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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설수설

[행설수설] 윤회와 환생 – 14대 달라이라마의 환생

by 북드라망 2023. 4. 5.

윤회와 환생 – 14대 달라이라마의 환생

*이 글은 <2020 고미숙의 行설水설 – 티벳, ‘눈의 나라’로의 여행> 강의의 일부 내용입니다.

 

윤회와 환생의 차이
1935년 7월 6일 아침에 어느 마을에서 아이가 태어났어요. 달라이라마가 환생한 거죠. 그런데 우리가 환생이라고 하는 건 모든 삶을 과정으로 보는 거잖아요. 불교는 신을 믿는 종교도 아니고 천상에 태어나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는 과정이 있을 뿐인 삶을 말해요. 그러면 지금의 우리 삶도 어디서 끝장을 보려고 하면 안 되는 거죠. 끝이 있는 게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이 아기는 ‘처음 시작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생의 한 과정 속에 또다시 인간의 몸을 갖고 등장했다.’ 이렇게 해석해야 돼요. 근데 우리는 그 과정에 있는 걸 모르니까 내가 ‘몇 월 며칠 몇 시에 태어나서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그 이전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없죠. 연결이 안 되니까 윤회인 거예요.

근데 환생 제도는 너무나 선명하게 연결돼요. 이 아기는 1933년에 입적한 13대 달라이라마와 연결된 거예요. 그래서 입적을 하자마자 다음 환생자를 찾는 거죠. 무려 14대니까 몇 백 년을 그렇게 한 거예요. 그게 아주 정교한 시스템으로 있어요. 그런데 많은 징조를 보여줍니다. 달라이라마 13대가 입적을 하면, 미라로 만들어서 포탈라 궁에 쭉 전시를 한대요. 그 기술도 굉장히 뛰어난 거죠. 그래서 분명히 머리가 남쪽 방향으로 누워 있었는데 자꾸 북동쪽으로 머리를 향했대요. 그리고 라싸의 하늘에 구름이 자꾸 나타나는데 그게 북동쪽을 가리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은 다 가르쳐주지 않아요. ‘인간이 스스로 노력해라.’ 이거예요. 북동쪽이 ‘암도’라는 지역이에요. 암도 지역은 중국하고 국경이 연해 있어서 14대 달라이라마가 어릴 때 시닝(Xining)이라는 중국 지역의 방언을 했대요.



14대 달라이라마의 탄생
달라이라마는 입적을 했으면 정치적 공백이 생겨서 섭정을 합니다. 티벳은 섭정의 정치인데, 이때의 섭정은 레팅린포체라는 환생자였어요. 그 섭정한테 더 구체적인 영상이 떠올랐어요. 특정한 집이 떠올랐고 그 아이가 떠올랐어요. 그랬는데 드디어 그 이미지에 떠오른 집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너무 놀랍게도 13대 달라이라마가 이곳을 지나간 적이 있는 거예요. 이 마을을 지나 쿤둔 사원에 머무르다가 거기에 있는 고승하고 마음이 맞아서 완전히 친구가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이 둘이 그 마을에서 엄청나게 소풍을 다녔어요. 그 마을 사람들은 평생 달라이라마를 한 번 보는 게 꿈이었어요. 그래서 이런 광경을 보고 이게 꿈인가 생신가 그랬는데, 그 13대가 특별히 마음을 쓴 집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떠나면서 ‘이 마을과 사랑에 빠졌다. 나는 다시 돌아올 것 같다.’라고 했어요. 

그러다가 그렇게 친했던 그 쿤둔 사원 린포체가 먼저 입적을 했는데 그분이 달라이라마가 빠졌던 그 집에 태어난 거예요. 그래서 이미 환생자로 검증이 돼서 쿤둔 사원에 가 있었어요. 그리고 레팅린포체가 떠올렸던 그 아이의 집을 찾았는데 이 아이는 열 세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14대 달라이 텐진 갸초. 그때의 이름은 라모였어요. 그런데 이 엄마가 라모를 그냥 외양간에서 낳아요. 외양간에서 짚 더미에서 낳으면 사람들 시선을 안 받고 그다음에 피가 짚더미에 모이니까 그것만 딱 가져가서 태우면 끝난 대요. 뒤처리가 너무 깔끔하죠.


달라이라마, 환생의 증거
이런 와중에 탐색대가 왔어요. 올 때 완전히 변장을 하고 옵니다. 절대로 어떤 기미를 줘서는 안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팀장은 하인의 옷을 입고 하인을 스님처럼 꾸며요. 유목민은 나그네를 위한 공간이 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죠. 그런데 우리의 집에는 길손(나그네)을 위한 공간이 있는가. 그런 생각도 해보아야 됩니다.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다.’ 이런 건 아니지만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손님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되는데 실제로 집은 그렇게 큰데 마음 편하게 묵을 수 있는 공간은 없잖아요. 그것도 우리가 삶을 굉장히 협소하게 사는 거예요.

그렇게 지켜보고 있는데 얘는 아예 그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대요. ‘오늘 라싸에서 누군가 올 거야.’ 그렇게 해서 만났는데, 하인으로 변장한 이 사람이 염주를 차고 있었어요. 근데 그걸 가지고 ‘그건 내 거야.’ 이렇게 말하더라는 거예요. 그게 13대 달라이라마고. 그래서 ‘그러면 내가 누군지 알면 가르쳐주지’ 그랬더니 ‘세라 라마잖아, 세라라는 사원에서 온 라마.’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데, 이거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있었으니, 여기는 시닝 방언을 쓰는 곳인데 라싸 방언으로 얘기했다는 거예요, 이 갓난애가. 이 대화는 조작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거의 직감을 했겠죠. 그래서 다시 올 때 지팡이를 두 개를 짚고 오는데 그거를 자기 거라고 말해요. 그래서 그다음에 13대 달라이라마가 쓰던 물건을 다 가지고 와서 다른 거랑 다 섞어버려요. 그러면 그중에 자기 것을 딱 찾아냈대요. 물건을 찾아내는 거죠.
 

물건을 대하는 마음의 차이
근데 우리가 ‘환생’을 다룰 때 드라마에서는 환생해서 뭐해요? 죽도록 사랑했던 누군가를 찾아내는 거잖아요. 환생 드라마가 좀 많아요? 도깨비에서부터 있잖아요. 근데 거기 물건 같은 게 어디 있어요. 사랑했던 사람을 찾는 것이 자아를 찾아내는 거잖아요. 내 욕망이 자아예요, 욕망이 완전히 빠졌던 그 대상을 찾고 있는 거잖아요. 이건 환생은커녕 집착 윤회의 악순환에 들어가는 거죠. 

저는 이런 생각도 했어요. 우리가 물건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을 안 하는구나. 그런데 우리가 노트북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저는 노트북 없으면 글을 못 써요. 아예 글씨를 펜으로 쓸 수 없어지는 거죠. 근데 달라이라마들은 염주나 지팡이나 모든 게 자기 신체와 거의 동일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동식물에 대해서 갖고 있는 태도도 문제인데 근본적인 문제는 사물과의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동양 사상에서는 군자가 되고 어떤 삶이 완성되는 건 자기가 쓰는 물건들하고의 관계예요. 요즘은 물건을 정말 허접하게 대하죠.
 



가족을 넘어, 만인에게 축복을 주는 자
그렇게 물건을 찾아냈죠. 그래서 달라이라마라고 거의 확신을 했고 이제는 라싸로 데리고 가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 지역을 다스리던 총독 같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게 마뿌펑이라는 장군이에요. 이름도 좀 걸걸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사람이 어린이 라모를 보고 ‘아, 얘가 달라이라마구나.’ 직감을 했어요. 그래서 ‘이 아이를 데리고 가려면 돈을 내.’라고 몸값을 요구해요. 처음에 10만 달러 정도를 부르다가 250만 달러까지 올렸어요. 하여튼 그래서 겨우 250만 달러의 쇼부를 봤었죠. 그렇게 드디어 떠났는데 석 달이 걸렸어요. 라싸에 도착하기까지. 왜일까요? 멀기도 멀지만 모든 사람들이 축복을 받으려고 저 깊은 고원 지대에 있는 분들까지 다 내려오기 때문이었죠. 그러니까 그들을 일일이 축복해 줘야 했겠죠. 근데 이 갓난아기가 그걸 다 해낸다는 거예요.

그래서 석 달이 걸렸고 드디어 라싸 근교에 왔을 때, 섭정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라싸에서 달라이라마 14대라고 선포를 합니다. 그렇게 그 겨울을 지나고 그다음에 사자좌에 즉위를 해서 네 살 반, 다섯 살 때 달라이라마 14대로 인증을 받은 거죠. 그러면 이 부모들은 바로 귀족이 됩니다. 농민인데 귀족으로. 그래서 궁정 근처에 사는데 왕위에 오르는 순간부터 가족들과는 분리돼서 한 달에 한 번 엄마를 만날 수는 있어도 부모의 돌봄 안에서 자라는 건 끝나는 거죠. 그래서 서양인들이 이 제도를 비판할 때 ‘환생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증명하냐.’라고 말해요. 이건 뻔한 얘기고, 두 번째가 ‘어린애를 부모로부터 떼어내는 건 아동 인권침해다.’ 라고 비판을 하는 거예요. 참 삶을 협소하게 보는 거죠. 

사람들은 이렇게만 생각해요. 부모로부터 분리가 되면 상처받아야 되는 거 아니야? 트라우마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이 달라이라마는 6살부터 완전 집중 교육을 받아요. 그래서 이 신성한 존재는 부모도 똑바로 쳐다보면 안 돼. 그러니까 항상 고개를 숙이고 쳐다보는 거죠. 그렇게 수많은 사람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존재가 된 거죠. 

 

강의_고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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