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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설수설

[행설수설] 달라이라마, 티벳을 떠나다

by 북드라망 2023. 3. 8.

달라이라마, 티벳을 떠나다

*이 글은 <2020 고미숙의 行설水설 – 티벳, ‘눈의 나라’로의 여행> 강의의 일부 내용입니다.


 
달라이라마, 신에게 묻다
1959년 3월 17일, 이제 대탈출의 서사시가 시작되는 그 지점으로 갈 겁니다. 순례단과 동티벳에서 쫓겨온 캄파 게릴라들이 어마어마한 숫자로 모여 있었는데, 그때가 10년 동안의 압력이 폭발하는 그런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이 시험을 치른 다음에 양쪽이 대치를 해서 극한의 상황에 갔던 3월 10일에, ‘나는 이제 중국군 기지로 가지 않겠다.’라고 선언을 했어요. 하지만 그 군중이 시위를 풀지 않았어요. 해산을 안 했다고요. 그러니까 뭔가 엄청난 폭풍이 기다리고 있는 거죠. 

그러면 이때 생각한 건 뭘까요. 여기서 죽는 것은 쉬운데 달라이라마가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럴 때 신에게 물어요. 이러한 방식으로 신탁 제도가 오랫동안 내려왔어요. 몇 천 년을 내려왔죠. ‘내충신탁’이라고 국가의 수호신을 불러들여서 길을 묻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되냐고 달라이라마가 물어요. 

내충신탁에서 티벳을 수호하는 신이 뭐라고 했을까요? ‘지금 머물러라. 여기서 대화로 풀어라.’ 이렇게 나온 거예요. 그런데 달라이라마 마음은 그렇게 하면 너무 큰 유혈 사태가 벌어질 것 같았겠죠. 이 상황은 신앙한테 물어보지 않아도 누구나 그렇게 판단이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달라이라마 자신도 점을 쳐요. 하지만 똑같은 점괘가 나왔어요. 그 다음 날 또 쳤는데 계속 머무르라고 나온 거예요. 그래서 달라이라마가 이런 생각을 해요. ‘신도 인간을 속이나? 왜지? 지금까지 이렇게 속인 적이 없는데’ 지금은 일촉즉발의 상태인데 계속 머무르라고 하니까요. 

 



때로는 신도 인간을 속인다
드디어 3월 16일에 노블링카 궁전 어딘가에서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그때 다시 내충신탁한테 물었어요. 그런데 ‘떠나라. 오늘 밤 당장, 지금 당장 떠나라.’ 이런 신탁이 나온 거예요. 신이 무슨 심보일까요? 그래서 그때부터 변장과 탈출 계획을 짭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뭐냐면, 신탁 받은 승려가 몸을 비틀면서 펜과 종이를 가지고 탈출로를 정확하게 그렸어요. 그 종이에 달라이라마 망명로가 있어요. 근데 그 길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가장 험난한 협곡과 강으로 이루어져 있었죠. 더구나 그곳에는 중국군 주둔군이 있었어요. ‘뭐야, 이거 사지(死地)로 가라는 거야?’ 그래서 하급 병사로 변장을 해요. 군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요. 그렇게 변장을 하고 준비를 하는 과정에 중국군이 진지를 옮겼다는 소식을 듣는 거예요. 딱 그날 밤. 

지금 이런 것들이 다 뭘까요? 이에 대한 달라이라마의 표현이 있어요. ‘수호신은 내가 17일에 라싸를 떠나리라는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17일에는 떠나야 된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미리 말하지 않았던 거죠. 신이 속인 거예요. 왜일까요? 탈출 정보가 새어나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군중이 운집해 있어서 정보 관리가 너무나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탈출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라싸 시민이 알아도 굉장히 위험한 문제니까 미리 계획하려고 했겠죠. 그런데 신이 계속 머무르라고 하니까 이 정보가 계속 나갔겠죠? 그러니 비밀이 새려야 샐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자신도 점을 쳤는데 딱 신탁과 일치되는 결과를 얻은 거예요. ‘신이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을 속인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뭐야, 점이 틀렸네? 이거 잡신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고 저는 어떤 것을 느꼈냐면, 인간이 마음을 비우고 신의 뜻에 부합할 때는 신이 당연히 도와요. 그러나 신이 인간이 해야 될 몫을 빼앗지 않아요. 겪어야 될 걸 ‘싹-’ 겪게 합니다. 천지신명이 뭘 도와준다고 할 때 인간을 나태하게 만들어놓고 도와주겠어요? 오히려 무언가를 이루게 하려면 거기서 겪어야 되는 모든 걸 다 겪게 해요. 그러면서 그 길로 밀어내는 거죠. ‘그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 여기에 달려 있는 거예요. 결국 신이 세상을 움직이는 게 아니고 ‘인간이 그 신의 뜻을 감당해 내느냐.’ 여기에 달려 있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 힘에 의존하려고 하죠. 묻어가려고, 점프하려고 해요. 그러니까 맨날 이 모양으로 사는 거예요. 사실은 자신을 믿지 않는 거죠. 뭔가 깨달음이 옵니까? 

그래서 이 탈출이 정말 야반도주에 해당하는 거죠. 그날 짐을 싸서 당장 떠나요. 그렇게 전부 다 두고 옵니다. 그래도 한 나라의 왕이 국가의 지도 체계에 핵심이 되는 인물들은 지켜야 하잖아요. 그래서 3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총 80명의 핵심적 인원이 함께 떠나요. 누구냐 하면, 달라이라마 가족이 가요. 그렇게 어머니와 누나, 형들이 모두 변장을 해서 선발대로 먼저 떠나요. 그 다음에 달라이라마와 호위 경호원들이 떠나고 그 다음, 내각 관료들이 가야죠. 그래야 계속 투쟁을 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 목숨을 유지하려고 떠나는 게 아니거든요. 

이렇게 준비가 끝났을 때, 우리는 바로 튈 것 같잖아요. 그런데 달라이라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그의 수호신이 있는 마하 칼라(Mahakala)를 모신 법당으로 갑니다. 거기 많은 승려들이 예불을 드리고 있었는데, 달라이라마가 와서 불상에 수건을 바쳐요. 이것은 먼 여행을 떠난다는 뜻이에요. 거기 있는 승려들은 그 의미를 아는 거죠. ‘떠나는 구나’ 전부 침묵으로 어떤 의전도 하지 않아요. 그런 날이 있는 거예요. 3월 10일, 이때는 안 되는 거였어요. 새가 가져다가 옮기든지 쥐가 옮기든지 한다니까요? 자,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잠시 기도를 합니다. 그러니까 아주 짧은 일이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는 것, 저는 ‘이런 게 정말로 공부와 불교의 힘인가?’ 생각해요. 우리는 이럴 때 다 건너뛰거든요.

그렇게 기도를 하고 법당을 나오기 전에 거기에 놓여 있는 불경을 읽다가 멈춰요. 부처님이 제자들한테 ‘용감해라.’고 응원하는 그 대목에서 딱 멈췄어요. 그렇게 하고서 나온 다음에는 아무런 감정이 남아 있지 않죠. 달라이라마의 감정 컨트롤의 영역이 어느 정도인가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드라마를 보면서 ‘감정이 이만큼 솟구쳤다.’ 이런 일들을 되게 멋있게 생각하고 그런 감정이 시련을 극복하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엄청난 결단과 엄청난 열정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그건 다 뻥이에요. 사람은 그런 식으로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 감정을 그렇게 다루면 일이 다 망가집니다. 그런데 달라이라마는 이때 스물 네 살이었는데, 일생에 이보다 더 큰일을 겪기가 어렵잖아요. 그 순간에 감정을 이렇게까지 컨트롤하는 힘이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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