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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설수설

[행설수설] 나찰녀의 나라에서 붓다의 나라로 가는 티베트

by 북드라망 2023. 2. 9.

나찰녀의 나라에서 붓다의 나라로 가는 티베트


*이 글은 <2021고미숙의 行설水설 – 달라이라마, 칸을 만나다!> 강의의 일부 내용입니다.


송첸캄포와 문성공주의 국혼
7세기 티벳에서는 송첸캄포가 티벳을 통일해서 토번 왕국을 탄생시켰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중국은 혼란을 겪다가 당나라가 되었습니다. 왜 당나라가 중요하냐면 한나라도 중화문명을 아주 엄청나게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그다음이 당나라이기 때문이에요. 송첸캄포는 티벳 전역을 통일하면서 동시에 주변 국가들을 정복했어요. 송첸캄포가 사신을 보내서 당태종한테 국혼을 제안하니깐 모욕적인 답변을 보내왔죠. 이거 말로는 안 되니 2년에 걸쳐 군사를 보내고 683년에 송주라고, 중국 경계에 있는 땅을 엄청나게 약탈합니다. 결혼하자는 프러포즈를 이렇게 한 거예요, 아 이거 너무 재밌지요, 프러포즈로 그 나라의 도시를 박살냅니다. 그래서 마침내 당태종은 자기가 이걸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드디어 결혼을 받아들입니다. 640년에 티베트 사신이 금 3700냥과 온갖 지참금을 들고 장안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641년 봄에 문성공주가 혼인을 위해 당나라를 떠나 토번으로 향하게 됩니다. 근데 문성공주는 공주로 태어난 건 아닙니다. 당태종의 종친 중 한 사람의 딸이었죠. 왕족은 왕족인데 공주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국혼을 위해서 양녀로 삼은 거예요. 자기 친딸은 보내기 싫으니깐 이런 방법을 쓴 거예요. 그래서 16살 소녀인 문성공주가 641년에 정월 초, 정월 15일, 정월 대보름에 장안을 떠났습니다. 난주를 거쳐 황하의 발원지인 호숫가, 별이 사는 호수에 도착해서 송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죠.

송첸캄포가 32대, 33대로 왔다 갔다 불리는데, 원래는 송첸캄포가 아들한테 왕좌를 물려줬어요. 13살이 되면 아들을 즉위시키니깐요. 그래서 이 아들하고 결혼을 시킨 거였는데 아들이 프러포즈하는 동안에 죽은 거예요. 그래서 다시 송첸캄포가 왕위를 되돌려 받으면서 원래는 며느리였을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된 거죠. 이미 송첸캄포는 다섯 명의 부인이 있었고 이전에 네팔 공주 부리꾸리를 왕녀로 삼고 있었어요.


송첸캄포


당번고도를 만든 두 문명의 만남
이 혼례를 위해서 시안(서안,西安)하고 라싸에 이르는 3000km에 해당하는 길이 열려요. 이 길을 뭐라고 했습니까? 당나라와 토번을 연결하는 당번 고도, 이것도 티벳과 당나라 문화를 이해하는 아주 기초 입문 코스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깐 결혼을 위해서 길을 뚫어야 했던 거예요. 결혼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전쟁을 하고 죽었겠어요. 이렇게 해야지 만나게 되는 거예요. 그것을 위해선 누군가 사람이 가야 되는 거죠, 사람이 움직여야 된다는 거지요. 이 문성공주라는 사람이 이 길을 가야 두 문명이 만나요.

문성공주는 중국의 고전, 고급 비단, 오행 팔괘도를 가지고 갔습니다, 오행 팔괘도가 갔으니깐 주역하고 음양오행론이 간 거예요. 그래서 중국문화의 정수를 티벳 고원에 전달했는데, 최고의 선물은 불교였습니다. 그리고 티벳으로 들어가면서 곳곳에 옴마니반메홈 같은 진언을 새기면서 불국토로 장엄하며 나아갔는데, 거기 갔더니 네팔의 왕녀 역시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거예요. 그래서 둘이 도반이 된 거죠. 둘이서 티벳에 불교를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독실한 불교신자여서 네팔에 있었던 인도 불교랑 중국에 전파됐던 중국불교가 딱 만나게 된 거죠. 이것도 진짜 너무 절묘한 것입니다.


나찰녀의 심장에 세워진 조캉 사원
네팔의 왕비가 사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해서 팔괘에 정통한 문성공주에게 어디다 세워야 되는지 알려달라고 했더니, 문성공주의 해석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이 티베트 왕국은 나찰녀가 누워 있는 모습입니다. 근데 나라 자체의 모습이 나찰녀가 누워 있는 모습이라는 거예요. 거기서 오탕이라는 호수는 나찰녀의 심장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성스러운 산들이 있는데 거기는 나찰녀의 가장 중요한 뼈들에 해당하고, 그래서 얄룽 계곡에서 라싸 쪽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라싸라는 곳은 나찰녀의 심장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 오탕 호수를 메꾼 다음에 거기다 사원을 세워야 한다.’ 이렇게 해석을 했어요. 맞고 틀리고 간에 참 심오하지 않나요? 이건 뭔가 티벳하고 굉장히 깊은 인연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뻥을 치더라도 스토리가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러니깐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한 거예요. 사람들은 이게 진짜야? 하는데, 우리는 진짜고 가짜고 만들 수가 없는데 말이죠, 가짜라도 만들고 싶습니다. 진위의 문제가 아닌 거예요.

그래서 나찰녀의 거친 소울, 심장에 막 불이 드글드글하잖아요. 이걸 끊기 위해서는 ‘두 어깨, 두 발의 뿌리에 해당하는 곳에 네 개의 사원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무릎, 발꿈치 여기에 세워야 한다.’ 두 손바닥 발바닥, 그냥 힘을 쓸 만한 온몸의 혈 자리를 다 이렇게 눌러놓네요, 그렇게 ‘사원을 세우는 게 좋다.’ 그래서 열두 개의 사원을 세우고, 그 심장에 해당하는 라싸의 호수를 메운 다음에 세운 사원이 조캉 사원입니다. 이 조캉 사원이 티벳 불교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티벳 사람들이 차마고도에 오체투지로 6개월, 몇 년 동안 순례를 해서 도달하는 곳이 조캉 사원이에요. 조캉 사원에 문성공주가 가지고 온 불상을 안치한 것 입니다. 그 불상이 티벳불교의 상징이에요. 근데 이 불상이 이름이 조오 불상입니다. 조오 불상을 모신 조캉 사원인 것 입니다.

조캉사원



척박한 유목민의 삶에 들어온 불교
유목민들은 삶이 굉장히 척박하니 당연히 정착민이 보면 너무 난폭하게 보이고 힘이 너무 세 보이고, 그다음에 뭐 이건 말이 안 통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유목민이 왜 나라를 못 만드냐면, 각 지형마다 각자 살아야 되기 때문에 각자 약탈을 해야 돼요. 여자를 데려와야 되고, 지금 굶을 것 같으면 다른 나라, 다른 부족에게 가서 뜯어 와야 돼요. 그래서 쉬지 않고 서로 싸워요. 그러니깐 연합이 안 돼요. 이걸 연합을 하려면 위대한 추장이 나서 이들을 진정시키면서 먹고살고 혼인을 하게 해 줘야 돼요. 그런 추장이 등장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깐 나찰녀는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번뇌에 가득 차고 광폭했던 티벳인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마음이 그런 식으로 늘, 광폭한 상태로 살아갔던 거지요. 이것이 끊임없이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상징하는 거라면, 이제는 사원을 그곳에 세움으로써 붓다를 통해 티벳인의 마음이 자비와 비폭력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티벳은 나찰녀의 나라에서 붓다의 나라로 바뀌게 됩니다.


강의_고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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