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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리뷰대회 당선작] 버내큘러, 내 삶에 대해 고민하는 태도

by 북드라망 2022. 5. 27.

버내큘러, 내 삶에 대해 고민하는 태도

3등_서월석

 

코로나로 시작된 팬데믹은 우리를 전혀 다른 세상에 살게 했다. 아이들은 매일 가던 학교를 이제는 요일별로 나눠서 등교한다. 다행히도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시골의 작은 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서 매일 전교생 등교가 가능하다. 도시 엄마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매일 대면 수업이 가능하고 전교생 방과후수업이 가능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팬데믹에 최적화된 학교다. 이렇게 좋은 학교를 사춘기 큰아이는 가기 싫다고 한다. 내가 어릴 때 학교는 당연히 가야하는 곳이었고 가기 싫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 왜 가야하는지 의문을 갖는다. 덩달아 나도 학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제까지 믿어왔던 당연한 생각들은 『이반 일리치 강의』 읽기를 통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말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거지.....? 우리는 학교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되긴 한 걸까?’


나는 지금 전교생 50명이 안 되는 작은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다. 첫아이의 초등생활은 도시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입학하자마자 주위 엄마들은 영어, 수학, 한자 등 아이에게 필수적인 공부라며 시켜줘야 한다고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했다. 결국 ‘공부를 강요하는’ 주변 엄마들을 피해 시골로 이사를 왔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은 어릴 때부터 많은 지식을 배워서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과 함께 신나게 뛰어놀고 많은 것들을 몸으로 경험하기를 바랐다. 시골의 작은 학교는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목적을 이룰 수 있었고 아이들도 만족해했다. 시골생활을 하면서 나에게는 마을활동가라는 일도 생겼다.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위해 작은 도서관, 돌봄센터 등 여러 공간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돌봄센터로 가서 책읽기, 생태, 전래놀이 등 센터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여태껏 나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환경을 만들어주었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아이에게 이런 말을 듣기 전까지는. 

 

“엄마, 방과후수업도 재미있고 돌봄센터 수업도 좋긴 한데,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여유를 부리는 시간도 있으면 좋겠어.”

 

아이에게 이런 말을 듣고 나니 적잖은 충격이 찾아왔다. 대안학교에 아이들을 보냈던 이희경 저자도 점점 학교태(schooling)가 강화되어가는 대안학교를 보며 제도화된 교육의 현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나도 초등 1학년부터 국, 영, 수 공부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는 도시의 교육환경이 싫어서 작은 학교로 아이들을 옮겼다. 하지만 국,영,수에서 생태, 독서, 전래놀이 등으로 교과목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제도화 속에 있었고 학교태(schooling)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단지 제도화의 규모가 큰 학교에서 작은 학교로 옮겨왔을 뿐이었다. 저자는 ‘제도화의 기미를 알아차리는 혜안과 그것의 중력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 내가 머무는 곳 그 어디라도 제도화가 진행된다(『이반 일리치 강의』, 이희경, 9~10p)’고 말한다. 나는 학교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은 하지 않은 채 ‘작은 학교는 다양한 체험과 교육환경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런 곳에 아이들을 보내는 나는 훌륭한 선택을 한 거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내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의례 속에 집어넣은 셈이었다. 그러고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확신에 찬 삶을 살아왔다.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 스스로 배신을 당한 느낌이 들었다. 작은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것이 정답이라고 여겨왔고 더 이상의 의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가 말하는 좋은 삶은 ‘버내큘러’이다. ‘버내큘러란 자기 삶에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일컫는 말(『이반 일리치 강의』, 이희경, 50p)’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에게 가장 좋은 삶을 생각하고 창조할 수 있다는 태도가 버내큘러이다. 도시의 학교를 보내고 시골의 작은 학교를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아이에게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가치를 두는 것,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이 버내큘러하는 태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팬데믹 시대에 변화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A를 선택하든 B를 선택하든 그것이 자기 삶에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고 숙고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라고 얘기한다. 나는 왜 아이들을 작은 학교에 보내게 되었을까? 다시금 그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추구했던 교육의 목적이 정말 작은 학교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좋은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순간들에 있는 것인지 따져봐야겠다. 삶의 작은 한 부분조차도 무조건 따르지 않고 고민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책에서 말하는 ‘버내큘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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