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가을남자들이여, 하늘을 그물질하라!

사냥꾼의 그물 혹은 하늘의 눈물
-상강의 대표별자리 필수


손영달(남산강학원 Q&?)


수렵의 추억


이슬 시리즈의 종결자 상강(霜降)이 지났다. 서리가 내리고 초목이 시드는 때, 단풍의 빛깔은 하루가 다르게 농익어가고, 가을 막바지의 따순 볕 속에 낙엽이 하나 둘 부서져 내린다. 이 시기를 형용하는 참으로 빤한 멘트가 있으니, 바로 ‘낭만’이다. 낙엽과 함께 찾아온 우수, 바바리 끌고 다니는 남자의 계절…… 여기 동의하시는 분들이 혹 계실라나 모르겠다. 대체 이 계절의 어디에서 낭만이란 두 글자를 읽어낸 것인지, 나로선 당최 납득이 안 되는 이야기다.


노총각 둘이 부르는 <낭만에 대하여>. 그들은 결혼할 여자의 수렵을 향해 우즈베키스탄까지 날아간다. 오른쪽의 수더분한 남자는 이 글의 필자인 손무당과 닮았다... 쩝!!


이곳 필동 골짜기는 벌써부터 뼛속시린 한기가 가득하다. 그 옛날 필동에 살았다는 간서치(看書痴) 이덕무가 아침에는 동쪽 창가에 책상을 놓고, 점심때는 남쪽, 저녁때는 서쪽 창가로 햇살을 따라 책상을 옮겨 가며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 있지 않은가? 필동에 실제로 살아보니 알겠다. 오죽이나 추웠으면 자리를 옮겨 다니며 글을 읽었으랴! 근래에 북드라망의 명편집자 류도사를 본 적이 있는 분들은 알 것이다. 이 한 철 살아남기 위해 우리 중년 남성들은 얼마나 볼품없는 털옷을 해 입어야 하는가! 만물이 헐벗는 시기, 낭만은 고사하고 자신의 적나라한 비루함과 직면해야 하는 때가 가을이 아닐까? 이 원고 역시 해가 드는 자리를 찾아 노트북을 옮겨 다니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쓰여졌다는 애절한 사연을, 독자 분들께서 부디 헤아려 주셨음 하는 바람이다.^^


얼마 전 가을 남자의 본 면모를 확인하게 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여느 날처럼 나는 뵈도 않는 별자리를 꼽으며 남산 산책길을 따라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감나무 위에 웬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부스럭거리고 있는 것 아닌가. 반쯤 벗어진 머리, 악착같이 뭔가를 움켜쥐고 있는 손! 가까이서보니 그는 늙수그레한 중년 남성이었다. 감나무 위에서 그는 감서리를 하는 중이었다. 때는 자정도 훨씬 넘은 야심한 시각. 무엇이 그로 하여금 저 노구를 이끌고 아득한 감나무 위에 오르게 한 것일까. 일순 깨달았다. 저것이야말로 가을 남자다! 죄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의 가늣한 눈매에서, 석기시대 인류가 문명의 첫 걸음마를 떼던 아주 먼 옛적부터, 우리 깊은 곳에 녹아든 가을 본능을 읽고 말았다. 먹잇감을 찾기 위해 부단히 돌도끼를 던져대야 했던, 과실을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무 위에 기어오르던 인간의 수렵채취 본능 말이다. 바바리를 끌며 담배나 태우는 건 별로 가을스럽지 않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 닥쳐올 추위 속에 살아남기 위해선 뭐든 그러모아야 한다. 


가을은 금(金)의 계절이다. 금은 팽팽하게 경계를 치고 가두는 기운이다. 경계 안에 들어오는 것은 포획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그렇기에 가을의 금기(金氣)를 숙살(肅殺)의 기운이라 한다. 가을에 만물이 결실을 맺고 수확을 거두는 건 천지가 금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이치다. 금의 기운을 받아 초목은 열매를 맺는다. 딱히 뭔가를 생산할 게 없는 우리 즘생(?!)들은 수렵채취를 한다. 이때 활용되는 감각은 후각이다. 먹잇감을 찾기 위해선 부지런히 코를 킁킁거려야 한다. 우리의 감각기관중 코(鼻)가 금에 배속된 것은 아마도 이런 이치가 아닐까 한다. 


코보다는 피부인기라~~ 니 내 말 잘 들으레이~ 먹잇감을 찾기 위해서는 피부부터 고쳐야 하는 기라~~ 피부도 금기와 연관되어 있다는 거 니는 모르제~?! 가을은 이 팽팽한 피부로 말하는기라~ 알겠나??


72절후의 설명에 따르면 상강의 첫 5일 동안을 ‘표내제수(杓乃祭獸)’라 한다. 뜻은 ‘승냥이가 산짐승을 잡는 때’이다. 소싯적에 시골 생활 좀 했던 이 몸도 이맘때가 되면 토끼잡이에 몸이 달았던 기억이. 여튼 만물의 수렵채취 본능이 절정에 달하는 게 곧 상강의 풍경인 것이다. 상강, 바야흐로 사냥의 계절이 찾아왔도다!


사냥꾼의 그물, 필수(畢宿)


상강의 밤하늘을 지배하는 것은 필수(畢宿)다. 서방 백호의 용맹한 등짝, 사냥감을 겨누며 날렵하게 자세를 낮출 때 솟아오르는 부위에 해당한다. 이 별의 생김새는 흡사 새총과 같다. 여덟 개의 주황색별이 Y자 모양으로 예각을 그리고 있다. 이 별자리에 붙은 이름 필(畢)은 사냥에 쓰이는 자루 달린 그물의 상형이다. 저 하늘의 별 역시나 사냥의 별자리라는 점, 흥미롭지 않은가?


난 그냥 뛰어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별자리의 생김새를 가만 뜯어보니 새나 토끼를 잡기 위해 힘껏 그물을 던지는 모양이 연상된다. 여기서 필(畢)이 의미하는 그물은 금(金)기운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물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윤곽을 그린다. 그 경계 안에 들어오는 사물을 단단히 가두고 그러모은다. 그 안에 걸려드는 사물은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된다.


점성학에서 필수는 수렵과 형벌을 주관하는 별로 본다. 『천문류초』에서는 “필(畢)은 변방 병사의 수렵하고 훈련하는 것을 주관한다.”고 말한다. 옛 사람들은 이 별을 천하를 그물질하는 천자의 그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 별의 세력이 강하면 변방의 오랑캐들이 복종해왔고, 그렇지 않으면 병란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또 필성이 자리를 옮기면 그물에 소란한 일이 일어나는 형국이므로 감옥에서 죄인들이 탈옥을 하거나 난리를 일으킨다고 보았다.


한편, 이 별은 비를 주관하는 별로도 유명하다. 필수의 닉네임은 우사(雨師)이다. 하늘의 비를 주관하는 관리라는 뜻이다. 형벌과 사냥의 별이라더니 갑자기 비가 웬 말이냐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다. 이 해석은 아마도 천문이 국가(군국점성학)로 포섭되기 이전, 오랜 세월 민중들이 하늘을 보고 천지의 운위를 읽던 민간의 풍습에서 전래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맘때쯤이면 꼭 스산한 가을비가 내리는데, 아마도 필성은 가을비를 예측하던 지표였으리라.


그 유명한 삼국지에 오늘의 주인공 필수(畢宿)의 이야기가 나온다. 화자는 그 유명한 제갈공명. 위나라 군사의 침입에 직면하여 노심초사하는 왕평에게, 공명은 배짱도 좋게 ‘쫄지마~’ 이 한마디 멘트를 날려주신다. 전쟁 걱정 할 것 없이 1천명의 군사만 대비시키면 된다고 호언장담한다.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공명은 말한다. 달의 궤도에 필성이 들어오면 큰비가 오는데, 지금 필성이 달에 걸렸으므로 머지않아 큰 홍수가 휩쓸고 갈 것이라고. 그의 말 대로 얼마 뒤 큰 비가 내렸고, 홍수 덕에 그의 나라는 전쟁을 모면할 수 있었다. 제갈공명, 그는 지략가이자 전술가이기 이전에 하늘의 움직임에 정통했던 천문학자였던 셈이다.


샤냥의 별 혹은 비의 별. 필수는 두 얼굴의 별자리다. 우연의 일치인지, 흥미롭게도 다른 문화권에서도 이 별을 비의 별자리로 기억하고 있다. 조금 시야를 넓혀서 대륙의 저편 그리스로 건너가 보자.


하늘의 눈물, 히아데스성단


필수의 Y자 그물은 서양 별자리의 황소자리와 겹친다. 그리스의 목동들은 이 별이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파(Europa)를 유혹하기 위해 황소로 변한 제우스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Y자의 예리한 선분에서 그들은 황소의 눈과 광대뼈와 목을 연상했다.


좌측상단의 붉은 별이 황소의 눈알 알데바란, 이로부터 아래로 날렵한 Y자를 그려보자. 오른쪽 끄트머리의 별 무더기가 지난시간에 다룬 좀생이별, 플레이아데스성단이다. (이래도 모르겠니?) -캡션제공자 손무당

필수를 관찰해보면 좌측 끄트머리에 영롱한 붉은 광채를 발하는 엄청 밝은 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은 이를 필대성(畢大星)이라 불렀고, 그리스인들은 알데바란(Aldebaran)이라고 불렀다. 알데바란은 ‘황소의 눈알’이다. 성난 황소가 붉은 눈을 부라리듯 이 별은 굉장한 광채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고대의 별바라기들은 이 별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알데바란을 빛의 전령이라 보았고, 유대인들은 신의 눈이라 생각했다. 세차운동으로 별들이 선회한 궤적을 기원전 3천년 경으로 되돌려보면, 황소자리는 지금과는 정반대로 춘분점이 위치하는 별자리였다. 당시의 천문학자들은 이 별을 봄을 알리는 표지로 삼았다. 봄을 알리는 전령사, 이 별에서 사람들은 만물의 소생을 알리는 신 목소리를 들었다.


황소의 눈알, 알데바란을 제외한 V자의 별들은 ‘히아데스(Hyades)’라는 이름의 산개성단이다. 히아데스라는 이름은 ‘비가 내리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이 별은 말 그대로 우기의 시작을 알리는 별자리였다. 히아데스가 뜰 무렵 내리는 비를, 그래서 ‘히아데스의 눈물’이라고 했단다. 물론 이는 기원전 3천 년 전, 이 별이 봄의 지배자이던 시기의 일이다. 시공의 격차를 넘어, 그리고 천체의 무상한 변화를 넘어, 이 별이 민중들에게 비의 별로 인식되었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천자의 수레, 오거성


맨 위의 꼭짓점은 무시하고 아래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천창, 천옥, 사공, 천고, 경. 서양의 마차부 별자리와 겹친다. -캡션 제공자 손무당

필수에 속한 별 중 빼 놓지 말아야 할 별자리가 있다. 필성의 위에 자리한 오거성(五車星)이라는 별자리다. 이 별은 하늘의 다섯 수레다. 이에 천자의 수레라는 별칭이 붙었지만 천자가 타고 다니는 전용 자가용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이 다섯 별은 트럭이다. 용도는 수확철 보도 자료를 위한 천자의 인증샷. 수확철 들판에서 짐칸에 잔뜩 곡식을 부려놓은 채, 어색한 농부 복장을 한 왕이 인증샷을 날리는 장면을 상상하면 되겠다.


재미있는 것은 다섯 별은 각기 다른 용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 서북쪽의 별은 천고(天庫)라 하여 콩을 주관하며, 동북쪽의 별은 천옥(天獄)이라 하여 쌀을 주관한다. 동남쪽의 별은 천창(天倉)이라 하여 삼베(麻)를 주관하고, 중앙의 별은 사공(司空)이라 하여 기장과 조를 주관한다. 그리고 마지막, 서남쪽의 별 경(卿)은 보리를 주관한다. 이 다섯 수레는 자신들의 짐칸에 실린 다섯 곡식을 주관하기에, 그 별의 밝기를 보고 해당 작물의 작황을 점쳤다.


그리스인들도 이 별자리를 마차의 상징으로 보았다. 이들은 여기에 ‘마차부’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스에서 이 마차의 용도는 트럭이 아니라 휠체어에 가까웠다. 그리스인들은 이 별을 아테네의 왕 에리크토니오스의 불편한 다리를 대신해 준 4두마차라고 봤단다. 양을 치며 하늘을 봤던 그리스인들과 농사를 천하 사업의 근간으로 보았던 중국인들이, 얼마나 비슷하면서도 다른 별자리를 구성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상, 필수에 얽힌 별자리들의 어지러운(?) 퍼레이드를 살펴보았다.^^ 때는 가을의 마지막 달인 술월(戌月). 겨울이 가까워 오면서 밋밋했던 초가을 밤하늘이 점차 화려한 빛깔로 변해간다. 하늘도 땅도 가을의 마지막 끄트머리를 쥔 채로, 분주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 가을엔 달님이 필수를 사뿐히 즈려밟고 지나가셨는지, 엊그제는 정말 싸늘한 가을비가 천지를 휩쓸고 지나갔다. 무섭게 곤두박질치는 기온은 혹독한 너무나도 혹독한 필동의 추위를 걱정하게 만든다. 올해 김장은 어떡해야 할지, 열악한 연구실 주방의 겨울 설거지는 어떻게 해결할지… 쓸데없는 걱정으로 궁상을 떠는 내게, 저 하늘의 필수는 묻는다. 올 한 해 그대는 무슨 사냥감을 잡았는가? 그대의 수레엔 어떤 곡식이 채워졌는가? 자, 모두 수확과 결실을 향한 막바지 금기(金氣) 발휘에 전념할 때다.


일단 한숨 좀 자고~~^^ 수확이 없으면 이 가을의 맑은 하늘이 저주스럽고 이 가을의 추위는 더 하다. 젠장! 세상엔 낭만이란 추호도 없는 일상뿐! 별이라도 보면서 울적한 마음을 달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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