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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

정말 벗고서 글을 쓰라는 건 아니고…

by 북드라망 2011. 11. 25.
다용도의 편집후기『누드 글쓰기』편

편집부 다용도

초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저의 싸대기를 쫘악 하고 때리고 지나가던 어느 날, 횡단보도 앞에서 뒹구는 낙엽(이었을까, 광고판에 붙어 있던 잘생긴 남자모델이었을까)을 보면서 문득 상념에 잠기는 임군. 회사에서 사고치고, 친구와의 약속은 미뤄지고 또 미뤄지고, 몸은 힘들고 잠은 안 오고, 텔레비전에서는 볼 만한 드라마도 안 하고(임군 삶의 질에 있어서 갱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그렇게도 좋아하던 가라데 훈련마저 심드렁하게 임하게 되던 그 겨울의 어느 날. 그러니까 아, 여기서 나의 속(?)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몇 년 혹은 몇 개월 전에 내가 습관처럼 되돌아가곤 했던 우울과 부정의 정념에 사로잡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뜩 들던 어느 날. ‘사주’와 ‘누드’의 필요성에 대해서 저는 절감하지 아니할 수 없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던 서울 사람이기에……하하;;

1년 전 처음 만났던 ‘누드 글쓰기’. 그 주인공들을 만약 소설에서 봤다면 아니 이렇게 작위적이고 개연성 없는 캐릭터라니,라며 쯧쯧거렸을 터. 그러나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사주팔자’로 분석해 가며 풀어놓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리얼’이었고, 그와 동시에 현실성을 의심할 만큼 ‘드라마틱’했습니다. 뭐?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나병환자들에게 길러지고 호적이 말소된다고? 뭐? 유치원도 중퇴했으면서 대학교 동아리방을 그렇게 철판깔고 돌아다니고, 그러면서 수다 떠는 게 어렵다고? 뭐? 아버지랑 서로서로 아찔한 죽음의 순간으로 몰고가는 부자지간이 있다고? 뭐? 폭주족 뒤에 타고 돌아다니면서 술마시고 담배 피우던 사람이 이제 십대들을 가르친다고? 어디 성한 데 하나 없는 그 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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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 어떤 가게를 해도 망하게 하는 재주(?), 자기는 돈이 없는데 만지는 돈의 액수는 엄청난… 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암튼 그런 경우, 일상대화를 백분토론에 임하듯 하는 파이터. 각각 달라도 너무 다른 네 명의 이야기는 뭐랄까 일종의 자기고백이기도 하고, 자기의 상처난 몸과 마음을 스스로 치유하려는 몸부림이기도 하고, 도통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자신의 인생 히스토리에 대한 답찾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글쓰기라는 것은, 자가치유라는 것은 뭔가 대단한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님을 그 존재 자체로 증명하는 어떤 희망의(?)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길지 않은 글이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기억과 상처를 다 드러내는 작업은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었음을 저자들은 고백하고 있습니다만, 그 글의 끝에서 저자들은 자신들의 운을 긍정하게 되었다 말합니다. 웅크리고 가슴속에 트라우마 비슷한 것으로 남겨두었던 것들이, 바깥으로 내놓고 보니까 그렇게까지 상처는 아니게 된(?) 아름답고 훈훈한 마무리랄까요? 아하하하;;

누드 글쓰기는 그러니까,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을 때,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모르겠을 때, 아 이건 고독인가 배고픔인가 우울함인가 헷갈리지만 그러나 어쨌거나 몹시도 부정의 정서로 향해 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할 때, 지독하게 반복되는 내 삶의 어떤 패턴을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을 때, 그때 자신을 가감없이 들여다보고 써내려가는 솔직함과 용기가 필요한 글쓰기입니다. 흠흠. 솔직히 말해서 글을 쓸 적에 미사여구로 꾸미고 싶은 맘, 있죠. 뭔가 내 삶이 다른 사람한테 멋있어 보였으면…… 싶기도 하죠. 에이 참 그래도 이런 것까지 밝혀야 하나?('' )( '') 싶기도 하죠, 그래서 거짓말을 보태고 싶은 맘, 조금만 내 삶을 윤색하고 싶은 맘, 들죠. 그럴 때 정말 자의식이건 타의식이건(?) 다 벗어 버리고 쓰는 글이 바로 누드 글쓰기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이 글로 나오면, 그럴 때 자기와의 거리감이 확보됩니다. 자고로 안다는 것은, 지금을 지금 아닌 곳에서 보는 것. 자신을 자신 아닌 자신이 보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갑갑하기만 했던 우리 삶을 알게 되고 또한 이해하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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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스로의 내면에 대해서 사유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호모 사피엔스(ㅋㅋ)인지라 가끔 지난날을 생각하면 울컥하기도 하고, 다 지난 일인데 원망의 감정을 되새김질하기도 하고, 망상에 망상을 덧붙여 가며 제 자신을 괴롭히는 순간이 있습니다라고 쓰고 보니 어쩐지 ‘사피엔스’(지혜)라는 말과는 이렇게 멀게 느껴질 수가 없네요. 뭐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를 괴롭히는 일들에는 다들 재능이 출중하여, “내가 네 살 때 엄마가 나보다 오빠를 더 예뻐했어!”라며 울분을 터뜨리며 기꺼이 마음의 지옥에 사는데요. 제가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를 읽으면서 또 편집하면서 느낀 것은 나 역시 지옥에 월세 내고 사는 세입자 중 하나였구나 하는 깨달음,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서 내 팔자를 바로 보고 내 삶을 마주하는 연습이 필요하구나 하는 다짐, 뭐 그런 겁니다.

남보다 내 삶이 특별히 불행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더 좋을 것도 없고, 그냥 평평한 우주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갈 뿐 그 자체로는 좋은 것 나쁜 것에 대한 구분이 사실 불가능함(혹은 무의미함)을, 원래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남들의 사주팔자 분석 글쓰기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새삼스럽게 느껴 버리고 만 것 같습니다.(응?) 오늘도 아,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이란 말인가! 우리집은 남들처럼 왜 안 행복해! 하며 우울과 짜증과 분노의 게이지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면 잠깐멈춤, 하시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또 자기안의 것들을 꺼내어 놓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감히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를 짜증나는 일만이천 독자 여러분께 권해드립니다.

※ 구체적인 '누드'의 방법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북드라망에서 제공하는 <누드사용설명서>가 포스팅될 예정이오니, 숨죽이고...까지는 아무튼 기다려 주세요! 지금, 벗으러 갑니다! (응?)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 10점
고미숙 외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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