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 마음과 연결되다
54세 여자분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며칠 전 저녁 먹고 나서 옥수수를 두 개 더 맛있게 먹었는데 그 이후에 명치가 갑갑해 왔어요. 소화가 안 되고 가슴도 답답하고 불안한데 제가 큰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요?”라고 했다. 10개월 전에 위내시경을 했고 작은 용종이 하나 있는 것 외에는 모두 정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되물었다. “소화가 안 되고 나서 운동은 했어요?” 그랬더니 손가락을 다쳐서 운동을 안 했다고 답한다. 웃음이 터졌다. 다리는 멀쩡한데 뭔 말이냐고 놀렸다. 그녀는 소화가 금방 되지 않고 조금만 체해도 불안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소화가 뭐길래 이렇게 심리상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먹고 싸는 일, 아주 중요해!
소화는 먹은 음식을 몸에 적당히 잘 쓰이도록 분해하는 과정이다. 입을 통해 먹은 음식은 식도, 위, 소장, 대장을 통과하며 소화된 후 필요한 것은 흡수되고 남은 찌꺼기는 대변과 소변의 형태로 배설된다. 소화기관을 살펴보면 입과 항문은 바깥으로 열려있는 문이고 두 문을 연결하는 배관이 식도, 위, 소장, 대장이다. 전문용어로 이 장기들을 위장관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위장관은 처음과 끝이 바깥으로 열린 긴 파이프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 장기가 이런 식으로 바깥을 향해 열려있다는 사실이. 이 구조를 이용하여 속을 직접 보는 위내시경과 대장 내시경 검사가 발달한 것이다.
입은 내부 장기가 밖에서 들어오는 음식을 받아들이기 위한 대문이다. 임금님이 살던 경복궁에는 호위병이 항상 문을 지킨다. 이처럼 입안에도 수많은 미생물이 호위병처럼 상주하여 나쁜 세균을 물리친다. 또 침샘에서 침을 만들어 소화효소로 작용하게 한다. 그런데 설탕이 든 음식을 많이 먹으면 입안의 균형이 깨진다. 궁을 지키는 아군보다 밖에서 들어온 적군이 더 많은 것과 같다. 균형이 깨지면 입 냄새가 나고 입안이 헌다. 참고로 이때 가장 손쉬운 치료 방법은 물과 야채를 충분히 먹어 입안을 촉촉하게 해서 미생물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또한 잘 자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식도는 입과 위를 연결하는 통로이다. 인간은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서서 보낸다. 직립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음식물은 입에서 항문을 향해 전진한다. 그런데 먹고 바로 누워버리면 대장을 향해 내려가야 할 음식물이 식도 쪽으로 역류한다. 현대인에게 흔히 보이는 역류성 식도염이다.
위에서는 몸에 이롭지 않은 균을 죽이는 위산과 단백질을 분해하는 펩신이 나온다. 가끔 속이 안 좋아 구토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막상 구토물은 시큼한 냄새가 나고 보기도 역겹다. 위에서 음식물과 소화액이 모두 뒤섞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잘게 부서진 것은 소장을 통과하며, 몸이 필요한 것을 알아서 가져다 쓴다. 좋은 것이라고 광고된 건강 보조 식품을 많이 먹으면 몸에 좋다는 것은 우리의 가장 큰 착각이다. 요즈음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콜라겐 건강 보조 식품을 먹어도 온전히 우리 몸에서 콜라겐으로 쓰이기는 어렵다. 비유하자면 동전을 서울에서 로마로 던져 유명한 트레비분수에 떨어지는 정도로 희박한 확률이다. 정말 몸을 건강하게 하려면 약간 허기진 상태에서 그 계절에 내가 사는 곳에서 나는 자연스러운 음식을 적당히 먹는 것으로 충분하다.
소장에서 필요한 영양분을 모두 흡수한 뒤 남은 찌꺼기는 대장에서 대변으로 배출한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면 온 집안에 악취가 나듯이 대변으로 찌꺼기를 배출하지 못하면 가스가 우리 몸 안에 독소로 쌓인다. 그래서 변비가 심해지면 심리상태에도 영향을 준다. 예민해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이가 변비로 인한 심한 불안장애로 응급실을 찾는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싸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 않은가. 잘 산다는 건, 잘 먹고 잘 싸는 거다.
소화 기능, 뇌와 상호작용 하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고 한다. 왜 사촌이 땅을 샀는데 배가 아플까?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장관 기능이 변하는 것이다. 이 이유를 현대의학에서 밝혔다. 바로 ‘뇌-장기 축(Brain-Gut axis)’이다.
예전에는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곳이 주로 ‘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식도에서 장에 이르기까지 소화기 통로 전부(위장관)를 감싼 얇은 막에 ‘5억 개’(김나영, 『제2의 뇌 장 혁명』, 국일미디어, 2023, 275쪽)의 신경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소화계의 벽에 숨어있는 이런 시스템을 과학자는 ‘내장 신경계 (ENS)’라고 부른다. 내장 신경계의 세포 작동으로 장에서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 이 중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은 인체 전체의 95%’,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는 ‘도파민은 50%가량이 장에서 분비’ (김나영, 『제2의 뇌 장 혁명』, 275쪽)된다. 인간의 감정에 깊이 관여하는 물질을 만드는데 장의 기여도가 이리 커서 소화기 중 특히 장을 ‘제2의 뇌’라고 부른다. 내장 신경계는 자율적으로 작동하여 먹은 음식의 종류에 따라 내장 운동을 스스로 결정한다.
한편 내장 신경계는 뇌와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즉 소화기관의 신호가 뇌에 영향을 미치고 뇌의 신호가 소화기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뇌-장기 축(Brain-Gut axis)’이라 한다. ‘뇌-장기 축’에 의해 뇌 안에 ‘감정이나 인지를 담당하는 부위와 위장관 내의 감각, 운동을 나타내는 부위가 상호 작용’ (김나영, 『제2의 뇌 장 혁명』, 308쪽)을 하는 것이다. 이런 기능을 동의보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단 소화가 되지 않으면 복잡한 생각 자체가 귀찮아진다. 여기서 복잡하다고 느끼는 생각들은 개념과 실재 전체를 포괄하고 감정을 이성적으로 해석하는 종합적인 생각이다. 소화불량이 생기면 이런 생각들이 귀찮아진다. 감정은 이성을, 개념은 실재를 벗어나 길을 잃게 된다. 물론 그 반대도 인정된다. 감정이 오해와 망상의 드라마를 끝없이 만들고 현실을 만나지 못한 공허한 신념이 지속되면 음식을 먹어도 잘 소화되지 않을 것이다. 안도균,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 187쪽
소화가 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생각도 길을 잃는다. 반대로 소화가 순조로우면 생각이 명료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무슨 일이든 즐겁고 기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최상의 컨디션’이다.
스트레스가 소화 장애를 일으키는 이유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뇌와 위장관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각각 분리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뇌와 위장관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불안하고 초조할 때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 마찬가지로 소화 기능이 떨어졌을 때는 불안과 초조함이 나타나기도 한다. ‘뇌-위장관 축’으로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결과이다. 그래서 앞의 사례 환자분이 ‘소화되지 않으면 초조하여 안절부절’ 한다고 불안감을 호소한 것이다.
우리 몸은 내가 스트레스를 인지하기 전에 먼저 스트레스의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위와 장을 통해 경고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김나영, 『제 2의 뇌 장 혁명』, 309쪽
위장관 검사가 정상인데도 많은 분이 소화 장애를 호소하는 경우는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20대 초반 아가씨가 ‘급체’라면서 진료실에 온 적이 있다. 나는 간단한 진료를 한 뒤 혹시 힘든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녀는 얼마 전에 애인과 ‘쿨’하게 헤어졌다며, 힘들지는 않다고 했다. 나는 바로 말했다. “지금 급체한 것이 아마 이별이 스트레스라고 몸이 말하는 것 같네요. 몸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봐 주세요.”라고. ‘쿨’한 이별을 해서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위와 장은 ‘아니야, 좀 슬퍼해도 돼.’하고 이야기를 해 준 것이다. 소화가 안 되는 것이 관계에서 일어난 일을 다르게 보라는 신호이다. 소화 장애로 병원에 가서 처방받는 것도 좋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해결은 잘못된 식습관이 있는지, 사람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있는지 자신을 한 번 점검하라는 경고 시스템으로 소화 장애를 이해하는 것이다.
좋은 식습관, 집중과 감사
그러면 소화 장애를 해결하는 좋은 식사 습관은 어떤 것일까? 음식을 먹는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다. 먹을 때는 오로지 먹기만 하라는 말이다. 음식이 입안을 들어올 때는 들어오는 것을 알고, 씹을 때는 천천히 오래 씹으며, 혀에서는 음식 맛의 세세한 부분을 느끼고, 목 안으로 넘어가는 운동까지 감지한다. 이것을 ‘먹기 명상’이라 이름 붙이기도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금 순간’에 깨어 있으라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요즘 현대인 대부분은 밥을 먹을 때 먹는 것에 집중하지 못한다. 핸드폰을 보거나, 신문이나 티브이를 보고 심지어 전화 통화를 하면서 먹기도 한다. 이런 상태는 밖에 맹수가 있는 것과 같다. 나의 감각이 외부로 향해 긴장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때 맹수를 피해 도망쳐야 하듯이 몸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인지하여 스트레스 상태가 된다. 그러면 소화 기능이 저하한다. 먹으면서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하는 것도 외부에 맹수가 있는 것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이다. 먹는 것에 오로지 집중하면 외부에 적이 없고 다음에 할 일을 걱정하지 않는 평화라고 몸이 인지하여 소화가 잘된다. 그 결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즐거워진다.
그리고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실 우리가 먹는 쌀 한 톨에는 온 우주가 담겨 있다. 쌀을 길러내는 흙과 미생물, 햇빛, 하늘에서 내리는 비, 쌀을 재배한 농부, 마트까지 농산물을 옮겨 주신 분, 그리고 맛있게 조리하는 엄마까지 온 우주의 무수한 인연이 함께 한다는 말이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밥 한술을 뜨는 것이다. 그러면 감사하는 마음이 장안에 신호를 보내어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풍부하게 생산한다. 그 결과 소화도 잘되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이렇게 나는 이 음식을 맛있게 먹고 소화를 시켜 몸에서 잘 사용한 뒤 마지막에는 똥으로 다시 세상으로 흘려보내야 한다. 내가 음식을 먹고 싸는 소화 과정이 세상과 소통하는 몸의 방식이다.
살펴보니 먹는 것은 우리 몸에서 아주 중요하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기본 에너지를 얻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우리는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다. 먹는 것이 풍족한 사회에 살아서 어디서든 손쉽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 도달해야 할 급한 목표, 예를 들면 시험, 취직, 과제를 해야 하면 먹는 것을 함부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간을 아낀다고 빨리 먹고, 아예 안 먹고, 약으로 대체하고 손쉬운 정크 푸드로 배를 채운다. 왜? 먹는 것보다 목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먹고 소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니체도 말했다. 지혜를 탐구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가장 소화하기 어려운 것도 소화해 내는 이빨과 위장’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3, 110쪽)이라고. 공부를 잘하는데 소화기관이 튼튼해야 한다는 뜻이다. ‘먹고 소화하기’는 원하는 바를 이루는데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글_이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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