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마주하며 당당하게 나아가라
(리뷰 도서 : 고미숙, 『고미숙의 인생 특강』)
2등 박소연
나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부모님은 학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셨고 학교가 재미없어지면 언제든 그만둬도 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정말 신나게 1학년을 보냈기에 2학년이 되었을 때 되려 조금 지루해졌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홈스쿨러가 되었고 비교적 속 편한 십 대를 보냈다.
시간이 흘러 또래 친구들은 하나둘 대학에 가거나 일찍 취업해 직장인이 되었다. 가고 싶은 학과가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직장에 다니며 자기 밥벌이를 하는 친구들이 보였다. 그땐 내 삶이 ‘총체적 난국’ 같이 느껴졌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는 이런 상태가 너무 불안했다. 그래서 차라리 달려가면 이룰 수 있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렇게 진로를 고민하다 이십 대가 되었으니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대학 대신 공무원 시험을 선택했다. 그때부터 내 목표는 ‘공무원이 되는 것’. 내 인생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표였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그 전과 똑같이 불안했고, 아니 오히려 더 불안했고 답답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왜일까? 목표가 없어도 불안하고, 있어도 불안하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마음의 평정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이 불안의 근원은 그동안 갈망해왔던 ‘구체적’이고 ‘뚜렷한’ 목표의 유무가 아니었다. ‘나는 뭘 하고 싶지?’, ‘나는 뭘 할 수 있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끊임없이 수많은 질문이 일고 스러졌지만 나는 어떤 물음에도 이렇다 할 답을 할 수 없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한 다음엔? 쉬는 날 이런저런 취미활동, 자기 계발을 하며 재미나게 지낼 것이다. 그런 다음엔? 뭐 여행을 갈 수도 있겠지. 그렇게 하루가, 한 달이, 일 년이, 십 년이 흐르고 나서 삼사십 대가 되면 나 하나만 책임지는 것에서 나아가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적당한 돈이 모아져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든 질문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더욱 ‘가치 있는 삶’, ‘충만한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움, 답답함, 허탈함, 약간의 분노마저 느끼고 있는 나에게 『고미숙의 인생 특강』은 펼친 지 채 몇 페이지도 되지 않아 엄청난 반전을 선사한다. 혼란을 지혜에 접속하는 문으로 바꾸어 버린 것. 저자는 말한다. 삶 자체가 ‘모른다’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삶을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기나긴 앎의 여정’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태어나는 순간 이미 구도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 그렇다면 나는 내 삶의 길을 구도자로서 잘 걸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혼란이 더 이상 혼란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을 혼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순간부터 많은 것이 달라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혼란을 느끼는 밑바탕엔 두려움이 숨어 있다. 어쩌면 나는 친구들과 함께 웃고,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원하는 곳에 취업하고, 넉넉한 돈을 벌고,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고 난 뒤에 찾아올 허무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허무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나를 덮칠 때 견뎌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나에게 저자는 ‘마주하지 않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 생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죽음을 마주하라’고 말한다. 『고미숙의 인생 특강』은 혼란과 두려움을 구도의 길 위에서의 당찬 첫걸음으로 바꾸어 놓는다.
여전히 그럭저럭,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는 예전과 비슷한 상태이지만 마음이 편안하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는 모든 게 취업 혹은 미래와 관련된 것이었던 1년 전과 달리 요즘은 눈과 마음에 담기는 것들이 매우 다양하다. 사람들, 대화, 여운이 진하게 남는 강의, 산책로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거리며 오가는 까치,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고양이…. 이 모든 것들 사이에서 나를 느끼면 내 존재가 무척 가벼워진다. 목표나 꿈에 대한 생각도 그렇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자유롭다. 중요한 건 목표 하나를 설정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의 안정감, 그것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비우는 것. 모든 것에는 끝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그 허무와 두려움을 당당히 마주한 채 치열하게 묻고 답하는 것. 그렇게 머무르지 않을 때만이 내가 느껴왔던 불안과 허무를 충만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니, 가볍고 경쾌하게 나아가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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