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도 착해질지 몰라”
— 인문학 입문 강의 ‘WHY & HOW 인류학’ 후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인문학 입문 강의 그 두번째 시간, 오선민 선생님의 ‘인류학, 왜 공부해야 하나요?’와 ‘인류학,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요?’ 강의 후기를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지난번 서양철학 강의 이후 저희 인문학 입문 강의의 입소문이 널리널리 퍼져서 요즘 제일 핫한 신인류(?) 신도시의 서준맘까지 강의를 들으러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서준맘으로 빙의해 보겠습니다. 뿅!
짜라란~. (두 팔 앞으로 뻗고 주먹 쥐었다 폈다 하면서) 안녕, 안녕! 나 서준맘이야. 자기들, 내가 맨날 공구만 하는 줄 알았지? 나 진짜 속상해. 아무도 몰라. 민정이 언니 서정이 언니도 몰라. 내가 ‘공구’도 하지만 ‘공부’도 하는 걸. 내가 이번에 인류학 강의를 들었거든. 자기들 동화인류학자가 뭐하는 사람인 줄 알아? 고미숙 선생님이 ‘고전평론가’를 만든 것처럼 오선민 선생님이 스스로 만든 건데, (완전 속삭이며) 서준맘도 내가 만든 거잖아. 아무튼 내가 오늘은 좀 바쁘니까, 동화인류학자가 궁금하면 『시작도 끝도 없는 모험, 『그림 동화』의 인류학』 딱 읽어 봐봐. 아니다, 그냥 당장 주문해. 이런 건 생각났을 때 해야 된다? 지금 주문하잖아? (희번득) 내일 당장 와 버려.
아무튼 내가 인류학 강의를 들었잖아. 근데 이런 걸… (소리 안 내고 입모양으로) 솔직히 왜 공부한다는 거야? 내가 서준이아빠, 민정이 언니 서정이 언니랑 지지고 볶고 하는 걸로도 맨날 기절인데, 아하하하하핳하, 아니 진짜 그렇잖아. 옆동네 사는 사람들도 아니고 쩌~어기 아마존 같은 데 살고, 글씨도 쓸 줄 모르고, 얼굴에 막 그림 그리고… 그런 사람들한테 뭐 배울 게 있냐고. 그런데 있잖아, 세상엔 항시, 아무도 안 할 것 같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인류학 1세대(콜럼버스 원정대), 2세대(타일러)에 이은 3세대 레비-스트로스야. 이 사람 있잖아, 책도 많이 썼어. 『슬픈 열대』, 『야생의 사고』, 『신화학』 등등등…. 길게도 썼나 봐. 『신화학』은 총 네 권인데 4권은 아직도 번역 중이래. 뭐, 나도 이 책들을 다 읽어 본 건 아니라서, 아하하하하핳하하, 나 지금 좀 당황했다, 그죠? 근데 어떡해, 나도 서준이 유치원 보내고, 엄마들이랑 정보 공유하고, 공구도 하고 바쁜걸. 근데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 『슬픈 열대, 공생을 향한 야생의 모험』 이런 책도 있어. 이건 272쪽이야. 300쪽도 안 돼. 하루에 한 쪽씩 읽으면 1년도 안 돼서 싹 다 읽어 버려.
좌우간 그 책들은 레비-스트로스가 아마존 원주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본 대로 쓴 책이야. 남비콰라족, 보로로족, 카두베오족, 투피 카와이브족? 아우, 몰라 몰라 몰라. 이름이 낯설어. 이 사람들 사는 건 이름보다 더 낯설어. 카두베오, 걔네들은 있잖아, 여자들이 출산을 혐오한다는 거야. 임신을 하면 (울먹울먹) 낙태하거나, 낳으면 영아살해를 하는 게 정상이라는 거야.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눈물 콧물이야. 나 강의 듣다 말고, 스카이스캐너 사이트 열려고 했잖아. 당장 아마존 쫓아가려고. 레비-스트로스도 놀랐겠지. 왜 그런가 보니까, 카두베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제일 짱이야. 자연보다도. 자연에선 다 자기 새끼를 낳고 물고 빨고 하니까, 우린 다르다 이거야. 이런 사회에는 내가 배서준이를 아이러브유하는 모성은 없지. ‘어떻게 이럴 수가!’ 싶지만, 인류학을 공부하면 이런 사례들을 수도 없이 보고, 그다음에는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이럴 필요가 있나를 생각하게 되는 게 인류학을 공부하는 묘미라는 거야, 선생님 말씀이. 물론 아직은 나는 그런 묘미를 느낄 수 없지만 항시적으로 배우겠습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고마워요!(양손 브이)
그래서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우리가 인류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시야가 넓어진다는 거야. 그리고 그 넓어진 시야에서 수많은 진리가 출몰하는 걸 보게 된다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랑 대단히 다양한 방식으로 사귀고 헤어질 수 있다고 하시대. 인류학 공부하면 내 남편한테 자꾸 사업하자고 꼬드기는 정구 오빠랑도 제대로 사귀고/헤어질 방법도 찾을 수 있으려나. 나 그럼 진짜 인류학 공부 열심히 해버려. 하여튼 한 발 더 나아가면 인류학 공부를 하면서는 ‘어쩌면 나는 착해질지 몰라’ 하는 느낌적인 느낌까지 받는다는 거야. 전에는 3분밖에 못 듣던 남 얘기를 5분은 들을 수 있게 되셨다고. 애걔걔, 할지는 몰라도 호리지차 천리현격(毫釐之差千里懸隔)이라는 거야. 어머머머머머, 나 지금 문자 썼지? 봐, 나 공구 말고 공부도 한다니까?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 내가 저번에 우리 배서준이 아플 때,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고 했는데, 이번에 인류학 강의를 들으니까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다 싶더라구.
자, 그럼 인류학 공구, 아니 공부는 어떻게 하느냐. 어머머머머, 세상에 무슨 일이야. 뭐긴 뭐겠어? 책이야. 선생님이 울산 반구대, 공주 석장리, 라스코 동굴 벽화로 우리 쏙 홀려 놓으시고는 책을 얼마나 많이 추천해 주셨는지 몰라. 인류에 관한 책, 마음 인류학에 관한 책, 인류 기술사에 관한 책 등등등등등. 오늘 강의도 지난번, 다음번 강의랑 묶어서 책으로 나온다고 하고, 레비-스트로스를 따라 신화를 탐구해 나가는 오선민 선생님의 신간도 준비 중이라니까 기다리면서 봐야지 뭐. 책 읽는 나, 항시적으로 응원해! 근데, 책만 보다가는 우린 바로 기절이잖아. 그러니까 답사 코스도 많이 알려 주셨어. 자연사박물관, 화폐박물관, 장신구박물관, 돌문화 공원 등등등등등. 참, 선생님이 공부하시는 인문공간세종에서는 그런 프로그램도 생각하고 계신다대? 모년 모월 모일 모시에 모처(예를 들면, 국립중앙박물관 3층 국제관 앞)에서 만나자, 이런 공지를 갑자기 띄우면 그때 거기에 모이면 모이는 대로 같이 답사하고, 공부하고, 헤어지는. 어머 세상에, 너무 획기적이야! 근데 거기가 캐나다가 될 수도 있대. 하긴 어디든 다 되겠지. 인류학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니까.
어머머머머, 우리 배서준이 올 시간. 나 이제 가야 돼. 아무튼 인류학 아니라 뭐가 됐든 항시 공부하는 우리 자기들, 언니가 항시적으로 응원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다음에 또 뵙시다가 영어로 뭐였지? 나이스 투 굿 투데이! 아이 러브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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