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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민의 진료실인문학

[이여민의 진료실 인문학] 좋은 잠, 만병통치약!

by 북드라망 2024. 6. 3.

좋은 잠, 만병통치약!

 

평소 자전거를 즐겨 타고 가끔 암벽도 등반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고지혈증약을 먹고 있는 중년이다. 어느 날 너무너무 피곤하다면서 간장약을 먹어야 하는지 하고 문의했다. 그래서 나는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는지 물었다. 현역에서 은퇴한 그의 일상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아침 11시쯤 일어나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운동한다고 했다. 그 후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친한 후배 가게에서 잠깐 일한 뒤 집에 돌아와서 유튜브를 보며 새벽 서너 시에 잠이 든다고 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건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친구가 잠을 이렇게 홀대하다니! 나는 의사로서 너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수면 때문에 피곤할 수 있으니 먼저 잠 패턴을 바꿔보라고 충고했다. 그는 수면이 7시간 정도 되어 별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잠이라니까!
요즈음 이 친구처럼 새벽에 잠드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새벽까지 깨어 있는 이유는 100년 전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기 때문이다. 2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전구는 초롱불을 쓰며 해지면 잠들던 인간 삶의 패턴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밤도 한낮처럼 환하여 불야성을 이룬다. 이 발명품으로 ‘24시간 노동력’ (데이비드 랜들, 『잠의 사생활』, 이충호 옮김, 해나무, 2014, 43쪽)이 탄생했다. “전구와 함께 잠은 게으름의 증거일 뿐이라는 에디슨의 개념은 세상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을 확 바꾸어 놓았다.” 같은 책, 44쪽

산업이 발전하던 1900년대는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경제 발전이 최우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대부터는 정시 퇴근이 중요한 근무 조건이 되었다. 퇴근 후의 자신만의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덕분이다. 운동이나 자기 계발이라는 명목으로 잠을 최대한 뒤로 미루게 되었다. 새벽 1, 2시에 자는 50대 환자는 “이 시간이 유일하게 제가 혼자 즐길 수 있는 시간이라서 잠자기 아까워요.”라고 한다. 10, 20대 젊은이는 새벽까지 학원 숙제나 취업 과제를 하고,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느라 늦게 자기도 한다. 이렇게 현대인은 모든 연령층에서 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잠에 대한 경의와 겸허! 이것이 으뜸가는 일이다! 그러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사람 모두를 멀리하라!”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책세상, 개정판 3쇄, 2016년) 또 동의보감에서도 잠드는 시간을 중요히 여긴다. 왜냐하면 ”간에 혈(血)이 저장되는 때가 주로 잠자리에 들기 전, 시간으로는 술시(戌時, 19;30~21:30)쯤 되는 저녁 무렵“(안도균,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 작은길, 2015, 165쪽)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혈은 에너지원이 되는 피를 뜻한다. 낮에는 심장이 혈을 주관하고, 저녁에 혈이 귀가하는 곳이 ‘간’이다. 그래서 “사람이 누우면 혈이 간으로 돌아간다.(『소문』)” 간은 피곤을 회복하는 곳이다. 혈이 귀가하는 시간인 술시를 지나서 너무 늦게 자면 간이 쉽게 회복하지 못한다. 이 시간에 음식을 섭취해도 쉬어야 할 간이 일을 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을 느낀다. 현대인이 잠을 자도 피곤한 것은 적당한 시간에 잠들지 않아 간이 회복할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잠은 더 소중해진다. 젊었을 때는 신체 회복 호르몬인 성장 호르몬이 충분히 나오기 때문에 밤새고 일을 해도 몸은 비교적 쉽게 회복한다. 그러나 중년 정도 나이가 들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60세가 되면 회복 능력을 책임지는 성장 호르몬이 스무 살에 비해서 1/4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6개월 정도 새벽에 잠드는 일상을 유지하면 당연히 피곤해진다. 이 사실을 알고 수면만 잘 취해도 우리 몸은 저절로 건강해진다. 간은 우리가 섭취한 모든 음식이나 약 모두의 해독작용을 하기 때문에 건강보조식품을 먹는 것은 오히려 간을 더 피곤하게 만든다. 면역학적으로도 저녁 11시부터 흉선에서 T 임파구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매일매일 몸에서 만들어진 암세포를 제거하는 일이 이 시간부터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간 근무조로 일한 간호사들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한 달에 3일 이상 야간 근무를 한 간호사는 결장암에 걸릴 확률이 36% 더 높았다.” 데이비드 랜들, 『잠의 사생활』, 47쪽


불면증, 건강의 적신호
그런데 밤늦게까지 일하지 않고, 게임을 하지 않는데도 잠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잠을 자고 싶은데도 잠을 잘 수 없는 밤이 계속 이어지는 상태를 불면증이라고 한다. 의사들은 “최소한 한 달 동안 잠들기나 수면 상태를 유지하는 함에 어려움을 겪거나 개운하게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을 불면증으로 진단하고 치료받기를 권한다. 그러면 왜 불면증에 걸릴까? 


대표적인 이유가 여성의 갱년기와 성별과 관계없이 나이 듦이다. 갱년기가 되면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양이 줄어들면서 홍조가 나타나며 잠을 쉽게 자기가 힘들다. 이 경우 가벼운 운동을 하여 근육을 증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한 콩 식품을 많이 섭취하고 평소 즐겨 먹던 커피를 끊으면 잠 사이클이 돌아온다. 또 나이가 들면 성장 호르몬과 멜라토닌이 줄면서 불면증이 나타나기도 하고 동시에 수면 패턴이 바뀐다. 저녁 9시에 자고 새벽 4. 5시에 깨는 경우가 많아진다. 당연한 변화라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갱년기 여성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어서 일어나는 수면 리듬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것이 중요하다. 수면 리듬의 변화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억지로 잠들려고 하면 오히려 문제가 발생한다. 

 

불면증을 연구한 뉴욕 대학의 교수 에밀리 마틴(Emily Martin)은 “잠의 조건은 아주 모순적이다. 잠은 아주 좋은 것이지만..... 다른 좋은 것들하고는 아주 다르다. 그것을 얻으려면 그것을 가지겠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랜들, 같은 책, 283쪽

 

 

잠은 안정 시에 작동하는 부교감 신경이 활발한 상태이다. 마음이 편안하고 긴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잠이 좋다고 잠들려고 열심히 노력하면 긴장이 유발되기 때문에 잠은 저 멀리 달아나버린다. 중년 이후는 젊은 시절의 잠과는 다르다. 자주 깨고 깊이 잠들기도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낮에 활동량을 늘리고 햇빛을 많이 쏘이고 카페인이 든 음료를 줄이는 것이다. 덧붙여 삶을 어느 정도 살았다는 여유와 더 잘 살겠다는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티베트에서는 잠자는 시간을 죽음의 시간과 비슷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매일 잠드는 것은 매일 죽는 연습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 연습을 흉내 내어 하루를 끝마치고 잠드는 것을, 인생이 끝날 때 모든 이에게 감사하며 ‘안녕!’하는 마음가짐을 가져보면 어떨까. 그러면 언젠가는 늙고 병들고 죽지만, 오늘 하루는 더 충만한 마음으로 살 수 있다.

 

 


사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젊은이의 불면증이다. 이 경우는 꼭 병원에 가서 잠을 못 자는 원인을 진단받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생각’과 ‘행동’이 무엇인지 점검해야 한다. 긴장을 유발하는 생각의 방향을 돌리는 인지 치료와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 같은 각성제를 과다복용하는 낮의 습관을 세밀히 관찰하여 바꾸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와 동시에 잠드는 소량의 약을 투여하여 수면의 리듬을 세팅하고 수면 자체를 확보해야 한다. 어느 정도 습관이 되면 약을 계속 복용할 필요는 없다. 젊은이의 자연스러운 생체시계는 잠이 잘 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지 이를 복원하는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불면증이 위장장애, 과민성 대장염, 두통, 우울증, 당뇨, 비만, 암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잠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잠의 중요성

 

사람들은 계속 잠을 망각하고, 간과하고, 뒤로 미룬다. 잠의 중요성을 깨닫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건, 필연적으로 우리를 더 개선되고 건강하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요컨대 잠은 여러분이 되길 원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준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눈을 감기만 하면 된다. 데이비드 랜들, 같은책, 329쪽 

 

 

로이터 통신 수석 기자이자 미국 뉴욕 대학 저널리즘 겸임 교수였던 ‘데이비드 랜들(David K. Randal)’ 교수가 2014년, 한국에 번역된 「잠의 사생활」의 맺음말이다. 20년 동안 요란한 잠버릇으로 고통스러웠던 그는 ‘잠’에 대하여 스스로 공부하여 ‘잠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나도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통해, 겉으로 보이는 이명, 두통, 어지러움 등이 잘못된 수면 습관에 기인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또 전날 수면의 질에 따라 낮에 해야 할 일의 집중력이 달라진다는 것도 스스로 관찰하고 있다. 강조하면 잠에 관심을 기울이고 수면의 질을 개선하면 삶의 질도 개선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한다면 ‘좋은 잠’, 만병통치약이다. 

글_이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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