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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리뷰대회 당선작] ‘초심지인’의 동기와 비전, 회향

by 북드라망 2023. 5. 24.

‘초심지인’의 동기와 비전, 회향

(리뷰도서 : 성태용, 『더 나은 오늘을 위한 불교 강의』)

 


2등 성민호


그래, 바로 ‘초심지인’(初心之人)이로구나! 명함에 적을 만한 근사한 문구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다. 초심지인은 ‘처음 마음을 일으킨 사람’이라는 뜻으로, 『계초심학인문』의 첫구절이다. 그렇다면 ‘초심’이란 무엇인가? “초심은 향상심, 곧 내가 보다 나은 존재가 되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39쪽)이다. 아직 쑥스러움이 좀 있지만,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그리고 나 스스로를 돌아볼 때 이 ‘향상심’이라는 말을 꺼내어 보리라. 나는 나날이 나아가고자 배우며 살아가는 초심자다. “오늘보다 더 훌륭한 사람, 오늘보다 더 나은 사람, 오늘보다 더 멋있는 사람, 오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내는”(39쪽) 사람이다.  나는 불교 신자도 아니고 수행자나 학자도 아닌데 왜 이런 자기규정이 간절했는가 하면, 지금 내가 맞닥뜨린 상황이 나에게 집요하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대체 누구이며 왜 공부하느냐고. 무엇 덕분에, 무엇을 위해서, 어떤 힘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느냐고.

 

내년, 우리는 독립을 한다. 오랫동안 공부하며 생활해 온 공부공동체에서 분리되어 나와 청년 중심의 공부 공간을 꾸리기로 했다. 멤버는 오래된, 그러나 데면데면한 친구들 넷. 우리의 비전과 색깔은 무엇이어야 할지, 살림을 잘 운영할 수 있을지, 다투거나 소원해지지는 않을지 막막한 걱정들이 솟아났지만, 결정적인 질문은 나를 향했다. 지난 몇 년 간 공부를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하겠지만, 전처럼 ‘어쩌다 보니 하게 돼서 한다’는 식의 태도는 통하지 않는다. 왜 내가 다른 길이 아니라 공부라는 길을 가려 하는지, 함께 할 친구들에게, 떠나올 공동체에게, 새로 만나게 될 친구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의 변혁을 위해서인가? 학술적 연구를 위해서인가? 생태 운동이나 소수자 인권 투쟁 등 정치적인 활동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내적인 도야나 깨달음을 위해서인가? 어렵다. 모두 맞다고 할 수도 있지만 모두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뚜렷하지 않은 것도 당연한 게, 숨겨진 걸 찾는 게 아니라 이제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독립할 예정인 규문의 청년 넷!

 

그러던 차, 『더 나은 오늘을 위한 불교 강의』의 구절들은 이 답답한 마음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줬다. 비전 자체를 쥐어주진 않았지만, 초심지인이 어떤 자세로 공부를 해나가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가자는 재가자에게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 톨의 힘도 아껴서 그것을 수행에 쏟아 부어야 한다. 그리하여 얻은 지혜방편을 다시 재가자에게 회향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6쪽)


이 문장이 왜 이렇게 깊이 와 닿는 걸까? 나는 출가자가 아니며 재가자도 아니다. 지키는 계 하나 없으며 별다른 수행도 하고 있지 않으니까. 불교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이해의 수준은 부끄러울 정도이고 자주 존다. 이렇게 뭐 하나 들어맞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저 ‘회향의 의무’만은 명료하게 납득이 된다. 얻어낸 지혜방편을 나눠야만 한다. 그렇게 느낀다. 왜냐, 나의 공부는 정말로 수많은 손길들 덕분에 가능했으니까.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무렵, 나는 공동체에서의 생활이 시혜적 관계라는 느낌, 뭔가 빚을 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했다. 그런 부담은 내가 공동체에서 계산되지 않는 방식으로 이런저런 역할을 해내고 살림을 함께 꾸리고 있음을 이해하면서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지만, 완전히 당당한 마음을 갖는 데에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었다. 받은 것을 충분히 갚지 못한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하지만 회향이라는 의무는 생각의 틀을 바꿀 수 있게 해준다.

 

회향은 수행에 있어서 의무인 동시에 동기이자 비전인데, 공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나는 공부하지만, 내가 잘나서 하고 있지 않음을 안다. 그 시작에서도 끝에서도 내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도움들이 보인다. 이걸 이해하는 한, 나는 부지런히 배워감이 마땅하다. 즐겁게 읽고 듣고 생각하고 써나감이 마땅하다. 아무렇게나 회향할 수는 없으니까. 회향하기 위해서라도 하루하루 정성들여 지혜를 배워나가야 하고, 지혜를 정성껏 익히기 위해서라도 회향의 의무를 잘 새겨야 한다. 독립을 위한 질문들을 빼곡하지만, 초심지인으로서 회향이라는 마음 자세 하나를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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