다. 술과 음악과 노래, 심지어 수레도 있다. 진(軫)은 수레라는 뜻이다. 이래저래 노는 데 필요한 건 거의 다 갖춘 셈이다. 별의 모습을 보니 네 개의 주황색 별이 한데 모인 것이 영락없는 수레의 모습이다. 그 모양도 굉장히 밝고 아름답다. 그래서일까? 옛 사람들은 이 별자리가 천자가 타고 다니는 수레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이 별자리 곁에는 수레의 바퀴처럼 양쪽의 축이 삐져  나와 있는데, 이는 천자를 보필하는 제후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각각 좌할(左轄)과 우할(右轄)이라 한다. 이들 바퀴 부분이 진수보다 밝으면 나라에 모반이 일어나고, 진수에서 멀어지면 제후가 천자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고 한다.


오른쪽이 익수, 왼쪽이 진수이다.



겨울 별자리 연재를 마치며- 별을 들어라


소멸과 죽음이 지배하는 시간, 겨울은 응축의 시간이다. 분별된 형상들을 모두 비워내는 시간. ‘나’를 버리고 하나가 되는 시간. 소리 없이 빛나는 저 별들을 바라보다 문득 저 별들이 듣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듣고 있구나!


듣는 ‘나’ 없이도 들리는 게 소리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도, 잠을 잘 때도, 우리는 듣는다. 무언가를 고집하는 ‘나’가 있으면 오히려 들을 수 없다.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니, 라는 말을 하지 않던가. 누군가 말을 안 들어 먹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시 강한 아집을 가진 사람이리라.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어떤 것에 온전히 귀를 열 수 있다. 듣는 가운데 우리는 ‘나’가 아니라 ‘하나’가 된다.


듣는다는 것은 겨울에 참 어울리는 감각이다. 나는 나를 둘러싼 무수한 존재들과 더불어 존재한다. 그러한 관계들 자체가 나다. 이때 듣는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동서남북 사방의 모든 관계들을 하나로 끌어 모은다는 의미다. 우리는 모든 방향의 소리를 듣는다. 뒤편의 소리를, 담벽 너머의 소리를, 방향의 여하에 구애됨 없이 우리는 듣는다. 고로 듣는다는 것은 응축이고, 소진과 소생의 겨울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의역학에서도 귀(耳)를 겨울의 수(水)에 배속하고 있지 않던가.


문득 떠오르는 일화 하나가 있다. 어떤 사람이 마더 테레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당신은 기도를 할 때, 신과 어떤 대화를 합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직 신의 소리를 들을 뿐입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신은 그럼 뭐라고 말하십니까?’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도 그저 들을 뿐입니다.’ 나도 듣고 신도 듣는다. 이것이 겨울의 풍경이고, 수(水) 기운을 쓰는 우리 마음의 풍경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듣는다는 것, 그것은 기도이고, 시(詩)이고, 그리고 별이다. 별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나만의 천문대에서 별을 보며 지낸지 어느덧 일 년 반이 지났다. 있는 대로 눈을 찡그려 가며 뵈도 않는 별자리를 그리려 애쓰던 시간들. 가끔 내 눈 앞에 파편의 별들이 별자리로 떡하니 나타나던 날, 그 희열을 잊을 수 없다. 어떻게 저 별과 대화할 것인가? 잃어버린 옛 천문학의 자취를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머리를 싸매고 ‘점성학’이라는 해괴한 분야를 파 들어갔다. 헌데 일 년 반에 걸친 대대적인 삽질(?) 끝에  배운 것이 있다면 이것 하나다. 별은 듣는 것이라는 거. 별을 보려고 하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왜냐면 별도 듣기 때문이다. 별은 세상을 주재하고 주관하는 게 아니라 오직 듣는다. 온전히 듣기 때문에 세상과 응(應)하고 감(感)하는 것이다. 보려고 하면 볼 수 없다. 자 이제 하늘을 보지 말고 듣자!


_손영달(남산강학원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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