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봄하늘에서 빛나는 조화의 저울, 묘월(卯月)의 별자리

우주의 축(軸) 맞춰라 -조율의 별 저성 이야기



음양이 조화되는 묘월의 별, 저성


꽃부터 먼저 피고 보는(?) 개나리꽃은 봄의 전령사라고도 불린다.


하도 볕이 좋기에 간만에 산책길에 나섰다. 동면하던 짐승들이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 여기 쓰인 ‘놀랄 경(驚)’자를 보시라! 그냥 잠에서 깨는 게 아니라, 우레 소리에 깜짝 놀라 후다닥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약동하는 목(木)의 분출력! 죽은 듯 잠자던 만물이 뿅~하고 솟아오르는 때! 이것이 경칩 무렵의 풍경이다.


산책길에서 나는 과연 경칩다운 풍경과 마주했다. 대지는 아직 헐벗은 모습이지만 어디선가 물씬 봄의 기운이 전해져온다. 훈훈한 봄바람을 만끽하려는 인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하지만 이런 건 모두 서론 격에 불과했다. 산책길이 끝날 무렵 진정한 경칩의 주인공을 만났기 때문이다. 굴 밖으로 나온 굼벵이, 개구리 따윈 없다. 대신에 소생의 목기(木氣)를 한껏 머금은 ‘놀란 칩충(蟄蟲)’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얼마 전까지 이름 모를 병으로 두문불출하던 장금샘이었다. 어제까지 누워있다 경칩 날 비로소 기운을 차렸다는 장금샘. 용솟음치는 경칩의 기운을 받고 드디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것이다.^^ 병고에 시달리느라 움츠러든 등과 어깨가 따스한 봄볕에 비로소 활짝 펼쳐지는 듯 했다. (소생하는 봄기운을 잔뜩 받으셨으니 앞으로는 건강 잃지 않으시길 바래요~!^^)


아무튼 이로써 묘월(卯月)이 힘차게 그 첫발을 내디딘 셈. 봄의 목기가 대지에 도달하는 때, 봄의 기운이 성(盛)해지는 때가 묘월이다. 묘(卯)는 “어떤 물건을 반으로 갈라놓은 모양을 상형”한 글자다.(갑자서당, 172쪽) 아마도 묘월의 중기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春分)이 온다는 데서 딴 이름이지 싶다. 동지 지나고부터 서서히 자라난 양기가 드디어 음기와 견주어 조화를 이루게 되는 시기. 한마디로 잃었던 음양의 저울추가 다시 균형을 되찾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춘분보다 보름 앞선 경칩 역시 마찬가지다. 옛 사람들은 잠자던 짐승이 우레 소리에 놀라 뛰쳐나온다고 표현했지만, 우주의 무게추가 화평해진 것을 감지한 짐승들이 미리 박차고 나온 거라 봐도 무방할 듯싶다. 움츠러든 주름이 펼쳐지는 시기, 지난 시간의 후퇴를 힘찬 약동으로 밀어 올리는 시기가 곧 묘월인 것이다. 낮과 밤, 음과 양의 세력이 균형을 이루는 시기, 밀쳐냄과 당김이 평형을 이루는 시기, 열림과 닫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시기, 접힘과 펼쳐짐이 교대되는 시기! 닫힘이 있었기에 열림이 있고, 물러남이 있었기에 나아감이 가능하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조화란 말인가! 


오늘 알아볼 주인공은 바로 이 묘월의 심벌(symbol) 별자리이다. 그 이름 바로, 저수(氐宿), 동방 청룡의 가슴에 해당하는 별자리다. 이 별자리는 음양의 기운이 화평해지는, 잠자던 생명도 놀라서 깨어나는, 묘월 무렵의 풍경을 잘 나타내고 있다. 자, 오늘의 주인공 저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천자의 사생활

됫박모양을 한 '저수'

『천문류초』에 실린 <보천가>를 보면, “저(氐)는 네 개의 주홍색 별이 말(斗)을 기울여 쌀의 양을 헤아리는 형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절묘한 표현이다! 네모지게 연이은 별자리의 모양은 영락없는 됫박의 모습이다. 저 네모 별자리를 기울여 금방이라도 곡식을 퍼 올릴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됫박 모양이라는 점이 아니라, 저울추를 기울여 됫박의 무게를 잰다는 대목이다. 아마도 저성을 보고 <보천가>를 지은 옛 사람은 묘월에 음양의 기운이 평형을 되찾는 모습을 노래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 이름에 ‘근본 저(氐)자가 쓰인 것도, 음양이 균형을 이루며 우주의 기운이 근본을 다잡는다는 것을 나타내려던 것 아닐까?


동청룡 : 각항저방심미기(노란색 표시) 중 붉은 색 점이 됫박 모양으로 연결된 것이 바로 저(氐)성(星)이다.


그렇다면 저수(氐宿)는 무엇을 점치던 별자리였을까. 지난 회에 연재한 각수와 항수와 마찬가지로 저수 또한 점성학적으로 무척 중요한 입지에 자리한 별이다. 저성(氐星)의 아래로 2척(尺)이 되는 지점에 오성과 해와 달이 지난다. 고대의 점성가들은 이 모습을 보고 어떤 조짐을 읽어냈을까? 우선 동방 청룡의 별자리 중 지난 회에 언급한 대각성(大角星)을 천자의 상징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저수에 연이어 있는 방수(房宿)는 임금의 집무실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저수는 임금이 집무실로 가기 전에 머무는 장소인 셈, 그렇기에 이 별을 ‘천자의 침소’라고 보았다. 마침 그 아래로 일월오성이 지나니 그 모습을 보고 ‘천자의 사생활’(?!)을 점친 것이다. 이 별자리는 비(妃)와 후궁, 그리고 대신들의 세력을 의미했다. 이 별이 밝고 바르면 궁실에서 왕을 잘 보필하지만 여기에 오성이 지나거나 일월식이 있으면 왕실에 내란이 일어난다고 보았다.[이순지, 천문류초, 82쪽]


비와 후궁, 그리고 대신의 세력을 의미했던 저성(氐星)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저울추에 됫박을 매단 모습을 연상시키는 저수를 두고 왜 천자의 침소를 연상했던 것일까? 우주엔 음양이 조화되는 황홀한 드라마가 펼쳐지는데, 이를 두고 왜 하필 야시시한 천자의 사생활 따위를 점쳤던 것일까. 그리고 설마하니, 고대의 늙다리 왕들이 궁녀의 보필을 받아야 얼마나 받겠느냔 말이다.^^;


빨간 커텐 침대가 인상적인 영화 <야연>의 황제의 침소


약간 므훗한 이야기라 입에 담긴 뭣하다만, 묘월은 대대로 짝짓기의 계절이었다. 왜냐면 음양이 균형을 이루는 때이니까. 고대 의서를 보면 하나같이 인간들이 시도 때도 없이 성생활을 하며 정기를 소모한다고 토로하고 있지 않던가! 우주와의 소통 고리가 끊어져 버린 인간은 성생활에 사철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원래 짝짓기란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춘, 추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남산 산책길에서 장끼와 까투리가 뒤엉켜 있는 장면을 마주친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짝짓기를 하고 있었던 거란 말인가!^^;;; 국유지에서, 그것도 훤히 트인 대로변에서... 에잇, 설마?!


이 의아함은 전적으로 성(性)을 내밀한 것으로 여기며 죄악시 하는 근대인의 감각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는 성을 불경한 것이라 여기며 입에 담기 꺼려한다. 음지의 성을 양성화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 모두는 고대의 감각으로 보건대, 몹시도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다. 고대인들에게 성은 건전한 사회상을 이룩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렇기에 통제되고 관리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그 자체로 우주적 존재로서의 자기실현의 과정이었다. 고대의 성왕들은 성을 금기시하고 관리하려들지 않고, 오히려 우주적 중매쟁이의 역할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월령]에 기록된 묘월의 풍습을 보자.


이 달에는 제비가 남쪽에서 날아온다. 제비가 오는 날에 소, 양, 돼지의 세 가지 희생을 갖추어 고매신(高禖神)에게 자식을 낳게 해 달라고 제사를 지낸다. 이때 천자가 친히 행차하는데, 후(后)와 비(妃)는 아홉 빈(嬪)을 거느리고 천자의 앞에 가서 기다린다. 그러면 천자는 곧바로 왕림하여 제례를 거행하는데 천자는 고매신상의 앞에 나아가 몸소 궁대로서 허리를 감고 고매신 앞에서 활과 화살을 받는다.

─ 여씨춘추12기, 56쪽


이는 옛날에 고신씨(高辛氏)의 비(妃)인 간적(簡狄)이 제비의 알을 삼키고 설(契)을 낳았다는 설화에서 유래한 제사다. 여기서 고매신(高禖神)이란 아들을 낳게 해주는 결혼의 신, 우주의 중매쟁이다.(고매신의 매禖자는 중매 매媒자와 통한다.) 천자는 곧 고매신의 화신으로서 음양의 교화, 그리고 대지의 생육과 번성을 상징하는 의례를 시행한 것이다. 고매신에게 받은 활과 화살은 주지하듯, 양(陽)의 상징이다. 이로써 천자는 대지라는 음(陰)의 영역에 양기를 방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는 셈이다. 또한 양기의 생동을 돕기 위해 천자는 왕실의 악공들에게 음악과 춤을 장려했다. 노래와 춤을 통해 언 땅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생동하는 봄의 기운에 응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음양이 넘나드는 태극의 문


백성들에게는 문(門)을 수리하게 했다. 이는 음양이 드나드는 문이 제 역할을 다 하게 돕기 위한 것이다. 이로써 인간집단은 우주의 음양이 서로 사귀고 조화하여 쉼 없는 창조와 생성(生生不食)의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고 본 것이다. 이 의례는 어긋난 우주 질서를 다잡는 일이었고, 그렇기에 ‘무지갯빛’을 띤 우주적 축제였다.


자, 이제 다시 하늘을 보자. 저 하늘의 저수는 음양이 교통하는 하늘의 문(門)이다. 고대 점성가들은 저 별을 통해 음양의 조화되는 모습을 점친 것이다. 천자의 사생활이 아니라 우주의 사생활, 만물의 생육과 번성을 점치던 별자리인 셈이다.

우주를 조율하라, 저수와 천칭자리

묘월의 풍습 중 재미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도량형을 맞추는 일이다. 온갖 저울추와 됫박들 등의 도량형을 점검하고 고르게 한다. 왜냐? 우주의 음양이 평형을 이루는 때이므로 기울어진 저울추에 영점을 잡기 좋은 때라고 본 것이다. 저수의 상(像)이 저울추에 됫박을 매단 모습이라는 점도 이와 상통한다. (이 풍습에 착안해 어린이들과 목공을 하는 갑자서당에서는 춘추분에 목공구를 정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실생활에 적용해 보시길!)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서양 별자리로도 이 별이 저울의 형상이라는 점이다. 저수의 일부분은 서양의 천칭자리와 겹친다. 그리스인들은 이 별자리를 전갈자리의 집게발이라 보았다. 그래서 이 별자리의 알파별(별자리의 별 중 가장 밝은 별)에 ‘주벤엘게누비’라는 이름을, 베타별(별자리에서 알파별 다음으로 밝은 별)에 ‘주벤에샤마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두 전갈의 집게발이라는 뜻이다. (그중 주벤에샤마리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녹색 별로 유명하다.) 


빨간줄이 베타별인 주엔에샤마리, 노란줄이 알파별인 주벤엘게누비


그런데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는 이 별자리의 신화를 재창조했다. 당시 이 별자리가 추분점에 위치한다는 데 착안한 것이리라.(물론 지금은 세차운동으로 당시와는 격차가 생겨버렸지만.^^) 안정된 통치기반을 갈망했던 그는 하늘의 별들 중에서도 누군가 질서의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이 별을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에아가 손에 쥔 천칭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신과 인간이 교통하던 황금시대가 저물고 인간이 갈수록 타락의 일로를 걷게 되자,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에아는 깊어가는 분쟁과 갈등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 저울추를 기울이며 옳고 그름을 따졌다. 하지만 신과 인간의 관계가 어깃장이 나버린 철의 시대가 되자, 그는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인간들의 세계를 버려두고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고 말았다. 로마인들은 지난 시간에 소개한 처녀자리를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에아라고 여겼고, 여신의 손에 들린 천칭이 이 별자리, 천칭자리라 생각했다.



동양인들도, 서양인들도 모두 이 별을 우주의 저울추, 천칭이라고 여겼다. 동서의 별자리에 이렇듯 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점, 경이롭지 않은가? 우주의 실상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자리를 성찰하려고 했던 고대인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동서의 점성가들은 공히 저 하늘의 저수 혹은 천칭자리에서 우주의 조화와 균형을 읽어냈다. 치우친 기운을 다잡으려 우주가 거대한 용트림을 하는 시기! 바로 저성이 뜨는 묘월의 풍경이다. 묘월을 맞이하야, 우리도 기울어진 일상의 무게 중심을 다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_손영달(남산강학원 Q&?)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