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연재 ▽/리뷰대회 당선작

[한뼘리뷰대회 당선작] 공동체, 당당한 삶을 위한 도구

by 북드라망 2022. 5. 27.

공동체, 당당한 삶을 위한 도구


3등_김해숙

 


지난 3월 공부 공간을 옮겼다. 조선시대의 학교였던 옛 서원이 새로운 공부터다. 인연은 인연인 것 같다. 현대의 공부 단체가 조선시대 성리학의 본산인 서원으로 입주를 하다니! 속 모르는 사람들은 공기 좋은 숲속에서 현대판 선비 노릇을 하게 됐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한다. 그러나 내심 고민이 많다. 왜냐하면 우리 단체는 공부와 사업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공부공동체인지 사업체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구성원 대개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부끄러움? 이런 감정들을 많이 갖고 있다. 다른 공부공동체에 비해서 실력도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열등감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문제가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전적으로 서원으로의 이사 때문만도 아니다. 다만 공간 이사와 이번 리뷰쓰기가 겹치면서 이반 일리치의 시각으로 봤을 때 더 이상 이런 떳떳치 못한 공부가 인생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근 10년 전, 인문학 공부를 처음 했을 때 우리 구성원들은 많이 설레었다. ‘학력 무관’, ‘전공 불문’, ‘대중지성’, ‘인생역전’, ‘업장소멸’ 등등, 저마다의 열등감에서 허덕이던 우리에게 이보다 매혹적인 말은 없었다. 게다가 ‘글로 돈 벌기’가 가능하다니! 우리는 인생의 금맥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래서 과감히 바꿨다. 이반 일리치에 따르면 우리는 삶의 ‘도구’를 바꾼 것이다. 일리치가 말하는 도구는 “망치나 드라이버 같은 아주 간단한 도구부터 방적기나 공장과 같은 것까지도 포괄하는 용어(『이반 일리치 강의』 38쪽, 이하 쪽수만 표기)”이다. 일리치의 도구에는 기술, 장치, 제도(학교, 결혼 같은)까지 다 포함된다. 그렇다면 우리 단체의 구성원들은 이미 도구를 바꿔본 경험이 있었다.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이게 첫 번째 도구였다. 우리 단체의 구성원은 전원이 여성이다. 이들이 처음 우리 (교육)단체에 들어올 때는 거의 경단녀였다. 일리치에 따르면 경단녀의 삶을 바꾸기 위한 새로운 도구가 바로 교육단체인 우리 공동체였다. 일리치는 이런 경우를 생산적 수단으로서 도구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인간이 도구를 만드는 목적이 무엇인가? 기존의 삶보다 더 좋은 삶을 위한 것 아닌가? 교육단체 활동이 더 이상 새로운 삶의 도구로 작동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왔다. 자신이 바뀌지 않는 교육 활동에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진행 등에서 갈등도 심했고, 능력을 더 쌓아 더 많은 수입 더 안정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단체를 떠나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반 일리치 강의』을 한 이희경 선생이 말한 그대로였다. “도구가 어느 시점까지는 우리의 삶을 굉장히 활기차게 해준다는 거예요. 생산성을 높이고 삶의 질을 개선해 주죠. 일리치는 이런 도구를 ‘공생적 도구’라고 합니다.” 그랬다. 처음 우리 공동체로 들어온 사람들은 의미 있는 교육활동에 약간의 생활비를 번다는 점에서 공동체를 공생적 도구로서 활용했다. 생산적으로 삶을 사는 것처럼도 느꼈다. 그런데 어느덧 더 권위 있고 전문적(?)인 교육 기관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났고, 남은 사람도 우리 단체가 보다 더 좋은(?) 도구가 되길 바랐다. 일리치는 이런 상황을 가치가 바뀌어 버린 것이며, 도구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 ‘조작적 도구’가 된 거라고 말했다. 조작적 도구를 쓰는 사회는 사람들의 삶을 프로세스나 기준에 가둔다. 기준이 있다는 것은 가치에 위계를 두기 때문에 ‘결여’와 ‘결핍’을 만든다. 이 결핍에서 우리는 앞서 말한 대로 열광적인 기대를 갖고 인문학공동체에 접속했다. 

 

교육 단체에서 인문학공동체로! 두 번째로 ‘도구’를 바꾼 것이다. 역시 새로운 삶의 도구, 인문학공동체로의 도약에서 우리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3년 정도 지나자, 우리는 더 이상 믿지 않았다. 그 매혹적이던 ‘전공 불문’, ‘대중지성’, ‘인생역전’, ‘업장소멸’ 의 말들이 어느덧 희미해져 갔다. ‘글로 돈 벌기’의 길도 너무나 험난해 보였다. 무엇보다 여전히 열등감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게 힘들었다. 점점 주눅이 들었다. 그 이유를 이번 리뷰에서 알았다. 『이반 일리치 강의』에 따르면 우리가 학교 제도처럼 인문학 공동체를 운영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학력으로 직업을 얻으려 한 것처럼, 공동체를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자원(52쪽)’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리치의 “개인이든 공동체든 각각에 맞는 적정한 기술 규모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거기에 맞춰서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성이 있습니다.”(55쪽) 라는 말에 그 답이 있다. 공부와 사업 둘 다를 도구로 사용하는 게 우리 공동체다. 이게 내 조건이다. 이 조건에 위계를 두지 않으면서 우리 공동체답게 사는 길을 만들어갈 지성이 이미 있다는 말대로 더 이상 주눅 드는 공부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서원의 모든 조건을 활용하여 우리 삶의 도구를 만들어 가는 게 생산적 공부일 테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