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과 시체가 있는 풍경 -정수와 귀수
손영달(남산강학원 Q&?)
겨울 하늘에서 삼각형을 찾아주세요
어느덧 겨울 막바지다. 대한(大寒) 지나고 나니 쌓인 눈들이 거짓말같이 사르르 녹아버리고 나뭇가지마다 하나 둘 봄눈이 맺히기 시작한다. 수줍게 맺힌 봄눈 아래에는 눈 녹은 물이 아슬하게 걸쳐 있다. 넋 놓고 앞산 자락을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겨울 석 달이 이렇게 가버리고 말았음을. 입춘이 내일 모렌데, 겨울 별자리 연재를 한답시고 뒷북을 치고 있는 난 대체 뭔가.^^ 자, 정신 차리고 부지런히 진도(?!)를 빼야겠다.
너 이러고 있었던 거 천하가 다 안다!!!^^ 내부고발자가 있었어~~. 아무튼 오늘은 또 어떤 별에서 헤매게 될지 궁금궁금~
겨울 하늘을 본 적이 있는가? 어린 시절 내게 겨울 하늘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귀신보다 무서운 게 차갑게 타오르는 겨울 하늘의 별들이었다. 1등성들로 빼곡한 겨울 하늘의 별들은 섬득함 그 자체였다. 밤길을 홀로 걷노라면, 사나운 기세로 빛나는 겨울 별들에게 영혼이라도 빨아 먹힐 듯 한 기분! 그런데 서울에 오니 이런 겨울 하늘이 참으로 만만하다. 매연과 도심의 불빛에 중화된 서울의 겨울 하늘은 그야말로 적당한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앙갚음이라도 하듯, 요새 나는 겨울 하늘을 오래오래 주시한다.(별자리 연재 쉬는 동안, 결코 논 게 아니라는 거!)
아무리 봐도 대충 찍어놓고 삼각형만 그린 것 같다니까. 내가 이상한 거니~
각설하고, 온갖 화려한 별들이 웅성거림으로 가득한 겨울 하늘에서 길을 찾는 법을 알아보련다. 가을 하늘의 길잡이는 페가수스 ‘사각형’이었다. 겨울 하늘에서는 오리온 옆에 ‘삼각형’을 표지로 삼는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질 무렵 동쪽 하늘을 보면 겨울철의 삼각형이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 지난 시간에 연재한 오리온자리와 바로 맞닿아 있다. 늠름한 오리온의 왼쪽 어깨, 동양 별자리로 치면 삼수(參宿)의 “좌장군”이 삼각형의 한 축이다. 그리고 작은 개자리의 프로시온이 또 한 축이다. 프로시온은 동양의 별자리로 치면 오늘 이야기할 정수(井宿)에 속한 남하(南河)라는 별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축은 주극성에 속하는 시리우스, 동양의 천랑성(天狼星)이다. 이 세 별이 통칭 “겨울철의 대삼각형”이다.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이 세 별을 찾았다면 겨울 하늘에 길잡이가 될 좌표가 세워진 셈. 여기서부터 남방주작 별자리들의 현란한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여기서 잠깐! 왜 겨울 별자리를 “남주작”이라 부르는지 의아해하는, 수준 높은 독자 분들이 계실 듯하다. 남주작은 여름의 화(火)기운이므로, 이름대로라면 여름 별자리의 이름으로 쓰이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우리는 땅에서 하늘을 올려본다는 것. 마치 거울에 맺힌 상이 좌우가 뒤바뀌듯, 이 과정에서 밤하늘의 별들도 전도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름 하늘엔 북 현무, 겨울 하늘엔 남주작의 별들이 주인공이다. 그렇다고 여름에 북방의 수기운, 겨울에 남방의 화기운이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북현무의 별자리들은 발산의 화 기운을, 남주작의 별자리들은 응축의 수 기운을 상징한다. 앞으로 살펴보게 될 겨울별자리들은 주작처럼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는 별들 일색이다. 하지만 이들은 대개 죽음과 소멸을 주관하는 신들이다. 시체를 상징하는 별, 상여를 상징하는 별, 귀신을 상징하는 별 등등. 어쩌면 내가 겨울 별자리들에서 유독 공포감을 느껴온 것도, 저 하늘의 음침한 수기운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일지 모른다.(나 느낌 있는 남자^^)
시원의 별, 정수
남방 주작 별자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우물 별자리 정수(井宿)다. 남방주작의 도상으로 보자면 이 별자리는 주작의 머리에 해당한다. 머리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동양의 의학에서는 머리 안에 하나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고 생각해, 이를 뇌해(腦海)라 불렀다. 별자리의 경우도 마찬가지. 주작의 머리에는 생명의 물이 솟아오르는 우물 별자리, 정수가 자리하고 있다. 겨울을 상징하는 별의 첫 머리가 우물(水)을 뜻하는 것이니 그 의미도 적절한 듯. 별자리의 생김새 또한 우물과 같다. 정수는 여덟 개의 별이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연이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정수는 날개 부위에 있는데??^^ 머리쪽을 향하고 있긴 하다. 새에겐 날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이 별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사마천의『사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劉邦, BC247~195)이 중원의 패권을 장악할 무렵 오성(五星)이 태백성(금성)을 필두로 하여 모두 정수 근처에 모이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자, 이 사태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오성이 우물 주위로 모였으니, 뭐 생수사업으로 돈이라도 번다는 걸까?
먼저 정수의 점성학적인 의미를 알아보자. 물은 생명의 근원이요, 뭇 생명체의 시원이다. 그리고 우물은 그것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따라서 우물 별자리 정수는 생명의 근원이 솟아나오는 출구, 시원으로 무한히 거슬러 올라가 마주하게 되는 궁극의 근원을 상징한다. 국가에 봉사했던 점성학자들은 그것을 “황족”이라고 해석했다. 왕이란 곧 국가의 중심, 근원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성이 모였다는 것은 왕의 주변에 세력이 집결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 당대의 많은 패자 중 어떤 왕을 일컫는 것일까. 정성에 상응하는 영토를 지배하는 왕, 곧 한나라의 유방을 일컫는다. 그리고 태백성(금성)을 필두로 오성이 집결했다는 것은, 금(金)이 군사를 상징하므로 무력으로 천하를 얻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과연 유방은 항우라는 쟁쟁한 장수를 누르고 중원 땅을 평정하는 데 성공한다. 비천한 서민 출신의 날건달 유방이 통일 제국 한의 우두머리로 등극 하리라는 것, 당대의 술사들은 겨울 하늘의 정수에서 그 조짐을 미리 읽어냈다.
바로 이 분께서 남극성의 빛이라고 불리는 분! 이마가 훤칠 하신 게 빛날만 하다!^^
정수는 그 밖에 물, 생명을 주관하는 별로도 본다. 정수는 휘하에 18개의 별자리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들은 대개 물, 구체적으로는 치수를 점치던 별자리들이다. 수명을 관장하는 “노인성”이라는 별도 있다. 양생이 필생의 목표이던 도교 수행자들이 열성으로 섬기던 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멀리 고려시대 무렵부터 노인성을 기리는 제를 올렸다. 노인성을 보면 오래 산다는 속설도 있었다. 그만큼 민중들에게 강한 의미로 각인되던 별인 것. 그러나 이 별을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인성의 별칭이 남극성(南極星)이다. 남쪽하늘에서 간신히 볼 수 있는 별이라는 뜻이다. 겨울에 제주도나, 남해 바다에 위치한 산봉우리에 오르면 운 좋게 만날 수 있단다.
귀신의 별, 귀수
남방주작의 두 번째 별은 주작의 눈, 귀수(鬼宿)다. 귀신 귀(鬼), 말 그대로 귀신 별자리다. 주작은 귀신을 보는 새라는 말인가? 이 별은 동지 무렵 겨울 밤하늘의 주인공이다. 동지는 일 년 중 음(陰)의 기운이 정점에 오르는 때이다. 음이 왕성해 지므로 이 날 귀신이 활개를 친다. 그걸 막자고 동지 날 우리 팥죽을 쑤어 먹지 않던가. 아무튼 이 무렵 하늘의 지배하는 별에 사람들은 귀신의 별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생긴 모양도 이름값을 한다. 3.5등급 이하의 어두운 네별이 마름모 모양을 이루는데, 그 안에 마치 눈동자처럼 희뿌연 별이 하나 담겨 있다. 어둡고 음산한 것이, 이름 그대로 귀신을 보는 눈의 형상이다. 그 중 사각의 틀이 귀신의 별 귀수이다. 옛 사람들은 이 별을 시신을 나르는 상여에 비유했다. 이 별이 사망과 질병을 주관한다고 보았다. 한편 이 별로 국운을 점칠 경우, 간사한 음모를 감찰하는 하늘의 눈(天目)이라고 이해했다. 이 경우 동북쪽의 별은 말을 모으는 일을, 동남쪽의 별은 병사를 모으는 일을, 서남쪽의 별은 베와 비단을 모으는 일을, 서북쪽의 별은 금과 옥을 모으는 일을 맡는다. 이 네 별에 변화가 있으면 그에 응하는 일에 부정한 사건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귀수 안에 있는 눈동자 별은 적시(積尸)라 한다. 시체가 쌓인다는 의미로, 사망과 상례, 제사를 주관하는 별이다. 이 별들은 음(陰)이 절정에 이른 시기의 별인만큼 어두운 것이 좋다고 보았다. 이 별들이 밝거나 움직이면 질병이 창궐하고 죽음이 만연할 징조이다.
흥미롭게도 서양의 별자리에서도 이 별을 시체의 별로 본다. 귀수는 황도 12궁의 별자리 중 “게자리”의 몸통과 겹친다. 게자리는 헤라클레스와 싸우다 죽은 게의 시체가 별자리로 된 것이다. 제우스의 부인 헤라는 제우스가 바람을 피워 낳은 헤라클레스를 미워하여,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와 혈전을 벌이는 순간 게를 보내 히드라를 돕게 한다. 하지만 게의 집게발 정도로 영웅 헤라클레스를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헤라가 보낸 게는 헤라클레스에게 난자되어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다. 이를 가엾게 여긴 헤라 여신은 게의 시체를 하늘로 올려 보내 별자리로 만드는 데, 그것이 게자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게자리 안에 있는 적시(積尸)는 프레세페 성단이라 불린다. 자세히 보면 하나의 별이 아니라 여러 별이 무리를 이룬 성단이라는 것이다. 이 별이 성단이라는 것을 알아낸 인물은 그 유명한 갈릴레오. 손수 제작한 망원경으로 세밀히 이 별을 관측한 결과 희뿌연 이 별의 실체를 밝혀 낸 것이다. 그런데 동양의 천문학자들도 일찍이 이 별이 성단임을 간파했던 듯하다. 이순지는『천문유초』를 지으며 이 별에 “적시기(積尸氣)”라는 부연 설명을 달아 놓으며, 단일한 별이 아니라 기운으로 이루어 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별이 성단이라는 것과 통하는 주장이다.
감 잡았어! 성단이란 별들의 시체놀이라는 거! 귀수가 이런 놀이에 빠진 별이라는 거! 인간도 별이라고 하니 저것도 성단쯤 되겠군^^
자, 이로써 겨울 별자리의 초입을 지나오게 되었다. 겨울 별자리의 현란한 외양과 달리 그 안에는 우물과 시체가 있는 음산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겨울 하늘에 대고 ‘저별은 나의 별~’ 운운하는 철 지난 유행가를 흥얼거리지 말라! 멋모르고 가리킨 저 하늘의 별이 시체와 귀신과 제사를 주관하는 죽음의 별일 확률, 99.9%다. 겨울 별자리는 경박한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겨울이란 소멸과 죽음의 시간이라는 것, 죽음은 그 자체로 삶을 이루는 또 하나의 마디라는 것, 그것을 온전히 긍정할 때 새로운 도약과 생성이 비로소 가능할 수 있다는 것. 겨울 밤하늘은 우리에게 죽음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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