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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민의 진료실인문학

[이여민의 진료실 인문학] 통풍, 바람만 스쳐도 아파요!

by 북드라망 2024. 8. 5.

통풍, 바람만 스쳐도 아파요!
  

지인 중 40대 초반에 대기업 CEO가 된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는 55세의 젊은 나이에 돌연 은퇴했다. 여전히 기업의 신뢰를 받는 터라 나는 좀 의아해서 이유를 물어봤다. 그는 몸이 아파서 더 이상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업무상 거의 매일 사람들을 만나 술과 고량진미를 먹어야 했는데 이것이 결국은 몸에 질병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최정상에서 그를 내려오게 한 병은 통풍이었다. 이런 사례는 과거에도 있다. 18세기 스페인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국 앤 여왕이다. 앤 여왕 또한 통풍으로 괴로워하다 49세의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앤 여왕을 모델로 한 영화 〈더 페이버릿〉에는 여왕이 통풍으로 고생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극심한 통증으로 앤 여왕은 극도로 히스테릭해진다. 나는 이 영화에서 앤 여왕이 통풍으로 고생하면서도 무지막지하게 먹는 것을 보고, 혀를 찼었다. 저러니 통풍이 더 악화하고, 또 계속 아프니 히스테리가 늘지 하고 말이다. 대기업 CEO와 앤 여왕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다. 이들조차도 피할 수 없었던 통풍은 어떤 질환일까?

 


통증 중 최고는 통풍
통풍(痛風)은 아플 ‘통’에 바람 ‘풍’ 자를 쓴다. 말 그대로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 최고의 성군이라 불리는 세종대왕이 통풍에 걸렸다는 기록이 있다. 복잡한 여성 편력과 여섯 번의 결혼으로 유명한 영국의 헨리 8세도 통풍을 앓았다. 성공한 CEO, 앤 여왕, 세종대왕, 헨리 8세를 언급할 때 여러분은 눈치챘는가? 통풍은 ‘제왕의 병(Disease of the kings)’인 것을! 환경(?)이 너무 좋아서 생기는 병이란 뜻이다. 한편으로는 병증 중에서 가장 통증이 심해 ‘병의 제왕 (King of the disease)’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내 주위에도 통풍으로 고생하는 이가 여럿 있다. 평소 맥주와 치킨을 즐겨 먹던 친구 남편은 50대 중반에 발에 통풍이 왔다. 그는 발이 너무 아파 걸을 수가 없어 한동안 기어 다녔다고 한다. 60세인 남동생은 통풍으로 진단받고도 맥주를 끊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국 요산 결석으로 인해 극심한 허리 통증을 겪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통풍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통풍에 걸리는 이유는 너무 잘 먹어서다. 여기에는 술도 포함된다. 통풍을 앓고 있는 환자의 전형적인 이미지는 왕이나 귀족 같은 상류층에 나이 들고 얼굴이 붉고 뚱뚱한 남자이다. 그런데 과거 상류층만 먹을 수 있었던 육식과 알코올을 요즈음에는 누구나 쉽게 자주 먹는다. 퇴근 후 고기 안주에 술 한잔 곁들이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저녁 풍경이다. 그만큼 통풍이 일반인에게 흔한 질병이 되었다. 그렇다면 고기와 술을 많이 먹는 것이 왜 통풍을 일으키는 것일까? 

 

 


통풍의 원인은 혈액 속에 요산(uric acid)이 증가해서다. 요산은 음식에서 섭취한 퓨린(퓨린(purine)은 피린미딘(pyrimidine)과 이미다졸(imidazole)이 융합된 형태의 헤테로고리 화합물이다. 물에 잘 녹고, DNA, RNA, ATP 등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작용을 하는 다양한 화합물의 기본 골격으로 사용된다. 세포가 수명을 다한 후 핵산이 유리된 뒤에 이 핵산의 구성 성분인 퓨린이 간에서 대사된다. 이 최종 분해 산물이 요산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퓨린 [purine] (화학백과))이라는 물질을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로 흡수하고 남은 물질이다. 신장은 체내에 요산이 과다하지 않도록 요산을 오줌으로 배설한다. 그런데 체내 요산이 너무 많이 생성되거나 배설이 잘되지 않으면 고요산혈증이 된다. 혈중에 요산 농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우리 몸의 요산을 높이는 음식은 소, 양, 돼지 같은 붉은 육류와 간, 콩팥 등 내장 부위, 그리고 청어, 고등어, 참치같이 기름진 생선이다. 이런 음식들은 현대인이 즐겨 먹는 식재료다. 그런데 이런 음식을 지속해서 섭취하면 체내에 요산이 증가한다. 한편 요산 배설을 저하하는 원인은 요산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신장의 고장이나, 요산 배설을 방해하는 술, 아스피린, 이뇨제 복용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고기는 체내 요산을 올리고, 술은 요산 배설을 감소시킨다. 고기와 술의 조합이 통풍에 걸릴 확률을 배로 늘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요산이 정상보다 증가한 고요산혈증이 오랫동안 지속하면 요산이 작고 뾰족한 결정체(통풍결절, tophi)를 형성한다. 이 통풍결절이 관절에 염증을 유발해서 극심한 통증을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통풍이다. 다시 정리하면 요산 결절이 조직에 침착하여 염증을 일으킨 질환이 통풍이다. 관절염의 6~10%(오가닉한의원 지음, 『통풍』, 오가닉한의원)가 통풍으로 인해 발병한다는 것이 밝혀질 만큼 통풍 환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한편 건강검진 데이터를 보면 요즈음은 요산 수치가 7.0mg/dl 이상인 고요산혈증인 사람이 많다. 고요산혈증이라고 해서 전부 통풍 환자는 아니다. 통증이 수반되지 않으면 통풍이 아닐 확률이 높다. 정확한 판별을 위해서는 의사 진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요산 수치가 높을수록, 기간이 지속할수록 통풍 관절염이 발병할 소지가 올라가는 사실은 여러 임상 데이터가 증명하고 있다.

 


청년이 통풍이라고?
최근 27살 청년이 오른쪽 발목이 부어서 너무 아프다며 진료실을 내원했다. 발목이 부었는데 정형외과를 가지 않고 왜 내과에 왔을까? 이 환자는 통풍 환자였다. 방금 말했듯이 통풍은 요산이 높아 관절이 아픈 질병이다. 진통제가 필요해서 우리 병원으로 온 거다. 나는 통풍 환자는 대부분 중년에 뚱뚱할 거로 여겼다. 그런데 이 환자는 청년이고 몸매도 너무 날씬했다. 나는 젊은 청년이 진짜 통풍인지 의문이 들었다. 피검사로 요산 수치를 확인했는지, 병원에서 통풍으로 진단받았는지 재차 물었다. 청년은 요산 수치(통풍; 혈액 내 요산 수치가 7.0mg/dl 가 넘으면 고요산혈증이라고 부른다. 통풍을 일으키는 전제 조건이다. 그런데 고요산혈증이 통풍 발작을 일으키지 않는 경우도 많아 이때는 무증상 고요산혈증이라고 한다.)가 9.2mg/dl였고 의사가 통풍으로 확진했다고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8~2022년) 통풍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2022년 61만 명으로 약 18.3%나 증가했다. 연령별 증가율은 20대에서 48.5%, 30대에서 26.7%, 40대에서 22.6%(중앙대학교 2024.2,2, 시리즈 건강뉴스)로 20~30대 통풍 환자가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내과 의사가 쓴 건강 칼럼에 ‘치맥, 막맥과 하이볼과 헤어질 결심’이란 글이 있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치맥과 막맥, 하이볼은 일상이란다. 치맥은 치킨과 맥주, 막맥은 막걸리와 맥주, 맥사는 맥주와 사이다를 섞은 것인데, 하이볼은 뭔지 몰라 찾아봤다. 하이볼은 위스키 같은 술에 탄산을 섞은 것이다. 젊은이들에 ‘핫’한 음료 조합이 통풍을 일으키는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술도 통풍의 원인이지만 탄산음료도 통풍을 일으킨다. 탄산음료에 들어있는 액상 당질 성분 때문이다. 또 운동을 즐기는 많은 이가 단백질 음료를 챙겨 먹는데 이 또한 단백질 과다 섭취를 유발해 요산을 올릴 수 있다. 


이렇게 20~30대의 통풍 환자가 늘어나는 것은 음료 때문이다. 나는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 “하루에 물을 몇 잔 드세요?”하고 자주 물어본다. 당뇨 환자의 혈액 내 당 수치를 내리는 것은 물이다. 우리 몸의 물을 관장하는 신장이 기능이 원활하도록 도와주려면 맹물 섭취가 중요하다. 그런데 의외로 물을 먹지 않는 사람이 많다. 29살 조카는 고요산혈증인데 물보다는 다이어트 콜라를 즐겨 먹는다. 통풍으로 내원한 청년도 물 대신 단백질 음료를 매일 섭취한다고 한다. 조카나 통풍 청년처럼 요즈음은 맹물 대신 커피, 녹차, 우유, 두유, 과일 주스, 탄산음료를 많이 마신다. 밍밍한 물은 싫고 맛있는(?) 물을 좋아한다. 문제는 맛을 낸 물 안에는 모두 탄산과 액상과당이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요산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신장으로 요산을 배출하려면 물이 꼭 필요하다. 체내 물이 부족하면 소변이 줄고 요산 결석이 소변 줄기를 타고 밖으로 나가지 못해서 심한 통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렇게 맹물을 섭취하는 것은 질병 예방에 여러모로 필요하다. 영양제를 한 움큼 먹고 건강을 걱정하는 환자에게 나는 아주 쉬운 것을 제안한다. “영양제 대신 그냥 물을 하루에 7잔 챙겨 드세요. 돈도 들지 않아요. 물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줘요.” 중년 남성에게 주로 발병하던 통풍이 요즈음 젊은이들도 걸리는 이유가 마시는 음료 때문이었다니! 맛있는 음료를 피하고 맹물을 챙겨 마시기만 해도 통풍이 발병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맛있어? 조심해! 
노자의 『도덕경』을 풀이한 책을 읽다가 무릎을 탁하고 쳤다. 나이와 상관없이 통풍이 늘고 있는 근원적인 이유를 만났다.

 

다채로운 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현란한 음악은 사람의 귀를 멀게 한다. 복합적인 맛은 사람의 입을 상하게 한다.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중략. 이 글은 감각기관의 문제와 한계를 지적한다. 감각을 협소하게 인지해서가 아니라 감각에 탐닉해 거기에 붙들려서다. 문화 활동이 감각기관에 자극을 주고 인간이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자극과 반응이 계속 상승하면서 감각기관에 이상이 생긴다. 감각기관이 자극에 붙잡힌 것이다. 감각기관이 자극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의 노예가 되어 감각을 잃어버린다. 최경필 지음, 『독학자를 위한 노자 읽기』, 북튜브, 183~184쪽, 초판1쇄 2023년 11월 15일

 


3000년 전 노자는 감각에 더 좋은 것을 원할수록 중독되어 사람이 상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노자는 지금처럼 티브이가 있지도 않고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높일 수도 없고 탄산음료도 없던 시절에 살았다. 그런데도 눈, 코, 귀, 입을 가진 인간이 감각적 자극이 다채롭고 현란하고 복합적일수록 ‘더, 더, 더’ 원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자극을 많이 줄수록 우리는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극이 주인이 되어 노예 신세가 된다. 그러면 눈과 귀가 멀며 입이 상하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지금은 화려한 볼거리와 맛있는 음식, 모두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딱 그런 시대적 환경이다. 


아름다운 마왕의 딸들이 나타나 유혹할 때 부처님은 ‘칼날에 발린 꿀은 혀를 상하게’(도올 김용옥 지음, 『도올, 달라이라마와 만나다.』) 한다고 말씀하신다. 아름답고 맛있다고 느낀다면 혹시 칼날에 발린 꿀인지 살펴보면 어떨까? 꿀이 맛있다고 정신없이 핥아먹으면 우리는 칼날에 혀를 베일 수 있다. 알게 모르게 자극에 중독되면 진정 나에게 이로운 것을 잃어버린다. 그 결과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고량진미와 액상과당이 듬뿍 들어있는 음료가 칼날의 꿀이다. 꿀을 탐닉해서 혀가 상한 상태가 통풍이다. 


그러면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까? 중국 송나라 태종이 소이간(蘇易簡) 소이간(蘇易簡)(북송 시대의 관리이자 문장가)에게 “음식 중에서 가장 진귀한 게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소이간은 “진귀한 음식이라고 정해진 것은 없고 다만 자기 입에 맞으면 진귀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최진규 약초 전문가, 《음식과 약의 도를 말하다》, 월간산, 2012.01.31) 그러면서 소이간이 왕에게 추천한 음식은 백성들이 평상시에 즐겨 먹던 콩잎이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음식을 늘 먹으면 병에 걸릴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만 잘 챙겨 먹어도 통풍에 걸릴 확률이 준다고 한 말을 기억하는가? 건강해지는 방법은 아주 소박하다. 배고픔을 느낄 정도로 약간 적게 먹는다. 배고프면 무엇이든지 맛있게 마련이다. 굳이 더 맛있는 것을 찾지 않는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먹는다. 식사를 건너뛰면 몸은 에너지가 부족하다 느끼고 급한 마음에 설탕이 많이 든 달콤한 음료를 찾기 때문이다. 식단은 액상과당이 많이 들어있는 인스턴트 음식을 피하고 그 계절에 그 장소에 나는 것들로 채워본다. 이것이 좋다는 것은 암 환자들의 식단이 밥, 된장, 김치, 제철 나물인 것으로도 알 수 있다. 


27세 청년이 통풍인 것이 마음 아파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젊은데 왜 벌써 통풍이 발병했는가가 나의 질문이었다. 들여다볼수록 감각적 쾌락에 대한 중독을 부추기는 현대의 식습관이 원인 중 하나였다. 질병의 원인을 알면 그 원인을 멀리하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 건강해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지 않겠는가? 다음번에 청년이 진료하러 오면 이야기할 것이다. “단백질 음료 대신 달걀 2개를 먹고 운동하세요. 그리고 꼭 하루 맹물을 7잔 이상 드세요.”라고. 
  


글_이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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