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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민의 진료실인문학

[이여민의 진료실 인문학]감기와 독감, 다르게 겪기!

by 북드라망 2024. 5. 23.

감기독감, 다르게 겪기!
 

명상 수련을 가게 되어 불가피하게 2주 정도 병원을 비워야 했다. 휴진을 알리려고 병원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내원했던 환자 한 분이 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올리셨다. 내용은 이렇다. 환자 본인은 오한이 나고 무지무지 아픈데 의사는 흔한 감기 증상이라며 일반적인 감기 처방을 내렸다. 그런데 처방받은 약을 먹고 하루가 지나도록 증세가 차도가 없었다고 한다. 미심쩍어 다음 날 다른 병원에 가서 진료받았더니 A형 독감으로 진단받았다는 것이다. 환자분은 아주 불쾌했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하셨다. 나는 감기 대증치료를 했는데, 환자는 독감이었다는 말이다. 감기와 독감은 초기 증상이 아주 비슷하다. 기침과 콧물, 그리고 열이 난다. 그런데 문진과 기본 진찰로 아는 감기와 달리 독감인 경우는 진단키트를 사용해야 판명할 수 있다. 우리 병원에서는 행정 절차상 번거로운 여러 가지 이유로 진단키트를 쓰지 않는다. 환자 증상을 추적 진찰하여 감기와 감별하고, 독감이 의심되면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받기를 권한다. 나는 환자에게 너무 미안했다. 덕분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감기와 독감은 모두 바이러스 질환이다. 그럼, 이 두 질환은 무엇이 다를까? 

 


왜 항생제 안 줘요?
감기로 내원하는 환자 중 가끔 항생제 처방을 원하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빨리 낫고 싶어서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한다. “감기는 7일!” 약을 먹어도 7일, 약을 먹지 않아도 7일이 지나야 감기에서 회복된다는 말이다. 더욱이 감기 치료에는 항생제를 쓰지 말아야 한다. 감기는 바이러스 질환이라서 그렇다. 항생제는 세균의 세포막을 파괴하여 균을 죽이는데 바이러스는 세포막이 없다. 고로 항생제는 감기 치료에 효과가 없다. 그렇다면 세균은 뭐고 바이러스는 뭘까?

 

지금은 우리가 아픈 것이 세균이나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물, 즉 미생물(microorganism)이 인간 질병의 원인으로 밝혀진 것은 불과 오백 년 전이다. 14세기 중세 유럽 인구 1/3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은 사회 구조를 붕괴시킬 정도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질병이었다. 미생물의 존재를 몰랐던 당시에는 토성, 목성, 화성이 일직선에 놓일 때 오염된 증기가 바람에 실려 흑사병이 퍼졌다고 발표했다. 현미경이 발명되고 한참 뒤에야 비로소 흑사병의 원인이 세균인 페스트균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제야 항생제로 치료도 가능해졌다. 

 

19세기 말부터는 세균보다 작은 생물체도 병을 일으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는 라틴어로 ‘포이즌(poison)’이다. 이는 ‘독’이란 뜻으로 인체에 해를 끼치는 물질이란 말이다. 세균은 아닌데 사람 몸을 아프게 하는 무엇인가를 바이러스라 부른다. 전자 현미경이 발달 되어 바이러스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바이러스 생리를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우리 몸의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과 바이러스! 둘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다. 차이는 스스로 생존하는 능력이 있냐는 것이다. 세균은 세포막을 가지고 있고 자체 복제가 가능하다. 스스로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세균에 의한 질병은 세포막을 파괴하는 항생제가 치료제로 쓰인다. 이에 반해 바이러스는 세포막이 없고 혼자 증식하지 못한다. 자손을 남기려면 숙주가 필요하다. 숙주가 없는 상태의 바이러스는 자가 복제를 하지 못하는 단순한 단백질과 핵산 덩어리인 무생물 상태로 존재한다. 하여 바이러스 질환인 감기나 독감에는 항생제가 소용없다.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특성을 모두 가지는 것이다. 바이러스 혼자일 때는 그냥 단백질 덩어리였다가 숙주를 만나면 숙주 시스템을 이용하여 자식을 생산한다는 사실. 기묘하지 않은가? 묘한 경계인처럼 느껴지는 바이러스! 그렇다면 바이러스가 원인인 감기와 독감의 차이는 무엇일까?

 


 

감기, 변화에 마주치는 사건
감기와 독감의 가장 큰 차이는 예방주사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독감만 예방주사가 있다. 환절기만 되면 많은 사람이 감기에 걸리고 괴로워하는데 왜 감기 예방주사는 없는 것일까? 

 

감기는 영어로 ‘common cold’이다. common은 흔한 또는 공통이란 뜻이다. cold는 추운 것을 말하니 ‘common cold’는 흔하거나 공통으로 춥다는 말이다. 환자가 들어오면서 “지난번하고 똑같이 아파요.” 하면 대부분 감기다. 감기는 어느 특정 바이러스로 발병하는 것이 아니다. 코와 목 부분을 포함한 숨 쉬는 통로의 상부에 생긴 감염증상을 감기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바이러스는 혼자서 살 수 없다. 숙주가 필요한데, 사람이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는 상부 호흡기계에 와서 정착하여 감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모두 감기 바이러스이다. 감기는 급성 질환 중 가장 흔하지만, 그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는 200개가 넘는다. 그래서 특정 예방주사를 만들 수가 없다. 이에 반해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하나다. 그래서 예방주사를 만들 수가 있다.

 

겨울에서 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감기 환자가 특히 많다. 왜 그럴까? 변화의 시기라서 그렇다. 이는 마치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인 사춘기와 비슷하다. 사춘기를 흔히 홍역을 치른다고 한다. 이 말인즉슨 몸의 변화가 일어나서 혼란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환절기에는 날씨의 변화가 큰데 우리는 매번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어야 하므로 급변하는 대기의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환절기가 되면 대기 중 수분, 먼지, 미생물들이 바뀐다. 이 변화의 시기에 마주치는 사건이 감기이다. 특히 어린 아이의 경우 감기는 면역력을 획득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세상의 다양성에 노출되어 성장하는 통과의례가 감기라 볼 수 있다.


동양 의학에서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변곡점, 이때를 ‘금화교역(金火交易)이라고 한다. 불(火)기운에서 금(金)기운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로의 변이가 일어나는 시기이다. 이때 감기에 가장 많이 걸린다. 봄, 여름에는 발산하는 기운을 써야 하지만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듯이 수렴하는 쪽으로 기운의 방향을 정반대로 돌려야 한다. 양에서 음으로 기운 장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기 위해 나도 다른 존재로 변해야 한다. 여름에는 해가 기니 활동량이 많아도 괜찮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해가 빨리 지니 활동량도 줄이고 일찍 자는 것이 좋다. 여기에 어깃장을 부리면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에 걸리기 쉽다. 예를 들면 여름에는 머리를 말리지 않고 젖은 머리로 외출해도 된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아침 기온이 떨어지고 서리가 내리는데 젖은 머리로 외출하면 찬바람을 만나 바로 감기가 든다. 감기를 자주 앓는다고 괴롭다고만 하지 말고 변화의 시기에 내가 어떤 생활습관을 고집하는지 한번 관찰하자. 

 

“내가 내 스스로 나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습관적이고 자동화된 이야기 방식을 바꾼다는 뜻이다. 새로운 내면 소통방식을 체득하고 습관화한다는 뜻이다. 나와의 소통방식과 내용이 달라지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달라진다.”
김주환, 『내면소통』, 인플루엔셜, 2023, 169쪽.

 

 

감기는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나의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자동화된 내 생활 태도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감기로 아프냐? 바로 지금이 외부로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나를 돌볼 때이다. 

 


독감, 멈추는 기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감기로 생명을 잃지는 않는다. 그러나 독감은 감기와 달리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또 독감은 감기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좋아지지 않기도 한다. 일부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이나 어르신들은 고위험 합병증인 폐렴으로 진행되어 사망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 독감은 감기보다 위험한 질병이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맞물려 대유행한 스페인 독감(스페인 독감, 1918년 유럽에서 창궐한 독감이다.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에서 언론검열이 없어 독감을 집중적으로 보도해서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렀다.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의 변형인 H1N1 바이러스에 의해 유행한 독감이다.)은 당시 전쟁 사상자보다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스페인 독감은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14만 명이 스페인 독감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때 흉흉해진 민심이 1919년 3.1 운동을 발발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한 보고에 의하면 스페인 독감은 100년 동안의 흑사병 사상자보다 많은 목숨을 앗아갔고 같은 기간의 AIDS 사상자보다도 많았다.


그렇다면 과학 기술과 의학이 발달한 2024년 우리에게 독감은 어떤 질병일까? 지금은 독감의 원인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임을 알기에 대처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WHO에서 변이를 예측하여 매년 새로운 독감 예방주사를 만든다. 보건당국은 고위험군인 65세 이상의 연령층, 당뇨와 고혈압 같은 만성병 환자가 독감에 걸리면 위험하니 매년 독감 예방주사 맞기를 권한다. 현재 독감은 걸리면 감기보다 좀 더 아프고 많이 쉬어야 하는 호흡기 질환으로 분류한다.

 

역사적으로 독감이나 코로나 같은 전염병은 지속할 것이다. 바이러스가 계속 변이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이러스의 변이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치료제를 만들고 다시 변종이 생기고 예방주사를 개발하는 무한 반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이러스를 무서워해야 할까? 몸이든 생활이든 균형이 깨지면 면역력이 약해진다. 독감에 걸렸다는 말은 곧 균형이 깨졌다는 뜻이다. 고로 균형이 맞는 생활을 하면 바이러스가 염증을 일으키는 일을 하지 못한다. 전 지구적으로 보면 생태계의 균형이 깨져 코로나가 창궐했다. 개인적으로 독감에 걸렸다면? 지금 내가 심각하게 불균형 상태란 말이다. 개인마다 신체 조건이나 생활 패턴이 달라서 어떤 것이 균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몇 가지는 공통적이다. 잠과 운동, 그리고 식사다. 잠자는 시간은 몸의 면역 세포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간이다. 충분한 수면과 가벼운 운동, 수분이 풍부한 식사는 바이러스가 일으킨 염증, 일종의 불이 난 상태를 진정시키고 예방도 해준다. 


독감에 걸리면 서두에 말한 환자처럼 너무 아파 평상시처럼 생활하기가 힘들 수 있다. 이때는 정말 푹 쉬고 또 쉬어야 한다. 회사나 학교를 빠지는 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온전히 숨만 쉬고 밥만 먹으면서 집에서 쉬어야 한다. 이런 태도가 독감에 걸린 나에게도 좋고, 독감에 걸리지 않은 남에게도 좋다. 독감인데 외부 활동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전파하고, 무리하면 2차 합병증인 폐렴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의사가 독감에 걸리지 않는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정보는 인터넷에 많이 있다. 나는 병의 역사를 공부하고 명상 수행하면서 “아파도, 산다!”라는 삶의 모토가 생겼다. 이렇게 변이가 많은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병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니체는 적이 ‘나를 고양하고 향상하는 자’라고 말한다. 감기나 독감이 내 생활을 점검하게 해주는 ‘적’(니체, 나를 향상하는 것만이 ‘적’이라고 부를 만하다.)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우리는 건강할 때는 자신을 챙기지 않는다. 아프면 비로소 자기를 돌아보게 된다. 환절기의 변화에 순응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면 감기 또는 독감이라는 적이 찾아온다.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던 우리는 독감이라는 적 덕분에 잠시 하던 일을 멈추게 된다. 언젠가 나도 독감에 걸려 며칠 병원 문을 닫은 적이 있다. 너무 아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기분이 묘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다니! 최소한만 움직이고 물만 먹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약을 먹고 기다렸다. 3일 정도 심하게 앓고 나니 일상의 작은 것들이 다르게 보였다. 아픈 환자에 대한 공감의 역치도 상승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 스님 책 제목, 수오서재)참 많다. 숨 쉬는 것도, 환한 햇살도, 목으로 넘어가는 물 한 방울도 참 귀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모든 순간 충만하고 매사에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나를 고양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왕 아픈 것! 편안히 쉬어 보자!

 

 


 글_이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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