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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대회 당선작] 운명을 따르지 말고, 사용하라!

by 북드라망 2023. 5. 29.

운명을 따르지 말고, 사용하라!

(리뷰 도서 :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2등 김미솔


전에 엄마가 내 사주를 보고 온 적이 있다. 점쟁이는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 내 귀를 강타했던 조언이 하나 있었다. 나의 팔자 중 토 기운에 해당하는 미토가 공망이라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이었다. 점쟁이는 이 토기운을 채워줘야 한다고 했다. 공망이란 무엇인가? 그 기운이 계속 빠져나간다는 말이다. 점쟁이는 미토가 공망인 채로는 좋은 남자를 만나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줬던 구체적 실천방안은, 미토에 해당하는 동물인 ‘양sheep’을 항시 지니고 다니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공망을 조금은 채울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양 이미지를 별별 곳에 다 붙이고 다녔다. 하지만 양을 아무리 늘려도 내 삶이 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애인도 없고, 여전히 공망인 것이다. 왜 양을 들고 다녔는데도 나의 운명은 바뀌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답을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보통 사주명리학을 말하면 숙명론이 아니냐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인생을 결정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숙명론은 정해진 운명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운명에 대한 해석을 전적으로 외부에 맡기는 것을 뜻한다. 몸이 아플 때 의사나 묘방만을 찾으면 그것이 곧 숙명론이다. 왜 아플까? 그 인과를 찾기 시작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 가게 되면 그건 숙명론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비전탐구가 된다.” - 고미숙 지음,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북드라망, 155쪽


저자가 묘사하는 ‘숙명’의 모습이 흥미롭다. 저자는 “몸이 아플 때 의사나 묘방만을 찾는 것”이 곧 숙명론이라고 한다. 왠지 점쟁이의 말을 맹신하여 양을 들고 다녔던 내 모습과 오버랩이 된다. 결국 저자는 의사나 점쟁이의 말을 맹신하는 그 태도를 숙명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숙명론에 빠지는 걸까? 위 인용문 중 “묘방”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양이 남자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점쟁이의 말은 나에게 그야말로 묘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외부에서 주어진 치트키를 통해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마음이 나를 숙명론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치트키를 무조건 따르겠다는 맹신과 주어진 운명을 다만 따르겠다는 숙명은, 그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 외부에 있다는 점에서 같았다. 마땅히 밟아야 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딱 결과만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를 삶의 주인 자리에서 노예 자리로 이끈다. 그 탐욕 위에서 우리는 맹목적으로 주어진 운명을 따르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주어진 운명을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욕망과 탐욕 위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자발적으로 운명을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운명론은 숙명론과는 아주 다른 스텝을 밟는다. 운명론이라고 해서 정해진 운명, 주어진 팔자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팔자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내 사주에 공망이 있듯, 어느 팔자에나 치우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매번 걸려 넘어지는 그 지점, 내가 가진 기운들의 치우침을 스스로를 관찰하고, 해석을 내고, 그 다음 스텝을 내디딜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자기 삶의 주인이다. 결국 운명, 즉 명을 운전하겠다는 것은 삶의 과정을 한 단계도 건너뛰지 않고, 그 모든 스텝에서 배워나가겠다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오직 배우겠다는 마음 위에서 우리는 주어진 운명을 따라가는 대신 운명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찾아보니 미토는 계절로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속했다. 여름 환절기인 만큼 그 온도는 일 년 중 가장 뜨겁다. 내게는 남자운인 관성이 화기인데, 뜨거운 미토가 관성의 화기를 북돋아주기 때문에 점쟁이는 양을 지니고 다니라 했던 것이리라. 

관성은 남자운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관계운이기도 하다. 그것은 시련과 불편함을 꼭 수반한다. 나의 팔자에는 관성이 딱 하나인데다가 고립이라 그 힘이 아주 미약하다. 그 말인즉슨, 관계에서 오는 시련과 불편함을 견디는 힘이 내게 별로 없다는 뜻이다. 관계가 주는 이 여름의 뜨거움을 인내할 수 있는가? 미토는 가장 더운 그때를 참을 수 있는 미덕을 가르쳐준다. 관계는 항시 좋은 것뿐만 아니라 나쁜 것도 수반한다. 하지만 나는 좋은 것만을 취하고자 했고, 나쁜 것이 왔을 때는 그것을 참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관계에 있어서 힘든 일들이 오면 그걸 못 참고 이내 관계를 끊어버리곤 했다. 이런 내 성정을 돌아보니, 뜨거운 구간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비로소 제대로 된 사랑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양을 들고 다니는 대신, 미토에게서 인내심을 배워봐야겠다. 나의 운명으로부터 배우기!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나의 운명을 사용하고 운용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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