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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별자리서당

묘수, 좀생이별들의 결정체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0. 11.

음기작렬! 가을 밤하늘, 본색本色을 드러내다
-가을철 별자리를 찾아서④


손영달(남산강학원 Q&?)



한로, 완연한 가을


찬 이슬이 내리는 절기 한로(寒露). 결실과 수확의 시기다. 그래선가 평소에도 원체 일복이 많은 나지만 매년 이 즈음이 되면 정말 감당 안 되게 일거리들이 쇄도한다. 작년 이맘때 쯤, 나는 전쟁 같았던 연구실 이사를 마치자마자『갑자서당』의 교정지를 받아들었다. 연구실에 오기 전 조선소에서 땜장이 노릇을 할 때는 한 달에 일을 570시간 씩 했다. 10대 후반엔 코피 터져라 수능 공부 하다말고 고향집에 끌려가 비탈밭 3천 평에 심어 놓은 옥수수를 혼자 다 따기도 했다. 왜 집안마다 속 썩이는 삼촌들 하나씩 있지 않은가. 우리 집안의 풀리지 않는 숙제인 한 삼촌이 밭이란 밭마다 일을 잔뜩 벌여 놓은 채, 야밤에 소를 팔고 튄 것이다. 그렇기에 가을이 되면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는 또 언제 어디서 원 투 펀치로 일거리가 들이 닥칠 것인지. ‘한로에는 국화전을 부쳐 먹는다’ 운운하는 세시풍속사전을 나는 경멸한다. 가을은 내게 피 말리는 막판 스퍼트, 그 자체기 때문이다.


아이고 머리야! 가을을 누가 풍요의 계절이라고 하는가. 가을은 일복의 계절. 타고난 일복이 없는 이들은 모르리. 두통과 함께 오는 가을의 풍요를~!^^


가을은 냉혹한 금(金) 기운을 머금은 때다. 결과를 얻기 위해선 비우고 쳐내야 한다. 살벌한 죽음의 타작이 한바탕 지나가지 않고선 수확의 기쁨이란 없는 것이다.『서경』에 이르기를, “금왈종혁(金曰從革)”이라 했다. 종혁이란 변혁의 의미다. 무딘 돌덩이가 펄펄 끓는 용광로를 거쳐야 예리한 한 자루 검으로 거듭날 수 있듯이, 금(金)의 마법적인 변이 과정 뒤에는 ‘악마적인’ 제련의 코스가 웅크리고 있다.『삼국유사』에 실린 에밀레종의 전설을 모두 알 것이다. 신명한 소리를 내는 종을 위해 용광로에 아이를 녹여 넣었다는 이야기. 야금작업을 위해 인신제물을 바치는 이런 유의 이야기는 보편적인 세계 신화에 속한다. 지역과 인종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금(金)을 만들어내는 야금작업에서 극도의 악마적 성격을 읽어냈다. 용광로는 인간제물의 희생 없이 아무것도 뱉어내지 않았다. 희생이 있기에 수확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을 금기운의 의미다.


귀뚜라미 우는 가을 밤하늘. 연구실 뒤 남산에는 연인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아름다운 커플들이 하늘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저 하늘의 별들이 가을의 숙살지기(肅殺之氣)로 넘쳐난다는 것은 모를 것이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가을 하늘을 보고 섣불리 철지난 유행가를 흥얼거리지 말라. 당신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저 하늘의 별은, 가을의 낭만이 아니라 임종의 통곡소리와 전쟁의 포성으로 가득할 테니 말이다. 오늘은 한로 무렵 떠오르는 별들을 만나 볼 차례. 음기작렬하는 가을의 민낯을 여기 공개한다.


죽음의 별, 대릉(大陵)


첫 주인공은 지난 회에 연재한 위수(胃宿)에 속한 별자리다. 그 이름 대릉(大陵), 대릉이란 말 그대로 큰 무덤이란 뜻. 이 별은 무덤과 죽음을 주관하는 별이다. 아무리 블로그 개편이라지만 가을이라 어쩔 수 없다. 시작부터 음산하게 깔고 들어가는 게, 어째 오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 별자리는 8개의 붉은 별이 띠 모양으로 이어진 것인데, 빛이 좀 어둡다. 하지만 문제없다. 음기작렬 하는 가을철의 별인지라 그 빛이 어두워야 제격인 것이다. 죽음을 상징하는 별이 이발소 간판 돌아가듯 화려하게 번쩍거린다면 그거 좀 이상하지 않은가! 점성학적으로 이 별은 어두워야 좋다. 그래야 죽음으로 인한 나라의 변고가 적은 것이다. 이 별이 환해지면 사상자가 많이 생긴다고 한다.


어둔 별은 어두워야 한다는 것, 당연한 듯하지만 가만히 곱씹어 보면 눈물나게 감동적인 말이다. 별이 어두우면 눈여겨보지 않는 게 관측 중심의 현대 천문학이다. 하지만 천지인이 상응한다는 전제하에 하늘에서 인간사를 읽었던 중국인들은 어둡고 흐린 별들도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이는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음-양의 세계관의 한 단면이기도 할 것이다. 언덕의 가려진 이면일지라도 세계를 구성하는 한 국면이라는 점에서 음과 양은 동등하다. 그리고 각자는 자기만의 고유한 의미를 가진다. 이렇듯 우리네 28수에는 포괄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보던 지혜로운 옛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다음, 대릉이 그리고 있는 우아한 곡선에 폭 싸인 하나의 별, 그 이름은 적시(積尸)이다. 시체가 쌓인다는 무시무시한 뜻. 별자리의 모양도 커다란 무덤에 시체가 들어앉은 형국이다. 무덤을 뜻하는 대릉이 좀 포괄적인 의미였다면, 이 별은 보다 직접적으로 인간의 죽음을 상징한다. 사람의 생사의 문제와 직결된 별, 이 별자리가 밝으면 천하에 죽는 사람이 많아진다. 큰 전쟁이 벌어진다거나 역병이 돈다거나 하는 중대한 변고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이 별 역시 밝으면 안 된다. 만일 이게 크게 번쩍인다면 천하에 사상자가 많이 생길 경고의 표시로 보면 된다.


몰라! 기억 못해! 난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 페르세우스라면 음... 그러니까... 대신 이건 기억에 난다. 안드로메다로 메텔과 철이가 무전여행을 떠났던 거?^^

여기서 잠깐! 앵글을 틀어 서양 별자리와 견주어 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적시는 서양별자리로 페르세우스의 팔과 어깨에 해당한다. 그새 페르세우스를 잊은 섭섭한 독자가 여기 계시리라 생각지 않는다. 은하수 같은 장발을 가진 나의 편집자 류도사도 페르세우스를 분명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날개달린 말 페가수스의 주인, 메두사를 무찌르고 아름다운 미녀 안드로메다를 구해낸 멋진 왕자님 페르세우스 말이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메리를 싹둑 잘라낸 용맹스런 모습 그대로 하늘의 별자리로 붙박였다. 그림을 보시라! 그의 왼손은 꿈틀거리는 메두사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다. 메두사의 눈에 해당하는 저 별이 ‘악마의 별’로 불리는 “알골(Algol)”이다. 이 별은 괴물 메두사의 눈알인지라 기이한 조화를 부린다. 약 69시간 간격으로 밝기가 변하는 것이다. 어제 2등급이었나 하면 내일 쯤 3등급이 된다. 과학시간에 졸지 않은 분들은 변광성(變光星)이라는 업계 용어를 떠올릴 수 있으리라. 이 별은 2개의 동반성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들이 주위를 돌면서 일종의 식(蝕)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별 알골은 무덤 별자리 대릉의 다섯 번째 별이다. 무덤 별자리에 악마별이라! 중국과 그리스의 별바라기들은 대륙의 양 끝단에 서서 어쩜 이리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인지. 어쨌거나 숙살의 금기(金氣)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페르세우스 별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은 가슴의 알파(α)별 미르팍(Mirfak)이다. 이 별은 은하수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황홀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동양 별자리로 하면 저 별은 대릉 위의 천선(天船)이다. 은하수를 가로지르는 천상의 배. 아홉 개의 붉은 별이 저 하늘 배의 바닥을 이루고 있다. 이 배의 용도는 무엇일가? 은하수를 여행하고픈 관광객들을 위한 유람선?! 이 배가 무덤 별자리 곁에 위치한다는 것을 떠올려보라. 이 별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실어 나르는 황천행 여객선이다. 도무지 낭만이라고는 허락하지 않는 동양 별자리의 세계. 발랄샤방한 블로그를 표방하는 북드라망의 기치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금기운의 결정체, 묘수


자, 이제 시선을 옮겨 서방백호의 몸통에 속하는 묘수(昴宿)의 영역으로 건너가 보자. 묘(昴)는 ‘묘성묘’자로 오직 묘성을 뜻하는 글자다. 자신의 고유 글자(?)가 있을 정도로 묘성은 유명한 별이다. 그 이름 묘(昴)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먼저, 묘(昴)라는 이름은 이 별의 모양새에서 왔음직 하다. 글자의 성부인 묘(卯)에는 무성하다는 뜻이 있다. 빛(日)이 무성하게 빛난다는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었으리라. 그 모양을 보면 일곱 개의 주황색별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양이다. 별이 모여 있는 모습이 좀스러워 보이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좀생이별’이라고 부른다. 


참 별도 많다. 그런데 어떻게 저 많은 별들에 일일이 이름을 다 붙여놨을까. 오히려 그게 더 신기할 따름이다. 거기다 '좀생이별'이라는 별명까지.^^


혹은 “좀생이보기”라는 민간의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좀생이보기란 음력 2월 6일에(이 날을 좀생이 날이라고 한다.) 좀생이별을 보고 한 해의 농사일과 신수를 점치는 풍속이다. 즉 묘월(卯月)에 그 빛(日)을 보고 점치던 별이라는 데서 묘(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해석 방법은 이렇다. 달을 모심기 할 때 논으로 이고 나르던 밥으로 보고, 좀생이는 밥 달라고 아우성대는 아이들이라고 본다. 달과 별의 거리가 가까우면 풍작이고, 달과 별이 나란히 가면 평작이고, 별과 달이 멀찌감치 떨어지면 흉작이라고 했다. 특히 좀생이별이 달에 뒤지면  아이들이 밥 달라고 따라다니며 보채는 형국이므로 흉년이 든다고 보았다. 농한기의 막바지를 보내며 새해 농사준비에 한창이던 농부들은 좀생이별을 보고 그 해 농사일에 들 짚신의 양을 가늠했다고 한다. 평양 약수리 고분벽화에도 이 별의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이 풍습은 유래 깊다.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을 민중들의 삶과 함께 호흡해 온 별이 좀생이별, 묘수인 것이다.


하늘의 하고많은 별 중에 사이즈가 큰 것도 모양이 근사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좀생이 같은 이 별이 그토록 주목받았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이 별은 육안으로 관찰되는 성단이다. 어떠한 계기로 같은 곳에서 동시에 탄생한 별들의 무리인 것이다. 그것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시퍼렇게 펄떡거리는 젊은 별들의 모임이다. 이렇게 보면 좀생이별을 보고 밥 달라고 보채는 아이들 같다고 생각했던 우리네 농부들의 생각은 현대천문학의 설명과도 통하는 것이다. 비단 우리 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문화권에서 이 별을 어린 형제자매의 무리라고 보았다. 그리스인들은 이 별을 플레이아데스성단이라고 불렀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틀라스(Atlas)신의 일곱 딸을 의미하는 칠 자매별이라 불렀다. 흐릿한 별빛 하나를 가지고 어떻게 그 별의 젊은 기운을 간파했을지, 고대인들의 놀라운 혜안에 무릎을 치게 되는 대목이다. 망원경으로 이 별을 보면 500여개의 젊은 별들이 우글거리는 그야말로 진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이 별이 인간들로부터 얼마만큼 시공을 초월한 러브콜을 받아왔는지 살펴보자. 다음 로고를 보시라. 이 유치찬란한 로고를 한 눈에 알아보시는 분들이 분명 계시리라. 일본의 자동차 브랜드 스바루의 로고다. 일본에서는 좀생이별을 스바루(Subaru)라고 불렀다. 묘성은 보통의 시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여섯 개로 보이기에 육련성(六連星)이라는 별칭을 가진바, 여기엔 여섯 개의 별만이 표기되었다. 일본의 민중들과 함께 호흡해 온 별 스바루를 자기 회사의 로고로 삼았다. 과연 민중지향적인 차를 생산하는 회사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튼 일본인들에게도 묘수는 무척 친근한 별인 셈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에 작은 창을 내었는데, 그중 남쪽 입구는 이른 봄에 묘수가 보이게 맞춰져 있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들은 이 별을 마카리키(Matariki)라고 부른다. 그들에게 이 별은 새해가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마타리키가 처음 보이는 6월 무렵, 마오리족의 성대한 신년축제가 벌어진다고 한다. 한편 북미 인디언들은 묘수가 자기 조상들의 고향이라고 여겼다. 인디언들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신비주의자들은 지금도 이 파릇한 성단과의 교신을 시도하고 있단다.


마카리키는 작은 눈 또는 신의 눈이라는 뜻이다. 여러 개의 별들이 모여서 일군의 무리를 이루는 정도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 별의 무리들이 떼를 이뤄 6월 무렵 동북 지평선에서 반짝이며 떠오른다.


그리고 고대의 중국! 중국인들은 묘수의 근처에 태양의 길 황도와 달의 길 백도의 중간점이 있다는 데 주목했다. 그렇기에 이 별은 일월과 음양의 중도(中道)라고 여겨졌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 있기에 이 별은 하늘의 눈과 귀가 되어 세상의 형벌을 주관한다고 보았다. 이 별이 밝으면 천하의 법질서가 바로 서지만 흐리거나 작아지면 형벌이 남용되어 아첨꾼이 들끓고 충성된 신하가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보았다. 숙살의 금기를 지닌 서방백호에 속하는바 중국인들은 이 별을 강렬한 금기의 결정체로 본 것이다.


묘수에 속한 다른 별자리들도 마찬가지로 죽음과 군사를 상징한다. 그 중 의역에 뜻을 둔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 둬야 할 별자리가 있다. 바로 권설(卷舌)과 천참(天讒)이다. 기묘한 형태로 커브를 꺾은 권설의 모양새가 왠지 눈에 익다 하시는 분, 물론 없으리라고 본다. 이 별은 앞에 나온 페르세우스의 다리에 해당한다. 얼른 마우스 휠을 굴려보시라. 메두사를 해치우고 의기양양하게 선 그의 튼실한 다리, 동양 에서는 그 여섯별을 따서 ‘혀를 만다’는 뜻의 권설이라 불렀다. 놀라서 말이 안 나오는 모양을 권설(卷舌)이라고 한다. 옛 군대에서 기습작전을 펴던 군인들이 말을 못하게 하려고 입에 나무를 물렸는데 그 나무 조각의 이름도 권설이라 한다. 별자리의 모양을 보니 영락없이 혀가 안으로 말리는 모양이 연상된다. 점성학적으로도 말(言)을 뜻하는 별이다. 신하의 간언이랄지 천하의 뜬소문이랄지 하는 세상 말들을 담당하는 게 이 별, 권설이다.


그렇다면 권설의 혓바닥 안에 말려 있는 천참(天讒)이란 별은 무엇인가? 천참이란 하늘에 참소한다는 의미. 좀 순화시켜 말하자면, 이 별은 하늘과 교통하던 샤먼의 별이다. 하늘의 조짐을 읽고 그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자.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와 운명을 읽고 액을 떨쳐내는 일을 담당하는 무당은, 권설의 주관을 받는 동종업계 종사자인 셈. 그렇다면 하늘과 소통하는 이들의 신비로운 능력은 어떻게 획득되는 것일까? 이들 모두가 서방백호의 금기(金氣)에 배속된다는 것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금이란 변혁의 기운, 고로 무와 의는 모두 금의 힘을 빌어 어떤 것을 새로이 변이시키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천문류초』에 이 별은 검은별(黑星)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어두워야 길하다는 의미이다. 음기 작렬하는 어둠 속에 묻혀 있을 때 제 역할을 한다는 것. 하지만 저 극도의 음(陰)은 속에 끓는 불덩이를 머금고 있다. 화의 제련을 받은 광물이 비로소 예리한 쇠붙이로 거듭나는 것처럼. 시뻘겋게 달궈진 숯을 집어삼키는 시베리아 샤먼들처럼. 불을 집어 삼키고 그 열기를 감내해 내는 존재들만이 서방(西方)의 금(金)의 영토에 진입할 수 있다.


금기운이 지배하는 이곳은 변이의 땅이다. 진흙으로 그릇을 빚어낸 도공의 물레, 돌덩이에서 쇠붙이를 끄집어 낸 대장장이의 풀무, 한 알 낱알에서 수십 배의 소출을 이끌어 내는 농부의 쟁기, 죽어가는 생명을 병상에서 일으키는 의사의 침, 버린 인생을 새 삶의 길로 이끌어 내는 무당의 방울. 이들 모두는 불의 시련을 감내함으로써 존재의 변신에 가 닿은 위대한 금의 아들들이다. 혹독한 불길 속에 묵은 나의 껍질을 불태움으로써 거듭나는 삶을 획득한 변신의 귀재들. 이들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죽음 없이는 수확도 없다는, 너무도 자명한 자연의 법칙을.



흐린 별들의 집합체인 고요한 가을 하늘. 저 하늘과 우리가 무언가 교신할 수 있다면, 그것은 풍요와 악마의 두 얼굴을 한 금(金), 이 한 단어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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