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 동양고전이라는 나침반을 따라서
안녕하세요! 문탁네트워크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은입니다. 북드라망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괜히 조금 머쓱하네요 ^ㅠ^ 이번에 <why&how> 동양고전 강의를 들었는데 정신차리고보니(?) 동양고전 공부를 하고 있는 저로서는 궁금한 게 많아 듣게 되었어요.
나를 엄습한 고대의 감각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동양고전과 40년 동안 함께 해온 길진숙 선생님의 계기는 고등학교에서 들었던 고전문학수업이었다고 합니다. 신라의 향가인 <도천수대비가>를 들었던 순간을 지금도 기억하고 계신다고 해요. 식곤이 밀려오는 시간에 귓가에 꽂혀서 들렸던 향가!! 그 이후로 선생님은 대학 진로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표현으로는 ‘세상을 다르게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났다고 해요.
도대체 무엇이 길진숙 선생님을 그렇게 만든 걸까요!? 그때 고전문학수업에 들었던 <도천수대비가>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딸이 눈이 멀어 앞을 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노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고스란히 선생님께 전달되었던 거죠. 냄새, 촉감, 정서… 경험해본 적 없는 시대의 감각이 엄습하면서 어떤 고양감을 느낀 겁니다.
이런 경험은 아무래도 개인적인 부분이다 보니 저로서는 어떤 느낌이었을지 상상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선생님 얘기를 들으면서 저도 고전을 읽을 때 주로 고대 사람들이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슬퍼했는지, 기뻐했는지에 눈길을 뒀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고대와 같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그 감정을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딘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아마도 그런 경험이 고전공부를 시작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계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겠지만, 그걸 붙잡게 되는 건 스스로에게 달린 일인 것 같아요. 알 수 없는 시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그것을 계기로 길진숙 선생님은 고전공부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여백으로 뛰어들기
이후로 20대에 고전공부를 선택했지만 이전의 강렬한 경험은 빛이 바래지고 서서히 생계와 자신의 욕망을 중심으로 연구를 위한 연구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공부를 하더라도 의미와 삶을 성찰하지 못한다면 고전공부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공부도 고리타분 한 것이 아닐까 해요. 그때, 장자가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셨다고 합니다. 분명 이전에도 장자를 읽었는데 왜 그때는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했던 걸까요?
저도 처음 문탁에 접속 했을 때 <논어>를 읽었습니다. 그때 마구 화를 내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요.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냐!!!”하면서 말이에요ㅋㅋㅋ 그런데 몇년 뒤 다시 <논어>를 읽었을 땐 정말 달랐습니다. 제가 소속한 단위가 바뀌면서 ‘공부를 왜 해야 하는 걸까’라는 마음이 굉장히 컸거든요. 이런 상태이다 보니 공자가 말하는 공부가 뭔지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공자의 말에 설득당했습니다. ‘공부는 배우고 익히는 것, 그 과정에서 살아가는 법을 알수 있다’는 공자의 절실한 외침을 느꼈거든요. 그때는 ‘내가 공자 말도 받아들일 줄 알고, 그동안 공부한 게 허투루는 아니겠구만! ’하고 생각했는데 사실 제 문제를 비추어서 읽었으니 가능했던 것이지요.
‘낡은 공부’, ‘고리타분’ 고전공부라고 한다면, 특히나 동양고전이라고 한다면 그런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는 것 같아요. 특히나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하지만 길진숙 선생님께서는 동양고전이 계속해서 새로움을 준다고 합니다. 그 새로움이란 바로 ‘나에게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에서 벗어나 생각하기가 굉장히 어렵잖아요. 선생님의 경우에는 ‘남의 도덕을 나의 도덕이라 믿고 있었던 것’, ‘자기 생과 마음을 돌보며 바깥의 가치를 자신에게 수렴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제가 <논어>를 읽고 느낀 것이나, 길진숙 선생님이 장자를 읽고 결론낸 내용이 그냥 흔한 감상이라거나, 아니면 굳이 고전을 읽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장을 찾아내기까지 어떠했는지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계속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결국 동양고전은 어떤 상황과 존재,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지금과 같은 언어는 아니기 때문에 여러 빈틈들이 있지만 그 여백으로 뛰어들어 자신만의 정밀한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동양고전을 배우는 이유이자 목적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길진숙 선생님은 여러 이야기를 통해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동양고전은 그리로 향하는 나침반이 되어줄 거라고 말이에요.
혼자서 공부하는 것은 금물
그렇다면 동양고전은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요? 사실 제가 제일 궁금했던 것은 이 방법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ㅎㅎ 뭔가 비결이라거나… 요령이나… 조금이라도 쉽게 동양고전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동양고전에는 그런 방법이란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스승님 밑에서 오랫동안 한시에 대한 강의를 들으셨지만 그렇게 공부해서는 별로 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일단 먼저 “한문을 읽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한문에 있는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들을 알아야 하고, 그 용례들을 익혀야 한다는 거죠. 일단 흥미로워 보이는 고전을 하나 잡고!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문장을 하나하나 읽어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일단 한문을 이루고 있는 한자부터 알아야 한다는 거 아시죠 ^^…. 고전공부는 천천히 음미하듯, 성실히 해나가면 분명 성과가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순간 옥편이 없어도 한문을 읽어내릴 수 있을 때의 쾌감! 느린 만큼 그런 성취가 정말 확실하다는 거겠죠. 선생님이 학교를 다니실 때는 기본으로 1800자를 익히셨다고 하는데 지금 공부하고 있는 저는 어떻게 해야 하지….
물론 고전공부의 등반을 혼자서 떠나려 한다면 금물입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더라도 혼자서 하게 된다면 나에게 갇혀버리듯, 원문에 갇혀버릴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 친구와 함께해야 합니다. 친구와 함께하면 나에게 갇히지도 않고, 원문에 갇히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고전의 여백 속으로 뛰어들 용기도 더 많이 생깁니다. 그리고 친구들만큼이나 많은 책을 읽는 것도 강조하셨어요. 어쨌든, 고전은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을 많이 담은 글이기 때문에, 나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그 시절의 시대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최근 제가 주역을 읽고 있어서 어떤 걸 읽으면 좋을지 살짝 여쭤봤는데 덕분에 읽어야 하는 책이 한 수레나 되었답니다. 선생님께서는 해맑게 10년 동안 할 공부가 생기니 기쁘지 않냐고 하셨지만 저는 조금 아득해졌답니다 ㅎㅎㅎ
말씀하시는 내내 길진숙 선생님의 들뜬 표정이 기억납니다. 고전공부가 얼마나 즐거운지, 그리고 고전공부를 하면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까지!! “우울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네요. 고전은 여러모로 혼자가 아니라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그런 공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공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약간의 부담과… 약간은 채찍질을 하게 되는, 그런 강의였습니다. 강의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글_이동은(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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