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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리뷰대회 당선작] 품삯 획득을 위한 삶 vs 진정한 전문가

by 북드라망 2023. 5. 23.

품삯 획득을 위한 삶 vs 진정한 전문가

(리뷰도서 : 박연옥, 『영혼과 정치와 윤리와 좋은 삶』)

 

2등 박은영

 
인문학 책을 읽은 지 10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내가 학창 시절 가장 싫어했던 분야는 바로 철학이었다. 철학이 뭔지도 모르면서 철학은 답이 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답이 딱 떨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비록 수학을 잘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수학이 좋았다. 아직 내가 풀지 못했을 뿐 수학엔 답이 있으니까.
 
『영혼과 정치와 윤리와 좋은 삶』은 플라톤의 『국가』를 읽고 작가에게 다가온 부분을 그의 삶과 함께 에세이로 엮은 책이다. ‘좋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선택했는데, 결국 철학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철학책답게^^ 많은 개념어들이 나온다. 아포리아, 아레테, 독사, 동굴의 우화, 정의 등등. 익숙하지 않은 철학 용어들이라 나올 때 마다 다시 그 뜻을 찾아서 기억해 보려하지만 금방 잊어버린다. 그런데 많은 단어들 중 한번 보고 잊혀지지 않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품삯 획득술’이라는 말이었다. 저자는 품삯 획득술로 살지 말고 전문가로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와 트라쉬마코스가 정의에 대해 언쟁하는 부분이 나온다. 트라쉬마코스는 “양치기가 양을 돌보는 이유는 양털과 젖과 고기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하자, 소크라테스는 “그건 품삯 획득술이지 양치기의 기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어린이집 생태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넓은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배우는 생태활동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고, 이 활동을 통해 돈을 벌고 있지만 돈 이전에 아이들 정서 발달 측면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품삯 획득술’이란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내가 돈보다 아이들의 바른 성장을 위해 얼마나 마음을 썼나 돌아보게 되었다.

10년 가까이 이 일을 하다 보니 수업에 대한 연구보단 지난 해 했던 것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매년 어린이들이 바뀌니까, 자연도 매번 반복되니까, 어린이들에겐 반복 학습이 중요하니까, 같은 활동이라도 어린이들이 성장하면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니까… 등등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며 수업을 하고 있었다. 또는 가끔 어린이들이 잘 따라주지 않아 힘든 날은 ‘휴, 이 수업을 마치면 얼마를 버는구나. 이 정도 애쓰고 이 만큼 벌면 됐지 뭐.’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나의 이런 행동들이 바로 딱 품삯 획득술이었던 거다.
 


사실 생태 수업을 하면서 마음이 편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수업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 하고 작년에 했던 것만 반복하고 있으면 ‘이러다 수업 다 잘리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얕은 지식으로 똑같은 것만 떠들고 있는 나를 볼 때면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자연에 기대어 수업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 품삯을 획득하는 자가 아닌 ‘진정한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크라테스는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돈을 벌고, 양치기는 양을 돌보고 돈을 받고, 선장은 배를 운행하고 품삯을 받지만, 그렇다고 보수를 받는 것이 그 직업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기 이익을 위해 통치를 하는 치자는 전문가가 아닌 ‘모리배’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전문가는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의 본분을 충실히 실천하는 자이다. 의사는 치료를, 양치기는 양 돌보기를, 선장은 배 운행을 충실히 하는 것이 진정한 전문가이다. 일을 하고 나면 그 일에 따라오는 보수를 받을 수 있지만, 그 보수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각각의 직업에는 그 고유한 기능이 있고, 그 기능에 충실해야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한다.
 
『영혼과 정치와 윤리와 좋은 삶』에선 본분에 충실한 진정한 전문가가 되려면 철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철학이란 질문을 하는 순간 시작된다고 한다. 나는 왜 어린이들과 생태 수업을 하는가? 이 활동은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나는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 등등.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철학이고 이런 과정 속에서 본분으로 한 발짝 다가가 전문가가 될 수 있고, 이것이 곧 좋은 삶이 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전엔 철학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철학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앞에서 말했듯 내가 철학을 싫어했던 이유는 답이 없어서였다. 모든 문제는 답이 있어야 명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나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공부이자 철학이지, 그 답이 종착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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