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

나는 정말 이해가 안 돼 -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by 북드라망 2012. 1. 2.
내게 너무 힘든, 관계 속의 부딪침

마케팅 만수

때때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쉽게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왜 저 사람은 못할까라는 부정적인 방식으로요. 그렇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미운 모습만 자꾸 보이게 됩니다. 미운 모습을 싫어하는데 온 힘을 쏟다보니,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렵더군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문득, '왜 이렇게 그 사람의 행동이 싫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계기는 제가 상대방에 대해 무의식중에 어떤 기대를 하다, 그것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도 좋아하길 바란다거나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상대방도 당연하게 여긴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 같이 공부하자고 약속한 사람이, 어떤 이유 때문에 나가던 수업을 그만두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화가 났습니다. 본인이 하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러나 싶었죠. 상대방이 한다고 했던 공부는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저와의 약속이라고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약속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과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까, 그 공부가 절실하지 않은 건가 등등 온갖 추측을 다 했지요.

문제는, 그런 식으로 실망을 하게 되자 그 사람의 행동이 다 싫어지는 겁니다. 이런 기분이 들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때를 계기로 저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 실망감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의 의지와 관계없이 저 혼자만의 기대를 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상황에 부딪쳐 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기대를 하고 있었던 저를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레메디오스 바로, <연인> _
상대방을 '나'의 기준으로 동일시하고, 그것이 이해나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속을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가능하더라도 온전히 그 사람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다름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막막했지요.

인간은 말과 이미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또한 각자는 종교의 보편적인 가르침을 자기의 고유한 상상계에 맞추어 각색해야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상상계는 자기의 것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에,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우정은 정신의 융합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중지와 확인에 대한 기대 안에 있다. 내 생각에는 스피노자의 좌우명의 의미도 바로 이런 것이다. 스피노자가 자기 편지 위에 찍었던 봉인의 의미 말이다. Caute, 그것은 <신중하라!>라고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신중함은 <결코 예속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인간 본성의 자유다.>

— 아리엘 수아미 지음, 강희경 옮김, 『스피노자의 동물 우화』, 열린책들, 80~81쪽

저는 스피노자의 '신중하라'는 좌우명에서 힌트를 조금 얻었습니다. 상대방의 행동에 화가 났다면 재빨리 그 감정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원인은 제 안에 있을 테니까요. 신중함은 참는 능력 뿐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포함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중함이 그런 의미에서 자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참 답답해'라고 결정짓지 않고 그 사람 자체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누군가에게 그렇게 쉽게 판단되는 것이 싫으면서, 저 역시 다른 사람을 그렇게 쉽게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닐지, 이런 상황을 저만 당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관계에서의 부딪침을 통해 오히려 제 상태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부딪치는 지점을 '어떻게' 넘어갈 것인지 판단의 순간이 올 때마다 한 번씩 더 생각하려고 합니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관계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된 셈이니까요.

스피노자의 동물 우화 - 10점
아리엘 수아미 지음, 강희경 옮김, 알리아 다발 삽화/열린책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